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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주노총은 총파업으로 11월 총궐기를 뒷받침해야 한다

박근혜 정부와 새누리당은 ‘노동개혁’의 고삐를 늦추지 않고 있다. 새누리당은 국정감사 직후 최우선 과제로 ‘노동개혁’ 입법 착수를 꼽으며 노사정위 후속 논의를 촉구했다. 그래서 결국 10월 13일 노사정위가 후속 논의를 시작하기로 했다. 그들로서는 한 걸음 전진한 것이다. 교육개혁과 금융개혁 같은 나머지 4대개혁도 서두르는 양상이다. 한국사 교과서 국정화는 교육개혁의 일환이자, 노동자 공격과 총선을 위한 보수층 결집용이기도 하다.

노사정위는 후속 논의 중 비정규직 문제(기간제법과 파견법)를 우선 다루고, 합의사항을 11월 초까지 국회로 넘기겠다고 밝혔다. 얼마 전까지 정부와 새누리당이 노사정위 합의를 어기고 있다고 불평하며 비정규직 문제는 노사정위가 아니라 국회에서 논의하자던 한국노총 지도부가 또다시 하루아침에 말을 뒤집고 노사정위 후속 논의에 합의한 것이다

한국노총 지도부는 마치 쉬운 해고와 임금 삭감 가이드라인(일반해고, 임금피크제 등 취업규칙 변경 완화) 논의를 뒤로 미루는 ‘시간 끌기’ 전술에 성공한 것처럼 말한다. 그러나 노사정위 후속 논의에서 기간제법과 파견법 관련 논의를 우선해 달라던 것은 정부와 새누리당의 요구였다.

지연 효과?

민주노총 조직들을 포함한 노동조합 운동 내에 은근히 퍼져 있는 ‘‘노동개혁’ 지연시키기’ 효과에 대한 기대는 두 가지 점에서 안일한 관측이다.

첫째, 노사정위에서 비정규직법 개악 논의가 시작됐다는 것 자체가 여러모로 법 개악에 탄력을 줄 수 있다. 11월 초까지 후속 논의가 합의에 이르지 못하더라도 일단 정부·여당은 새누리당안으로 국회 논의를 시작할 가능성이 크다.

국회법에 따라 새누리당안은 11월 3일 국회 환노위에 자동 상정되고, 새정치연합이 보류하지 않는 한 곧 법안심사소위로 넘어갈 수 있다. 한국사 교과서 국정화 정국의 영향을 받긴 하겠지만, 현재 새정치연합은 정의당과 달리 법안심사소위 상정 자체를 반대하는 입장은 아니다.(일각에서는 새정치연합이 며칠은 버텨 주지 않을까 기대하기도 한다.)

비정규직 문제도 안심할 수 없지만, 통상임금이나 노동시간 문제 등에서 새정치연합의 입장은 위험하다. 새정치연합은 ‘노동개혁’의 필요성 자체를 부정하지 않고, 심지어 정규직 양보가 필요하다는 입장이어서, ‘노동개혁’ 법안은 얼마든지 새누리당과의 정략적 거래의 희생물이 될 수 있다.

새정치연합의 은수미 의원은 한국노동사회연구소 좌담에서 당내 상황을 다음과 같이 솔직히 시인했다. “정당 간 합의를 하는 경우가 걱정이다. 그러면 환노위 의원들은 당과 싸우든지 손을 들어주든지 하나를 선택해야 한다.” 지도부 눈치를 봐야 하는 총선을 앞두고 의원들이 어디로 기울지는 비교적 명백하다.

일단 국회 논의가 시작되면 이번에는 역으로 그것이 노사정위 후속 논의 합의를 압박하는 효과를 낼 것이다. 그러면, 이대로 뒀다가는 최악의 안이 통과될 것이라는 전망을 명분으로 한국노총 지도부는 또다시 야합에 나설 수 있다. 한국노총 산하 3개 연맹(금속, 화학, 공공)은 노사정위 후속 논의 합의를 규탄하는 성명에서 “‘논의는 하되 합의는 하지 않겠다’는 한국노총 집행부의 기대와 희망사항은 점차 절망으로 바뀌고 있다”고 경고했다. 이렇게 되면 비정규직법 개악마저 급물살을 탈 수 있다.

이후 더 큰 투쟁을 벌이기 위해서도 파업을 통해 투쟁 근육을 키우는 것이 중요하다 쉬운 해고·평생 비정규직 노동개악 분쇄! 9·23 민주노총 총파업 대회. ⓒ이미진

‘노동개혁’이 지연되는 효과가 있을 것이라는 기대가 안일한 희망적 관측인 이유로서 둘째, 정부는 가이드라인 발표 전에도 다양한 방식으로 노동현장에 관련 내용을 관철시키라는 압박을 가할 수 있다. 실제로 임금피크제는 공공부문부터 상당히 관철했고, 성과연봉제도 공공부문에서 곧 추진에 착수할 예정이다.

심지어 노사정위 후속 논의 합의 이틀 후인 10월 15일 고용노동부는 3개 학회와 함께 금융, 제약, 조선, 도소매, 자동차부품 등 5개 업종의 임금피크제 모델을 제시했다. 사실상 5개 업종에 대한 임금피크제 가이드라인을 발표한 셈이다.

총궐기와 총파업

박근혜 정부와 새누리당은 노사정위 후속 논의와 한국사 교과서 국정화 고시를 ‘노동개혁’ 공세에 박차를 가하는 추진력으로 삼고 싶어할 것이다. 하지만 이것이 ‘노동개혁’ 추진 속도에 어떤 영향을 미칠지 예정돼 있는 것은 아니다.

필자는 위에서 지연 효과에 대한 기대를 반박했지만, 그 반대 효과를 주장하려고 그런 것은 아니다. 오히려 필자가 진정으로 강조하고자 하는 것은, 민주노총과 그 산하 노조들이 사태를 관망하며 마음 한 구석에 ‘지연’이라는 요행을 바란 채 결정적 공격 시기를 점치는 데 몰두하기보다 사태에 능동적으로 뛰어들어 정세에 영향을 미치고자 해야 한다는 것이다. 그래야 이 과정에서 노동자들도 더 자신 있는 투쟁으로 나아갈 채비를 갖출 수 있다.

가령 민주노총은 한국사 교과서 국정화 반대에 적극 나서 이 문제와 ‘노동개혁’ 문제를 결합시켜 투쟁을 강화시켜야 한다. 이 점에서 지난 10월 17일 주말 집회에 민주노총 지도부가 산하 조합원들을 별로 동원하지 않은 것은 매우 아쉬운 일이었다.

정부의 ‘노동개혁’ 추진에 차질을 주는 가장 효과적인 방법은 단호하게 노동자 투쟁을 확대해 나아가는 것이다. 그래야 국회 논의에서 ‘노동개혁’에 쉽게 합의하지 못하도록 새정치연합을 압박할 수 있다. 또, 그래야 한국노총 지도부에 대한 산하 노조 조합원들의 반발을 고무해, 한국노총 지도부가 야합을 반복하지 못하도록 압박할 수 있다. 현재 한국노총 산하 3개 연맹은 노사정 합의 파기를 촉구하는 단위노조 대표자 모임과 선언을 조직하고 있다.

이런 상황에 비춰 보면, 민주노총의 11월 계획은 불충분하다. 민주노총 중앙집행위원회는 “가이드가인 발표 시”, “환노위 법안심사소위 상정 시” 전면 총파업을 결정했는데, 여기서 총파업은 11월 14일 총궐기 이후로 미뤄져 있다(14일 이전에 법안심사소위 상정이 안 되기를 바라면서).

현재 11월 투쟁에서 단연 강조되고 있는 것은 14일 총궐기이다. 민중총궐기 투쟁본부가 주최하는 총궐기에는 농민·빈민·학생 등 민중운동 진영이 함께할 예정이고 이는 좋은 일이다. 그러나 민주노총은 그저 여러 민중 세력의 하나로서 집회 참가에 만족할 게 아니라, 전날인 13일 노동자 고유의 힘을 동원하는 총파업에 나섬으로써 자체 힘을 키우는 동시에 민중진영 총궐기 성공의 기반을 제공하려 애써야 한다.

현재 민주노총 지도부는 거꾸로 14일 총궐기에 기대어 총파업으로 나갈 자신감을 얻겠다는 구상이다. 자발성에 기대고 총궐기 성공의 덕을 보겠다는 것이다. 그러나 이처럼 앞서 조직하기보다 사태를 추수하려는 것은 민주노총이 한국 사회에서 여전히 가장 잘 조직된 세력이라는 점으로 보나, 현 국면의 성격을 보나 적절하지 않다.

지금은 거리의 운동이 폭발적 활력을 띠고 노동현장이 사기가 저하된 상황이 아니다. 가령 한국사 교과서 국정화로 인한 분노는 광범하지만 안타깝게도 자발적 행동으로 분출하고 있지는 않다.(정치적 대안이 미덥지 못해서일 것이다.) 오히려 자발성에 훨씬 덜 의존해도 되고 기존 조직력에 기초할 수 있는 총파업이 저항을 키우는 훨씬 더 현실적이고 효과적인 방법이다.

설사 수십만 거리 시위가 벌어진다 해도 그것이 자동적으로 노동자 총파업을 고무하는 것도 아니다. 2008년 촛불 당시 수십만 규모의 시위가 여러 날 지속됐고 그 시위대가 노동자들의 파업을 기대했음에도 그런 일은 벌어지지 않았다. 민주노총 지도부가 단지 시위대의 일부로서 참가하기를 선호하면서 조직 노동계급 고유의 집단적·경제적 힘을 동원하려고 하지 않았기 때문이다.(물론 이 점은 시민·사회운동측 지도자들도 마찬가지였다.)

박근혜와 사용자들의 노동 개악을 막기 위해 지금 중요한 것은 조직노동자들이 집단적 힘을 발휘하는 것이다. 민주노총 지도부는 단지 총궐기의 일부가 되려 하기보다, 13일 총파업 지침을 내림으로써 앞서서 총궐기를 뒷받침하고 14일 이후에도 대비해야 한다.

민주노총 지도자들은 11월 14일 이전에는 총파업에 나설 준비가 돼 있지 않다고 말한다. 그러나 앞으로 한 달 동안 총파업 조직에 나서지 않는다면, 똑같은 얘기가 11월 14일 이후나 “환노위 법안심사소위 상정 시”에도 나오지 말란 법이 없다. 악순환이다.

실질적 총파업 태세를 갖추는 가장 좋은 방법은 노동자들 스스로 파업을 위한 기층 조직에 나서면서 투쟁 근육을 키워 나가는 것이다. 다소 시간을 허비했지만 지금부터라도 차근히 조직해서 민주노총이 총궐기에 맞춰 11월 13일 총파업에 돌입한다면, 노동자들은 자신감과 사기를 높이면서 정부 공격에 맞설 수 있는 투쟁 근육을 키울 수 있을 것이다.

이것은 11월 14일 이후 노동자들이 자신감을 가지고 다시금 저항에 나설 수 있도록 준비하는 데서도 좋은 방법이다. 노동자들은 투쟁을 통해 스스로의 힘을 확인할 때 더 큰 투쟁에 나설 자신감을 얻을 수 있다.

현 상황에 대한 이해와 좌파들의 과제

민주노총 지도부가 11월 중순까지의 투쟁을 단순히 총궐기로 대체하고 총파업 불가 입장을 취하고 있는 상황에서, 좌파들이 공조해 지도부에게 총파업 결정을 촉구하는 활동을 했다면 상당한 의미가 있었을 것이다.

이것은 ‘결정적’ 시점을 11월 중순 전으로 보느냐 후로 보느냐 하는 문제가 아니다. 11월 중순 전 ‘총파업 불가’ 입장은 10월과 11월 초의 중요한 시기에 총파업 조직을 방치하게 만듦으로써 이후 노동 개악 저지 투쟁 전체를 약화시킬 위험이 있다. 그렇게 되면 “가이드라인 강행 시”, “환노위 법안심사소위 상정 시” 총파업도 제대로 조직하기 어려운 상황으로 내몰릴 수 있다.

노동조합 지도자들이 파업을 준비해야 할 때 하지 않고 뒤로 미뤘다가, 준비 없이 파업에 들어가거나 흐지부지함으로써 총파업 회의론을 증폭시키는 악순환을 우리 나라 노동운동에서도 여러 차례 보았다.

아쉽게도, 10월 초부터 ‘노동개악 저지와 총파업 승리를 위한 공동행동’(이하 총파업 승리 공동행동) 준비모임을 시작했던 노동전선, 노동자연대, 노건투, 좌파노동자회 등은 이런 상황에 어떻게 대응할지 의견이 일치하지 않았다.

‘총파업 승리 공동행동’ 제안서에는 “현장 활동가들이 민주노총과 산하 연맹 지도부에 파업 계획을 촉구하고 현장에서 실질적인 파업이 가능하도록 조직하는 게 중요하다”는 주장이 포함됐었다. 또, 활동가 간담회(10월 9일)에서도 ‘민주노총 지도부에게 11월 13일 총파업을 하고 14일 총궐기로 이어가자는 제안을 하자’는 데에 공감대가 컸다.

그러나 막상 이를 “선언” 등으로 집행하려 하자 노동자연대를 제외한 다른 단체들이 대부분 이에 반대하고 나섰다. 일부는 민주노총 좌파 지도자들조차 이를 수용하지 않으려 한다는 것에 압력과 위축감을 느낀 듯했고, 일부는 어차피 동력이 안 돼 뻥파업 우려가 있으므로 그런 제안을 하면 안 된다고 했다. 사실상 11월 14일까지는 총궐기로 족하다는 셈이었다. 이에 동의하지 않은 노동자연대가 불참한 이후, 실제로 ‘총파업 승리 공동행동’은 11월 14일 총궐기와 15일까지 1박2일 투쟁을 제안하는 것으로 “선언” 내용을 축소시켰다.

좀 더 근본적으로, 이견의 근저에는 현 상황에서 좌파들이 노동조합 지도자들에게 파업 지침을 내리라는 촉구를 (사실상 압박을) 해야 하는가, 이것이 중요한가 하는 쟁점이 깔려 있다.

현재 현장조합원들은 싸울 의사가 없는 것이 아니다. 다수 조합원들이 지난 직선제 선거에서 ‘현장은 준비되지 않았다’며 ‘2016~17년 준비된 총파업’을 내세운 후보가 아니라, 변변한 상층 지도자 경력은 없지만 ‘2015년 노동자 살리기 총파업’에 나서겠다는 후보(한상균 위원장)를 선택한 게 이를 보여 주는 한 중요한 표현이었다. 비록 대부분의 노동조합 지도자들은 불과 몇 달 만에 다시금, ‘현장은 준비되지 않았다’는 주장을 꺼내들었지만 말이다.

물론 그렇다고 해서 노동조합 지도자들이 투쟁 명령을 내리지 않을 때 현장 조합원들이 스스로 투쟁에 나설 만큼 싸울 자신이 있는 것은 아니다. 현장조합원들은 현재 공식 지침 없이 행동에 나설 만큼 자신감이 높은 상태는 아니다.

바로 이런 모순 때문에 좋건 싫건 노동조합 지도자들의 투쟁 결정이 중요하다. 좌파들은 노동조합 지도자에게 파업 선언을 촉구하고 이를 활용해 기층에서 현장조합원의 활동과 의식을 발전시키려 애써야 한다.

따라서 지금 이 문제(즉, 노조 지도부의 투쟁 결정)를 건너뛰고 다른 곳에서 총파업 좌절의 이유를 찾으려고 해서는 안 된다. 올해 총파업이 실질적이 되지 못한 건 민주노총 산하 연맹과 주요 노조의 지도자들 상당수가 파업 지침을 내리지 않았거나 이행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그런데도 ‘지침만으로 파업이 성사되는 게 아니다’라고 강조하면 자칫 노동조합 지도자들의 책임을 면제해 주는 잘못을 범할 수 있다. 지도부의 역할을 도외시한, ‘아래로부터의’ 이니셔티브 운운은 초좌파적 회피론이기 십상이다.

“그동안 활동가들은 상층 지도부가 투쟁하려고 하지 않는다고 비판을 해 왔다. 이제 비판을 넘어 스스로 투쟁을 조직해야 한다.”(노동전선 9.23 총파업 특보)

“정작 중요한 것은 총파업을 선언하는 것이 아니라 선언을 현실화할 수 있는 힘[이다.]”(노건투 9.23 총파업 특보)

“4·24, 7·15, 9·23 파업의 경험은 지도부가 선포한다고 총파업이 저절로 이뤄지는 건 아니라는 점을 분명히 보여 줬다. 현장에서 총파업의 열기를 얼마나 달구어 내는가가 관건이다.”(노건투 10.15 공공운수노조 총파업 특보)

투사들과 혁명적 사회주의자들이 아래로부터의 투쟁을 강조하는 것은 매우 당연하다. 그러나 현장조합원들의 자신감 수준을 구체적으로 보지 않은 채, 지침과 관계없는 총파업의 분출이나 현장 조합원운동을 기대하는 것은 비현실적이다.

언뜻 매우 급진적으로 보이는 접근법이 구체적 맥락에서는 노조 지도자들에게 압박 가하기와 비판하기를 포기함으로써, 오히려 관료들이 부담을 덜고 곤경을 피하게 해주는 꼴이 될 수 있음을 알아야 한다. 노동조합 지도자들에게 순응하거나 그저 묵살해 버리는 것, 둘 다를 피해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