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월 12일 박근혜 정부가 한국사 교과서 국정화를 행정예고한 이후로도 국정화 반대 선언이 각계 각층에서 이어지고 있다. 그럼에도 정부와 새누리당은 국정화 강행 의사를 거둬들이지 않고 있다.

박근혜는 19일 교육부 차관을 경질했다. 2009년에 그가 국정화 정책을 비판한 논문을 썼기 때문이다.

교육부는 텔레비전 광고도 시작했다. 기존의 검정 《한국사》 교과서 일부가 유관순을 다루지 않은 것이 문제라며 “올바른 역사 교과서”, “대한민국 헌법 가치에 충실한 교과서”를 만들겠다고 한다. 그러나 이것은 그야말로 “셀프 디스”다. 기존의 검정 교과서는 누가 통과시켰는가? 바로 교육부다.

검정 교과서 체제에서도 정부는 교과서 집필 기준과 검정 통과 기준을 제시하며 교과서를 검열해 왔다. 그러나 이제는 이것도 성에 차지 않는 모양이다.

현재를 지배하는 자들의 의도

조지 오웰은 1949년 출판한 《1984년》에서 “과거를 지배하는 자가 미래를 지배하고, 현재를 지배하는 자가 과거를 지배한다”고 했다. 즉, 현재를 지배하는 자가 미래를 지배하고자 과거를 지배하려 한다는 것이다. 이 말은 지금 정부와 새누리당이 ‘역사 전쟁’을 선포한 의도를 알려 준다.

첫째, 이들은 과거뿐 아니라 현재의 ‘친일’과 ‘친미’도 정당화해 현재 동아시아 질서 속에서 일본과의 관계 개선을 도모하고 미국과의 공조를 공고히 하려 한다. 즉, ‘과거사에 연연’하지 않고 미국·일본과 함께하는 친제국주의적 정책을 더 효과적으로 추진하고자 한다.

그래서 새누리당 의원으로 국회 외교통상위원장인 나경원은 한미 관계, 한일 관계를 “미래 지향적으로” 만들어 가려면 역사 문제를 “마무리해야” 한다며 과거사 문제와 다른 문제를 “분리 대응”해야 한다고 했다.(2015년 3월 6일 YTN 인터뷰)

둘째, 이승만과 박정희의 독재를 정당화해 현재의 민주주의를 후퇴시키려 한다. 우파들은 이승만과 박정희가 ‘자유민주주의’ 체제를 지켜냈다고 강변한다. 그러나 1925년 이승만이 임시정부에서 탄핵돼 쫓겨난 일, 1948년 5·10 선거에서 동대문갑 선거구로 출마하려던 상대 후보의 등록을 경찰력을 동원해 무효화한 일, 1956년 대선에서 자신의 경쟁자로 떠오른 조봉암을 사형시킨 일만 봐도 이승만이 자유민주주의를 어떻게 짓밟았는지 알 수 있다.

4·19 혁명을 쿠데타로 짓밟고 등장한 박정희는 1972년 유신을 통해 사실상 종신집권을 선포했고, 권위주의적 탄압을 강화하며 남한 사회를 준전시(準戰時) 상황처럼 통제했다. 박정희는 주로 “안보 위기”를 명분으로 권위주의적 탄압을 정당화했다.

이승만과 박정희의 독재를 정당화하겠다는 것은 현재의 억압과 착취를 강화하기 위해 평범한 사람들의 민주적 권리를 공격하는 것을 정당화하기 위한 것이다.

셋째, 투쟁의 기억을 지우고 착취와 억압의 역사를 은폐해 노동계급에 대한 이데올로기적 지배를 강화하려 한다. 특히, 착취하는 계급과 착취당하는 계급 사이의 이해관계 갈등을 더욱 은폐하고 싶어 한다.

뉴라이트 성향의 교학사 《한국사》 교과서 집필자 권희영은 “민중이 역사를 만들어 나간다는” 사관을 버리라고 주장했다. 그는 최근에도 “자본주의 경제에서 제일 중요한 것은 기업가이므로 그 역할을 정당하게 인정해 줘야” 한다고 주장했다.(2015년 10월 14일 자유경제원 주최 세미나)

또한, 새누리당 정부는 4·3 항쟁이나 10·19 여수순천항쟁 같은 저항의 역사를 지우고, 경제성장 과정에서 벌어진 사회 문제를 직시하지 않는 방식으로 한국사 교과서 집필 기준을 바꿔 왔다.

노동계급을 향한 공격

정부와 새누리당이 제국주의를 옹호하고, 민주주의를 후퇴시키며, 착취와 억압을 은폐하고 투쟁의 기억을 지우려는 것은 모두 궁극적으로 노동계급과 계급투쟁을 겨냥한 공격이다.

우리는 경제적 경쟁과 군사적 충돌, 대량 학살을 낳은 제국주의와 전쟁에 맞서 싸운 노동계급의 투쟁을 기억해야 한다. 또한, 세계 역사상 언론과 출판의 자유, 집회·시위·결사의 자유, 노동3권 등이 오랜 시간 동안 진퇴를 거듭해 온 살벌한 전투 속에 노동자들이 쟁취해 온 것이라는 점도 기억해야 한다. 그래서 한국사 교과서 국정화 시도에 맞선 “역사 전쟁”은 계급투쟁의 일부이기도 하다.

특히, 한국사 교과서 국정화를 저지하기 위한 투쟁은 현재 “노동개혁”이라는 이름으로 벌어지고 있는 노동계급에 대한 공격을 막기 위해서도 중요하다. 박근혜 정부가 별다른 저항을 받지 않고 국정화 강행에 성공한다면 노동시장 구조 개악을 밀어붙이는 데서도 유리한 고지를 점령하는 것이 될 수 있기 때문이다.

조직 노동계급의 과제

여당은 또한 국정화 문제를 우파 결집에 이용하려고 혈안이 돼 있다. 김무성은 “역사 전쟁에서 반드시 승리”하겠다며 우파가 단결하면 내년 총선에서 1백80석을 보장할 수 있다고 큰소리를 쳤다.

반면, 새정치연합은 국정화를 반대한다. 그러나 이들의 반대는 주로 국정화가 친일파·독재를 미화해 박정희의 명예를 회복시켜 현 정권의 정통성을 확보하기 위한 것이라는 점에 초점을 맞추고 있다.

새정치민주연합은 자본가들(비주류일지라도)을 지지 기반으로 하고 있기 때문에 국정 교과서가 담고자 하는 미국 제국주의 지지, 노동자 착취 은폐 등에 대해 말하지 않는다.

정부의 국정화 시도에는 가르칠 내용에 대한 통제뿐 아니라 교사 노동자들에 대한 통제, 전교조에 대한 공격도 깔려 있다. 국사편찬위원회 위원장 김정배는 전교조가 ‘좌편향’이므로 역사교과서 집필에서 배제하겠다고 말했다. 보수 언론들은 “교실에 넘치는 편향 교육 … 교사가 더 문제”(TV조선), “좌편향 교사·저질 수업 이대로 두고 봐야 하나”(〈동아일보〉) 같은 기사들을 연일 쏟아내고 있다. 또한 교학사 《한국사》 교과서 집필자 권희영은 학교 현장에서 교사들이 학생들을 “반체제적 민중사관의 투사 및 동조자로” 만들고 있다며 “민중사관 역사 연구자, 교사들의 카르텔을 깨야만” 하고 이것이 바로 정부의 과제이자 책임이라고 강조한다.

따라서 민주노총과 전교조 등 조직 노동자들은 국정화 반대 운동의 수동적 지지자가 아닌 능동적 주도자 구실을 해야 한다.

일부 소심한 사람들과 너무 온건한 활동가들은 전교조가 연가 투쟁 같은 집단 행동을 벌이면 정권 VS. 전교조의 대립 구도가 형성돼 다른 사회 세력이 이 운동에서 발을 뺄 거라고 주장한다. 그리 되면 일껏 오랜만에 무르익기 시작한 운동의 기반이 좁아질 수 있다는 것이다.

하지만 박근혜 정권에 대한 불만과 분노가 국정화 반대로 나타나고 있는 이때 오히려 노동계급이 단호한 주도력을 보여 준다면 광범한 지지를 이끌어 낼 수 있다. 2013년 12월 철도 파업은 그다지 전투적이거나 급진적이지 않았는데도 대학생 등 광범한 소외 집단으로부터 열렬한 지지를 받았다.

반면, 정의당 심상정 대표가 제안한 ‘야권 정치 지도자 회의’는 노동계급의 힘이 아니라 새정치연합의 주도력을 강화시키는 방안이다. 민주노총이 이 제안을 환영하고 나선 것도 우려스럽다.

좌파 활동가들은 한국사 교과서 국정화 반대와 “노동개혁” 반대를 결합시키기 위해 노력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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