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근혜는 오늘(2월 16일) 오전 국회연설에서 “기존 방식과 선의”로는 안 된다며 대북 정책의 전환을 시사했다.

전환의 내용을 살펴보기 전에 짚고 넘어가지 않을 수 없는 게 있다. 대북 화해 협력을 위한 노력과 선의가 기존 방식이었던 양하는 어처구니없는 거짓말로 박근혜가 연설을 시작했다는 점이다.

박근혜가 연설에서 시간을 들여 죽 늘어놓은 대북 지원, 공동사업, 교류협력, 당국간 회담 등을 지난 3년간 남북 관계의 줄기로 기억하는 한국인은 극우밖에 없을 것이다. 그런 일들은 간헐적이고 예외적으로만 이뤄졌다. 국제적 대북제재와 이명박 정부의 5·24 조치 등으로 교류협력은 간신히 명맥만 유지됐을 뿐이다.

진정한 폭주 정치 동아시아 긴장을 증대시킬 대북 적대 강화, 사드 배치, 군비 증강에 반대해야 한다. ⓒ사진출처 사진공동취재단

박근혜의 거짓말은 북한 핵과 로켓을 한반도 위협의 “원인”(박근혜 자신의 표현)으로 규정하기 위한 뻔한 수작이다. 자신의 정부 정책이 낳은 ‘결과’를 인정하지 않고 북한에만 책임을 뒤집어 씌우려는 뻔뻔스런 책임 회피 논리인 것이다. ‘우리가 잘 대해 줬는데도 김정은은 세계 평화에 정면 도전하고 있다.’

그러나 지난 몇 년만 돌아봐도 미국과 남한의 대북 정책이 사실상 북한 ‘위협’을 키웠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오바마 정부와 박근혜 정부는 북한의 4차 핵실험과 뒤이은 로켓 실험으로 실전배치 위험이 높아졌다고 (과장스레) 우려한다. 그러나 북한의 3차 핵실험 이후 미국과 남한의 대응을 보면 왜 그 위험이 해소되지 못하고 4차 핵실험으로 이어질 수밖에 없었는지를 이해하기는 어렵지 않다.

2013년 2월 북한의 3차 핵실험 이후 미국과 남한은 즉시 사상 최강의 유엔안보리 대북 제재를 이끌었고, 그다음 달에는 북한에 대한 핵무기 공격 군사훈련을 한미 합동으로 실시했다. 핵 공격 훈련을 공개한 것은 처음이었다. 이에 큰 충격을 받은 북한이 중국과 입장을 조율한 뒤 미국에 핵 협상을 위한 고위급회담을 제안했지만, 미국은 이에 응하지 않았다. 대신 미국은 괌에 사드를 배치하고, 한국을 미국 주도의 MD(미사일방어) 체제에 참여시키는 데 더 공을 들였다.

그러면서, ‘대화를 원한다면 북한이 먼저 비핵화 조처를 취하라’는 식이었다. 이른바 ‘선(先)핵포기, 후(後)회담’ 입장이었다. 그러니 북미 간에 ‘접촉’을 넘어서는 수준의 대화가 열리기는 어려웠다. 6자회담은 2008년 12월 수석대표회의를 끝으로 중단됐다. 2014년부터 미국은 북한을 다시 ‘불량국가’라고 부르기 시작했고, 한미 양국은 선제공격의 성격이 강화된 핵·미사일 대응전략(‘맞춤형 억제전략’)을 추진했다.

정책 전환이 아닌 정책 강화

이처럼 지난 몇 년간의 대북 정책을 대강만 돌아봐도, 박근혜가 오늘 연설에서 제시한 방향은 이미 실패한 정책을 더욱 강화하겠다는 선언에 불과하다는 것을 알 수 있다. 그 정책은 북한의 돈줄을 죄는 강력한 경제제재와 한미 군사력 강화의 결합이다. 박근혜는 실패한 ‘기존’ 정책이 마치 협력과 선의에 기초한 것처럼 연설에서 거짓말을 함으로써 ‘새’ 정책이 성공할 수 있다는 믿음을 주고 협력을 얻어내려 했겠지만, 그가 발표한 정책 방향은 북한의 3차 핵실험 이후와 기시감이 들 정도로 비슷하다.

물론 강도의 강화는 명백하다. 북한의 핵과 로켓 실험 때마다 ‘사상 최강’의 대북 제재가 추진됐다. 이번에는 남아 있는 거의 마지막 교류협력 카드인 개성공단마저 폐쇄했다. 한반도에는 미국의 최첨단 무기들이 몰려들고 있다. 지난 1월 장거리 폭격기 B-52가 남한 수도권 상공을 비행한 데 이어, 며칠 전 패트리엇 포대가 오산에 배치됐고, 이번 주에는 핵잠수함(노스캐롤라이나호)과 F-22 스텔스 전투기 4대가 들어온다. 한미 연합훈련이 예정돼 있는 다음달에는 핵항공모함 존 C. 스테니스 전단까지 한반도에 파견될 예정이다. 이제 한미 양국이 드러내 놓고 북한 핵 시설 선제공격 위협을 하는 것은 기본이고, 북한 노동당 제1비서 김정은 제거가 목적인 ‘참수작전’(“참수”라니!) 훈련까지 실시할 것으로 알려졌다. 북한이 격렬하게 반발할 것은 불을 보듯 뻔하다.

한반도에 미국의 최첨단 무기들이 몰려들고 있다. F-22 스텔스 전투기. ⓒ사진출처 미 공군

그러나 강도가 강화됐다고 효과 개선이 보장되는 것은 아니다. 대북 경제제재만 놓고 봐도 그렇다. 미국과 한국 정부는 이란에 혹독한 경제 제재를 가함으로써 핵 협상에 나서게 만들었다고 말한다. 그러나 교역을 중국에 거의 전적으로 의존하고 있는 북한의 경우 중국의 제재 동참 없이는 국제적 대북 제재 효과가 매우 제한적일 수밖에 없다. 그런데 중국은 제재에 따라 북한의 상황 악화가 국경이나 동북3성 불안으로 이어지는 것을 원하지 않기 때문에 대북 제재 강화에 나서려 하지 않는다.

강도 강화의 측면에서 특히 주목되는 것은 한국의 MD(미사일 방어) 체제 참여가 급진전을 이루고 있다는 점이다. 박근혜는 국회 연설에서 “한미동맹의 미사일 방어 태세 향상”을 위한 협의를 진행하고 있다며 사드 배치 문제를 거론했다. 한국 정부가 얼마 전까지만 해도 쉬쉬했던 것에 비춰보면 실로 급진전이 아닐 수 없다.

사드 배치는 미국이 오랫동안 한국에 요구해 온 것이었다는 점에서 미국이 북한의 4차 핵실험과 로켓 발사를 명분으로 숙원을 풀었다고 할 만한 일이다.

사실, 우리는 지난 수년 동안 이런 일을 거듭 봐 왔다. 천안함 사건 이후 미국은 그 사건을 명분으로 주일 미 공군기지를 오키나와 밖으로 이전시키려던 하토야마 일본 정부의 계획을 무산시켰다. 그리고 연평도 사건 이후 미국은 이를 이용해 중국의 반발에도 불구하고 중국 앞바다에 항공모함을 들여놓았다.

요컨대 미국은 북한 핵과 로켓 실험이나 국지적 충돌 같은 남북 긴장을 (북한 ‘위협’이라고) 이용해 동아시아에서 동맹과 군사력 강화 같은 전략적 이익을 추구해 왔다. 새롭게 떠오른 지역 강자인 중국을 견제할 목적이었다. 그래서 날카로운 분석가들은 미국이 한반도 긴장의 지속을 자국의 이익으로 여기는 게 아닌지 의문을 품어 왔다.

북한의 핵과 미사일을 명분으로 한 사드 배치가 사실은 중국을 겨냥하고 있다는 것은 경험 많은 분석가가 아니어도 훨씬 더 많은 사람들이 알고 있다. 위키리크스가 ‘미국이 MD 구축을 위해 북한의 위협을 이용해 왔다’고 폭로했을 때 그것은 다른 폭로들과 달리 너무 잘 알려진 사실이라 거의 관심을 끌지 못했다.

이처럼 미국의 아시아 정책이라는 맥락에서 볼 때만 현재 벌어지고 있는 한반도 주변정세 긴장 증대의 진정한 “원인”과 성격을 알 수 있다. 미국은 세계 곳곳에서 지정학적 경쟁이 가열되는 속에서도 결코 ‘아시아 회귀’를 포기하지 않겠다고 천명했고, 지난해 몇 가지 점에서 진전을 이뤘다. 미일 전략 동맹 가속화, 환태평양파트너십(TPP) 협상 마무리, 한일 위안부 합의 등이 그것이다. 미국은 최근 중국 경제의 경착륙 위험 상황에서 자신감을 얻은 듯이 말하고 있다. 사드의 한국 배치가 이뤄지면 미국으로서는 또 하나의 쾌거일 것이다. 그러나 이것은 중국의 반발을 부르고, 동아시아 긴장을 더욱 증대시킬 게 뻔하다.

한·미·일 관계 강화

박근혜는 국회 연설에서 한국이 “이 문제의 직접적인 당사자”이므로 대응을 “선도”하고 “스스로 이 문제를 풀어 내기” 위해 노력해야 한다는 점을 특히 강조했다. 얼핏 보면 한국의 자주성을 강조한 듯하지만, 사실 이것도 미국에 의해 부여된 각국의 책임 강화라는 더 큰 맥락 속에서 추진되는 정책이다.

지난해 발표한 국가안보전략(NSS) 보고서에서 미국은 동맹과 우방에 대한 안보공약을 지키겠지만 지역 이슈는 물론 글로벌 도전과제에도 각국이 더 많은 책임을 지도록 할 것임을 강조했다. 이 정책은 미국 경제력의 상대적 하락이라는 처지를 반영하는 것으로, 동맹국들에게 큰 부담이 아닐 수 없다. 동맹국의 안보 취약점을 이용해 억제력을 제공하는 대신 문제 해결에 필요한 책임과 비용을 분담시키려는 것이다.

이 정책을 통해 미국이 한국에게 바라는 바는, 한일 관계를 복원해 한·미·일 관계 강화에 이바지하고 미국의 아시아 정책에 기여하라는 것이다. 여기서 핵심은 미국 주도 MD체제 참여, 즉 사드 배치다.

이것은 앞에서 지적됐듯이 동아시아 긴장을 증대시킬 뿐 아니라 말할 나위 없이 첨단 무기 구입과 국방비 증액 문제를 불러올 것이다. 또, 위안부 협상 같은 한일 역사문제가 한·미·일 관계 강화 추진 속에서 거듭 불거질 수 있다.

박근혜는 국회 연설에서 “미사일 방어 태세 향상”은 미국의 요구가 아니라 “당사자”인 한국이 북한의 도발에 대비하기 위해 “선도”적으로 취해야 할 제반 조처라고 강변한 셈이다. 그럼으로써 사드 배치에 따르는 문제에 대한 광범한 반대를 ‘안보는 정쟁의 대상이 될 수 없다’는 논리로 억누르려 한다.

이참에 착취 강화도!

박근혜는 북한 ‘위협’을 빌미로 사드 반대를 제압하려 할 뿐 아니라, 해묵은 쟁점 법안들을 통과시키라고 압박했다. 자본가들의 이익을 위해 북한 ‘위협’과 관계 없이 추진해 왔던 서비스발전기본법과 ‘노동개혁’ 4법을 안보를 이유로 통과시키라고 촉구한 것이다.

박근혜는 국회 연설에서 “북풍 의혹 같은 음모론이 제기되고 있는 것”을 비난했지만, 북한 ‘위협’을 이용해 정부 정책 반대를 제압하려는 것이 ‘북풍’이 아니면 무엇인가? 안보 위기를 정략적으로 이용하기는 적어도 총선 국면까지 줄줄이 이어질 게 뻔하다.

노동자 운동은 박근혜의 대북 적대 강화, 사드 배치, 군비 증강 등을 반대해야 할 뿐 아니라 안보를 빌미로 한 노동개악 강행 기도에도 반대해야 한다. 박근혜가 외부의 적을 부각하며 내부의 단결을 촉구하는 것에 맞서, 박근혜가 경계했던 바대로 “우리 내부로 칼끝을 돌[려야]” 한다. 즉, 박근혜의 대북 적대 강화에 반대하고 한국 정부가 미국 주도의 제국주의적 아시아 정책에 협조하지 못하도록 노력해야 한다.

이것이 다른 동아시아 나라 정부들의 정책에 기대는 것으로 이어져서는 안 된다. 가령 중국은 경제 성장과 함께 군사력을 증강하면서 (중국의 위협을 과장해선 안 되지만) 미국과 경쟁하는 제국주의 국가다. 중국의 세력 확장은 미국이 중국의 주변국 보호를 내세워 동맹을 강화하는 명분을 제공하고 있다. 또, 중국에 기대를 품는 것은 한국을 비롯한 여러 나라의 정부와 주요 정당들이 중국에 한쪽 다리를 걸쳐 놓기를 선호한다는 점에서도 위험하다. 중국에 기대기가 노동운동이 자국 지배계급의 일부와 동맹하는 것으로 이어질 수 있다는 것이다.

북한이 동아시아에서 미국의 위험을 억제하거나 미국 제국주의에 일관되게 맞서는 것도 결코 아니다. 북한 당국은 핵무기와 미사일을 개발하는 한편으로 미국과 협상을 통한 관계 개선을 추구해 왔다. 이런 정책은 지난 18년 동안 한반도 민중의 평화와 안전을 보장하지 못했다. 또한 북한 당국은 “인민 중시, 인민 존중, 인민 사랑”을 내세우고 있지만, 계속되는 인민들의 생활고(식량 부족과 물가 인상 등)는 경제와 핵무기 병진 노선의 모순을 보여 준다. 중국은 북한의 비빌 언덕이지만, 최근 중국 경제의 위기로 광산물의 대중국 수출에도 그림자가 드리우고 있다.

노동자 운동이 마르크스와 고전 마르크스주의자들이 강조한 국제주의 원칙(국제 노동계급의 단결이라는)을 지킬 때만 일관된 반제국주의 입장을 견지할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