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무현 정부는 공무원노조에 전쟁을 선포했다. 우리 사회의 지배자들은 공무원 노동자들이 “[지배 계급의] 국민이 아닌 민주노총의 명령에 따르”는 것에 이를 갈았다.(〈동아일보〉 11월 16일치.)
열린우리당의 소위 ‘개혁파’ 의원들도 예외 없이 공무원 노동자 파업에 적대감을 드러냈다.
그 결과 공무원노조 파업을 둘러싸고 공식 정치 구조 안에서 첨예한 양극화가 일어났다.
열린우리당과 한나라당이 한 목소리로 “파업 철회와 단호한 대처”를 요구한 반면, 민주노동당은 파업을 적극 지지했다.
민주노동당은 공무원노조 파업 전 과정에서 중요한 구실을 했다. 이를 통해 열린우리당이 쥐고 있던 정치 양극화의 왼쪽 극을 되찾을 수 있었다.
노무현 정부는 순전히 무력에 의지해 공무원노조 파업을 파괴했다.
“경찰 병력이 전 관공서를 점령하다시피 들이닥친 것은 군사독재 정권 이후 처음 있는 일이다.”(김영길 전공노 위원장)
이것은 정부와 여당이 심화되는 경제 위기와 강화되는 우익의 공세에 직면해 우파와의 타협을 선택했음을 극명하게 보여 줬다.
“정부·여당이 초강경 대응하는 것은 그 자체가 정부에 대한 명백한 도전이기도 하지만, 다른 한편에서 노동계에 대한 정부의 대응을 지켜보는 자본의 눈을 의식할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www.labortoday.co.kr, 11월 12일치.)
그러나, 이 과정에서 노무현 정부의 핵심 지배 전략이 결정적인 위기를 맞이했다.
노무현은 자신이 동의를 좀더 중시하는 지배 전략을 선호하는 것처럼 보이고 싶어했다. 즉, 노조 지도자들과 타협하고, 그러면 노조 지도자들은 현장 조합원들에게 협상 타결안을 내놓는 방식 말이다.
정부가 한때 내놓았던 ‘네덜란드식[또는 스페인식] 노사 모델’은 그런 시도의 일환이었다. 
그러나 이 전략은 별 실효를 거두지 못한 채 표류했다.
경제 위기의 심화는 노무현 정부가 양보할 수 있는 여지를 심각하게 제약했기 때문이다.
게다가 잇달아 예정돼 있는 산업 전투의 고리를 끊어내야 할 필요성이 강하게 제기됐다. 투쟁 경험이 부족한 공무원노조가 그 표적이 됐다.
노무현은 ‘노동조합 전체를 한꺼번에 다루지 말고, 그들 가운데 하나를 골라내’는 새처 식의 노동 지배 정책을 따랐다.
노무현 정부는 과거 억압적인 정부들이 주로 사용한 방식, 즉 법과 경찰에 기대 공무원노조 파업을 파괴했다.
그러나 이것은 “열린우리당과 참여정부[에게] 부메랑이 되는 행동”(홍세화)이었다.
왜냐하면 공무원노조 파업 파괴가 “위기의 노·정 관계에 자극제로 작용하면서 올들어 노·정 관계가 최대 위기 상황에 봉착했”기 때문이다.(〈경향신문〉 11월 16일치.)
그 어느 때보다 노동조합과 노무현 정부 사이에 커다란 금이 갔다.
이 파장은 노동조합에만 한정되지 않을 듯하다.
노무현 정부는 공무원노조 파업을 파괴하기 위해 서울 지역 대학들에 경찰 병력을 배치하고 출입자들을 검문·검색했다.
1980년대 세대에게나 익숙했던 일들이 역대 정부 중 가장 ‘개혁적’이라던 ‘참여정부’ 하에서도 재현된 것이었다. 적지 않은 학생들이 이 낯선 광경에 충격을 받았다.
그래서 민주노동당 박용진 대변인은 “노무현 정권은 공무원노조 3권 보장 법안에 거부권을 행사한 15년 전 노태우 군사정권과 이름만 다를 뿐 성도 같고 성격도 같다.”고 비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