홍콩 활동가의 기고:
그리스: 새 긴축안 통과 후의 투쟁 정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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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날 그리스 정세는 단지 유럽뿐 아니라 전 세계 좌파 활동가들에게 몹시 중요한 화두이다. 다음은 홍콩 좌파 단체 레프트21의 회원이자 홍콩직공회연맹(HKCTU)의 간사였던 빈센트 성(宋治德)의 글이다. 홍콩 레프트21은 한국 노동자연대와 정치적 공통점이 많고, 빈센트 성은 알렉스 캘리니코스의 《트로츠키주의》를 중국어로 번역하기도 했다.
빈센트 성은 자신이 7월 24일에 중국어로 쓴 이 기사를 한국에 소개하려고 한국어에 능한 친구의 도움을 구해 우리말로 옮긴 뒤 본지에 기고했다.
독자들은 한국과 다른 조건에서 활동하는 동지가 쓴 기사를 보며 관심사와 문제의식이 상당히 비슷하다는 점에서 흥미를 느낄 수 있을 것이다. 물론, 이 글이 본지의 그리스 보도 논조와 온전하게 같지는 않을 수 있다.
7월 초부터 중순까지의 그리스 정세는 드라마틱하고 빠르게 변하며 사람들의 주의를 끌었다. 7월 5일의 국민투표에서 반대표 운동을 했던 대중과 노동계급이 보여 준 힘은 확실히 1970년대 이래 수십 년간 그리스에서 볼 수 없던 것이고 유럽에서도 보기 드문 현상이었다
잠시 주제를 벗어나 지난 국민투표의 내용을 설명하려 한다. 지난 국민투표는 트로이카가 이전에 내놓은 구제금융 긴축안에 대한 찬반을 묻는 것이었다. 그리스 정부 자신이 트로이카에 내놓을 구제금융 방안에 대한 찬반은 국민투표에 포함되지 않았다. 대만과 홍콩의 주류 언론이 말했듯 반대 진영의 승리가 곧 ‘디폴트’인 것은 아니었다. 시리자 지도부는 이 국민투표 결과를 이용해 트로이카에 자신의 구제금융 방안을 제출했다. 더욱이 그때까지 그리스 정부 대표는 트로이카와 구제금융 협상을 하면서 ‘디폴트’나 ‘채무미상환’을 요구한 적이 없고, 그저 ‘채무 재조정’ 방안에 대한 재량권을 요구한 것뿐이다. 하지만 모두 트로이카에게 거절당했다.
여기서 내가 논하고자 하는 것은 세 가지이다.
첫째, 국민투표가 긴축을 반대하는 대중투쟁과 노동운동에 어떤 의미가 있는가?
둘째, 국민투표 후 국회는 이전보다 더 엄격한 긴축안을 통과시켰고 전 그리스 재무장관 바루파키스는 이것이 파시스트 황금새벽당의 성장을 부추길 것이라 평가했는데 정말 상황이 그런가?
셋째, 새 긴축안 통과 후 그리스 노동계급의 반긴축 투쟁은 어떻게 발전할까?
첫째로 이번 국민투표에서 젊은이들의 반대 투표 비율이 가장 높았다. 반대표를 던진 연령층 중 18~24세가 85퍼센트
한편, 이번 투표는 계급 대결 투표였고 그리스 현지의 주류, 우파 매체들조차 ‘계급 투표’임을 인정하지 않을 수 없었다. 반대표를 던진 이들은 주로 기층 민중, 노동계급, 중간계급 하층이었고, 자본가 계급, 상층계급, 사장 등은 찬성표를 던졌기 때문이다.
투표 전날 반대와 찬성 진영의 여론은 팽팽했다. 찬성 쪽은 대재벌 자본가뿐 아니라
사실 이번 국민투표에서 반대표의 승리는 과거 수년간 계속된 아래로부터 조직된 노동계급의 반긴축투쟁에 힘입은 바 크고, 이번 투쟁도 그 연장선상에 있다. 대표적인 사건을 두 가지만 꼽자면, 첫째로 2년 전 국영방송국 ERT 노동자들이 방송국 폐쇄에 반대하며 벌인 점거 투쟁을 들 수 있다. 당시
둘째 문제는 전 재무장관 바루파키스가 이번에 트로이카의 새 긴축안을 받아들인 것이 파시스트 황금새벽당의 힘을 키울 것이라 경고한 것에 관한 것이다. 이 문제는 물론 깊이 살펴보고 경계해야 할 문제이지만 그는 일부러 그 위협을 과장한 측면이 있다. 분명 지난 수년간의 긴축 정책이 낳은 경제·사회적 위기는 황금새벽당을 크게 성장시켰다. 그들은 2012년 국회선거에서 처음으로 의석을 획득했고 그 당원들이 저지른 다수의 습격사건과 이민자 살해사건은 여전히 법적 처벌을 받지 않고 있다. 또한 경찰인 황금새벽당 당원은 경찰 고위층의 비호를 받고 있다.
하지만 전환점이 있었다. 바로 2013년 9월 18일 인종차별에 반대하는 래퍼 파블로스 파이사스가 황금새벽당원에게 살해되자 전국적인 반파시스트 운동이 일어났다. 이 래퍼가 살해된 뒤, 2012년에 다수의 좌파단체와 노동조합 인권조직과 이민단체가 조직한 ‘인종차별·파시즘 반대 운동’
황금새벽당은 이 사건을 겪은 후 그 기세가 다소 꺾였다. 이번 국민투표에서는 지지자들에게 반대표를 호소해 새롭게 지지를 얻으려 했다. 하지만 황금새벽당원들은 이 운동에 공개적으로 나타나지는 않았다. 또 조사에 따르면 이 당 지지자 중 60퍼센트는 실제론 찬성표를 던져 그 계급성향을 분명히 드러냈다. 또 황금새벽당은 반긴축투쟁의 주요 역량인 노동조합 세력이 하나도 없다. 현재로선 긴축 조처가 황금새벽당을 다시 성장케 하지는 않을 것 같다. 하지만 그리스 민중의 반파시스트 운동은 이미 일정한 사회 역량을 형성하고 있고, 반파시스트 역량과 반긴축투쟁이 서로 결합한다면 황금새벽당을 철저히 무너뜨릴 수 있을 것이다. 현재 KEERFA와 반자본주의좌파연합 안타르시아는 지역에서 이를 위한 교육과 선전작업을 하고 있다. 또 2013년부터 매년 10월에 반인종차별, 반파시스트 캠페인을 벌이고 있다.
셋째, 진정으로 자본주의를 변혁하고 유로존을 떠나고 은행 국유화를 바라는 단체나 노동조합은 이번 사건을 겪으며 시리자의 진면목을 똑똑히 보고서 이탈 여부를 결정하는 것이 좋을 것이다. 현 정세는 그리스 노동계급의 반긴축 투쟁에 어떤 영향을 줄까? 먼저, 시리자는 전통적 사회민주주의 개혁주의 노선을 표방하고
시리자
시리자는 결국 신자유주의에 무릎 꿇었고, 모종의 신노동당식 신자유주의-사민주의 세력이 됐다. 하지만 그들의 의회주의 노선은 여기서 멈추지 않을 것이다. 왜냐하면
앞서 말했듯, 그리스 노동계급은 반긴축투쟁을 위해 이미 자발적으로 동원하고 조직하고 있다. 만약 더욱 효과적이고 지속적으로 긴축 조처에 균열을 내려면 더욱 강력한 조직을 건설해 이 투쟁을 이끌게 해야 한다. 이 당연한 이치를 마르크스주의 철학은 이렇게 말하고 있다. 헝가리의 유명한 마르크스주의 철학자 루카치는 그의 명저 《역사와 계급의식》에서 노동계급에게 ‘부여된 계급의식’이라는 문제를 제기했다. 여기엔 이중적 의미가 있다. 하나는 노동계급이 객관적 사회 상황 속에서 직접행동에 나서고 전체 사회구조에 대해 영향력을 행사하려 한다는 것이다. 이것은 반자본주의 위기 속의 자발적인 투쟁으로 드러난다. 하지만 이처럼 자발적인 투쟁이 보여 주는 계급의식을 일관된 전략과 체계적인 실천적 지도로 바꾸어 사회변혁을 이끌어 낼 수 있을까? 이것이 둘째 의미와 연결되는데 바로 조직 문제이다. 루카치는 책에서 공산당
현재 그리스에서 어느 조직이 노동계급을 이끌어 반긴축·반자본주의 투쟁을 이끌 수 있을까? 시리자는 아니다. 하지만 그 안의 ‘좌파 연대’와 같은 단체는 그렇게 할 수 있다. 그리스 공산당은 지방의 노동조합에서 일정한 세력을 갖고 있지만 지도부의 종파주의 때문에 지난 국민투표에서 보이코트와 기권을 호소하다 웃음거리 됐으며, 그들의 지지자들도 대부분 반대표를 던졌다. 안타르시아는 세력이 비록 미약하지만 전투적인 조직이다. 이번 국민투표
요약하면 비록 시리자는 새 긴축안 통과를 주도했지만 결코 노동계급의 반긴축 결심을 흔들지 못했다. 국회가 7월 15일 긴축안을 표결할 때 각 노동조합은 전국적 파업을 개시했고 앞으로도 이와 같은 파업을 예고하고 있다. 치프라스의 국민투표는 하나의 정치 도박이었고 트로이카와의 협상을 위한 카드였지만 그는 국민투표가 오히려 노동계급과 대중의 거대한 반긴축투쟁 역량을 풀어놓으리라곤 예상하지 못했다. 투쟁은 이제 막 시작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