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파리 공격’이 일어나자, 곧바로 정부·여당은 테러방지법안을 국회에서 통과시켜야 한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2001년 9·11 사건 이후, 국내에서 테러방지법을 제정하려는 시도가 여러 차례 있었지만, 그때마다 국회를 통과하지 못했다.

이 때문에 박근혜와 여당은 이번 ‘기회’를 놓치지 않고 테러방지법 통과를 추진하려 애쓰고 있다. 이를 위해 한 이주민을 명확한 근거 없이 ‘테러리스트’로 몰고, 한국에 온 시리아 난민을 잠재적 테러리스트로 매도했다.

말뿐인 새정치연합은 테러방지법안을 ‘조속한 시일 내에 여야 합의로 처리’하기로 새누리당과 합의해 버렸다.

세계 곳곳에서 ‘테러’의 위험이 높아진 것은 제국주의적 국가들의 중동 개입 때문이다. 2000년대 서구의 경험을 보건대, 테러방지법은 결코 시민을 ‘테러’로부터 안전하게 지켜주지 못했다. 오히려 국내에서 민주주의적 권리를 침해하는 결과만을 낳았을 뿐이다.

한국 정부가 미국의 중동 개입을 지지하고 파병까지 해 스스로 위험을 초래했으므로, 테러방지법 제정이 아니라 정부의 친제국주의 정책을 포기하는 게 테러 위험에서 벗어나는 유일한 길이다.

그럼에도 박근혜는 11월 24일 직접 “테러방지법, 통신비밀보호법, 사이버테러방지법 등”을 조속히 국회에서 통과시키라고 촉구했다. 박근혜는 테러단체와 불법시위가 만나면 국민이 위험해진다는 모략과 협박까지 해댔다.

이것이 시사하는 것은 정부·여당이 테러방지법을 만들어 ‘방지’하려는 진정한 대상이다. 바로 정치적·시민적 자유와 민주주의, 기성체제를 비판하고 반대하는 운동이다. 물론 테러방지법은 주로 무슬림과 이주노동자, 좌파 단체들의 국제적 연대 활동을 겨냥할 것이다. 그러나 테러방지법이 통과되면, 국정원의 비대하고 반민주적인 권력도 강화될 게 뻔하다.

국정원

새누리당 의원 이병석 등이 발의한 테러방지법안을 보면, 국정원은 테러 방지 업무를 조정하고 세부적인 활동을 기획하는 데 깊이 관여하게 된다. 테러통합대응센터가 국정원장 소속으로 설치돼, 국정원이 대테러 정보·수집, 대테러 조사 등 대테러 업무 전반을 주도하게 된다. 이에 따라 국정원은 ‘테러’가 의심되는 자에 대해 수사권을 발동하고 출입국을 규제하거나, 금융거래와 통신이용 등에 관련 정보를 수집하는 게 가능해진다.

그런데 테러방지법안이 규정하는 ‘테러’의 기준이 모호하다. 국정원이 자의적으로 판단해 활동 범위를 무한정 확대할 여지가 많은 것이다. “이 법으로 테러 글자만 붙이면 영장 없이 수사할 수 있는 길이 열린다.”(박경신 고려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 국정원은 국회의 통제조차 제대로 받지 않으니, 국회의원도 아닌 평범한 국민들은 국정원이 테러방지법으로 무엇을 하는지 알 길이 없을 것이다. 또한 테러방지법에 따라 ‘테러 단체’로 규정되면, 그 단체를 구성하거나 구성원으로 가입했다는 이유만으로도 처벌할 수 있다.

이렇게 불법 대선 개입과 민간인 사찰로 악명이 높은 국정원이 이 법을 얼마든지 악용할 수 있는 것이다.

이 테러방지법에 정부·여당이 따로 발의한 관련 법안들까지 합하면, 정부는 민간인들을 무분별하게 사찰할 수 있는 더 많은 수단들을 손에 쥐게 된다.

예컨대 새누리당이 발의한 ‘사이버 테러 방지법안’에 따르면, 국정원은 사이버 테러에 관한 민관협의체를 구성해 운영할 수 있고 국정원 산하에 국가사이버안전센터를 둘 수 있다. 국정원은 이 센터를 사이버 상의 사찰을 강화하는 데 이용할 수 있다. ‘사이버 테러 혐의자’의 온갖 정보를 국정원장이 관련 기관에 요구할 권한도 생긴다.

이밖에도 이동통신·인터넷·SNS 사업자한테 감청 장비 설치를 의무화하는 내용을 담은 통신비밀보호법 개정안, 항공사가 탑승권을 발급하기 전에 승객 정보를 출입국 당국에 제출하게 하는 법률 개정안 등도 국회에 줄줄이 올라와 있다.

‘제2의 국가보안법’

위에서 열거한 내용만 봐도, 정부·여당이 발의한 테러방지법안과 그 관련 법안들이 민주적 권리를 광범하게 침해하고 위축시킨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일각에서 테러방지법을 ‘제2의 국가보안법’이라고 부르는 까닭이다.

〈표〉 정부·여당이 발의한 테러방지법안과 관련 법안들
법안 주요 내용
테러방지법안 테러통합대응센터 설치 등 국정원에 막강한 대테러 권한 부여
사이버테러 방지 법안 국정원 산하에 국가사이버안전센터 신설, 국정원이 ‘사이버 테러 혐의자’의 금융·출입국 정보 등에 접근 가능
통신비밀보호법 개정안 ‘휴대전화 감청’ 합법화, 통신사업자 감청 장비 설치 의무화
특정금융거래정보의 보고·이용에 관한 법 개정안 국가보안법·테러 관련 금융 정보를 국정원에 제공
출입국관리법 개정안 항공기·선박 등의 탑승 예약 정보를 출입국 당국에 사전에 제출

테러방지법이 통과되면, 물론 이주민과 이주민 단체들이 일차 타깃이 될 것이다. 이미 한국 정부는 2001년 ‘테러와의 전쟁’ 발발 후부터 이슬람 국가에서 온 이주민들을 집중 사찰해 왔다. 그리고 2004년 법무부는 ‘불법체류자의 반한(反韓) 활동에 대한 종합대책’을 마련해, ‘국가 정책에 반대하는 집회·시위를 선동하거나 주도하거나 적극 참여하는 자’ 등을 반한 인사로 규정하고 여러 이주민들을 강제 추방한 바 있다(참여연대 평화군축센터). 테러방지법은 정부의 이주민 탄압을 더 광범하게 허용해 줄 것이다.

그리고 테러방지법은 국내 무슬림과 이주노동자들에 대한 인종차별도 부추길 것이다. 새누리당이 테러방지법안의 제안 이유에 “빈번한 국제 교류와 다문화사회의 영향”을 한국이 테러로부터 안전하지 않은 이유로 꼽고 있으니 말이다. 이 틈에 ‘미등록 이주노동자’에 대한 단속·추방도 강화될 것이다.

그러나 테러방지법으로 또한 정부가 좌파들의 국제 연대 활동도 문제 삼을 수 있다. 2010년 경찰은 G20정상회의를 앞두고 ‘테러 혐의 외국인 명단’에 근거해, 네팔노총 사무총장과 국제농민단체인 비아캄페시나 대표 등의 입국을 거부한 바 있다. 테러방지법이 제정되면 이 문제는 더 중요해질 것이다. 예컨대, 테러방지법 하에서는 테러 예방을 빌미로 국정원이 서방의 중동 개입을 반대하고 중동 민중의 저항에 연대하는 국내 좌파 단체들을 감시하기가 훨씬 더 용이해질 것이다.(한국 정부의 테러정보통합센터는 레바논 헤즈볼라, 이집트 무슬림형제단, 팔레스타인 하마스 등을 국제테러단체로 지정해 놨다.)

이밖에도 테러방지법안에는 국내 운동을 겨냥할 다른 독소 조항들도 포함돼 있다. 테러방지법안은 ‘국가·지방자치단체 또는 외국정부의 권한행사를 방해하거나 의무에 없는 일을 하게 할 목적[으로] … 사람의 신체를 상해하여 … 위험을 발생하게 하는 행위’ 따위도 ‘테러’로 규정하고 있다. 따라서 정부가 이 ‘테러’ 행위에 정부 정책에 반대하는 집회나 시위도 포함시킬 수도 있다. 특히, 새누리당 의원들이 11월 14일 민중총궐기를 “테러”라고 비난하는 것을 보면 우려가 더욱 커진다. 심지어, 테러방지법안은 정부가 국가 중요시설이나 다중 이용 시설을 ‘테러 위협’에서 보호한다는 명분을 내세워 군 병력을 투입할 수 있게 보장하고 있다. 예를 들어, 정부의 정치 위기가 심각한 상황에선 철도나 국립대병원 같은 공공기관에서 농성이나 점거를 하면 군대를 투입할 수도 있는 것이다.

테러와의 전쟁

미국 국가는 2000년대 ‘테러와의 전쟁’을 벌이면서, 국내에서 민주주의를 후퇴시키는 또 다른 전쟁도 벌여 왔다. 미국 의회는 테러방지법의 원조 격인 애국법 등을 제정해 ‘영장 없는 도·감청’, ‘무기한 구금’ 등 막강한 권력을 보안기구에 부여했다. 그 결과, 표현의 자유가 침해됐고 전쟁을 반대하는 개인이나 단체의 활동이 보안기구의 일상적 감시를 받았다. ‘테러 혐의자’로 몰린 많은 사람들이 영장도, 재판도 없이 억울하게 장기간 구금됐다. 결국 2013년 전 CIA 직원 스노든이 미국 국가안보국(NSA)이 전 세계에서 통화와 인터넷을 광범하게 감시한다고 폭로했다.

마찬가지로 박근혜도 서방의 중동 개입을 지지하면서, 국내에서는 민주주의의 권리들을 겨냥한 전쟁을 벌이고 있다. 연이어 진행될 굵직한 선거들과 ‘4대 개혁’을 위해 노동자들을 공격해야 하기 때문에라도, 박근혜는 테러방지법 등을 제정해 국정원 같은 보안기구에 더 많은 권한을 주고 싶을 것이다.

따라서 노동운동이 정부·여당이 테러방지법 제정을 추진하고 ‘테러 방지’를 핑계로 민주적 권리를 옥죄려는 데 반대해야 한다.

박근혜 정부는 시리아에 파병할지도 모른다

파리 공격 직후 박근혜는 “국제사회의 테러 척결 노력에 적극 동참해 나갈 것”이라며, 서방의 시리아 개입 지지를 밝혔다.

사실, 박근혜는 파리 공격 전부터 이런 입장을 공언해 왔다. 이는 지난 10월 한미 정상회담에서 양국이 합의해 발표한 ‘한·미 관계 현황 공동설명서’에 잘 드러나 있다. 거기서 박근혜는 아이시스에 대한 미국의 입장을 지지하면서 “국제연대의 [반아이시스] 안정화 지원 작업반에서 활동하기로” 하는 등 각종 지원을 약속했다. 이는 향후 “미국이 지상군을 투입해 안정화 작전을 본격화하는 시점에서 [한국군의 시리아] 파병 압박의 근거가 될 수 있다(〈주간 동아〉).”

게다가 새누리당이 추진하는 ‘국군해외파견법안’도 지금 국회에 발의돼 있다. 이 법안은 한국군의 다국적군 파견에 대한 법적 근거가 미약한 것을 해결하기 위해 추진되는 것이다. 그리고 향후 상시적인 해외 파병을 용이하게 하려는 목적도 있다.

이 법이 국회에서 통과된 후 미국의 시리아 개입이 더 강화된다면, 시리아에 대한 지원이 ‘국군해외파견법’의 첫 적용 사례가 될지도 모른다.

시리아 인접국 레바논에는 이미 한국군 수백 명이 파병돼 있다(동명부대). 레바논은 전 국토를 다 합해도 경상남도보다도 작은데, 이번 달 아이시스의 연쇄폭탄 테러로 60명 넘게 숨졌다. 결코 안심할 수 없는 것이다.

따라서 서방의 시리아 개입을 지지하지 말라고 박근혜 정부에 촉구해야 한다. 이미 아이시스가 한국을 ‘십자군 동맹’의 하나로 지목해 놨다. 박근혜가 서방의 시리아 개입을 지원할수록, 평범한 한국인들은 테러 위협에 더 취약해질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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