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살인적인 장시간 노동에 맞서 일어선 집배원 노동자들

한국의 공공기관들은 2004년 7월부터 주 5일 근무제도(주 40시간제)를 시행해 왔다. 그러나 대표적인 정부기관인 우정사업본부 소속 집배원들에겐 남의 이야기였다.

지난해 7월, 10년이나 늦게 드디어 집배원 노동자들에게도 주5일제가 시행됐다. 그런데 올해 9월 우정사업본부와 전국우정노조 집행부가 토요 근무를 재개하는 야합을 해 버렸다. 격무에 시달리는 집배원 노동자들의 절실한 주말 휴일을 앗아가 버린 것이다.

2014년 현재 한국 노동자들은 OECD 국가 중 두 번째로 길게 일한다(연간 2천1백24시간). 그런데 우체국 노동자들의 노동시간은 이보다 훨씬 길다. 지난해 한국노동연구원 발표를 보면 이 노동자들의 연평균 노동시간은 무려 2천9백52∼3천2백16시간으로, 독일 노동자들보다 최소 7개월이나 더 일한다.

11월 8일 토요 근무 폐지 등을 요구하며 전국에서 모인 집배원 노동자들 ⓒ집배원 장시간-중노동 없애기 운동본부

살인적인 장시간·중노동은 노동자들을 각종 산업재해로 내몰기도 했다. 고용노동부 발표에 따르더라도, 지난 10년간(2005-14년) 집배원 노동자 75명이 산재로 사망했다. 2013년 한 해에만 19명이 사망했다. 이외에도 수많은 노동자들이 피로와 중노동에 시달리며 교통사고, 스트레스성 질환, 근골격계 질환 등에 시달리고 있다.

집배원 노동자들이 ‘토요일엔 가족과 함께 쉬고 싶다’ 하고 요구하는 것은 너무나 당연하고 정당하다. 노동시간 단축과 인력 충원은 노동조건 개선을 위해서도, 노동자들의 건강과 목숨을 위해서도 사활적이다.

‘집배원 장시간·중노동 없애기 운동본부’(이하 운동본부) 소속의 집배 조합원들은 지난 몇 달간 토요 근무 폐지를 요구하며 투쟁해 왔다. 이들은 노사 야합 이후 규탄 성명을 발표하고, 우정사업본부와 우정노조 항의 방문, 세종시 우정사업본부 앞 1인 시위 등을 벌였다. 10월 3일과 11월 8일에는 각각 서울과 대전에서 수백 명이 모인 전국 집회도 열었다. 이 속에서 더 많은 노동자들이 동참하는 ‘토요 근무 반대·우정노조 지도부 퇴진 비상대책위원회’(이하 비대위)를 건설해 투쟁을 지속하고 있다.

최승묵 비대위 공동대표는 이번 투쟁의 의의에 대해 말했다.

“집배원들은 평생 이렇게 일하다 골병이 들 수 있겠다는 위기감이 크다. 장시간·중노동을 해결해야 한다. 토요 근무 반대 투쟁은 우정사업본부와 노조 모두를 바꿔나가는 하나의 계기도 될 것이다.”

고통 전가

정부와 우정사업본부가 노동자들에게 고통을 전가한 것은 이번만이 아니다.

“1997년 IMF 위기 이후 정규 집배원 3천여 명이 감축됐고, 그 자리를 비정규직인 상시집배원이 메웠다. 상시집배원들은 정규직에 비해 임금과 수당 등에서 각종 차별을 받아 왔다.”(최승묵 공동대표)

뿐만 아니라 우정실무원, 재택위탁집배원 등 다양한 형태의 비정규직이 늘어 왔다. 우정사업본부는 그간 비정규직 노동자들에게 정액 급식비조차 지불하지 않았다.

더욱이 정부와 우정사업본부는 올해 토요 근무를 재개하며 노동시간을 연장한 데 이어, 인력 구조조정도 가속화하려 한다. 미래창조과학부는 내년 예산안에서 우체국의 “경영효율화”를 강조했다. 그 방안으로 직영 우체국의 점진적인 축소와 민간 위탁 등이 제시됐다. 지난 8월 취임한 우정사업본부장 김기덕은 ‘택배와 금융 등 민간과의 경쟁사업 부문을 시장 원리에 맞게 비용구조를 개선하겠다’고도 밝혔다.

이미 지난해 전국 1백1개 대학 우체국이 민간 사업자에게 맡겨졌는데, 이런 시장화 조처가 더 확대되면 공공서비스의 질과 노동조건이 더 열악해질 것이 뻔하다. 최승묵 공동대표는 그 위험성을 경고했다.

“민간 위탁을 확대하면, 우체국 창구에서 일하는 노동자들을 비정규직으로 내몰게 될 것이다.

“또 공공의 영역이 축소될 것이다. 우편 사업은 매우 노동집약적인 사업이라 안정적인 인력구조를 필요로 하는데, 값싼 노동력만 추구하다 보면 제 시간에 우편물을 배달하는 것이 어려워질 수 있다.”

노동자들의 불만을 대변하다

전국우정노조 집행부가 노동자들의 고통에 눈감고 장시간 노동을 허용하는 야합까지 한 상황에서, 기층 노동자들의 불만을 조직해 투쟁하려는 비대위의 활동은 매우 값지다. 최승묵 공동대표는 이렇게 말했다.

“여러 난관이 예상되지만 각오를 하고 있다. 토요 근무 반대 투쟁처럼 조합원들의 권익을 지켜나가는 싸움을 보여 주며 실력을 키워 나가겠다.”

우체국의 민주파 활동가·조합원들은 그동안 어려운 조건에서도 투쟁을 조직하기 위해 고군분투해 왔다.

2000년대 초에는 비정규직인 상시집배원들 사이에서 차별 해소와 정규직화를 요구하는 움직임이 있었다. 그리고 살인적인 장시간·중노동 문제를 해결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끊임 없이 제기돼 왔다.
특히 2013년 11월에 2주간 노동자 세 명이 연달아 산재로 사망하는 일이 벌어졌다. 활동가들은 1인 시위와 규탄 집회 등을 진행하며 집배원 노동자들의 살인적인 노동조건을 알렸다. 활동가들은 장시간·중노동을 없애기 위한 운동을 체계적으로 벌여 나가기 위해 ‘운동본부’를 결성해 활동했다. 그러다 올해 토요 근무가 되살아난 것을 계기로 투쟁을 확대해 나가고 있다. 비대위는 서울과 대전에서 시작한 전국 순회 집회를 이어가려고 조직하고 있다.

반갑게도 지금 비대위의 투쟁에 대한 노동자들의 호응과 지지는 적지 않다.

“비대위 건설 이후 8개 지방본부에서 비대위 활동이 매우 활발해졌다. 지방본부 별로 회의도 하고 점검도 하고 있다. 비대위 활동을 시작하다 보니, 그간 현장 활동을 하는 일꾼들이 있더라. 그런 사람들을 조직하기도 했다.”

최승묵 공동대표는 11월 대전 집회 발언에서 이 투쟁 속에서 우정노조를 개혁하고 민주화하자고도 말했다.

“우정노조를 바로 세우는 길도 조합원의 몫이다. 근로조건을 바닥으로 추락시킨 노동조합을 바로 세워야 한다. 민주노조를 열망하는 현장조합원 1천 명의 발기인을 모아가며 힘차게 투쟁하자.”

비대위와 운동본부의 활동이 더 많은 노동자들의 지지를 결집해, 노동조건을 지키는 투쟁의 전진을 이룰 수 있기를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