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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25 합의 이후 박근혜:
일시적 남북 유화 국면 이용해 “노동개혁”을 밀어붙이다

8·25 남북 고위급접촉 합의에 이어, 9월 8일 남북 적십자 실무접촉에서 남북 당국들은 남북 이산가족 상봉 행사를 금강산에서 열기로 합의했다. 박근혜 정부가 남북 대화에 나서고 대북 유화 제스처를 보이자, 이에 힘입어 박근혜의 국정수행 지지율도 올랐다.

박근혜는 중국을 방문해 시진핑과 정상회담을 하고는, 톈안먼 성루에 올라 중국의 전승절 열병식도 지켜봤다. 미국은 박근혜의 전승절 행사 참석을 물론 탐탁지 않아 했지만, 박근혜는 참석을 결정했다. 그래서 박근혜는 중국의 전승절 열병식에 참석한 유일한 미국의 동맹국 지도자가 됐다.

8·25 합의나 이번 중국 방문을 두고 일각에서는 박근혜 정부가 남북 관계 개선과 “균형 외교”의 새로운 계기를 마련하고 있는 게 아니냐는 기대감을 품기 시작했다. 박근혜는 이런 상황을 국내에서 “노동개혁” 등 임기 후반기의 목표를 추진할 동력으로 삼으려 한다.

그러나 최근 박근혜 정부가 얻은 외교적 ‘성과’들은 모두 불안정한 토대 위에 쌓아 놓은 꼴이어서 제한적 효과만을 낼 공산이 크다.(관련 기사: “남북 합의 이후 — 불안정을 낳는 정치적 지뢰는 여전히 남아 있다”(〈노동자 연대〉 155호))

박근혜가 중국의 전승절 열병식에 참석한 데서 드러나듯이, 한국은 최대 교역국인 중국이 갈수록 중요해져 온 현실을 무시하기 힘들다. ‘북한 문제’에 대한 중국의 영향력도 박근혜 정부가 중국에 신경을 쓰는 또 다른 요인이다.

그렇다고 해서 박근혜 정부가 동아시아 강대국들 사이에서 “균형외교”를 실질적으로 펼칠 수 있는 것은 아니다. 박근혜 정부는 포괄적 전략동맹으로서 한미동맹 강화를 한·중 관계보다 더 강조해 왔다. 여기에는 당연히 중국을 겨냥한 ‘한·미·일 삼각 군사 협력’도 포함돼 있다. 게다가 전승절 참석만으로도 박근혜는 미국과 일본의 따가운 눈총을 의식해야 한다.

9월 3일 중국 전승절 행사에 참석한 각국 정상들 ⓒ사진 출처 청와대

균형점

동아시아에서 강대국간 경쟁과 갈등이 점증하고 있기 때문에 박근혜가 “균형외교”를 펼 여지는 크게 제약돼 있다. 〈조선일보〉도 “한·미 동맹을 강화하면서 한·중 전략적 협력의 틀을 넓혀가고 일본 등 주변국과도 관계를 정상화하는” 것은 “난제”라고 걱정한다. 이 난제를 풀 절묘한 균형점이 어디냐를 두고 한국 지배계급 내의 견해차도 크다.

남북 관계도 마찬가지다. 박근혜가 유화 제스처를 보이고 있고, 김정은도 이에 대한 일정한 반대급부(경제 지원, 제재 완화 등)를 기대하면서 남북 대화가 진행되고 있다. 그러나 8·25 합의 직후에도 한미 양군이 북한을 겨냥한 통합 화력훈련을 진행한 데다, ‘삐라’ 살포만으로도 긴장이 다시 오를 수 있을 정도로 지금의 남북 관계는 상호 불신과 적대감이 크다.

게다가 이번 중국 방문에서 “조속한 시일 안에” 통일을 위한 외교적 논의를 (북한을 뺀 채) 하겠다고 밝힌 박근혜의 발언은 여전히 박근혜 정부가 별 근거 없이 ‘북한 붕괴론’에 경도돼 있다는 의심을 살 만하다.

무엇보다, 미국은 북한 제재와 무시 정책을 지속하고 있고, 여기에 박근혜 정부가 계속 협력하고 있다. 이번 한·중 정상회담에서 양국 정부는 6자회담을 재개하는 데 의견을 같이한다고 했지만, 박근혜 정부는 중국과 달리 “북한의 전향적 조처(즉, 북한의 선先 양보)”를 전제로 한 6자회담 재개를 얘기했다. 여전히 미국의 대북 정책에 보조를 맞추고 있는 것이다.

이런 태도는 앞으로 남북 관계에 계속 악재가 될 것이다. 예컨대 9월 말에 시작되는 유엔총회에서 북한 인권 문제가 다시 논의될 개연성이 있는데, 그리 되면 십중팔구 한국 정부는 서방 강대국들과 함께 북한을 압박하는 입장을 내놓을 것이다. 또한, 미국의 대북 제재에 반발해 온 북한이 머지않아 로켓을 발사할 공산도 점차 커지고 있다.

따라서 8·25 합의로 당분간 유화 국면이 있겠지만, 이는 어디까지나 취약한 것이고 중장기적으로 상황이 다시 바뀔 위험성이 다분하다.

국내 통치 책략

그럼에도 박근혜 정부는 당분간 8·25 합의와 전승절 행사 참석이 준 이점을 국내 통치에서 한껏 이용하려 할 것이다. 또한 아마도 박근혜는 10월 말 이산가족 상봉과 그 후에 있을 한·중·일 정상회의도 국내 입지를 강화하는 계기로 삼으려 할 것이다. 이미 8·25 합의 다음 날 박근혜가 새누리당 의원들을 대거 청와대로 불러 “공공·노동·금융·교육 4대 분야 개혁” 추진과 “서비스산업발전기본법, 관광진흥법, 국제의료사업지원법 등 경제활성화 법안” 처리를 주문한 바 있다.

오래 전부터 역대 정부들은 정부를 향한 대중의 불만이 커질 때 때때로 남북 관계를 이용해 대중의 시선을 다른 곳으로 돌리려 했다. 예컨대 노태우 정부는 “북방외교”를 표방하고 1991년 북한과의 유엔 동시 가입을 추진했는데, 당시 노태우 정부 하 최대 항위 시위였던 ‘5월 분신정국’을 진정시키는 데 이를 이용하기도 했다.

그러나 박근혜 정부가 국내 통치 책략으로 대북 유화 제스처를 오래 유지하기는 힘들 것이다. 동아시아의 제국주의 간 갈등이 점증해 오면서 한반도의 불안정과 모순도 심화돼 왔기 때문이다.

따라서 노동자 운동은 박근혜의 대북 정책 등이 갖는 한계와 위험성을 폭로하고 경고하면서 “노동개혁” 등 박근혜의 반동적인 정책에 일관되게 반대하고 싸워야 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