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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MZ 지뢰 폭발 사건:
누가 비무장지대를 위험하게 만드는가

지난 8월 4일 파주 비무장지대(DMZ)에서 일어난 지뢰 폭발 사건은, 그 전모가 무엇이 됐든, 박근혜 정부의 대북 정책이 실패하고 있음을 보여 준다. 어떤 미사여구를 갖다 붙이든, 박근혜 정부의 대북 정책은 계속 우왕좌왕하거나 군사적 긴장을 고조시키는 위험한 상황으로 몰고 있다.

8월 10일 국방부가 DMZ 지뢰 폭발 사건이 북한의 소행이라고 발표하자, 거의 모든 주요 언론들이 한목소리로 북한을 비난했다. 〈조선일보〉는 아예 이 사건을 “제2의 천안함 폭침”이라고 명명했다. 사건의 실체를 부풀려서 이용하겠다는 의도가 너무 노골적이다.

〈한겨레〉도 이 사건을 “북쪽의 비열한 군사 도발”이라고 규정하기는 마찬가지다. 특히, 〈한겨레〉는 이 사건이 “꽉 막힌 남북관계를 풀 수 있는 시기로 기대되는 시점에 터진 일인지라 더욱 실망스럽다”며 북한을 비난했다.

그러나 지난 수십 년 동안 벌어진 남북 간 군사 대결 때문에 비무장지대는 말 그대로 ‘지뢰밭’이 돼 있다. 비무장지대 일대에는 2백만~3백만 개의 지뢰가 매설·유실돼 있어, 지뢰 폭발 사고가 빈번하게 일어난다. 사건 초기 한국군 당국도 유실 지뢰에 의한 사고 가능성을 배제하지 못했던 까닭이다. 따라서 국방부의 설명만으로는 이 사건이 북한의 의도적 지뢰 매설 사건이라고 단정하기는 어렵다.

설사 북한군이 군사분계선을 넘어 의도적으로 지뢰를 매설한 게 사실이더라도 이 사건은 좀더 넓은 지정학적 맥락 속에서 이해돼야 본질을 파악할 수 있다. 〈한겨레〉 주장과 달리, 이 사건은 동아시아의 불안정이 점증해 오면서 남북 관계가 꼬일 대로 꼬인 가운데 일어난 일이기 때문이다.

주범

흔히 많은 사람들은 북한이 군사 도발을 통해 한반도의 평화를 위협하는 주된 위험 요소라고 생각한다. 북한이 ‘느닷없이’ 잠수함발사탄도미사일(SLBM) 사출 시험을 하거나 지뢰 사건이 ‘불시에’ 일어나는 상황에서, 그런 생각은 그럴 듯하게 보일 수 있다.

그러나 북한의 이런 ‘도발’은, 남·동중국해와 한반도 인근에서 미국과 그 동맹국들이 벌이는 군사훈련, 일본의 집단적자위권 행사와 자위대 전력 증강, 사드(THAAD)의 한국 배치 시도, 중국의 항공모함 추가 건조 등 일련의 일들 속에서 봐야 한다. 그렇게 보면, 북한이 동아시아와 한반도 불안정의 주범이라는 주장이 얼마나 과장인지를 알 수 있다.

지금 한반도와 그 주변에서 미국·일본과 중국은 치열하게 지정학적 경쟁을 벌이고 있다. 이 때문에 미국과 일본 등은 북한 ‘위협’을 과장하면서 동아시아에서 자국의 전략적 이익을 추구하고 있다. 그리고 이 점이 한반도를 불안정하게 하는 근본 원인이다. 지난 7월 일본 총리 아베는 중의원(하원)에서 안보법안을 강행 통과시키며 북한 탄도미사일의 위협을 과장했는데, 이 일은 미국과 일본이 북한 ‘위협’론을 어떻게 악용하는지를 보여 준다. 앞서 5월에 일본 방위상은 일본이 집단자위권을 행사해 미국과 함께 북한의 미사일 기지를 공격하는 것이 가능하다고 밝히기도 했다. 이런 상황이 북한한테 엄청난 압박이 됐을 것이다.

최근 오바마 정부는 쿠바와 관계 정상화에 나서고 심지어 이란과의 핵협상에서도 합의에 도달했다. 그러나 미국은 북한에 대해서는 수년째 공식 회담을 거부하며 ‘선(先) 핵 포기’를 압박할 뿐이다. 북한 지배자들로서는, 더욱 고립감을 느끼고 초조했을 것이다.

통일대박론

동아시아에서 제국주의 경쟁이 치열해지는 상황은 직접적으로 남북 관계에 악영향을 줘 왔다. 그리고 박근혜 정부도 남북 관계가 악화하는 데 책임이 있다.

물론 이명박의 대북 정책이 명백히 실패로 드러났으므로, 박근혜 정부는 집권 초부터 남북 대화에 나설 의사를 내비쳤다. 그러나 그와 동시에, 미국의 대북 정책에 보조를 맞추며 북한 핵 문제 등에서 ‘원칙’을 강조했다. 2013년 북한의 3차 핵실험 때 박근혜는 미국의 대북 제재에 확실히 힘을 실어 줬다. 이명박 정부의 대북 정책 실패를 상징하는 5·24 조처도 아직까지 고수하고 있다.

그래서 박근혜의 대북 정책은 처음부터 모순이 많고 신뢰하기 어려웠다. 지난해 6월 미국 의회조사국(CRS)도 “박근혜 정부가 외견상으로 드러난 [대북 정책의] 강경함과 유연함 사이의 모순을 어떻게 해소할지 분명하지 않다”고 지적했다.

게다가 2013년 12월 장성택 처형 사건을 계기로, 박근혜 정부와 우파들 사이에서 북한 붕괴론이 다시 대두되기도 했다. 이런 맥락에서 등장한 게 바로 이른바 “통일대박론”이었다.

따라서 북한을 상대로 “대화”와 “압박”의 투 트랙을 병행하겠다는 박근혜 정부의 대북 정책은 모순투성이일 뿐 아니라, 결국 미국의 대북 압박에 협력하는 쪽으로 귀결돼 왔다. 6월에 북한 인권 상황을 감시하는 유엔 북한인권 서울사무소 개소를 강행한 것을 보라.

그래서 남북 간에 대화 제의가 오가는 듯하다가도, 얼마 안 가 군사적 긴장이 불거져 남북 관계가 경색됐던 것이다.

휴전선

미국·일본 등의 대북 압박이 지속되고 남북 관계가 꼬이면서, 최근 휴전선 일대에서 남북 간 긴장이 커져 온 듯하다. 그리고 한국군의 공세적 대응이 문제를 키웠다.

올해 6월 주한미군사령부·한미연합사령부·유엔군사령부가 공동으로 발간한 《전략 다이제스트》(Strategic Digest)를 보면, “2014년 한 해 동안 한국군은 비무장지대(DMZ)와 [서해] 북방한계선(NLL)에 접근하는 북한군을 향해 11차례 대응사격을 한 바 있다.”

이 중 비무장지대에서만 지난해 하반기에 5차례나 총격전이 벌어졌다. 2000년대 들어 남북 간 무력 충돌이 주로 서해 북방한계선(NLL) 인근에서 벌어졌다는 점을 감안하면, 휴전선에서 이런 수준의 군사적 긴장이 형성된 것은 분명 “이례적인” 일이었다.

그런데 지난해 하반기의 비무장지대 총격전 5차례 모두 한국군이 먼저 사격을 한 것이었다. 그리고 한국군의 사격은 통상적 경고사격이라 보기엔 그 사격량이 지나치게 많았다. 유엔사마저 확전 가능성을 염려해 비무장지대에서 한국군이 취한 대응 태세에 대해 반복해서 문제제기할 정도였다. 주한미군사령관 스캐퍼로티도 “한국군의 대응 태세가 지나치게 경직됐다”고 지적했다(《주간 동아》 987호).

이처럼 한국군이 비무장지대 안에서 공세적 군사 행동을 벌인 것은 박근혜 정부가 “선 조치, 후 보고”와 “도발 원점, 지원 부대, 지휘 세력 타격” 등 강경한 대북 군사 대응 태세를 공언해 온 것과 관련이 있다.

그런데 한반도의 비무장지대는 전 세계에서 재래식 전력이 가장 많이 밀집돼 있기로 손꼽히는 “중무장지대”다. 그런 곳에서 한국군의 이런 행동은 매우 위험하다. 그래서 지난해 대북전단 살포로 일어난 남북 간 총격전을 두고 전前 주한미군사령관 제임스 서먼이 ‘오판을 야기할 수 있는 비무장지대(DMZ)의 어떤 총격도 자제해야 한다’며 우려했던 것이다.

이런 상황을 감안하면, 이번 DMZ 지뢰 폭발 사건을 단지 북한의 일방적 도발로만 치부할 수는 없다. 제국주의적 대북 압박이야말로 한반도를 불안케 하는 근본 원인임을 명심해야 한다. 그런 점에서, 정의당 심상정 대표가 이번 사건을 “북한의 반인도적 전쟁범죄로 규정”하고 박근혜 정부의 “안보 무능”을 “질타”한 것은 옳지 못하다. 이런 행보는 공식 정치의 우경화를 촉진하는 데 일조하고, 의도치 않게 정부의 대북 강경 대응에 힘을 실어 주게 될 것이다.

박근혜 정부가 내놓는 대응책들은 모두 비무장지대의 긴장만 높일 것들이다. 국방부는 “과거 DMZ 안의 전술 개념을 ‘저지’에 두었다면 앞으로는 ‘격멸’ 쪽에도 무게를 두겠다”고 얘기하고 있다. 교전수칙을 단순화해 “경고방송-경고사격-조준사격”이 아니라 바로 “조준사격”을 하도록 바꿀 가능성도 있다. NLL에서 한국군이 교전수칙을 단순화한 게 무력 충돌 가능성을 더 높였던 경험에 비춰 본다면, 박근혜의 대응책도 휴전선에서 남북 간 긴장을 높이고 무력 충돌 위험만 키울 것이다. 따라서 남북 간 긴장을 악화시킬 정부의 조처에 반대해야 한다.

또한 박근혜 정부와 우파들은 이번 사건의 실체를 부풀리고 사건의 책임을 북한에 전적으로 떠넘기면서, 노동시장 구조 개악 같은 국내의 중요한 문제들에서 대중의 시선을 분산시키려 한다. 따라서 노동자 운동은 우파의 거짓 선동에 휘둘리지 말고 노동시장 구조 개악과 박근혜의 노동자 공격에 단호하게 맞서 싸워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