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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족의 위기

최근 몇 년 동안 ‘가족의 위기’는 많은 사람들의 주목을 받아 왔다. 신문과 방송, 잡지, 영화 등에서 위기에 빠진 현대 가족의 모습은 주요 화제거리였다.
영속적인 결혼(“검은 머리 파뿌리 될 때까지”)과 부부와 두 자녀로 이뤄진 핵가족을 이상으로 그리는 가족 관념에 비춰보면, 오늘날 가족은 분명 심각한 위기에 빠져 있다.
결혼은 줄어드는 추세인 반면 이혼은 갈수록 증가하고 있다. 지난해 결혼 대비 이혼율은 54.8퍼센트였다. 출산율 감소는 매우 빨라 이제 여성들이 낳는 아이 수는 평균 1명밖에 되지 않는다.
많은 사람들이 가족의 변화에 위기감을 느끼며 때때로 공포심마저 느끼는 듯하다. 많은 사람들이 ‘가족’이라는 말에서 애정, 따뜻함, 보호를 떠올릴 때(광고와 드라마에서 가족을 묘사할 때 흔히 그렇듯) 가족의 위기에 대한 반응은 비통한 심정일 것이다.
가족이 없는 사람들 ― 고아원에서 자라나는 아이들, 혼자 사는 노인들 같은 ― 의 삶이 가장 불행한 것으로 여겨질 때, “가족의 중요성”에 대한 강조는 자연스러운 것처럼 보인다.
그러나, 가족 제도의 이상과 현실 사이에는 언제나 큰 격차가 있었다.
가족은 사랑이 넘치는 안식처로 여겨지지만, 현실의 가족은 온갖 폭력과 학대가 일어나는 곳이기도 하다. 많은 가족에서 아내 구타, 아동학대, 노인 학대 같은 일들이 다반사로 일어난다.
가족의 실제 모습이 이상과 다르다고 해서 사람들이 그 이상을 쉽게 포기하는 것은 아니다.
살벌한 경쟁 사회에서 사람들은 숨돌릴 곳이 필요하다. 가족은 험난한 세상에서 서로 의지하고 용기를 주는 공간으로 여겨진다.
노동계급은 생산과정을 통제하지 못하고 소외를 경험하기 때문에 가족의 이상에 중간계급보다 더 강하게 매달리는 경향이 있다.
요컨대, 가족은 억압의 공간일 뿐 아니라 수많은 남녀가 억압에서 벗어나려고 애쓰는 공간이기도 하다.
사람들이 가족관계에 몰두하는 것은 가족이 하는 경제적 구실과도 긴밀한 관련이 있다.
많은 사람들은 가족을 통해 자본주의 사회가 제공하지 않는 각종 서비스를 얻는다. 실업에 처한 사람들은 흔히 가족에게서 도움을 얻는다. 가족은 또한 환자를 돌보고, 노인을 부양하고, 아이들을 키우고 보호하는 구실을 한다.
제대로 된 사회복지가 거의 없는 나라에서 ‘가족의 위기’는 많은 경우 빈곤의 심화를 뜻한다는 점에서 ‘가족의 위기’가 대중에게 불러일으키는 우려는 충분히 이해할만하다.
그럼에도 실업과 가난, 억압과 소외 등 사회에서 일어나는 여러 문제들을 가족 제도를 통해 해결할 수 있다는 생각은 기본적으로 환상이다. 가족은 외관상 사회에서 분리돼 있는 듯 보여도, 실제로는 가정 밖의 온갖 압력에서 결코 자유롭지 않다.
그래서 가족은 이상대로 살아갈 수 없을 경우 커다란 불행을 맞게 된다. 많은 사람들은 사회에서 겪는 소외와 좌절을 가까운 관계에서 표출하곤 한다. 많은 가족들이 크고 작은 다툼과 불화로 고통을 겪는 것은 이 때문이다.
무엇보다 현재의 가족 제도는 여성의 무보수 가사 노동에 바탕을 두고 있다. 이 때문에 가족은 오늘날 여성들이 억압받는 핵심 장소이다.
불평등과 권위주의가 지배하는 이러한 가족 제도가 단순히 남성들의 욕구 때문에 유지되는 것은 아니다. 사실, 가족 제도에 집착하는 것은 남성뿐 아니라 많은 여성들의 모습이기도 하다.
각종 제도와 법 따위가 가족 제도를 유지하는 데 기여한다. 가족 제도를 통해 노동력 재생산에 들어가는 비용을 개별 가정에 떠넘길 수 있기 때문이다.
저출산, 증가하는 이혼, 독신과 동거 증가 등 현대 가족이 빠르게 해체돼가는 경향을 보이면서도 없어지지 않는 것은 많은 부분 이 때문이다.
가족이 해체될 경우 노동력 재생산 기능이 위기에 빠지므로, 지배자들은 각종 이데올로기와 법 등을 동원해 자본주의 가족 제도를 유지하려 한다.
경제가 위기에 빠지는 시기일수록 보수적인 가족 가치관이 강조되는 것은 가족 이데올로기가 체제 유지에 도움이 되기 때문이다.
복지와 임금 삭감 등을 통해 대중의 생활 수준을 공격하는 신자유주의 정책은 개별 가족에게 부담을 떠넘기는 가족 이데올로기와 좋은 짝이다.
개별 가족에게 떠넘겨진 육아와 간병, 노인 부양 등을 사회가 책임질 때 개인들의 관계는 도덕적 구속에서 벗어나 더 자유롭고 평등한 관계를 형성하기 시작할 것이다.

주제
차별
여성