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문이나 방송의 국제 소식을 보면, 강대국들의 시리아 폭격, 남중국해 영토 문제 등 분쟁 소식으로 온통 가득 차 있곤 한다. 그리고 강대국들이 서로 갈등을 빚는 일이 예전보다 훨씬 더 잦아지고 있으며, 그만큼 지금 우리가 살고 있는 세계가 더 위험해지고 있다.

세계화를 찬미했던 사람들의 주장은 이런 현실 앞에 설득력을 잃어가고 있다. 그들은 세계화로 국경의 의미가 퇴색하고 세계가 자유 무역 질서 하에 통합됐기 때문에 이제 국가들의 지정학적 경쟁은 과거지사가 됐다고 주장했다.

그러나 유럽 국가들이 경제적으로 서로 크게 의존하는데도, 지난해 나토NATO와 러시아가 우크라이나를 놓고 서로 으르렁거렸다. 지난 30년 동안 세계화의 수혜를 입어 역동적으로 성장해 온 동아시아에서도 지금 영토 분쟁이 벌어지고 있다. 또한 강대국들이 약소국 시리아를 유린하는 모습까지 보면, ‘제국주의’는 명백히 현실이다.

정의

따라서 제국주의가 무엇인지 명확히 이해하는 것은 매우 중요한 일이다.

‘제국주의’라 하면 보통 강대국이 약소국을 지배하는 것으로 이해한다. 물론 제국주의에는 이런 개념도 함축돼 있다. 그러나 레닌·부하린 등 고전 마르크스주의자들은 제국주의를 주요 자본주의 국가들 사이의 경쟁으로 이해했다. 이 경쟁은 경제적 형태뿐 아니라 정치적·군사적 형태도 띄며 궁극으로는 제국주의 국가 간 전쟁으로 귀결될 수 있다. 고전 마르크스주의자들한테 제국주의의 핵심은 명백히 강대국들 사이의 지배권 다툼에 있었다.

제국주의를 제대로 이해하려면, 자본주의의 내적 동역학을 봐야 한다. ⓒ출처 http://www.iww.org

영국의 마르크스주의자 알렉스 캘리니코스는 이 개념을 좀 더 정교하게 다듬어, 자본주의 하에서 제국주의는 경제적 경쟁과 지정학적 경쟁이 서로 교차하는 지점이라고 지적했다.

먼저, 경제적 경쟁은 자본주의에서 이윤과 시장을 차지하기 위한 기업들 간의 경쟁이다. 자본가들은 경제적으로 서로 분열돼 있어서 경쟁할 수밖에 없다. 여기서 뒤처지면 바로 경쟁 기업들에 패배하기 때문에 자본가들은 끊임없이 축적을 해야 한다. 즉, 이윤을 계속 재투자해야 한다.

지정학적 경쟁은 영토·권력·영향력을 둘러싼 국가들 간의 경쟁을 가리킨다. 국가들은 이 경쟁에서 외교력을 동원하고, 극단적으로는 무력 충돌도 감행한다. 물론 지정학적 경쟁은 자본주의 이전에도 존재했다.

그러나 19세기 말부터 국가들 간의 지정학적 경쟁이 자본주의의 경제적 경쟁 논리에 통합됐다. 세계경제 속에서 자본주의 기업들은 국제적으로 활동하고, 시장·원료·투자처 등을 놓고 국제적으로 경쟁해야 했다. 기업들은 이 경쟁에서 우위를 차지하려고 자신들의 국가에 의존했다.

국가들도 지정학적 경쟁에서 이기기 위해 자국 자본에게 의존했다. 전쟁을 수행하는 데 필요한 무기와 운송수단 등을 생산하려면 자본주의적 산업 기반이 필요했기 때문이다. 그 결과 자본주의에서 경제적 경쟁과 지정학적 경쟁이 융합되기에 이르렀다.

시대

물론 자본주의에서 지정학적 경쟁과 경제적 경쟁의 형태는 시대에 따라 달랐다. 19세기 말에 제국주의 국가들은 식민지 확보 경쟁을 벌이며 전 세계를 분할했다. 당시 최강의 제국주의 국가였던 영국은 ‘세계의 공장’이라 불릴 만큼 제조업이 발전했다. 영국 해군은 영국 자본들이 세계 시장에서 손해를 입지 않도록 보장해 줬다.

그러나 점차 영국은 경제적·지정학적 측면 모두에서 다른 경쟁 국가들의 도전에 직면하게 됐다. 20세기 초 독일과 미국 모두 산업 생산 면에서 영국을 앞질렀다. 강력한 군사력도 갖추게 됐다. 영국에 대한 지정학적·경제적 도전이 거세게 제기된 것이 두 차례 세계대전이 벌어진 근본 원인이었다.

양차 대전이 끝나고 점차 유럽의 식민지 체제는 와해됐지만, 제국주의 국가들의 경쟁은 계속 치열했다. 핵심으로 미국과 소련이 이데올로기적·지정학적 경쟁을 벌였다.

양대 제국주의 국가들이었던 미국과 소련은 군사력 경쟁에서 뒤처지면 상대방이 자신의 경제적·지정학적 영역에 침범할 수 있다고 우려했다. 그래서 미국과 소련은 자신의 영향력을 확대하려고 세계 곳곳에서 경쟁했고, 핵무기를 비롯한 대량 살상 무기를 만드는 군비 경쟁을 벌였다.

그리고 이들의 경쟁 때문에 제3세계 곳곳에서 전쟁이 벌어졌다. 1950~53년 한국전쟁은 제국주의 국가들이 남의 땅에서 힘을 겨룬 대표적 사례였다.

불균등 발전

마르크스주의의 관점에서 제국주의는 이렇듯 주요 자본주의 국가들이 세계를 지배하려고 서로 경쟁하는 체제이다.

그러나 고전 마르크스주의의 제국주의론에 대해 과거부터 강력한 이견이 제기되곤 했다. 대표적으로 20세기 초 독일사회민주당의 지도자였던 카를 카우츠키가 내놓은 “초제국주의론”이 있었다. 카우츠키는 자본주의 전체가 제국주의에 이해관계가 있다는 점을 부정했다. 그는 제국주의를 특정 자본가 집단 — 예컨대 군수 자본이나 금융 자본 — 이 선택하는 정책으로 취급했다. 더 나아가 자본주의 경제가 국경을 초월해 통합되면 국가들 간의 지정학적 갈등이 사라질 수 있다고 주장했다. 카우츠키는 이렇게 강조했다. “통찰력 있는 자본가들은 다른 자본가들에게 이렇게 호소할 것이다. 만국의 자본가들이여, 단결하라!”

토니 네그리와 마이클 하트가 《제국》에서 이와 비슷하게 주장했다. 또, ‘맥도날드 있는 나라 사이에는 전쟁이 없다’는 말도 흔히 들을 수 있다.

그러나 레닌은 자본주의가 불균등하게 발전한다고 지적했다. 어떤 나라는 앞서고 다른 나라는 뒤쳐진다는 것이다. 그래서 자본주의 국가들 사이에 모종의 위계 질서가 형성된다.

그런데 자본주의의 역동적 성격 때문에 경제력의 상대적 분포가 바뀐다. 그러면 국가들 사이의 서열도 변하기 마련이다. 이렇게 새로 떠오르는 강대국들은 저물어 가는 기존 강대국들의 몫을 더 많이 차지하려 들 것이다. 이것이 자본주의에서 새로운 갈등과 전쟁이 끊임없이 일어나는 배경이다. 그래서 레닌이 보기에, 국가들 사이의 협약이나 동맹은 영구적인 게 아니라 모두 “전쟁과 전쟁 사이의 하나의 ‘휴전’”일 뿐이었다.

오늘날 세계경제도 레닌이 지적한 “불균등성과 모순”으로 점철돼 있다. 그래서 레닌의 통찰은 오늘날 제국주의를 이해하는 데 매우 유용하다. 오늘날 현실과 맞지 않는 부분도 있지만, 여전히 우리는 레닌의 《제국주의론》을 살펴볼 가치가 있다.

제국주의 하에서 세계는 전쟁이 벌어지지 않는 날이 거의 없게 됐다. ⓒ출처 미 육군

잘못된 제국주의 개념

제2차세계대전 종전 이후 많은 좌파들은 고전 마르크스주의의 제국주의론이 제국주의 열강 간 경쟁을 핵심적인 분석 대상으로 삼았다는 점을 주목하지 않았다. 오히려 제국주의 개념을 서방 자본가들의 제3세계 착취만을 가리키는 것으로 협소하게 정의했다.

오늘날에도 제국주의를 ‘미국 중심의 서방 제국주의와 초국적 자본의 제3세계 수탈’로만 여기는 좌파가 많다. 그래서 제국주의 체제에 맞선 노동자 국제주의가 아니라 흔히 외세의 영향력에서 벗어나 민족 구성원 다수의 이익에 맞게 국가를 뜯어고쳐야 한다는 좌파 민족주의 이데올로기와 친화성을 갖는다.

그러나 이런 생각은 제3세계에서 실제 착취 과정을 수행하는 게 현지 자본가와 정부라는 점을 흐릿하게 만들 수도 있다. 한때 ‘자립적’ 경제 발전을 추구하던 제3세계 국가들이 오늘날에 다국적기업들에 시장을 개방하고 신자유주의를 받아들이게 된 것은 단지 선진 자본주의 국가들의 음모와 협박 때문만은 아니었다.(물론 협박은 있었다.) 무엇보다 제3세계 각국 정부들이 신자유주의를 적극 받아들였다. 각국 정부는 다국적기업들과 협력하고 투자를 유치해 시장을 개척하는 게 자국 지배계급의 이익에 부합한다고 여겼다.(물론 현지 자본가 계급의 동역학과 제국주의 이해관계의 동역학이 언제나 일치하는 것은 아니라는 점도 이해해야 한다.)

좌파 민족주의는 사람들을 고무해 자국 지배계급의 일부에 맞서 투쟁하게 만드는 한편, 착취자와 피착취자들을 하나로 묶어 주는 민족 이익을 중시했다. 그래서 좌파 민족주의는 노동자·농민 등의 분노를 자본주의 틀 안에 한정시키는 약점을 드러냈다.

진영 논리

일부 좌파들은 서방의 리비아·시리아 개입을 강하게 비판하는 한편, 시리아 아사드 정권 등을 반제국주의 정권이라고 옹호한다. 시리아 독재 정권이 신자유주의를 적극 도입했고 팔레스타인인들을 악독하게 다뤘다는 점은 간과된다.

이런 주장들에는 종종 ‘진영 논리’가 작용하고 있다. ‘진영 논리’란 ‘모종의 진보적인 국가들이 있고 제국주의에 대한 평형추로서 그 국가들을 지지해야 한다’는 것이다. 여기서 제국주의는 대개 미국을 가리킨다. 즉, 제국주의를 체제로 보지 않고 미국 같은 특정 국가의 지배로 환원하는 것이다.

오늘날 현실에서 ‘진영 논리’는 흔히 러시아와 중국을 편드는 형태로 나타난다. ‘진영 논리’를 지지하는 사람들은 우크라이나 사태에서 미국의 공세만을 비판할 뿐, 러시아의 무력 행위에 대해서는 침묵한다.

중국에 대해서도 마찬가지다. 중국 정부가 여전히 사회주의를 표방하기 때문에 정치적 혼란이 더 클 수 있다. 그래서 미국과 일본의 공세를 주되게 문제 삼을 뿐, 중국의 지정학적 대응에 대해서는 비판의 칼날이 무뎌지거나 아예 침묵한다. 일부 좌파들은 지난해 홍콩 우산 운동을 미국이 조종한 “색깔 혁명”이라고 여겨 지지하지 않았다.

그러나 제국주의는 다수의 국가들이 경쟁하는 체제다. 따라서 미국이 가장 강력한 패권 국가인 것은 맞지만, 이것이 러시아·중국 같은 제국주의 국가를 옹호하는 것으로 귀결돼서는 안 된다. 제국주의 체제 전체가 우리의 적이기 때문이다.

오늘날 제국주의

오늘날 미국은 여전히 세계 패권을 쥐고 있다. 그러나 미국의 지위는 장기간에 걸쳐 점차 하락해 온 반면, 다른 경쟁국들은 상대적으로 성장해 왔다.

미국은 군사력 면에서 여전히 우월하지만 경제력은 상대적으로 쇠퇴하는 모순을 겪어 왔다. 1945년 세계 생산의 절반이 미국 내에서 이뤄졌다. 오늘날 그 수치는 20퍼센트 남짓이다. 특히 2008년 경제 위기는 미국의 약점을 명백히 드러냈다. 그리고 세계경제가 위기를 겪으면서, 미국 등 선진국보다 신흥국의 경제가 더 빠르게 회복됐다.

경제 성장의 차이가 생기자, 미국과 나머지 국가들 사이의 군사력 격차도 점차 좁혀져 왔다. 특히 중국은 고속 성장을 바탕으로 군사력을 매우 빠르게 키우고 있다. 경제력의 상대적 분포가 달라지면서 지정학적 경쟁도 더 치열해지고 있다. 우크라이나에서 벌어진 갈등이나 남중국해를 둘러싼 미국과 중국의 갈등이 이를 분명하게 보여 준다.

현재 미국한테는 중국의 부상을 다루는 게 가장 중요한 일이다. 중국의 경제적 지위가 크게 오르자 국제 관계의 기존 패턴이 불안정해졌다. 그리고 미국은 이전보다 자국의 동맹국들을 다루는 데도 어려움을 겪게 됐다. 중국의 부상은 러시아와 같은 국가들이 운신의 폭을 넓히는 데도 도움이 된다.

중국은 군사력을 빠르게 키우면서, 자국 주변 지역에 군사력을 배치하고 있다. 그래서 중국은 유사시 미군을 태평양 서쪽으로 밀어내고자 한다. 중국의 처지에서 이것은 미국의 괴롭힘을 피하기 위한 일종의 ‘보험’일 테지만, 이런 시도 자체가 미국의 헤게모니를 불안정하게 한다.

그래서 미국은 동아시아에서 일본과의 동맹을 강화하며 중국을 견제할 수 있는 국가들의 동맹을 구축하려고 애써 왔다. 이런 전략 때문에 동아시아에서 세계 1위·2위·3위의 경제 대국들이 공공연하게 적대하면서 갈등을 빚고 있다.

딜레마

여기서 미국의 딜레마가 발생한다. 미국이 자신의 지배적 지위를 지키려면 유럽·동아시아·중동 모두에서 헤게모니를 잃지 않아야 한다. 그러나 경제력의 분포가 달라지면서, 미국의 힘으로 세 지역의 도전에 모두 대응하기가 갈수록 힘들어지고 있다.

오바마 정부는 동아시아에 역량을 집중해 중국의 부상을 견제하고 싶어 하지만, 중동 문제가 그의 발목을 잡고 있다. 오바마는 중동의 지역 강국들을 분열 지배해 미국의 헤게모니를 유지하려 하지만, 이 전략은 명백히 실패하고 있다.

미국의 중동 패권이 흔들린다면, 미국이 중동 석유에 의존하는 유럽과 동아시아 국가들을 통제하는 게 훨씬 더 어려워질 것이다.

이 때문에 미국은 시리아·이라크 등지에서 발을 빼고 (동아시아에 집중하고) 싶어도 그럴 수가 없다. 그러나 더 깊숙이 개입할수록 과거 이라크 전쟁처럼 깊은 수렁에 빠질 수 있다는 두려움도 있다. 이 와중에 러시아가 시리아에 개입하고 파리 공격으로 유럽 국가들이 더한층 시리아에 얽히면서, 미국은 중동 전쟁에 계속 발을 담그는 상황으로 몰리고 있다.

물론 오늘날 제국주의 간 경쟁이 조만간 제국주의 간 전면전으로까지 나아갈 것이라고 단언하기는 어렵다.

그러나 분명 지금도 제국주의는 수많은 사람들을 희생시키고 있다. 게다가 2008년 경제 위기가 보여 줬듯이, 자본주의 세계경제는 그 자체로 강력한 불안정 요인이다. 세계경제의 위기가 지정학적 질서에 앞으로 어떤 불안정을 가져올지는 알 수 없는 노릇이다.

따라서 제국주의를 알아야 한다. 그리고 고전 마르크스주의 전통에 따라 제국주의를 이해한다면, 한 가지 명확한 정치적 결론에 이를 수 있다. 즉, 전 세계 노동계급과 억압받는 민족의 투쟁이 제국주의 체제를 쓰러뜨릴 핵심 동력이라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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