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학생 활동가들(구식 용어로 ‘운동권’)의 활동에 어떤 패턴이 있는지 알아보는 일로 얘기를 시작해 보자. 이를 위해 먼저, 1970년대 말부터 1990년대 초반까지의 대학생 운동을 대강 훑어 보고자 한다.

1970년대에는 학생회 자체가 허용되지 않았고, 대학생 활동가들은 서클(동아리)로 존재했다. 대학생 활동가들은 요즘처럼 매우 소수였고, 아직 NL(민족해방 운동 계열)이다 PD(민중민주주의 운동 계열)다 하며 언쟁하지 않고 서로 협력적으로 활동했다. 대학생 대부분의 의식 수준은 1980년대만큼 급진적이거나 투쟁적이지는 않았다.

당시 대학생 활동가들 사이에 중요한 쟁점 하나가 있었는데, 거칠게 말하면 ‘대학생 운동을 해야 한다’는 견해와 ‘민중 운동을 해야 한다’는 견해로 갈렸다. 대학생운동론은 4·19처럼 거리로 나가 독재 정권을 타도하는 데 집중해야 한다는 것이었고, 민중운동론자들은 대학생 운동을 부정하지는 않았지만(대학생을 민중을 이끌 지식인으로 보았으므로), 노동조합 운동이나 도시 빈민 운동이나 농민 운동을 중시하자는 입장이었다. 그러나 두 경향이 서로 종파적 갈등을 빚지는 않았다.

오늘날 대학생 활동가들은 노동계급 운동(노동조합 운동은 그 일부일 뿐이다)과 대학생 운동을 모두 지지하면서, 상대적 강조점은 노동자 운동에 둬야 할 것이다. 그러나 1970년대에는 노동자들의 조직이나 의식이 걸음마 단계였으므로 대학생 운동에 상대적 강조점을 둬야 했을 것이다.

1980년 광주 항쟁이 가한 충격으로 대학생 활동가들은 1983년 운동이 되살아나기까지 물밑 급진화를 경험했다. 특히, 그 전 시기인 1970년대 활동가들의 경험과 사상적 한계를 성찰해 보는 것과, 수면 아래에서 마르크스주의 서적을 읽고 세미나 하며 (당시 용어로) ‘재생산’하는 것이 매우 중요했다. 그들의 일부는 ‘민중 속으로’(구체적으로 말해 공장이나 달동네나 농촌을 뜻함)를 매우 강조했다.

1983년 말 정부는 유화책으로서 학생회를 허용했다. 이후 1987년 6월항쟁 때까지 전체 민중 운동에서 대학생 운동이 가장 중요한 운동이었고, 특히 학생회라는 조직 형태가 매우 유용한 형태였다. 1987년 6월항쟁에서 NL계열 대학생들이 주도한 총학생회들이 기층에서 가장 중요한 구실을 했다. 그렇다면, 당시 대학생 활동가는 학생회 참여에 강조점을 두면서 이제 막 본격적으로 등장하고 있던 노동운동에도 관여하고, 동시에 혁명적 사상으로 ‘재생산’하는 일을 해야 했을 것이다.

6월항쟁 직후 노동자들의 진정한 대중 파업이 아래로부터 분출했다. 그래서 그때부터 1989년까지는 노동조합이 사회주의자의 활동에 가장 좋은 공간이었다. 대학생 활동가들이 가장 큰 강조점을 둬야 할 운동도 노동조합 운동이었다. 물론 대학생 운동도 여전히 중요했으므로, 학생회에 여전히 참여하면서 노동조합 운동을 지원하는 식으로 활동해야 했을 것이다.

그런데 1989년은 또한 톈안먼(天安門) 항쟁과 동유럽 붕괴 등 소위 ‘사회주의 사회’의 본질에 대한 이론적 설명이 매우 중요했다. 이때부터 1990년대 초반까지는 사회주의와 마르크스주의 사상에 대한 토론이 가장 중요했다. ‘사회주의는 몰락했다’, ‘마르크스주의는 파산했다’며 개혁주의(물론 좌파적인 종류의) 사상과 포스트모더니즘(당시에는 퇴행적인 종류의) 사상 등이 활동가들 사이에서 관심을 끌고 있었기 때문이다.

대학생 운동은 요즘도 여전히 의미가 있는가?

이제 대학생 운동에 여전한 의의가 있는지 살펴보자. 2006년 봄 프랑스 대학생들이 최초고용계약법(CPE: contrat première embauche)에 항의하는 운동을 벌였다. 그 운동은 매우 크게 떠올랐고 성공적이었다.

2008년 말에는 그리스의 대학생들이 엄청나게 격렬한 항의 시위를 벌였다. 특히 아테네공대생들의 점거 운동이 대단했다.

2010년 말에는 영국 대학생들의 운동이 분출했다. 이 시위는 정부의 교육예산 삭감과 대학 등록금 인상에 항의한 것으로, 비록 요구를 성취하지는 못했지만, 노동자들, 특히 공공부문 노조의 파업을 촉발하는 방아쇠 구실을 했다.

우리 나라에서는 2011년 6월 초 한대련 대학생들의 반값 등록금 시위가 성공을 거뒀다.

이렇게 경험으로 보더라도, 가장 최근까지도 대학생 운동이 의미 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그러나 이론적으로도 이 문제를 살펴보기로 하자.

먼저, 대학생들의 삶을 한번 보자. 고민거리나 관심사를 보면 잘 알 수 있다. 학업, 취업 등 장래 진로, 연애나 우정 같은 대인관계 등을 보자.

학업 문제를 보면, 많은 대학생들이 처음에 대학 들어갈 때부터 원하지 않는 대학, 원하지 않는 학과에 들어간다. 들어가서도 시험 때문에 (완전히 강제로) 원하지 않는 종류의 공부를 해야 한다. 시험이라는 건 도대체 진정한 지적 능력을 길러 주는 것과 관계가 없다. 그 따위 일을 위해 쉴 새 없이 애써야 하는 게 너무 고통스러운 데다, 점수가 잘 나오지 못하면 인생이 거기서부터 엇나가기 아주 십상이다.

진로 문제로 말하면, 도대체 나중에 뭘 해야 하나 고민이 엄청 많다. 그래서 공무원 시험이나 각종 시험 본다 해서 도서관에서 대학 생활을 완전히 다 망치게 된다. 젊은 청춘을, 인생을.

그다음, 대인관계, 특히 연애나 우정 같은 걸로 말하자면, 이것도 완전히 뒤틀리기가 십상이고, 또 억압적이기도 하다. 성적인 측면을 포함해서 말이다.

차별 문제도 살펴보자. 더 정확한 용어는 ‘천대’다. 단순히 ‘법 앞에서의 평등’ 문제로 환원되는 게 아니라 더 체계적이기 때문에 천대가 더 정확한 말이다. 대학생들은 천대받는다. 20대 초면 충분히 의사결정을 내릴 수 있고도 남는 사람들인데 이를 인정해 주지 않은 채 완전히 유보시켜 놓고, 노동시장 ‘진출’ 준비나 시키고 있어서 일종의 고등학교 시절이 연장된 듯한 인생이다. 경쟁하기 싫은데도 그저 떠밀려서 경쟁해야만 하는 인생이다. 삶이라는 게 완전히 계류중인 인생이다. 게다가 대학 서열 같은 것도 있다. 이렇듯 대학생은 천대받는 사회집단이라고도 할 수 있다.

이 모든 상황, 이런 현실을 마르크스주의는 ‘소외’라고 부른다. 다시 말해, 우리를 둘러싸고 있는 세계가 우리를 지배하는 듯한 상황, 즉 우리가 이 세계를 바꾸고 제어하고 우리 운명을 우리가 장악하는 것이 아니라, 우리가 보통 알지 못하는 어떤 외부적 힘에 의해 우리가 지배당하는 상황, 이것이 바로 소외다.

요컨대 노동자 못지 않게 대학생도 소외의 영향을 받는다. 어쩌면 더 큰 영향을 받을 수도 있다. 대학생은 자본주의적 소외와 천대를 받는 사회집단이므로 불만이 있을 수밖에 없고, 싸울 가능성도 있는 것이다. 특히, 생산관계에 매어 있지 않기 때문에 대학생들은 갑자기 어느 상황에서 폭발적으로 싸울 수가 있다. 노동자들보다 순발력이 강한 싸움을 할 수가 있다. 물론 지속성은 노동자 운동에 견줘 적고, 순식간에 떠올랐다 돌연 가라앉는 경향이 있다.

대학생이라는 사회집단은 또한 사상적인 면에서 민감한 집단이다.

이 모든 것을 고려해 볼 때 대학생 운동은 여전히 가능성이 있다고 할 수 있다. 또한 개별 대학생이 사회주의적 조직에 함께한다면, 투쟁과 사상을 결합시켜 가며 훈련받을 사람들이 들어오는 셈이고, 그들은 좋은 사회주의 활동가가 될 수 있다.

그러면, 대학생 마르크스주의자는 무엇을 해야 할까?

지금까지 얘기한 것을 바탕으로 대학생 마르크스주의자가 해야 하는 일을 크게 세 가지로 나눠 볼 수가 있겠다. 첫째, 마르크스주의 사상에 관한 토론을 하면서 ‘재생산’ 활동을 해야 한다. 둘째, 노동자 운동을 지원해야 한다. 셋째, 대학생 운동에 동참해야 한다. 학생회나 동아리 참여 또는 다른 어떤 조직 형식으로.

그런데, 앞서 필자는 1970년대 말부터 1990년대 초반까지 대학생 활동가의 활동에서 위 세 가지 방면의 활동 사이에 균형이 조금씩 달라져야 했다고 했다. 사상 토론이 가장 중요한 때가 있었는가 하면, 노동운동 지원이 가장 중요했던 때가 있었고, 또 대학생 운동이 가장 중요했던 때가 있었다. 1989년은 세 방면이 골고루 중요해서 참으로 질풍노도 같은 한 해였을 것이다. 물론 다른 해의 경우에도 삼자 중 택일의 문제는 아니었다는 점에 유의해야 한다.

그러면, 지금의 균형은 뭘까? 기본은 마르크스주의 사상을 둘러싸고 대학생들 사이에서 토론 모임을 형성하는 것이다. 특히, 자본주의 정치경제(학) 비판, 현 노동운동의 첨예한 쟁점들을 둘러싼 논쟁, (좌파적)개혁주의 전략을 둘러싼 논쟁, 자본주의국가론, 여성주의 논쟁은 필수로 포함돼야 한다.

토론만 하고 활동을 하지 않는다면 활동가라고 할 수 없다. ‘활동가’라는 말이 요즘 너무 느슨하게 사용되고 있지만, 이 점만큼은 분명히 해야 한다. 그러므로 활동을 해야 하는데, 필자가 대학생 일반의 정서나 분위기를 전혀 모르기 때문에 대학생 운동에 어떤 식으로든 꼭 동참하라고 강조하기에는 전혀 확신이 없다. 하지만 노동운동이 잘 풀리고 있지는 않아도 노동운동을 지지하고 그에 관해 다른 대학생·청년 등을 설득하려 애쓰는 것은 매우 중요하다.

마지막으로, 대학생들은 얼마든지 실수할 수 있다는 ― 특히 전술 문제에서는 ― 당연한 얘기를 강조해야겠다. 전략 문제는 이론적 성격이 강하지만, 전술, 곧 특정 투쟁에 대처하기 위한 방법은 본질적으로 기예(技藝: art)이다. 따라서 감각이 중요하고, 오히려 전략보다 훨씬 더 어렵다. 그러나 대학생들은 생활 경험, 투쟁 경험, 조직화 경험이 부족하다. 따라서 ‘능력이 부족하다’거나 ‘실수가 잦다’는 평가를 받을까 봐 몸을 움츠리고 방어적 자세를 취할 하등의 이유가 없다. 오히려 실수 없이 또는 실수를 적게 범하면서 전술을 배울 수 있다는 생각만큼 유물변증법과 거리가 먼 생각도 없는 것이다.

오늘날 경제 침체로 말미암아 대학생들 가운데는 대학생이자 노동자인 사람들도 점점 늘어나고 있고, 졸업을 하면 노동계급의 일원이 될 가능성도 점점 더 커지고 있다. 대학생 가운데 마르크스주의자는 동료 대학생의 일부를 설득해 노동계급 투쟁(정치적인 것, 경제적인 것, 이데올로기적인 것을 가리지 말고)을 지지하는 일을 함으로써 ― 거듭 실수를 해가며 ― 가장 효과적으로 활동할 수 있다.


※ 이 글은 필자가 올해(2015) 초 노동자연대 대의원협의회의 대학생 세션에서 노동자연대 운영위원의 자격으로 한 연설을 다소 수정한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