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기사를 읽기 전에 “이렇게 생각한다: 정의당 비례후보 앞순위에 좌파적 노동운동 리더가 선출돼야 한다”를 읽으시오.

‘노동악법, 테러방지법 등을 통과시키려고 석 달째 임시국회를 되풀이해 연다. 적을 반복해서 압박하고 여야 간 타협 시도 자체를 탐탁치 않게 본다. 자신의 방향에 걸림돌이 되면 과거 측근조차 가차없이 내몰고는 ‘선거 심판’을 호소한다.’

이처럼 박근혜의 통치 스타일은 호전적이다. 자기 계급의 이익을 위해서는 비난도 감수하고 박해와 협박을 서슴지 않는다.

박근혜 정부 아래서 노동운동에 좀 더 좌파적인 지도부가 등장하기 시작한 배경이다. 민주노총을 포함해 전교조, 현대차, 기아차 등 주요 노조들에서 최근 상대적 좌파가 지도부로 선출됐다.

그러나 한편으로는 그 반작용으로 정치를 소위 ‘본연의 것’, 즉 타협과 중재(설득과 선의의 경쟁)의 세계로 돌려놓자는 주장도 강화돼 왔다(의회주의를 ‘회복’하자는 주장).

최근 노동/진보 정치 안에서 이런 주장을 가장 분명하게 내놓는 인물 하나가 정의당 부설 미래정치센터 조성주 소장(이하 존칭 생략)인 듯하다. 조성주는 지난해 정의당 대표 경선에 출마해서도 〈한겨레〉, 〈경향〉, 〈프레시안〉 등 온건 진보 언론들의 주목을 받았다. 이런 조성주가 최근 정의당 비례 일반명부에 출마했다. 이번 출마 선언문에서도 그는 매우 온건한 개혁주의 주장을 반복한다.

“[박근혜 정권에 대한] ‘심판의 정치’는 증오를 동원하는 손쉬운 정치일 뿐”이며 … 우리의 진짜 적은 ‘새누리당’, ‘더불어민주당’, ‘국민의당’이 아닙니다. … 내일이면 계약이 종료되는 비정규직 노동자가 생계를 두고 벌이는 전쟁 … 두 평짜리 고시원에서 살아가며, 수백 대 일의 취업경쟁에 지쳐 결국 ‘지옥’이라는 말로 냉소하고 있는 청년의 전쟁”이 “진짜 전쟁[입니다.]”

이것은 기업주들을 위해 각종 악법의 제정을 추진하는 새누리당과, 비정규직 노동자와 미취업 청년의 고통스런 삶이 서로 별개라는 말처럼도 들린다. 좌파와 친노 정치인들을 겨냥해 ‘싸가지 없는 증오 마케팅을 중단하라’고 촉구했던 강준만 전북대 교수의 주장을 떠올리게도 한다.(강준만과 조성주는 공교롭게도 각자의 최근 저서에서 미국판 사회민주주의자라고 할 수 있는 사울 알린스키의 《급진주의자를 위한 규칙》을 극찬했다.)

증오

물론 조성주가 서민의 고통에 대한 책임이 새누리당 정권에 전혀 없다고 주장할 만큼 지각이 없는 인물은 아니다. 그의 괴상한 강조는 ‘대결’ 정치를 ‘의회를 매개로 한 타협 시스템으로 바꾸자’는 주류 개혁주의 전략을 강조하는 맥락에서 나온 것이다.

그렇더라도 조성주의 강조가 옳은 것은 아니다. 무엇보다 노동법 개악, 세월호 참사와 메르스 대응, 위안부 합의, 민주주의 후퇴 등 박근혜 정부의 악행은 수백만 대중에게 실제로 ‘증오’를 유발했고, ‘심판’의 욕구를 자아냈다.

그러므로 ‘증오’와 ‘심판’을 (의회주의) 정치의 장에서 삭제하자는 조성주의 주장은 의회 정치가 대중을 대변하는 데서 아래로부터의 정당한 불만과 분노를 부당하게 걸러내자는 제안으로 들린다. 매우 엘리트주의적인 의회주의인 셈이다. 아마 이것이 조성주 식 ‘책임 정치’일 것이다.

물론 노동/진보 정치가 데마고기 방식으로 이런 분노를 반영하려 해서는 안 될 것이다. 대중의 분노는 당연히 효과적인 전략과 실천으로 나타나야 한다. 그러나 이것이야말로 조성주가 거부하는 종류의 정치 아닌가.

우선, 박근혜 정부 자신이 마치 전쟁에 임하는 것과 같은 자세로 통치 행위들을 하고 있다. 박근혜 정부의 이데올로기가 냉전적 반공주의 같은 것이기 때문만은 아니다. 박근혜 정부의 집권과 통치의 기본 동력은 경제·안보 위기에서 비롯하는 한국 자본가 계급의 호전성에서 나온다.

이런 배경에 박근혜 개인의 유신 친화적 통치 스타일까지 더해져 박근혜 정부는 경쟁국 북한뿐 아니라 국내의 적인 노동자 투쟁에 훨씬 더 냉소적이며 잔혹하게 대한다. 테러방지법 제정이나 지난해 공무원연금 개악 과정에서 보듯이, 박근혜는 법안 내용의 부차적 수정조차 굴욕으로 여긴다. 그를 정부 수장으로 세운 자본가 계급이 노동계급을 더 쥐어짜 수익성 위기에 대처하려 하고, 정부는 이를 수월하게 집행하려고 민주적 권리들을 침해해 가며 저항을 약화시키려 하기 때문이다.

이데올로기

이런 체제 위기와 계급투쟁의 맥락을 무시하고 “전쟁 같은 현실을 바꾸기 위한 대안들이 경쟁[하고] … 진보와 보수, 여야가 함께하는 ‘변화의 정치’”를 꿈꾸는 것이야말로 ‘공상’일 뿐이다.

정부와 기업주들이 노동계급의 요구에 타협적으로 나오게 하려면 오히려 그들이 그렇게 하지 않을 수 없게 만들 힘을 보여 줘야 한다. ‘개혁을 하지 않으면 혁명이 기다린다’는 유명한 말을 연상시키는 두려움 말이다. 아래로부터의 계급투쟁 원칙이 오히려 현실적인 이유다. 상대가 실탄을 쓰는 전쟁을 하겠다는데, 우리가 비비탄 들고 서바이벌 게임을 준비할 수는 없지 않은가.

의회주의의 이상을 구현하기 위해서라도 아래로부터의 투쟁을 강조해야 한다. 그러나 이런 수단을 거부하는 조성주의 ‘공상적’ 개혁 전략은 너무 온건해 노동자들과 청년들의 (지금 시기에 더욱 필요한) 계급의식과 정치의식 발전에 도움이 안 된다.

조성주는 지난해 〈주간경향〉과의 인터뷰에서 “이데올로기 없이 세상을 바꿀 수 있다”고 주장했다. 체제를 한번에 바꾸려 하지 말고 ‘조금씩 고쳐 가자’는 뜻에서 한 말이다. 그것이 “실리”라는 것이다. 이런 생각 자체도 특정 이데올로기에서 비롯한 것임을 고려하면, 그는 이데올로기 일반이 아니라 다른 특정한 이데올로기를 거부하는 셈이다. 즉, 조성주가 거부하는 이데올로기는 체제 변혁을 목표로 하는 거대 담론, 즉 사회 변혁적 전망이고, 그가 지지하는 이데올로기는 바로 그런 원대한 전망을 거부하는 정치적 실용주의인 것이다.

노동 기반

이런 실용주의에서는 계급 분석이나 계급 의식 발전을 위한 원칙과 계급 투쟁 등은 중요하지 않다. 지난해 7월 그는 〈레디앙〉과의 인터뷰에서도 “민주노총의 조직적 기반을 가져서 진보정당이 강해졌나?” 하며 부정적 인식을 드러냈다.

사실 이런 취급은 얼핏 모순처럼 보이기도 한다. 현실에서 ‘조금씩 고쳐가는’ 실천을 일상으로 하는 가장 대표적 개혁 운동이 바로 노동조합 운동이니 말이다. 이 때문에 조직 노동운동의 상층 전임(협상을 전담하는) 지도부는 사회민주주의의 정당의 물질적 토대이다. 정의당의 당원 구성을 봐도 “전체 당원 3만 2천여 명에서 노동자 당원은 2만여 명이며 그중 조직 노동자는 약 1만 명”이다.

그런데 조성주는 “[조직 노동과의 연계 자체를] 폄하하고 배제하지 않는다.” 오히려 “조직된 연계를 해야 하고 강화해야 한다”고 한다. 그러나 같은 인터뷰에서 그는 “경남 창원이나 울산 같은 경우에는 … 권영길 후보가 재선도 되고 진보정당이 상당한 지지율을 얻기도 했던 거 아닌가?” 하는 기자의 질문에 “그럼 서울이나 수도권은? 노동 기반이라는 것이 서울에선 작동 안 한다”고 답한다(위의 〈레디앙〉 인터뷰). ‘노동 기반’의 의의를 사회 변화의 중심 주체로서가 아니라 득표 기반에서 찾는 것이다.

그러나 조성주는 아래로부터의 계급투쟁 전략과 투쟁이 노동/진보 정치에 영향을 미치는 것을 반대한다. 그에게는 지배계급의 계급투쟁에 맞서 노동계급이 파업으로 기업 이윤에 실질적인 타격을 주며 기존 국가를 겨냥해 사회 변혁의 전망을 만들어 간다는 전략은 애초에 고려 대상이 아니다. 그래서 그는 복지 증대를 하자며 노동계급에게도 증세 부담을 지우는 보편 증세나 고용보험료 인상 같은 소위 사회연대전략을 지지한다.

따라서 정의당 비례대표 경선에서 조성주 후보가 다득표를 해 당선권에 들어가는 것은 노동자 투쟁의 활성화에 큰 도움이 안 될 것이다. 투쟁과 거리를 두는 종류의 온건한 개혁주의는 노동자 운동에 큰 영감을 주지 못할 것이기 때문이다.

진짜 안보?

또한 이 점에서, 정의당 예비내각 김종대 후보가 부각되는 것도 바람직하지 못하다. 김종대 후보는 박근혜 정부의 ‘가짜 안보’에 대비되는 ‘진짜 안보’를 주장한다. 이는 노동/진보 정치의 기본인 ‘군축을 통한 복지 확대’ 주장과도 정면 배치된다. 국가 안보를 빙자해 노동운동을 마녀사냥하는 것에 제대로 대응하기도 어렵다.

최근의 동아시아 역내 군사적 긴장 고조 국면에서 노동/진보 정치다운 대안을 내놓는 것에도 어려움을 줄 것이다. 김종대의 최근 저서 《위기의 장군들》을 보면, 군부에 대한 비판이 내부 알력 다툼을 다루는 것에 그치고, 좌파적 가치나 급진성은 찾을 수 없다.

정당은 강령과 정책, 그 기반도 중요하지만, 그것을 어느 인물을 통해 대변하느냐도 상당한 의미를 지닌다. 이 점에서, 투쟁적 스피커 구실을 할 수 있는 좌파적 노동운동가 출신자가 정의당을 대표하는 국회의원이 돼야 한다. 그것이 노동자 투쟁을 고무하는 데에 도움이 될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