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직장 내 성희롱에 맞서 어떻게 싸울 것인가?

이 글은 25년 전 최일붕(현 노동자연대 운영위원)이 쓴 글을 오늘날 현실을 반영해 최미진이 개작한 것이다.

얼마 전 르노삼성자동차의 한 여성 노동자가 제기한 성희롱1 소송 2심 판결 결과가 나왔다. 소송을 시작한 지2년 6개월 만의 일이다. 이 판결은 성희롱과 그 이후 사측의 불이익 조처에 대한 회사의 책임을 일부 인정했다는 점에서 1심보다 진일보한 판결이다. 하지만 피해자와 그를 도운 노동자를 직무정지·대기발령시킨 것에 대한 회사의 책임은 묻지 않아 한계가 있다. 게다가 사측은 이조차 불복해 싸움은 끝나지 않았다.

이 여성 노동자는 1년 넘게 상사한테서 상습적인 성희롱을 당했다. 참을 수 없는 고통에 피해자는 회사를 그만두려고 했다. 사직하려는 이유를 알게 된 담당 임원은 가해자 징계절차를 밟기는커녕 오히려 피해자가 그만두도록 압력을 가했다. 피해자는 결국 법적 절차를 밟았다. 그러자 회사는 피해 여성을 핵심 업무에서 배제하고 나중에는 직무정지와 대기발령까지 내렸다. 이런 불이익 조처는 피해자를 도운 동료 노동자에게도 가해졌다.

이 사례는 수많은 여성 노동자들이 겪고 있는 직장 내 성희롱의 “집약판”이다. 2014년 중소기업중앙회에서 일하던 계약직 여성 노동자는 중앙회 소속 중소기업 사장들의 지속적인 성추행에 시달리다 이를 사측에 알렸으나, 사측은 적극적 조처를 취하지 않았고, 이후 정규직 전환 약속을 폐기했다. 그리고 이 여성은 목숨을 끊었다.

이밖에도 현대차 사내하청 공장, 서울대공원, 대교(학습지 회사) 등의 사업장에서 여성 노동자가 민주노총 여성위원회나 소속 노조와 함께 공식적으로 문제제기한 성희롱 사례만 여러 건이다.

“직장 내 성희롱 OUT” 직장 내 성희롱은 여성 노동자들의 노동조건에 큰 영향을 미치는 중요한 문제다. 2015년 3·8 세계 여성의 날을 맞아 민주노총이 주최한 직장 내 성희롱 추방 캠페인. ⓒ이미진

현대차 사내하청 성희롱 사건을 계기로 민주노총이 의뢰한 직장 내 성희롱 실태조사2 결과(2011년 8월)를 보면, 최근 2년간 여성 노동자의 성희롱 경험률은 39.4퍼센트나 됐다. 경력 3~5년차의 경우에는 49.2퍼센트나 됐다. 성희롱은 남녀고용평등법과 관련해 고용노동부에 접수된 사건 중 가장 큰 비중을 차지한다.

직장 내 성희롱은 여성 노동자의 자존감을 해치고 근무 의욕을 현저히 떨어뜨리며, 심지어 직장을 그만두게 하는 등 고용상 불이익으로까지 이어진다. 직장 내 성희롱은 여성 노동자들의 노동조건에 큰 영향을 미치는 중요한 문제다.

한국에서 직장 내 성희롱이 처음 공론화된 계기는1993년 서울대 신교수 사건이다. 그 후 1999년에 이르러서야 직장 내 성희롱 규제 조항이 법적으로 명문화됐다. 이것은 여성운동이 이룬 성과였다. 하지만 사측의 가해자 두둔, 피해자에 대한 따돌림, 고용 상 불이익 조처 등 때문에 여전히 직장 내 성희롱에 대한 문제제기와 해결은 힘든 상황이다. 특히, 비정규직 여성 노동자에게 성희롱 문제제기는 곧장 계약 해지 문제와 직결된다.

직장 내 성희롱은 노동조합의 쟁점이 돼야 한다

성희롱은 결코 새로운 현상이 아니지만, 오늘날 새로운 점은 여성 노동자가 직장 내 성희롱에 맞서 싸울 수 있는 잠재력이 더 커졌다는 것이다. 여성 노동자들은 오늘날 자본주의 생산에 없어서는 안 될 존재다. 한국에서도 여성의 노동시장 진출은 꾸준히 증가해, 현재 한국의 여성 임금노동자 수는 8백40만 명가량 된다. 이것은 전체 임금노동자 수의 44퍼센트에 해당한다. 이제 많은 여성들에게 직장은 더는 결혼 전에 잠깐 머물다 가는 임시 정류장이 아니다.

그 어느 때보다 많은 여성들이 사회적 노동에 참가하고 있다는 물질적 조건의 변화는 여성 노동자들의 의식에도 영향을 미쳤다. 오늘날 여성 노동자들은 직장 내 성희롱이 부당한 차별이라는 점을 전보다 더 분명히 자각하고 있다. 직장 내 성희롱에 맞서 싸우는 사례가 늘어나고 직장 내 성희롱 관련 책들이 많이 출판되고 있는 것도 이와 관련 있다.

그러나 평등에 대한 요구가 커지고 있는데도 여전히 여성은 천대받고 있다. 가사와 육아의 주된 부담이 개별 가정의 여성에게 주로 전가되고 있는 현실 때문에 여성은 남성보다 저임금의 비정규직 일자리에서 일할 가능성이 더 크다. 여성에 대한 체계적 차별 속에서 여성은 직장에서도 성희롱을 당하기 쉽다.

이런 현실 속에서 많은 여성 노동자들은 성희롱에 맞서 어떻게 싸워야 하는가를 고민하고 있다. 위에서 언급한 사례들에서도 볼 수 있듯이 여성 노동자들은 사내 절차의 공정성을 당연히 불신한다. 사장이나 임원, 상사가 성희롱을 저지른 장본인인 경우가 대부분이고(민주노총 실태조사를 보면 성희롱 가해자 중 사업주와 상급자가 65퍼센트), 이 때문에 회사는 가해자를 두둔하고 오히려 피해자에게 불이익을 주는 경우가 많다. 최근에는 고객에 의한 성희롱 피해도 늘고 있는데, 이 경우에도 기업주들은 이윤 추구에 혈안이 돼 성희롱을 방치하고 여성 노동자들더러 참으라고 강요한다.

사내 절차가 아닌 성희롱 관련 법에 호소하는 방법도 있지만, 이는 매우 오래 걸릴 뿐 아니라 설사 성공한다 해도 일자리를 되찾을 가능성은 낮다.

직장 내 성희롱의 결정적 해결책은 성희롱을 개인적인 문제로 취급하지 않고 집단적인 노동조합 쟁점으로 만드는 것이다. 민주노총 여성위원회가 직장 내 성희롱 근절 운동을 하고, 성희롱 당한 여성 노동자가 속한 노동조합이 함께 싸우는 사례가 늘어난 것은 훌륭한 일이다.

오늘날 여성 노동자의 수가 늘고 이에 따라 여성 조합원의 수도 늘어나 여성의 권리 획득을 위한 투쟁이 조합 전체의 역량에도 지대한 영향을 미친다. 그래서 전에는 단지 ‘여성의 쟁점들’로만 여겨졌던 문제들이 이제는 노동조합의 쟁점들로 다뤄질 수 있고, 또 그래야 한다. 여성 조합원이 직장 상사나 사장에게 성희롱을 당한 것은 노동조합의 즉각적 대응을 요구하는 계급적 쟁점인 것이다.

계급적

노동조합 조직을 동원해 투쟁하는 것이 가장 효과적인 방법이다. 동료 여성 노동자의 성희롱 피해에 항의해 다른 여성 노동자와 남성 노동자가 함께 싸운다면, 경영진으로 하여금 노동자들의 항의가 생산에 미칠 악영향이나 이미지 실추 등을 고려해 성희롱 문제 해결에 나서도록 하는 압력을 만들어 낼 수 있다. 민주노총 여성위원회는 “성희롱 발생시 노동조합의 초기 대응이 중요”하며 “조직적 해결과 연대”가 필요하다고 지적한다. 직장 내 성희롱 규제 조항을 단협에 명문화하는 것도 과제로 삼고 있다.

실제로 민주노총의 직장 내 성희롱 실태조사를 보면, 노동조합 유무는 성희롱 발생과 그 이후 대처 과정에 적지 않은 영향을 미친다. 사내에 노동조합이 있을 때, 없는 경우에 비해 성희롱 피해 경험이 더 적은 것으로 나타났다. 특히 비정규직과 사무직의 경우 노동조합 유무에 따른 차이가 커서, 노동조합의 존재가 직장 내 성희롱 발생을 어느 정도 억제하는 효과가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또한, 노동조합이 있으면, 특히 고의성이 강한 대가형 성희롱이 훨씬 적은 것으로 나타났다.

사업장 내에 노동조합이 있을 때 성희롱 대응 이후 노동자들이 고용과 업무에서 불이익을 덜 받고, 성희롱예방교육이 더 많이 실시되고, 사내 고충처리기구도 더 많이 마련되고 그 기구가 성희롱 발생 시 대응을 하는 경우가 더 많았다.

2000년 롯데호텔 노조 파업과 사회보험 노조 파업 과정에서 여성 조합원들은 상사들한테 당한 직장 내 성희롱 문제를 남성 조합원 동료들과 함께 투쟁해 승리한 바 있다. 2011년에는 사장의 성희롱을 공개적으로 문제제기했다는 이유로 해고된 현대자동차 사내하청 비정규직 여성 노동자가 민주노총 조직이 동참한 항의 운동을 통해 복직하기도 했다. 이 투쟁을 통해 성희롱 피해를 산재로 인정받는 성과도 있었다. 당시 전미자동차노조가 미국 전역의 현대자동차 공장·영업소 앞 팻말 시위를 벌인 국제적 연대도 현대자동차 측에 압박으로 작용했다.

이런 사례들은 직장 내 성희롱에 맞선 투쟁을 노동조합의 과제로 만들 수 있고, 이를 통해 직장 내 성희롱에 맞서 승리할 수 있음을 보여 준다.

1 “성희롱”이라는 용어는 어감 상 가볍게 느껴지기 쉽지만, 당하는 여성의 입장에서는 괴롭히기(harassment)다. 직장 내 “성희롱”은 여성 노동조건을 악화시키는 문제로서 여성 노동자들에게 결코 가벼운 문제가 아니다. 다만, 사회적으로나 법적으로 “성희롱”이라는 단어가 통용되고 있으므로 이 글에서도 이 용어를 사용한다. 한편, “성희롱”이라는 단어는 “싫어요”라고는 말하기 부담스럽지만 ‘이거 성희롱 아닌가요?’라고 농담처럼 주의를 환기시켜 그만두게 하는 편리성이 있기 때문에 여성들이 널리 사용했다는 설명도 있다(무타 카즈에, 《부장님, 그건 성희롱입니다》).

2 공익변호사그룹공감 김정혜 외, 〈여성노동자 직장 내 성희롱 실태조사 및 대안 연구〉, 민주노총, 201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