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렇게 생각한다:
반제국주의·반자본주의 노동운동을 향하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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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6년 새해가 밝았다. 올해 경제 상황이 지난해보다도 더 나빠지리라는 점을 의심할 사람은 낙천적인 희망적 관측가가 아닌 한 거의 없을 것 같다. 특히 중국 경제가 더한층 불안정해지고 있다
“한반도 주변”
경제 위기와 지정학적 불안정 속에서 박근혜 정부가 시행할 정책들도 더 사악해지면 사악해졌지, ‘인간적인 얼굴’로 순화되지는 않을 것이다. 특히, 노동자 계급에 대한 ‘노동개혁’ 공격은 총론에 해당할 입법 단계부터 각론에 해당할 시행 단계까지 노동자 운동에 첩첩산중일 것이다. 이런 일들에 맞서 노동자 운동은 그동안 좌파적 활동가들을 노조 집행부 직책에 선출해 오는 것으로 대응해 왔다. 특히, 지난해 한상균 민주노총 위원장의 등장은 큰 기대를 모았다. 그러나 금속노조를 비롯한 다양한 민주노총 산하 조직들의 선거 결과에서 우리가 볼 수 있었듯이, 많은 좌파적 활동가들이 좌파적 집행부에 실망도 하고 있음을 보여 준다.
물론 이 과정은 불균등할 것이다. 민주노총의 오른팔과 왼팔 격이라는 현대차와 기아차 노조들의 지난해 가을 선거 결과는 전임 집행부보다는 조금 더 좌파적인 듯한 집행부가 선출됐음을 보여 준다. 현대중공업에도 좌파적 노조 지도자가 등장했다.
그러나 전체로 보아 노조 지도자에 대한 기대는 크지도 작지도 않은 채 여전히 우산 구실을 그들에게 기대하는 형태로 지속될 것 같다. 지도자들이 우산을 씌워 주면 투쟁에 나설 용의가 있는 것으로 드러나는 식 말이다.
그러므로 사회주의자들
그리고 국제주의자인 고전적 마르크스주의자들에게 ‘사회’란 ‘국가
따라서 ‘정치적 노동운동’을 건설하려 애쓴다 함은 사회주의자이자 마르크스주의자에게는 반제국주의·반자본주의 노동운동을 건설하려 애쓰는 것을 뜻한다. 그동안 우리 나라 노동운동은 그러지 못했다. 반미 민중주의 노동운동이 한편에 있고, 급진적 반자본
그러나 제국주의는 미국으로 환원될 수 없다
또, 노동운동이 민중운동 안에 용해돼서도 안 된다. 즉, 노동계급이 나머지 민중을 견인해야지, 노동계급이 민중의 요구와 정서와 투쟁 방법에 적응하는 민중주의여서는 안 된다. 노동계급은 자신의 독자적 요구와 투쟁 방법을 기꺼이 채택해야 한다.
한편, 반자본과 반자본주의는 다소 다르다. ‘자본’이란 추상적 범주로, 현실에선 다수의 개별 자본들로서 존재하기 때문이다. 따라서 자본에 대항한 투쟁은 현실에선 흔히 개별 자본에 대항한 투쟁으로 나타난다. ‘총자본’이라고 강조한다 해도, 상상 속에서나 가능한 차원을 넘어 구체적 지칭체를 가리키려면, 엥겔스가 ‘이상적인
게다가 그동안 노동운동 내 ‘좌파’는 제국주의 문제를 경시하거나 회피하는 경향이 있었고, 노동조합의 정치적 한계나 약점을 간과하는 경향이 있었다. 그러나 자신의 단결도 제대로 추스르지 못하는 노동조합 운동이 ‘민중의 호민관’ 노릇을 하는 식으로 스스로 감당하기 어려운 과제를 져야 한다고 주장해서는 안 된다.
이러한 바람직하지 못한 이원성과 이분법을 극복하고, 바람직한 방향을 지향해야 한다. 그 방향은 반제국주의적인 동시에 반자본주의적인 노동자계급 운동을 건설하는 것이다.
이 과제가 순식간에 이뤄질 수 있다고 생각한다면 그건 공상이리라. 하지만 무한정 먼 미래로 미뤄 두는 것도 변증법적이지 못하다. 우리는 미래의 집을 지금 지을 수는 없어도 미래의 집을 위한 주춧돌 놓기와 벽돌 쌓기는 시작할 수 있다.
경제 위기와 지정학적 위기, 사회적 위기가 노동자들과 보통 사람들의 삶과 의식을 계속, 또한 더한층 짓누를 게 뻔한 2016년, 저항을 효율화하고 보편화하기 위해 이 과제에 착수하자. 사회주의자에겐 쟁취해야 할 미래가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