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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러미 코빈의 승리와 시험대

제러미 코빈이 블레어 지지자들을 완벽히 제압하고 노동당 대표로 당선하자 기성 정치권이 요동쳤다. 영국 전교조(NUT) 조합원이자 사회주의노동자당(SWP) 활동가인 숀 도어티는 우리가 코빈을 방어하기 위해, 더 중요하게는 코빈 승리의 바탕에 있는 원칙들을 방어하기 위해 조직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 ] 안의 말은 〈노동자 연대〉 편집자가 독자의 이해를 돕고자 첨가한 말이다.

정치도 인생과 같아서 언제나 뜻밖의 일이 일어난다. 제러미 코빈이 노동당 당대표 선거에서 완승을 거둔 것은 몇 달 전에만 해도 꿈만 같이 여겨지던 놀라운 일이다. 내가 교사로 거의 40년 동안 살면서 보아 온, 지역구를 자전거로 누비며 세상의 모든 파업과 모든 진보적 운동을 지원하던 그 의원이 노동당 대표가 될 줄이야, 도무지 상상도 안 되는 일이다.

하지만 나를 비롯해 많은 사람들이 코빈이 당선하면 야단법석이 일어나리라고 예상했다.

코빈의 친우이자 예비내각의 재무장관 존 맥도넬은 집무를 시작하자마자 반발의 “쓰나미”가 일었다고 했다. 어떤 면에서는, 반발의 규모가 그렇게 크고 그토록 험악한 독설이 쏟아진 것을 기꺼워해야 할 일이다. 코빈과 맥도넬이 대변하며 지키려 애쓰는 공약들을 노동당 안팎의 우파들이 끔찍이 싫어해서 공격이 그토록 거센 것이기 때문이다.

9월에 열린 영국노총(TUC) 대의원대회에서 연설하며 코빈이 국립미술관 노동자 파업에 성원을 보낸 것은 정말이지 상쾌했다. 노동당 대표가 파업 지지 연설을 한 게 도대체 얼마만인가? 실제로 노동당 당대표 선거 기간 중 친보수당계 일간지 〈데일리 텔러그래프〉조차 보수당 일각의 안일함을 꾸짖었다. 보수당은 코빈이 노동당 대표가 되면 2020년 총선에서 자기네가 낙승할 것이라고 봤다. 〈데일리 텔러그래프〉는 보수당의 기대가 어긋날 수 있다고 제대로 지적했다. 코빈의 당선으로 자본주의 사회의 기본 전제들에 근본적 의문이 제기될 수 있기 때문이다.

규모

코빈의 승리가 얼마나 대단했는지를 떠올리는 것이 좋겠다. 코빈은 25만 1천4백17표(59.5퍼센트)를 득표했고, 앤디 버넘은 8만 4백62표(19퍼센트), 이베트 쿠퍼는 7만 1천9백28표(17퍼센트), 리즈 켄들은 1만 8천8백57표(4.5퍼센트)를 득표했다. 코빈은 당원의 49.6퍼센트, 공식 명부에 이름을 기재한 지지자(3파운드를 내고 등록함)의 83.8퍼센트, 가맹 노동조합 조합원의 57.6퍼센트의 표를 얻어 세 부문 모두에서 승리를 거뒀다.

당선 직후 코빈이 우파들의 공격에 직면한 것은 놀랄 일이 아니다. 예상대로 언론의 늑대들은 코빈을 박살내려고 했다. “코빈이 셔츠 단추를 끝까지 안 채웠다”는 쓰잘데없는 지적부터 코빈이 총리가 되면 군부가 반란을 일으킬 것이라는 무시무시한 협박까지 다양한 공격이 있었다. 그러나 진정으로 위협적이었던 것은 자유주의 언론들과 예비내각 성원을 비롯한 노동당 의원들이 보인 반응이었다.

자유주의 언론의 양대 기둥인 〈업저버〉〈가디언〉은 선거운동 기간에 맹렬하게 코빈 반대 운동을 벌였고, 코빈이 승리한 뒤에는 곧바로 코빈이 실패하고 말 것이라는 예측을 내놨다. 두 신문의 코빈 적대에 많은 독자들뿐 아니라 두 신문의 가장 명망 높은 필진들도 불쾌해했다. 결국 〈업저버〉는 원로 기자 에드워드 벌리어미와 윌리엄 키건이 〈업저버〉와 자매지 〈가디언〉의 입장을 비판한 글을 지면에 실을 수밖에 없었다.

벌리어미는 이렇게 썼다. “내 개인 의견으로, 우리[〈업저버〉]는 평등·평화·정의라는 도덕적 원칙에 따라 적어도 선거 결과의 정신을 받아들여야 했는데, 그러지 않아서 많은 독자들을 실망시켰다.” 키건은 긴축에는 코빈 같은 대항마가 필요하다며, 코빈이 내놓은 정책은 매우 합리적이고 치우침이 없다고 주장했다.

노동당 안팎의 공격에도 불구하고, 제러미 코빈은 새로운 변화를 바라는 사람들의 지지로 당선했다. ⓒ출처 lewishamdreamer(플리커)

벌리어미와 키건은 〈가디언〉의 핵심 인사 조너선 프리드런드가 대표한 입장을 비판한 것이다. 프리드런드는 이렇게 말했었다. “코빈은 자기 얘기만 하지 말고 노동당 전체를 대표해야 한다.” 다른 말로 해서, 코빈이 자신의 긴축 반대 원칙과, 영국에서 긴축을 시작한 블레어의 동료들이 내세우는 신자유주의 컨센서스를 조화시켜야 한다는 것이다. 또, 코빈이 애국가를 부르고, 정장을 제대로 차려 입고, 보수적 토크쇼인 ‘앤드루 마 쇼’에 출연하는 등 기성 정치권의 구시대적 문화를 따라야 한다는 것이다.

코빈이 자기 원칙을 고수하는 것이 이기적이고 개인주의적이라는 주장에 이런 반문을 할 수 있다. 코빈이 왜 출마했고 그렇게 큰 지지를 얻은 이유는 무엇인가?

노동당 내 코빈 반대파도 공격을 멈추지 않았다. 팔코너 경과 힐러리 벤은 코빈이 영국의 시리아 폭격 반대 입장을 분명히 할 때를 대비해 자신들은 미리 영국의 시리아 폭격을 지지할 준비를 하겠다고 밝혔다. 노동당의 런던시장 후보 사디크 칸은 〈데일리 메일〉의 일요판이자 친보수당계 주간지인 〈메일 온 선데이〉에 코빈과 맥도넬을 비난하는 글을 기고해, 중동과 아일랜드에 대한 코빈과 맥도넬의 견해가 테러와 유대인 혐오 공격을 부추길 위험이 있다고 주장했다. 추카 우무나는 코빈이 당 대표가 됐으니 다음 총선에서도 보수당이 승리하면 거리 소요가 일어날 수 있다며 공포를 부추겼다. 찰스 클라크와 로이 해터슬리는 코빈이 “따분하고” “불평분자들의 소망을 대변하는 우스꽝스러운 인물”이고, “교묘하게 만들어진 이미지”에 의존한다는 인신공격을 했다.

아마도 이런 노동당 내 코빈 성토는 프리드런드가 코빈에게 들려 주고 싶은 말일 것이다. 그러나 중요한 점이 빠져 있다. 코빈이 다른 사람들과 달라서 당선했다는 점이다. 코빈은 신노동당 지지자가 아니다. (사실, 당대표 후보 중 가장 충실한 블레어 계파인 리즈 켄들은 겨우 4.5퍼센트를 득표했다.) 코빈은 긴축, 트라이던트 핵잠수함, 난민 마녀사냥에 반대하고, 철도 재국유화와 부의 재분배를 지지했기 때문에 당선했다. 코빈이 이제 와서 그의 원칙을 내던지는 것은 그에게 투표한 사람들을 모두 모욕하는 일일 것이다.

사기충천한

나는 코빈이 거의 욕설 같은 이런 비난 세례에 굳건히 맞서기를 바란다. 타협할수록 적들이 약점을 잡았다고 보며 더 거세게 공격할 것이다. 코빈의 강점은, 그의 정치적 지지자가 스무 명도 안 되는 노동당 의원단에서 나오는 것이 아니다. 그가 당대표가 되기를 바라며 지지하고 그의 유세를 보며 사기충천한 수많은 사람들에게서 나온다.

당대표 선거운동 기간에 코빈이 개최한 1백 번의 대중 집회를 보며, 주류 정치권에게 소외된 청년들이 열광했고, 노동당의 신자유주의 정책 추진에 실망한 많은 장년 사회주의자들이 활력을 되찾았다. 코빈의 승리는 진짜 변화가 가능할 것이라는 희망의 승리였다. 코빈의 승리는 긴축 정치에 대한 반감이 전국 곳곳에서 만연해 있음을 보여 줬다. 코빈 당대표 당선 이후 이 글을 쓰는 지금까지 [겨우 열흘 만에] 약 6만 2천 명이 노동당에 가입했다. 그 중 4분의 1은 과거에 탈당했다가 재입당한 사람들이다. 그들은 십중팔구 신노동당이 추진한 전쟁과 민영화에 실망해 탈당했던 사람들일 것이다.

당대표 선거 결과가 발표된 9월 12일, 희망과 인류애가 나타난 또 다른 일이 일어났다. 런던을 비롯해 영국 전역의 여러 도시에서 수많은 사람들이 난민 환영 시위를 벌인 것이다. 이는 전쟁을 피해 유럽으로 온 수많은 난민들의 끔찍한 처지에 충격을 받은 유럽의 보통 사람들의 울분이 울컥 솟아오른 일이었다.

코빈이 노동당 대표로 처음 한 일이 이 시위에 참가해 연설한 것이었다. 그가 앞으로 긴축 반대, 전쟁 반대, 인종차별 반대 정서를 어떻게 결집시킬 것인지를 보여 주는 또 다른 징후다.

혁명적 사회주의자들은 코빈에 대한 끈질긴 공격과 코빈을 흠집 내려는 [우파의] 시도에 어떻게 대응해야 할까? 코빈이 어쩔 수 없이 타협할 때마다 “배신이야!” 하고 부르짖어야 할까? ‘개혁주의 정치는 체제에 굴복하기 마련’이라는 슬로건을 만들어야 할까? 아니면, 최대한 광범한 운동을 건설해서 코빈이 계속 당대표직을 유지하며 공약한 정책들을 추진할 수 있도록 우파로부터 그를 방어하며 지지해야 할까?

전자처럼 한다면 소종파 신세를 면하지 못하고 우리 정견을 들을 청중을 얻지도 못할 것이다. 우리는 우파들의 공격으로부터 코빈을 방어하기 위해 힘을 모아야 한다. 우리는 코빈을 방어하면서 긴축 반대, 난민에 대한 연대, 인종차별 반대, 전쟁 반대 등 우리 자신의 정치에서도 핵심적인 원칙들을 방어할 수 있을 것이다.

코빈을 끌어내리려는 공격이 성공하면 누가 득을 볼까? 한 가지는 분명하다. 코빈이 그렇게 추락하면 정치적 분위기가 혁명적 관점 쪽으로 선회하기보다는 사기 저하와 패배감이 만연한 쪽으로 흐를 가능성이 훨씬 높다.

방어

‘단결해 싸우자’(Unite the Resistance)*가 “제러미 코빈의 긴축 반대 정책과 그가 노동당을 이끌 민주적 권리를 옹호하라”는 연서명을 발의한 것은 올바른 대응의 중요한 사례다. 이미 주요 노동조합 지도자들이 모두 이 연서명에 서명했다. 몇몇 유력 노조 사무총장들[영국은 위원장보다 사무총장이 노조의 진정한 실세다]이 존 맥도넬을 예비내각의 재무장관으로 임명한 코빈의 결정에 미온적인 태도를 보이는 상황에서 이 연서명은 특히 중요하다.

이 연서명은 코빈의 선거운동이 보낸 메시지에 많은 사람들이 고무됐고, 코빈은 당대표 경선에서 내놓은 정책을 추진할 권한이 있다고 주장했다. 코빈을 약화시키려 애쓰는 사람들은 민주주의를 모욕하는 것이라는 것이다. 이 연서명을 모든 일터와 지역사회에 돌려 서명을 받아야 한다.

코빈 자신은 빈곤, 인종차별, 전쟁에 맞선 사회운동을 창출하고 싶다고 주장해 왔다. 진정한 대중 운동이 건설된다면 이는 코빈이 자신의 정책을 추진하는 데 도움이 될 뿐 아니라, 우파의 반격을 약화시킬 수 있을 것이다. 그러나 이 운동의 성격을 명확히 규정하는 것이 중요하다. 이 운동은 긴축 반대 운동을 모두 지지하고, 전 세계에서 일어나는 난민 연대 운동을 지지하고, 파업 등 노동자 저항을 지지하고, 중앙정부와 지방정부의 예산 삭감에 반대하는 운동을 모두 지지하고, 철도 재국유화를 지지하고, 의료 공공성을 지키고, 시리아 공습이나 트라이던트 핵잠수함 재도입 등 전쟁과 핵 확산을 반대하는 운동이어야 한다.

이것들이 코빈 방어 운동과 보수당의 긴축재정에 맞선 운동 둘 모두의 토대가 되는 원칙이다. 한 가지는 절대적으로 분명하다. 코빈이 노동당 의원단에 의존한다면 그는 불행한 결말을 맞을 것이라는 점이다. 우파들은 벌써부터 그의 실각을 노린 계략을 꾸미고 있다.

코빈이 일으킨 운동의 힘이 노동당 당내 투쟁에만 소비된다면 그 운동은 동력을 잃을 것이다. 당장 치러야 할 긴급한 전투가 있다. 보수당은 2020년 총선 때까지 긴축을 미뤄 두지는 않을 것이다. 우리도 그때까지 투쟁을 미뤄 둬서는 안 된다.

코빈을 방어하면 그를 비판하지 말아야 할까? 그래서는 안 된다. 앞으로 코빈이 실망스러운 입장을 취할 수도 있다. 다원주의가 좋은 원리인 듯하고, ‘광교회파’라는 말이 개방적으로 들리지만, 추카 우무나처럼 매사에 자기 지위를 이용해 코빈을 끌어내리려 할 인물들을 예비내각에 들이는 것이 정말 좋은 생각일까?

류크 에이크허스트는 코빈이 국방·외교정책 부문에서 예비내각 성원 일부와 이미 타협했을 수도 있다고 〈레이버 리스트〉 웹사이트에 간략히 진술하면서, 코빈이 실각할 수 있는 여러 시나리오를 제시했다: 노동당 의원 20퍼센트만 동의하면 코빈 탄핵안을 발의할 수 있다. 많은 의원들이 와신상담하면서 코빈을 공격할 최적의 시기를 노리고 있다. 코빈은 노동당 당대회에서도 여러 딜레마에 직면할 것이다.

그리고 우리는 영국 국가의 성격이나 ‘사회주의로 가는 의회의 길’ 같은 더 일반적인 주제에 대해 주장하기를 꺼려서도 안 된다.

코빈은 틀림없이 작고한 마르크스주의 정치평론가 랄프 밀리반드의 주장에 친숙하고, 의회주의적 전략이 그에게 가할 제약을 잘 알고 있을 것이다. 랄프 밀리반드는 그의 영향력 있는 저서 《의회 사회주의》의 후기에서 좌파 의원들의 활동은 의회라는 기구 자체와 노동당 기득권층의 보수주의의 방해를 받을 것이라고 주장했다. 밀리반드는 다음과 같이 명쾌하게 주장했다. “즉, 노동당은 사회주의적 변화를 심각하게 고민하는 정당으로 변화될 수 없다.”

운동

이런 주장은 우리에게 중요하지만, 우리는 이런 주장을 참을성 있고 동지적인 태도로 해야 한다. 그러나 혁명적 전통에 서 있는 사회주의자들이라면, 지금 노동당 대표로서 청년층이든 장년층이든 수많은 사람들에게 정치적 변화가 가능하다는 희망을 주고 있는 사람은 좌파적 개혁주의 정치인이라는 사실을 알 만하고 또 이 점에서 정직해야 한다.

이 운동이 나아갈 방향을 제시할 권리를 얻고 싶다면 이 운동의 일부가 돼야 한다.

‘단결해 싸우자’의 연서명을 확대하는 것은 우리가 적들에 맞서 싸울 한 가지 방법이다. 어디를 가든지 서명을 받고 연서명의 주장을 옹호해야 한다.

우리는 코빈 방어 운동을 대중 운동을 건설하기 위한 투쟁의 일환으로 벌일 수 있고, 대중 운동을 건설하는 것이야말로 보수당에 제대로 맞서는 데에 핵심적으로 중요한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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