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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동개혁’에 저항하는 것을 회피해서는 재벌 책임도 물을 수 없다

최근 노동운동 일각에서 노동시장 구조 개악 저지를 위해 투쟁할 게 아니라, ‘노동개혁’과 재벌 개혁을 함께하는 방식(실제로는 맞바꾸기)으로 노사정이 조금씩 양보해 양질의 일자리를 만드는 ‘사회적 연대’를 하자는 주장이 제기되고 있다.

예를 들어, 한국노총은 노사정위에서 재벌 개혁과 노동개혁이 패키지로 합의돼야 한다고 주장했다. 그리고 김유선 한국노동사회연구소 선임연구원은 “재벌 개혁과 노동시장 개혁을 패키지로 다룰 새로운 노사정 논의 틀이 필요”하다고 제안했다.

재벌개혁이 아니라 재벌에 맞서 노동자 투쟁이 필요한다. ⓒ이미진

이와 비슷하게 정준영 청년유니온 정책국장은 ‘연대임금정책’을 제안했다. 그 구체적 내용인즉, “기업은 사내유보금을 내놓고 고위 임원의 보수 상한제를 도입하고, 노조는 노동시간 단축에 따른 합리적 임금 조정을 수용하거나 정규직의 임금인상분 일부를 비정규직의 임금인상에 반영하는” 것이라고 한다.

이런 발상들에는 노동자들이 노동시장 구조 개악 저지를 내걸고 투쟁하면 고립돼 패배할 것이라는 생각이 깔려 있다. 그보다는 대기업·정규직 노동자의 양보로 명분을 얻고 국민적 인기를 얻는 ‘재벌 개혁’을 내세워 정부와 기업을 압박하는 게 조직 노동자들의 피해를 최소화하고 비정규직이나 청년 고용 문제를 해결할 수 있어서 더 낫다는 것이다.

김유선 선임연구원은 이런 타협안을 이렇게 정당화한다: “노동계는 조합원의 요구를 중시하면서도 이를 넘어서서 전체 노동자와 사회 전체의 요구와 이해관계를 대변할 수 있어야 [한다.]

노동자 투쟁은 가망 없다는 이런 주장들은 새정치연합과의 연대로 기울기 쉽고, 사실 그를 염두에 둔 것이다. 새정치연합 원내대표 이종걸은 이렇게 주장했다. “청년 일자리를 위해 사회적 대타협을 각계에 제안한다.” “대기업 노동자는 청년과 비정규직에게 시간을 양보하라.” 재벌도 돈을 내되 정규직 노동자들도 노동시간 단축을 통한 임금 삭감을 받아들여야 한다는 것이다.

절박

그러나 대기업·정규직 노동자들이 노동시간 단축으로 임금을 삭감하면 정부와 기업도 양보해 양질의 일자리를 늘릴 것이라는 생각은 공상이다. 노동시장 구조 개악을 추진하는 박근혜 정부와 기업인들은 그럴 생각이 없기 때문이다. 노사정위가 합의에 이르지 못해도 노동시장 구조 개악을 추진하겠다는 박근혜 정부의 행태나, 노동시장 구조 개악을 빨리 추진하라고 촉구한 경제5단체를 보면, 한국 지배자들이 얼마나 절박하게 ‘노동개혁’을 추진하는지 알 수 있다.

한국 지배자들은 중국발 경제 위기 가능성이 커지자, 이에 신속하게 ‘노동개혁’을 추진해 임금을 삭감하고 노동유연성을 높여 대응하려는 것이다. 박근혜 정부의 ‘노동개혁’ 중 하나가 노동시간 연장을 위한 근로기준법 개악인 상황에서, 정규직 노동자들이 임금 삭감을 받아들인다고 해서 기업주들이 노동시간을 줄이고 일자리를 늘릴 것이라고 기대하는 것은 너무 순진하다.

물론 노사정위와 노정협상을 빨리 끝내기 위해 박근혜 정부와 새누리당은 야당이 제기한 재벌 과세 요구를 일부 수용할 수도 있다. 사실 새정치연합의 이인영·은수미 의원 등이 재벌 사내유보금에 과세하겠다며 제출한 법안들이 시행돼도 세수가 2조~3조 원밖에 늘지 않는 것으로 예상되기 때문이다. 이 정도로는 양질의 일자리 창출로 비정규직이나 청년 고용 문제를 해결하기에 턱없이 부족하다.

그리고 재벌들은 이윤을 여러 형태로 이전함으로써 이런 세금마저 최소화할 수 있다. 경제부총리 최경환이 도입한 ‘기업소득환류세제’는 약 1조 원 정도 될 것으로 예상됐지만, 실제로 늘어날 세금은 그 절반밖에 되지 않을 것이라고 한다. 현대자동자가 지난해 9월 10조 원을 들여 사들인 서울 삼성동 한전 부지가 투자로 인정되면 환류세액이 대폭 줄어들기 때문이다.

게다가 이런 대타협은 이전의 많은 개혁주의적 합의들과 마찬가지로 현금(노동시장 구조 개악)을 내주고 부도 어음(재벌 개혁)을 받는 게 되기 십상이다.

2007년 새누리당(당시 한나라당)은 국민연금을 삭감하는 대신 기초연금(소득대체율 10퍼센트)을 도입하기로 합의한 바 있다. 그 결과 국민연금은 2008년부터 즉각 삭감됐지만 기초연금은 수년간 도입을 미루다가 박근혜 정부 들어 완전히 누더기가 돼 시행됐다.

또, 청년고용촉진특별법에 따르면 각 공공기관과 지방공기업은 정원의 3퍼센트 이상씩 청년을 고용해야 하지만, 박근혜 정부는 이를 무시해 왔다.

마찬가지로, 현대자동차는 사내하청 노동자들이 ‘불법파견’이므로 정규직화해야 한다는 대법원의 판결도 무시하고 있다.

게다가 새정치연합이 해고 요건 완화나 취업규칙 변경 등에 절대 합의해 주지 않을 거라고 기대하기가 힘들다. 몇 달 전에도 새정치연합은 박근혜 정부와 마찬가지로 재정 감축 논리를 내세우며 공무원노조에 공무원연금 삭감을 받아들이도록 설득하고 권유한 바 있다.

새정치연합은 사회적 합의를 누더기로 만드는 데 일조해 왔는데, 예를 들어 박근혜가 기초연금 공약을 누더기로 만드는 데 협조한 바 있다.

따라서 박근혜 정부가 마지못해서라도 노동자들의 권익을 보호하는 정책을 시행하도록 하려면 기업주·부자들이 정부에 가하는 압력보다 훨씬 강력한 힘이 노동계급으로부터 위로 발출돼야 한다. 특히, 잘 조직돼 있는 대기업·정규직 노동자들이 박근혜 정부와 기업주에 맞서 앞장서서 싸워야 한다.

그러나 재벌 개혁과 ‘노동개혁’을 병행하자(맞바꾸자)는 사회적 타협론으로는 투쟁을 진지하게 호소하기가 힘들다. 정규직 노동자들이 자신의 조건을 양보하는 데 열의를 보일 리 없을 뿐 아니라, 노사정위 논의나 새정치연합에 기댄 입법 논의에 집중하는 것은 노동자들을 수동적으로 만들기 십상이기 때문이다.

잘 조직된 노동자들이 진정으로 “전체 노동자의 이해관계를 대변”하는 방법은 불확실하기 이를 데 없는 정부의 약속을 기대하며 양보를 하는 게 아니라, 능동적이고 공세적인 투쟁으로 다른 노동자 집단들에게 입증해 보여, ‘뭉쳐서 싸우면 동지들도 더 좋은 조건을 성취할 수 있다’는 메시지를 전하는 것이다. 이렇게 해서 고무된 노동계급 내에서는 연대투쟁과 계급의식도 발전해, ‘노동계급 형성’도 가능할 것이다.

재벌 사내유보금 환수 운동에 대해

최근 노동자계급정당추진위(이하 추진위)는 재벌 국유화(사회화)를 주장하며, 재벌 사내유보금 환수 운동을 시작했다.

국가가 30대 재벌의 사내유보금 7백10조 원을 환수해, 최저임금 1만 원, 대기업 간접고용 노동자 정규직화, 청년실업 해소, 의료공공성 강화 등을 해결하자는 것이다.

사내유보금은 매년 기업이 거둬들이는 이윤 중 세금과 배당 등을 제외하고 축적한 자산을 뜻한다. 따라서 사내유보금 환수는 재벌의 자본의 상당 부분을 환수하겠다는 것이다. 이는 재벌의 지배 구조를 문제 삼는 재벌 개혁론은 말할 것도 없고, 법인세 인상이나 사내유보금 과세처럼 재벌 이윤에 대한 세금을 늘리자는 요구보다 훨씬 급진적이며 반자본주의적인 주장이다.

왜 재벌 몰수가 아니라 사내유보금 환수인지, 사내유보금 환수를 유상 몰수로 할 것인지 무상 몰수로 할 것인지, 사내유보금 환수 요구를 자본주의 내에서 가능한 개혁 강령으로 여기는지 아니면 사회주의 혁명으로 발전해 가도록 다리를 놓는 전환(“이행기”) 강령으로 여기는지 등은 논란이 되고 있다. 사실 추진위 내에서도 조금씩 다른 주장이 나오는 듯하고, 몇몇 사람은 두 주장을 모두 하거나 혹은 모든 주장에 대해 열어 두는 듯하다.

물론 이런 쟁점들은 노동계급의 투쟁이 고양되고, 운동이 훨씬 더 치열해질 때는 첨예한 문제가 될 것이다. 사내유보금 환수는 재벌 몰수와 그다지 큰 차이가 없기 때문에 자본주의 체제 내에서 유상 몰수로는 가능하지 않은 전환(“이행기”) 강령으로 보는 게 타당할 것 같다.

현실화

그러나 현 시점에서 더 중요한 물음은 이렇다. 현 정세가 사내유보금 환수 운동을 벌일 만큼 운동[특히 계급투쟁]이 고양되고 있는가? 사내유보금 환수 운동을 현실화할 방법은 무엇인가?

추진위는 재벌에 대한 반감이 높은 지금이 사내유보금 환수 운동을 해야 하는 때라고 주장하고 있다. 그러나 재벌에 대한 반감이 커지는 것과 재벌에 맞선 효과적인 투쟁이 벌어지는 것은 다르다. 추진위는 운동의 주요 방법으로 ‘1만 인 선언운동’, 거리 홍보전 등 사내유보금 환수를 선동하는 데 집중하고 있고, 대중 집회도 기획하고 있다.

물론 재벌 사내유보금 환수 같은 급진적 요구를 내걸고 선동을 하거나 대중 집회를 여는 것은 지지받아야 한다. 추진위가 재벌 사내유보금 환수를 자기 단체의 변별적 표지로 삼아 자신들의 창당 계획 홍보에 이용하는 것이 광범한 대중 운동 건설에 도움이 되는지는 의문의 여지가 있지만 말이다.

그러나 추진위는 재벌에 고용된 노동자들이 (엄청나게 쌓인 사내유보금을 거론하며) 사업장에서 자신의 고용주에 맞서 싸우는 방식은 배제하고 있는 듯하다. 노동현장에서 벌어지는 투쟁이 “대중적 공분을 모아 사내유보금의 사회적 환수를 논하는 것에 많이 미달”하고, “대기업 노동자와 중소기업 노동자 간의 분배격차를 늘려 불필요한 논란을 만들 수 있다”는 이유에서다.(송명관, ‘재벌 사내유보금 환수의 목표는 재벌 국유화’) 개혁주의자들이 갖고 있는 노동자 특유의 계급투쟁보다는 재벌을 제외한 나머지 대중이 계급을 가로질러 재벌 반대로 단결해야 한다는 포퓰리즘을 공유하고 있는 것이다.

그러나 사내유보금 환수 운동이 실질적인 힘을 가지려면 재벌에 고용된 노동자들을 핵심적으로 연루시켜야만 한다. 선언 운동이나 거리 집회 등과 달리 재벌의 이윤에 직접적 타격을 줄 수 있는 힘은 재벌에 고용된 노동자들이 갖고 있기 때문이다.

노동시장 구조 개악 저지 투쟁에서 재벌의 엄청난 사내유보금과 그 밖의 이윤을 비판하며 대기업 정규직 노동자들이 투쟁에 나서도록 설득한다면, 더 대중적이고 실질적인 사내유보금 환수 운동도 가능할 것이다.

요컨대 우리가 보기에 가장 좋은 방법은 재벌과 여타(공공부문과 민간부문 모두) 대기업의 노동자들이 자신의 사용자(착취자)에 맞서 싸우는 것을 한편으로 하고, 노동자와 청년·학생, 여성, 기타 차별받는 모든 대중이 재벌과 부유층에 증세를 요구하며 거리로 나오는 것을 다른 한편으로 하는 경제적인 동시에 정치적인 투쟁이 전개되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