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철도경찰의 무리한 수사가 한 노동자를 죽음으로 몰았다

지난해 8월 1일, 청량리 역을 정상적으로 출발한 열차에서 갑자기 화물열차가 분리되는 사고가 있었다. 그리고 약 반 년 뒤인 올해 2월 6일, 그 사고와 관련된 직원 중 한 명이 자살하는 일이 일어났다.

고(故) 백종민 조합원은 34세의 젊은 철도 수송원이었다. 설 연휴를 앞두고 일어난 비극 때문에 기막히게도 유가족은 명절을 장례식장에서 보내야 했다. 열차 분리 사고와 자살 사건은 여러 면에서 매우 밀접한 관련이 있는 듯하다.

사고와 연관된 직원은 기관사, 부기관사 그리고 열차의 연결 업무를 담당한 수송원 두 명으로 총 네 명이었다. 가장 이상한 점은 이 직원 네 명을 주로 조사한 주체가 철도공사가 아닌 철도사법경찰대(이하 철도경찰)였다는 것이다. 철도 내의 일반적인 사고는 당연히 철도공사가 담당한다. 사회적 문제를 야기할 정도의 대형사고는 국토교통부 산하의 “항공철도조사위원회”가 조사하게 돼 있다. 철도경찰이 사고 조사를 할 수 없는 것은 아니지만 인적·물적 피해가 없는 이런 정도의 사고에 경찰이 나서는 것은 매우 이례적이다.

사고 관련자들에 대한 조사는 여러 차례 이루어졌다. 철도에 대해 잘 모르는 경찰이 한 조사인 까닭에, 과정 자체가 직원들에겐 더욱 큰 부담이었다. 당시 기관사들의 설명에 따르면, 철도 용어를 일일이 가르쳐 주며 말해야 할 정도로 비효율적이고 상당한 시간을 소모하는 조사였다고 한다. 현장검증 같은 경찰식 방법을 동원하다 보니 당사자들은 자신이 마치 잠재적 범죄자로 취급받는 듯한 모멸감까지 느꼈다고 한다. 특히 사고 당시도 아닌 며칠이 지난 시점에서 약물 측정까지 실시하자는 경찰의 요구는 전혀 근거가 없는 무리한 요구였다.

기관사들은 소속지부인 청량리기관차지부와 함께 변호사를 통해 즉각 거부 의사를 표현했다. 그러나 수송원들은 안타깝게도 약물 조사와 추가 조사에 모두 응했다. 조사를 거부하면 불이익이나 징계가 따르지 않을까 하는 막연한 걱정과, 기관차 지부에서만큼 적극적인 보호를 받지 못하는 등의 요인이 작용한 것으로 추측된다. 청량리 역 지부에 따르면, 특히 고인은 여러 차례의 경찰조사에 유난히 심한 불안감과 힘든 감정을 호소했다고 한다. 보직도 수송원에서 역무원으로 변경 신청했다.

열차 분리 사고는 결국 뚜렷한 원인과 책임자가 없는 것으로 공사 내에서 종결됐다. 그러나 철도경찰은 올해 1월 23일 고인을 또 한 차례 불러서 조사했다. 수사 담당관이 바뀌었다는 이유에서였다. 조사를 받은 다음 날 고인은 경찰조사에 대한 부담과 자신의 처지를 비관하는 내용의 짧은 메모를 남겼다. 몸이 안 좋다는 이유로 며칠 병가를 내기도 했다. 집에서 목을 매 숨진 채로 발견 된 후 그의 컴퓨터에서는 ‘교통방해죄’, ’철도경찰’, ’변호사 사무소’ 등을 검색한 기록이 나왔다.

정확한 유서나 증거가 없는 탓에 고인의 죽음이 철도경찰과 관련 있다고 단언할 순 없다. 그러나 일련의 과정과 사고 직전 고인의 행적을 “상식적인 수준”에서 살펴봤을 때, “경찰의 과잉수사가 그의 자살과 밀접한 관련이 있다”고 강하게 추론할 수 있다. 현장에서 일반적으로 일어날 수 있는 수준의 사고에 이렇듯 수차례 “이례적인” 조사를 행할 필요가 있었는지 되짚어 봐야 한다. 특히 약물 측정은 인권침해의 소지까지 있는 절차였다. 철도경찰 입장에서 그것이 정당하고 근거가 충분한 조사였다면 기관차지부의 적극적인 대응에 순순히 물러나지 않았을 것이다. 철도사법경찰대는 고(故) 백종민 조합원의 죽음에 도의적인 책임을 통감하고, 과잉수사임을 인정하며 유가족과 철도조합원에게 공식 사과해야 한다.

철도 사고는 수많은 원인이 복합적으로 얽혀 일어나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이번 일은 구조적, 근본적인 원인을 밝히기보다 현장 직원에게 책임을 전가하려는 시도에 경종을 울린다. 특히 사법기관인 경찰이 선을 넘어 수사를 진행하는 것에 대해 명확한 기준을 세우고 견제할 필요가 있다. 철도노조 또한 향후 어떤 조합원에게도 이런 비극이 없도록 잘 감시하고 대책을 세워야 한다. 부당한 과잉수사가 아닌, 객관적이고 합리적인 기준에 따른 조사가 정착되는 것은 사고 예방 차원에서도 매우 중요하다. 이 사건을 널리 알리고 공유해서 이러한 비극이 다시는 일어나지 않게 관심이 커졌으면 한다.

모든 철도조합원과 함께 진심으로 고인의 명복을 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