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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재 중동 상황을 적절하게 이해하기

현재 중동 상황은 자본주의 체제가 얼마나 야만적이고 위험한지를 여실히 보여 준다. 시리아에서는 민주주의와 사회 정의를 바라며 일어난 대중 항쟁을 진압하고자 독재자 바샤르 알아사드가 종파간 이간질을 수반하는 내전을 벌여 지난 5년 동안 수십만 명이 목숨을 잃고 수백만 명이 삶의 터전을 잃었다. 미국과 서방 열강이 반동적 무장집단 ‘이라크 시리아 이슬람국가’(이하 아이시스)를 핑계로 이라크와 시리아를 폭격하고 있다. 지난해 9월 말부터는 러시아도 직접 폭격에 나섰다.

아이시스에 맞서는 국제적 대연합이 결성된 듯이 보일지도 모른다. 하지만 상황은 그리 단순하지 않다. 각자 속내가 다 다르고 아이시스 격퇴를 우선적 목표로 하는 세력이 없다. 미국은 시리아 아사드 정권을 제거하고 싶어 하지만, 아이시스가 국가를 자처하며 ‘질서’를 흐리는 것도 바라지 않는다. 러시아는 중동 지역 내 유일한 동맹인 시리아의 아사드 정권을 보호하고자 한다. 프랑스는 자신의 옛 식민지에 대한 영향력을 되찾고 싶어 할 것이다. 적어도 지금의 사태가 어떻게 정리되든 그 속에서 일정 몫을 차지하기를 바랄 것이다.

제국주의 각축전

제국주의 강대국들이 벌이는 각축전의 틈바구니에서 지역 강국들(사우디아라비아, 이란, 터키, 카타르 등) 사이의 갈등도 첨예해지고 있다. 이란은 러시아와 함께 시리아 아사드 정권을 지탱하고자 한다. 사우디아라비아는 시리아 내전에 개입해 수니파 지하드 세력들을 후원하고, 이제는 이란과의 국교를 단절했다. 이라크와 시리아에서 이란의 영향력이 커지고 최근에는 이란에 대한 경제 제재까지 해제된 상황을 보며 격앙된 반응을 보이는 것이다. 터키의 주된 관심사는 쿠르드족의 독립 움직임을 억누르는 것이다. 그래서 터키는 아이시스의 성장을 어느 정도 용인한다.

바로 이런 얽히고설킨 상황 때문에 NGO들과 평화주의자들이 바라는 ‘정치적’ 해법은 실현 가능성이 매우 낮다.

수백만 난민들이 겪는 질곡을 해결하려면 제국주의 체제의 동학을 제대로 간파하는 것이 중요하다. ⓒ사진 출처 UNHCR

현재 중동 상황은 더 큰 맥락에서 일어나는 변화와 깊은 관련이 있다. 바로 세계경제 안에서 경제력 분포가 변하면서, 즉 미국의 경제력이 상대적으로 쇠퇴하며 지정학적 경쟁도 다각화돼 치열해지고 있는 맥락 말이다. 미국은 세계 최강의 군사력을 이용해 대처하려 했지만, 이라크 전쟁에서 패배하며 오히려 타격을 입었다. 미국은 유럽·중동 동아시아 등 세계 자본주의 주요 지역에서 헤게모니를 유지해야 하지만 그 어느 곳에서도 성공하고 있지 못하다. 이 때문에 중동 전쟁에 발목이 잡힌 채 동아시아에서 중국을 견제해야 하는 딜레마에 처해 있다. 이처럼 세계경제 위기 속에서 제국주의 국가들 간의 경쟁과 갈등이 증대하면서 세계는 더 위험해졌다.

요컨대 현재 중동은 지난 수십 년에 걸쳐 형성된 질서가 변화하는 상황을 극적으로 보여 주고 있다. 국제적·지역적 강대국들이 한데 모여 부대끼는 상황에서 일어나는 질서 변화는 더 위험한 사태를 부를 수도 있다.

현재 중동 상황을 살펴보는 좌파가 중요하게 명심해야 하는 것은 미국 등 서방 제국주의든 러시아 제국주의든 모두 해결책이 아니라 문제의 일부(핵심적)이고, 따라서 좌파는 그 누구의 편도 들어서는 안 된다는 것이다. 이런 점에서 한국 좌파들 가운데 사회진보연대와 혁명적노동자당건설현장투쟁위원회(노건투)가 미국 등 서방과 러시아의 개입을 모두 비판하는 입장에서 여러 글을 발표한 것은 반가운 일이다. (물론 좀 더 자세히 살펴보면 각각의 입장에는 약점도 있지만) 이 글에서는 진정한 문제로 보이는 입장들을 비판적으로 검토하고자 한다.

〈민중의 소리〉의 진영논리

〈참세상〉, 노동계급정당추진위원회, 〈레디앙〉, 노동당 등 국내 PD계열 좌파들은, 특히 러시아가 직접 개입하기 시작한 2015년 9월 말 이후에 관련 글을 하나도 내지 않고 있다.

좌파 민족주의 경향의 언론 〈민중의 소리〉는 선명한 친러 입장의 글을 보도하고 있다. 2014년 8월 미국이 이라크와 시리아를 폭격하기 시작했을 때 〈민중의 소리〉는 “시리아를 파괴하고 아사드 정권을 붕괴시키려는 미국의 음모”라고 주장했다. 2014년 9월 24일자 사설에서는 시리아인권관측소가 발표한 사망자 통계를 인용하며 미국을 비판했다.

그러나 2015년 9월 말 러시아가 폭격하기 시작했을 때는 태도가 매우 달랐다. “러시아가 … 시리아의 알아사드 대통령을 제거하려는 미국의 정책에 대항하여 역사적인 군사 개입을 시작하였다”고 보도했다. 러시아의 폭격으로 시리아 반군과 민간인이 희생된다는 보도에는 “미국이 … 구차한 변명을 늘어놓으며 서방 언론을 동원하여 역선전을 기도”하는 것이라고 러시아를 변호했다. 그러나 〈민중의 소리〉에게는 죄송하게도, 앞에서 언급된 시리아인권관측소는 “[1월] 20일(현지시간) 기준으로 러시아 전투기들의 공습으로 사망한 민간인은 1천15명에 이르며 이 가운데 미성년자 2백38명이 포함됐다고 밝혔다.”(〈연합뉴스〉 2016년 1월 20일치.)

물론 미국이 아사드를 제거하고 싶어 하는 것은 분명해 보인다. 그러나 아사드를 제거하는 것과 시리아 국가를 해체시키는 것은 다른 일이다. 이라크와 시리아에서 국가가 해체된 상황에서 아이시스가 성장했고, 아이시스는 다시 중동 ‘질서’를 더 어지럽히고 있기 때문이다. 이는 중국을 견제하려고 동아시아에 외교적·군사적 역량을 더 배치하고자 하는 미국의 발목을 붙잡고 있다. 또한 자본주의의 중요 중심지로 발전한 중동(특히 걸프해 연안국들)이 혼란에 빠지는 것도 미국의 이해관계에 득이 되지 않는다.

착시 효과

모종의 ‘진보적인’ 국가들이 있고 미국 제국주의에 대한 ‘평형추’로서 그 국가들(예를 들어 중동과 유럽에서는 러시아, 동아시아에서는 중국)을 지지해야 한다는 주장을 ‘진영논리’라고 한다. 진영논리는 〈민중의 소리〉뿐 아니라 여러 국제 좌파들 사이에서도 나타나는 오류이다. 이는 두 가지 착시 효과 때문에 나타나는 오류이다. 첫째, 옛 소련을 사회주의 사회로 오해해서 냉전 시기에 일어난 미국과 소련의 지정학적 경쟁이 제국주의 간 경쟁임을 보지 못한 착각. 둘째, 냉전 종식 후 한동안 세계가 단극 체제처럼 보였던 시기의 잔상이 그것이다.

진영논리는 제국주의를 미국으로 환원하는 이론적 오류 문제가 있다. 그러나 레닌 등 고전 마르크스주의자들이 발전시킨 제국주의론에서 제국주의는 자본들의 경제적 경쟁과 국가들의 지정학적 경쟁이 결합된 체제를 가리킨다. (김영익, ‘제국주의란 무엇인가’, 〈노동자 연대〉 164호 참고)

진영논리는 실천적으로도 문제가 있다. 그 논리에 따르면, 미국과 경쟁하는 또 다른 제국주의 국가나 지역 강국을 지지하게 됨으로써, 제국주의에 맞서는 진정한 힘인 노동계급의 아래로부터의 투쟁의 중요성을 깎아내린다. 시리아 내전에서 자기 국민들을 상대로 전쟁을 벌이는 독재자 바샤르 알아사드를 지지하라는 결론으로 이끌린다는 문제도 있다.

한편, 아이시스에 대한 〈민중의 소리〉의 견해도 러시아의 행보에 따라 오락가락한다. 〈민중의 소리〉는 2014년에는 “이제 ISIS는 시리아 정권의 붕괴로 이어질 미국과 이스라엘에 대한 부당한 개입 정책을 더 이상 좌시할 수 없어 일어섰다고 볼 수 있다”며 아이시스가 모종의 반제국주의 세력인 듯이 묘사했다. 그러다가 러시아가 직접 개입하기 시작한 2015년 9월 이후에는 “러시아는 시리아 내 지하디스트들이 러시아에 오는 것을 기다릴 게 아니라, 이들을 파괴하기 위해 선제적으로 행동해야 한다”는 러시아 대통령 푸틴의 말을 인용하며 격퇴해야 할 대상으로 보기 시작했다. 이처럼 제국주의를 미국으로 환원하는 것은 여러 문제를 낳는다. 물론 러시아에 대한 북한의 우호적 외교가 영향을 미쳤을 것임은 불문가지이지만, 이 문제는 여기서는 논외로 한다.

맺으며

현재 중동 문제의 핵심은 제국주의의 공세이고, 제국주의는 미국으로 환원되지 않는다는 것을 명확하게 인식해야 한다. 그러기 위해서는 고전 마르크스주의의 제국주의론을 길잡이 삼아 현실에 적용하며 발전시키는 것이 필수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