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논평:
삼성 이재용은 실질적 책임을 져야 한다

6월 23일 삼성전자 부회장 이재용이 삼성서울병원의 메르스 대응 실패와 관련해 ‘대국민 사과문’을 발표했다. 이재용이 내놓은 대책은 감염된 환자를 끝까지 책임지고 응급실을 포함한 진료 환경을 개선하고 부족했던 음압병실을 갖추겠다는 것이다. 백신과 치료제 개발도 적극 지원하겠다고도 했다.

그러나 이는 사과를 빙자한 의료 ‘산업’ 진출 발표에 지나지 않는다. 삼성서울병원의 정보 은폐와 부실 대응으로 고통을 겪은 환자와 보호자, 노동자들을 책임지는 것은 마땅히 해야 할 일이다. 사실상 전염원 구실을 한 응급실 체계를 바꾸고 음압병실을 갖추는 것도 병원이라면 당연히 해야 할 일이다. 이를 대책이라고 발표한 것은 그동안 돈벌이에 혈안이 돼 기본적인 병원시설도 갖추지 않았음을 인정하는 것에 지나지 않는다.

메르스 사태를 낳은 것은 영리화된 의료 체계와 망가진 공공의료다. 삼성과 이재용, 그리고 이건희는 이 문제에 커다란 책임이 있다. 삼성은 의료 ‘산업’이 삼성을 먹여 살릴 차세대 “먹거리”라며 의료 영리화를 추동해 왔다.

김대중 정부 시절에는 삼성경제연구소가 국민의료보험관리공단의 '의료보험 재정안정 종합대책' 등 정부 정책을 입안했다. 노무현 정부 때에도 영리법인의 의료기관 설립, 병원 광고, 포괄수가제, 외국인 의사 고용, 민간의료보험 활성화 등 의료 민영화의 밑그림을 제시했다. 국민건강보험을 민영보험으로 대체하기 위한 삼성의 전략보고서는 세부 표현까지 그대로 정부 정책보고서에 반영되기도 했다.

이명박 정부 시절 삼성경제연구소가 보건복지가족부로부터 용역을 의뢰받아 작성한 '미래복지사회 실현을 위한 보건의료산업 선진화 방안' 보고서는 'HT'라는 개념을 제시하며 건강관리서비스의 시장화와 원격의료 도입을 역설했다. 2010년 입안된 건강관리서비스법과 의료법 개정안은 이 보고서의 골자인 건강관리서비스 시장화와 원격의료 전면 허용을 담고 있다.

박근혜 정부 들어서는 이러한 의료 민영화 정책이 더욱 강도 높게 추진됐다. 삼성은 원격의료를 통해 병·의원과 가정에 의료기기를 팔기 위해 안달이었고, 박근혜 정부는 이에 보조를 맞춰 의료기기 규제를 대폭 완화해 줬다. 심지어 의료 기능을 탑재한 갤럭시S5가 의료법을 위반할 소지가 있다는 문제 제기에 식약처는 갤럭시S5 출시에 맞춰 규제를 풀어 줬다.

태안 기름 유출 사건

이렇게 삼성이 정권과 협작해 한국의 의료를 망가뜨리는 동안 민중의 생명과 안전은 내팽개쳐졌다. 태안 기름 유출 사건은 6년이 지났지만 삼성의 무책임한 후속 조처에 주민들은 여전히 고통받고 있다. “주민 여러분의 생활 터전이 조속히 회복되고 서해 연안의 생태계가 복원될 수 있도록 최선을 다하겠다”며 내놓은 돈은 고작 56억 원이었다. 총 피해액 7천3백41억 원의 1퍼센트밖에 안 되는 금액이었다.

삼성반도체에서는 백혈병 및 각종 질환으로 노동자들이 죽어나가는데도 이를 은폐하기 급급했으며, 고통을 겪은 당사자들이 7년 동안이나 삼성의 방해 공작을 무릅쓰고 싸워서야 사과를 받을 수 있었다. 사과 이후에도 삼성은 근본적인 재발 방지 조처가 아니라 알량한 보상 계획만 제시하고 있다.

2013년 삼성화성사업장 불산 누출 사고가 났을 때는 공공 소방서에 신고하지 않고 사내에서 운영하는 삼성 3119를 통해 자체적으로 해결하려는 납득하기 어려운 짓까지 벌였다. 사망자가 발생하고 경찰이 경위 파악에 나서자 사고 발생 25시간 만에 신고했다. 2013년 사우디 삼성엔지니어링 작업장에서 메르스 의심 환자가 발생했을 때에도 “하도급사인 동일산업과 소속 노동자들 간의 문제일 뿐”이라고 선을 그었다.

이런 사건들은 삼성이 저지른 범죄 가운데 작은 일부에 지나지 않는다. 삼성의 사과는 항상 늦었고, 그마저 땜질용이었다. 근본적인 조처를 취한 적은 한 번도 없으며, 사람들의 생명이 오가는 순간에도 그 손은 끝까지 인간이 아니라 이윤을 붙들고 있었다.

그런 삼성이 의료에 손을 뻗은 뒤 벌어진 참담한 결과를 우리는 지금 목격하고 있다. 삼성은 메르스라는 신종 감염병이 발생한 그 긴급한 순간에도 병원 노동자들에게 사실을 알리지 않았고, 간접고용 노동자들은 아예 관리 대상에 넣지도 않았다. 그 와중에 원격진료 허용을 요구할 정신은 가지고 있었다.

메르스로 죽어간 사람들은 ‘지병을 앓고 있어’ 죽어도 이상할 게 없는 사람들이 아니다. 얼마간의 치료로 건강을 회복할 수 있는 사람들이었다. 하루하루를 병마와 싸우며 살려고 안간힘을 쓰던 이들에게 메르스는 독약과 같은 것이었다.

이들의 죽음에 책임을 지기는커녕 새로운 사업 기회로 활용하려는 이재용의 ‘사과’에서는 조금도 진정성을 느낄 수 없다. 돈 냄새만 날 뿐이다.

이재용과 이건희 일가에게 끝까지 책임을 물어야 한다. 이들은 민중의 피와 땀을 쥐어짜 부를 쌓아 올렸다. 그중 이재용이 편법상속으로 착복한 돈만 환수해 공공의료에 투자해도 우리는 제2의 메르스 사태를 피할 수 있다.

2015년 6월 25일

〈노동자 연대〉 편집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