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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주노동자 착취·억압 강화할 “계절노동자” 제도

최근 정부는 농촌 지역에서 “외국인 계절노동자 제도” 도입을 추진하고 있다. 계절노동자는 90일 이내로만 한국에 체류할 수 있고 체류 기간은 연장할 수 없는 그야말로 초단기간 계약 이주노동자이다. 정부는 ‘2015~2019년 국가재정운용계획’에서 이 안을 발표했고, 법무부는 올해와 내년 시범 실시를 한 뒤 본격적으로 시행할 계획이다.

정부는 “농번기 인력난 해소”뿐 아니라 “불법체류자 관리 강화”를 도입 이유로 밝혔다. 지금까지 농업 분야의 고용주들은 이주노동자들을 농번기에만 쓰고 버릴 수 있게 해 달라고 요구해 왔다. 계절노동자 제도 도입은 이런 농업 분야 고용주들의 요구에 부응하는 것이다. 게다가 정부는 농업 부문에서 미등록 이주노동자를 많이 고용한다며 이 제도를 통해 미등록 이주노동자 고용도 “방지”하겠다고 밝혔다.

그러나 농업 분야에서 미등록 이주노동자들의 비율이 높은 이유는 농업 분야 고용허가제 이주노동자들의 처지가 다른 업종보다도 더욱 열악하기 때문이다.

농업 분야 이주노동자들은 극도의 장시간, 저임금 노동에 시달려 왔다. 2013년 국가인권위원회가 한 실태조사를 보면 농축산업 이주노동자들의 월 평균 노동시간은 2백84시간, 휴일은 이틀뿐이었다. 그런데도 임금은 1백27만여 원으로 시간급으로 계산하면 최저임금에도 못 미쳤다.

고용주들은 이주노동자들이 도망치지 못하게 하려고 신분증을 압수하기 일쑤였고, 반항하지 못하게 하려고 구타와 욕설을 일삼았다. 농축산업 이주노동자의 76퍼센트가 욕설을, 15퍼센트는 폭행을 경험했고, 특히 여성 이주노동자들은 31퍼센트가 성희롱이나 성폭행을 경험한 것으로 드러났다.

농축산업의 이주노동자들이 이런 열악한 조건에 처해 있는 이유는 고용허가제 하에서 직장 변경의 자유가 보장되지 않기 때문이다.

계절노동자 제도의 시행은 심각한 인권 침해를 겪고 있는 농촌 지역 이주노동자들의 처지를 더 악화시킬 것이다. ⓒ출처 이주인권센터

그런데 계절노동자 제도는 가뜩이나 열악한 농업 이주노동자들의 처지를 더욱 악화시킬 것이다. 고용허가제에서는 기본적으로 3년 동안 체류가 허용되지만 계절노동자는 단 3개월만 체류가 허용되기 때문에 더욱 많은 제약이 따를 수밖에 없다. 계절노동자들은 짧은 체류 기간 탓에 언어를 익히지 못한 상황에서 가혹한 착취와 임금 체불, 인권 유린을 겪어도 제대로 항의도 못 하고 한국에서 쫓겨날 가능성이 크다.

게다가 계절노동자의 미등록 체류를 막는다는 이유로 감시와 통제는 더욱 강화될 것이다. 이미 정부도 입국부터 출국까지 전체 이동경로를 감시하겠다고 밝히고 있다. 이미 이 제도를 시행하고 있는 미국 등의 나라들에서는 계절노동자의 이탈을 막으려고 더욱 엄격한 통제 정책을 쓰고 있다. 사용자들은 열악한 조건에서 벗어나려는 이주노동자들을 붙잡아 두기 위해 신분증을 압류하거나 보증금을 받는 등의 일을 벌일 수 있다.

선별

정부는 계절노동자 제도를 통해 미등록 이주노동자를 줄이겠다고 하지만 이는 실패로 끝날 가능성이 크다. 상식적으로 생각해 봐도 배 타고, 비행기 타고 먼 타향에서 온 노동자들에게 3개월만에 돌아가라는 것은 교통비도 못 벌고 가라는 말이다. 이주노동자들이 마음대로 옮겨 놓을 수 있는 기계가 아닌 상황에서 초단기 계절노동자 제도는 필연적으로 더 많은 미등록 이주노동자를 양산할 것이다.

또, 계절노동자 제도는 정부가 이주노동자들을 분류하고 선별해 차별을 강화하려는 상황에서 추진되고 있다.

정부는 저출산, 고령화가 진행되는 상황에서 부족한 노동력을 보충하기 위해 이주노동자를 늘리겠다는 계획을 세우고 있다. 이를 위해 대학교수, 연구원 등 학력과 경력, 임금 수준 등이 높은 소위 전문인력에게는 영주 허용 요건을 완화하는 등 이민을 장려하는 정책을 추진하고 있다.

그에 비해 비전문인력으로 분류되는 대다수 이주노동자들은 필요할 때 쓰고 필요가 없어지면 언제든 내보낼 수 있는 값싸고 유연한 노동력으로 활용하려고 한다. 이를 위해 출입국관리법을 개정하려는 등 이주노동자에 대한 통제를 강화하고 있다. 또 이주노동자의 숙련도, 직무특성 등을 고려해 외국인력 분류를 정교화하겠다고 한다.

그래서 농업 부문의 가장 열악한 이주노동자들에게 고용허가제보다 못한 제도를 도입하려는 것이 계절노동자 제도이다. 정부와 자본가들은 이를 통해 이주노동자에 대한 착취와 억압을 강화하려 한다.

심지어 우파들은 이주노동자들에게는 최저임금도 아깝다는 공격까지 하고 있다. 새누리당 국회의원 권성동은 2015년에 최저임금이 결정된 지 하루 만에 “최저임금 인상이 외국인 근로자에 너무 큰 혜택”을 주고 있다며” 차등지급이나 제외하는 방향으로 제도 개선 해야 한다”고 했다. 정말이지 벼룩의 간을 빼어 먹으려는 것이다.

이주노동자들의 처지가 더욱 열악해지는 것은 한국 노동자들에게도 악영향을 미친다. 조건이 열악한 노동자들의 처지가 더 나빠질수록 비교적 처지가 나은 노동자들에 대한 공격도 더 커질 수 있기 때문이다.

이주노조와 ‘이주노동자 차별철폐와 인권·노동권 실현을 위한 공동행동’(이주공동행동) 등은 계절노동자 도입 반대 입장을 내고 집회 등을 준비하고 있다.

농업 이주노동자들의 열악한 처지를 개선하려면 계절노동자 제도 도입을 폐기하고, 작업장과 업종 이동의 자유를 보장해야 한다. 이주노동자들의 투쟁에 지지를 보내고 연대하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