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월 5일 그리스 2대 도시 테살로니키에서 약 1만 명 규모의 시위가 벌어졌다. 해마다 9월이면 테살로니키에서는 국제무역박람회가 열리고 그리스 총리가 참가해 연설을 한다. 그에 맞춰 그리스 노동조합과 좌파들은 시위를 벌여 왔다.

올해는 총선을 2주일 앞둔 상황에서 시위가 열렸다. 알렉시스 치프라스의 시리자 정부가 국제 채권단과 고강도 긴축을 합의했고, 총선 후 들어설 새 정부는 그 긴축을 시행해야 한다. 이번 시위는 장차 들어설 정부에 대한 사전 경고의 의미를 지녔다.

나는 아테네 거주 좌파 활동가들과 함께 왕복 14시간의 원정 집회에 참가했다.

그리스 사회주의노동자당(SEK)의 노동조합운동 조직자이자 아테네 참가자들의 인솔을 책임진 타소스 아나스타시아디스는 테살로니키로 가는 동안 누군가와 계속 통화했다. 한 휴게소에서 사정을 들을 수 있었다.

“집회를 주최하기로 한 대형 노조들이 총선을 이유로 시위를 전혀 조직하지 않아 집회 규모가 예년보다 작을 것입니다. 그나마 참가하는 노조가 금광 광원노조인데 금광을 개발해야 한다는 입장이라 금광 개발을 반대하는 좌파들을 배척합니다.

“그래서 좌파들을 규합해 행진을 벌이려 합니다. 그래도 다행히 국영방송사 ERT 노동자들이 버스를 대절해 테살로니키로 가고 있다고 합니다. ERT 노조에 사회주의노동자당 동지가 한 명 있습니다.”

테살로니키로 가는 버스에는 사회주의노동자당 당원들 말고도 아나키스트도 있었고, 반자본주의좌파연합 안타르시아에 속해 있다가 최근 창당한 민중연합으로 간 활동가도 있었다. 그들은 버스에서 유일한 동아시아인인 기자에게 관심을 보이며 말을 건넸다.

“어디서 오셨나요?”, “북쪽이요, 남쪽이요?”, “혹시 국제사회주의경향(IST) 단체에 소속돼 있나요?” “북한 정권에 대한 당신의 입장은 무엇인가요?” 가벼운 인사는 이내 정치 토론으로 바뀌었다.

테살로니키 

아침 8시 아테네 국립고고학박물관에서 출발한 버스는 오후 3시가 넘어서야 집회 장소에 도착했다. 집회 시작 시간은 오후 6시라 주변을 구경했다. 건물 기둥마다 각종 정치조직의 포스터가 붙어 있었다.

대형노조의 집회 장소에서 맞은편으로 1백여 미터를 가면 해변이 있었는데, 또 다른 집회 연단이 설치돼 있었다. 그리스공산당(KKE)의 것이었다. 공산당이 다른 단체들에 종파적 태도를 취하며 따로 집회를 한다던 얘기를 눈으로 직접 확인할 수 있었다.

집회 시작 시간이 다가오자 [금광 개발] “찬성”(NAI)이라고 적힌 손깃발을 든 노동자 2백여 명이 나타났다. 앞에서 말한 금광 광원노조 노동자들이었다.

한 노동자가 기자의 옷에 붙은 안타르시아 지지 스티커를 가리키며 떼라고 했다. “그거 붙이고 여기 돌아다니면 위험합니다. 사람들이 당신을 죽일지도 몰라요. 우리는 일자리가 필요하고 금광 개발에 찬성합니다. 그들[안타르시아]은 반대합니다. 그들은 빨갱이입니다. 여기 사람들 모두 [안타르시아를] 싫어합니다.”

사회주의노동자당을 비롯한 좌파들은 대규모 환경 파괴를 낳고 대기업의 배만 불릴 금광 개발을 할 게 아니라 국가가 나서서 노동자들에게 다른 일자리를 마련해 줘야 한다는 대안을 주장하고 있다.

사실, 캐나다계 다국적기업이 투자하는 이 금광 개발은 전임 신민당 정부가 주력한 외자 유치 사업이었다. 또한 시리자 정부가 이런 ‘투자’에 대해 어떤 태도를 취하는지를 보여 줄 시금석이기도 했다. 치프라스는 2월에는 금광 개발을 중지시키겠다고 약속했지만 분명한 조처를 취하지는 않았다.

한편, 사회주의노동자당의 타소스는 분주하게 여기저기를 돌아다니며 사람들과 대화를 나눴다. 좌파들의 공동 행진을 조율하기 위한 것이었다.

좌파들의 공동 행진

6시 30분이 되자 사회주의노동자당 대열이 구호를 외치며 행진을 시작했다. 구호의 주요 내용은 구제금융 반대, 긴축 반대, 이주민에 대한 인종차별적 정책 폐지였다. 민중연합도 행진에 합류했고, 아나키스트 등 극좌파들도 뒤를 이었다. 안타르시아 대열이 가장 컸고, 파나기오티스 라파자니스 전 에너지부 장관을 선두로 한 민중연합도 많이 참가했다.

한 광장에 모인 좌파들은 번갈아 가며 자신들의 구호를 외쳤다. 마치 비보잉 댄서들이 댄스 배틀을 벌이는 모습 같았다.

서울 명동 한복판 같은 모습의 거리를 가득 메운 시위대는 목청껏 구호를 외치며 2시간 30분 가량을 행진했다. 행진에서 만난 고등학교 교사는 이렇게 말했다.

“임금이 절반으로 깎였습니다. 그리스 경제 상태는 그야말로 재앙적입니다. 상점들은 문을 닫았고, 많은 사람들이 일자리를 잃었습니다. 경제활동인구 1천만 명 중 2백만 명이 일자리를 잃었습니다. 그리고 점점 더 많은 사람들이 일자리를 잃고 있습니다.

“그러나 정부는 우리 말을 듣지 않습니다. 그러나 우리는 사태를 바꾸려고 애쓰고 있습니다. 저항하고 있습니다.”

사회주의노동자당의 설득으로 교사노조, 지하철노조, ERT 노조, 병원노조 등 최근 시리자 정부 하에서도 긴축에 맞서 투쟁을 벌인 노조들이 좌파들과 함께 행진했다. 이를 두고 사회주의노동자당의 키리야코스 바노스는 “비록 규모는 작지만 역사적인 순간”이라고 평가했다. 어려운 상황에서도 혁명적 좌파가 유의미한 변화를 일으킬 수 있음을 다시 한번 느끼게 됐다.

지난해 시위에는 4~5만 명이 테살로니키 중심가를 가득 메웠고, 시리자가 참가를 조직한 인원만 해도 수천 명이었다고 한다. 그에 견주면 올해 시위는 공산당 대열까지 합쳐 1만 명 규모였고 시리자는 수십 명밖에 참가하지 않았다.

총선이 2주밖에 남지 않았고, 총리가 연설하러 오지도 않았고, 대형 노조들이 조직을 방기한 상황이 맞물리며 올해 시위는 예년보다 규모가 작아졌다.

이날 좌파들의 강력한 시위는 9월 20일 총선 뒤로도 투쟁이 계속될 것임을 보여 줬다. 동시에, 투쟁 전망을 실현하기 위해서라도 금광 개발 문제처럼 운동 내에서 불거지는 첨예한 논쟁에서 분명한 대안을 제시하고, 노동조합 상층 지도자들의 보수성을 극복하는 등의 큰 과제가 혁명적 좌파에게 있음을 보여 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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