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97년 한상권 교수 재임용 탈락에 항의하는 학생들의 65일간 수업거부로 쫓겨났던 박원국이 복귀했다. 지난 1월 19일 대법원이 교육부를 상대로 한 임원 승인취소처분 소송에서 박원국의 손을 들어준 것이다.

박원국은 복귀하자마자 자신에서 비판적인 교수협의회 소속 교수 4명을 재임용에서 탈락시켰다. 덕성여대에 또 다시 전쟁이 시작되었다.

덕성여대 학생들은 3월 29일부터 총장실과 행정관을 점거하고 있다. 또 4월 16∼4월 17일 총투표를 거쳐 18일부터 수업·시험거부에 들어갔다.

덕성여대는 ‘박원국의 정원’?

덕성여대 홈페이지에는 ‘서울에서 가장 아름다운 대학 덕성여자대학교’라는 소개가 있다. 이것을 비꼬며 한 학생은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박원국의 정원 덕성여자대학교’라고 말한다. 이 말은 박원국의 횡포가 어느 정도인지를 짐작케 한다.

그는 국문과 교수에게 “카프 문학은 빨갱이 문학이니까 가르치지 말라”라고 말한다던가 한문을 가르치는 교수에게는 “한문은 가르치지 말고 한자만 가르쳐라”라고 말하기도 했다.

한 학생은 이런 박원국의 비리에 대해서 ‘우리가 낸 돈은 비리를 하라고 낸 돈이 아니다. 비리 할 돈으로 교수님이나 늘려달라.’라고 분노를 나타냈다. 덕성여대는 해마다 교수 채용을 줄이고, 승진 자격이 충분한 사람도 승진시키지 않았다. 이런 결과 80년대에 전임교수가 6명이었던 국문과의 경우 현재 2명만이 남아있을 뿐이다. 덕성여대의 학교운영 지출 대비 인건비 비율은 94년 64.7%에서 98년 58.5%로 해마다 감소하고 있다.

이 외에도 교육부 감사에 따르면 덕성여대는 실험 실습비, 장학금, 기자재 구입비 등 97년 한해에만 312억 원을 가로챘다. 덕성여대의 이월적립금은 현재 학교측 발표로도 1800억이나 된다.

박원국은 이렇게 축적한 돈을 자신의 권력을 유지시키는데 사용해왔다. 그는 90년도 당시 평민당 위원이었던 정대철의 여동생의 땅을 거액으로 매입하면서 사립학교법 개악에 압력을 넣었다. 2000년에도 국정감사에서 덕성여대의 문제가 불거지자 그 기간을 전후로 해서 한나라당에 5천만 원, 한나라당 의원 현승일과 김정숙에게 각각 1천만 원과 1천 5백만 원의 로비를 했다.

박원국은 학생들의 분노가 폭발하자 4월9일 일간지 광고를 통해 이월적립금이 의대, 음대, 사범대를 설립하기 위한 자금이라고 주장했다. 덕성여대에 지지공연을 위해 온 한 덕성여대 출신의 가수는 “10년 전과 어떻게 글자하나 바뀌지 않은 주장을 박원국은 하느냐”면서 학교측의 주장을 논박했다.

“부자학교, 가난한 수업”

열악한 시설 뿐 아니라 덕성여대에는 수업권이라고 할 만한 것이 없다.

심리학과는 전공교수가 한 명도 없다. 중문과 교수는 3명이었는데 이번에 박원국이 1명을 탈락시켜 2명으로 줄었다.

교수에 투자하지 않는 학교가 학생들을 위한 시설에 투자할 리가 없다.

한 약대생은 “실험을 하는데 2리터 크기의 비커가 없어서 50ml나 100ml 비커를 몇 개씩을 올려놓고 물을 끓인다. 실험실은 환기조차 안되고 있다. 종종 유독 물질을 다루는데 암 걸릴까 두렵다.”고 말한다.

이런 상황에서 박원국은 복귀와 함께 또 다시 교수를 해임하고 학생들의 수업권을 공격해왔다. 분노한 학생들은 “부자학교, 가난한 수업, 난 이것이 바뀌길 바란다.”고 말하며 ‘박원국 퇴진, 관선이사 파견’을 촉구하며 투쟁에 나섰다.

폭력 재단 깡패 학교

2월 15일 학생들은 학교로 들어오는 박원국을 막기 위해 그의 차를 둘러쌌다. 몇몇 학생들은 그의 차 앞에 누워서 박원국이 결코 학교로 다시 돌아오게 할 수 없다는 의지를 보였다. 그러나 박원국은 학생들의 안전에는 아랑곳하지 않고 그대로 차를 전진시켰다. 한 학생이 차바퀴에 다리가 깔렸고 그것을 본 학생들이 분노해서 모여들었다. 상황이 불리해지자 박원국은 전투 경찰을 불렀고 그들의 호위아래 그 곳을 빠져나갔다. 박원국은 “내 남은 돈과 생을 바쳐 복수하겠다.”라는 마지막 말을 남겼다.

박원국은 본관 점거를 시도한 3월 29일에도 폭력을 행사했다. 학교는 학생들의 본관 점거를 막으려고 출입문을 다 잠그고 용역 깡패까지 동원했다. 이에 굴하지 않고 학생들이 사다리를 타고 2층으로 올라가려고 하자 밖에 있던 용역 깡패들은 사다리를 흔들고 안에 있던 용역 깡패들은 올라오는 학생들의 목을 조르는 등의 만행을 저질렀다. 그 과정에서도 20여 명의 학생들이 다쳤다. 이를 보고 분노한 학생들이 다시 모여들었고 결국 1천 5백여 명이 본관을 점거하는 데 함께 했다.

학생들의 분노는 계속 높아지고 있었다. 1차 비상총회에는 무려 2천 1백 50명이나 모였다. 그러나 아쉽게도 회칙에 나와있는 전체 학생 과반수에 3백 50명이 모자라 비상총회는 성사되지 못했다.

학교는 어떻게든 비상총회를 막으려고 4월 3일 하루만 식당에서 샐러드를 무료로 제공한다는 얄팍한 수를 부렸다.

방해

4월 3일 비상총회가 성사되지는 않았지만 2천 명이 넘는 학생들이 모이자 학교는 당황했고 학교 사이트의 자유게시판을 정지시켰다. 다음날 새로 연 자유게시판은 학번을 입력해야만 들어갈 수 있어서 졸업생조차도 자유게시판에 들어갈 수가 없었다.

박원국은 학내 싸움이 시작된 후 지금까지 무려 네 차례의 편지를 모든 학생들에게 보냈다. 학생들의 투표로 수업거부가 진행되자 다시 편지를 보내 “대다수 학생들의 무관심과 수업거부에 대한 반대의사가 강(하다)’, ‘학교는 학생들의 수업을 지키기 위해 최선의 노력을 했다”는 거짓말을 했다.

학교가 학생들의 수업을 지키기 위해 했던 노력이란 수업거부를 위해 책상과 의자를 빼내려는 학생들을 폭력을 동원해서라도 막으려고 한 것이다. 학교측은 “학생들이 다치면 돈으로 해결하면 되니까 무슨 수를 써서라도 막아라”고 지시했다.

단결

4월 19일 교직원들은 민주광장에 있는 천막을 강제로 철거했고, 그것에 항의하는 학생들에게 각목을 휘두르기도 했다. 못이 박힌 각목에 맞아 손에 못이 박힌 학생도 있었다. 카메라를 들고 있다는 이유로 주먹으로 얼굴을 구타당한 뒤 교직원들에 의해 질질 끌려간 학생도 있었다. 학생들의 비명 소리가 들리자 도서관, 전산실에 있던 학생들이 자발적으로 나와 교직원들을 포위하고 사과를 요구했다.

이 날의 사태를 총지휘한 변정수 사무처장은 5시간 동안 폭력은 없었다고 발뺌했다. 그는 “여기서 자는 한이 있어도 사과하지 않겠다”고 말했다. 그러나 12시가 넘어서도 학생들이 돌아가지 않자 어쩔 수 없이 “폭력 사태가 있었다면 사무처장으로서 사과한다”고 했다.

올바르게도 학생들은 폭력 사태를 인정하지 않은 사과를 받아들이지 않고, 폭력 사용을 인정하고, 다시 이런 일이 있을 때에는 어떻게 하겠다는 약속을 하라고 요구했다.

결국 변종수는 “오늘 학생들이 다쳐서 미안하다. 앞으로 이런 일이 발생하지 않을 것이다. 만약 다시 폭력 사태가 발생하면 책임지고 사퇴하겠다”며 꼬리를 내렸다.

변종수의 사과에 학생들은 환호성을 지르며 통쾌해했다.

학생들은 끝까지 단결해서 싸워 ‘박원국의 종이’에게 사과를 받아내는 소중한 경험을 했다.

심지어 박원국은 학생들의 수업 거부(시험 거부)를 방해하기 위해 일요일(4월 22일)날 그것도 안국동에 있는 덕성여고에서 시험을 보게 하려 했다. 그러나 학생들이 덕성여고에 몰려가 시험 거부를  호소했고 4개의 시험에는 총 10여 명의 학생들만 참석했다.

이 날도 어김없이 박원국은 경찰을 동원해서 학생들을 폭행하고 연행했지만 학생들은 끝까지 시험장을 지키며 시험 거부를 호소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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