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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략적 야권연대의 바탕에 깔린 이데올로기:
민중주의란 무엇인가?

총선이 다가오자 전략적 야권연대를 추구하는 사람들의 목소리가 커지고 있다. 전략적 야권연대는 ‘민중주의’를 바탕으로 한 점진적 집권 전략이다. 민중주의는 국민 가운데 한줌밖에 안 되는 반민주적·비애국적 무리를 제외한 나머지가 계급을 초월하여 단결해, 그 반동적 극소수를 권좌에서 몰아내자는 사상이자 운동이다. ‘반동적 극소수’로 지목되는 집단은 독재 잔당과 ‘공안세력’, 냉전주의자, 재벌 등이다. 민중주의자가 즐겨 내놓는 구호는 “각계각층이 단결”, “국민과 함께하는” 등이다.

민중주의는 ‘포퓰리즘’이라는 외래어의 순화어 중 하나다. 다른 순화어는 ‘대중영합주의’이다. 대중영합주의는 최상위 엘리트 계층의 정치인이 마치 자신은 엘리트층의 정치인이 아닌 양, 심지어 엘리트층에 반대하는 체하면서 대중에게 영합하는 꼼수를 가리키는 말이다.

이 글에서는 뉘앙스를 고려해 민중주의와 대중영합주의를 구별하기로 한다. 즉, 민중주의는 진보 성향이고, 대중영합주의는 보수 성향인 것이다.

유럽에서는 경제 위기와 긴축 재정을 틈타 우익 대중영합주의 정당이 등장해 활동하고 있다. 영국의 영국독립당(UKIP), 네덜란드의 자유당, 덴마크의 국민당 등이 그것이다. 이 당들의 핵심 정책은 이민자에 대한 인종차별로, 이 점에선 파시스트 정당과 유사하다. 그러나 우익 대중영합주의는 파시즘과 차이점이 있다. 그 차이점은 파시즘이 의회 민주주의와 모든 노동자 단체를 분쇄할 목적을 갖고 있다는 것이다.

민중주의는 제3세계의 역사적 경험을 반영한다

그러나 이 글의 관심사는 우익 포퓰리즘이 아니다. ‘진보’와 민족 자주를 표방하며 활동하는 종류의 포퓰리즘이 우리의 관심사다.(‘진보적’이라는 말 자체가 이제는 민중주의를 의미하는 말이 돼 버린 듯하다.)

민중주의는 외세의 지배와, 그와 결탁한 한줌의 부패한 기득권층의 지배를 경험한 신흥국의 노동운동에서 매우 흔하게 볼 수 있는 현상이다. 일제 식민지, 외세(미국과 소련)에 의한 민족 분단과 전쟁, 외세(미국)가 후원한 독재 정권과 재벌의 지배 등 한국 현대사의 특성들 때문에 한국 민중과 노동계급 대중의 정서 속에는 민중주의적 경향이 자연스럽게 형성됐다.

민중주의는 흔히 진보적 민족주의 경향을 띤다. 진보적 민족주의의 핵심 강령은 남북한 화해 협력과 궁극적 통일이다.

민중주의의 순차적 물결

민중주의 운동의 성격과 형태, 생존 능력은 시기와 조건에 따라 매우 달랐다.

19세기 말과 20세기 초

러시아와 미국에서 민중주의 운동은 아예 농민에 기반을 뒀다. 제정 러시아의 민중주의 농민 운동은 나로드니키로 불렸고, 테러리즘 전략과 선거 전략을 결합해 추구했다.

미국의 민중주의 농민 운동은 경제 정책 ― 특히 곡물 가격 문제와 재벌(conglomerate, 거대복합기업) 개혁 문제, 은행 규제 문제를 놓고 수립되는 ― 에 영향을 미치려 애썼고, 민중당(이하 서양사학계에서 통용되는 인민당으로 표기)을 창립해 지역에 따라 민주당이나 공화당과 제휴했다. 1894년 철도 파업 이후, 인민당의 일부는 파업 투쟁으로 등장한 노동운동가들과 연계하고 나중엔 다른 사회주의자들과도 연계해 미국 사회당을 창당한다.

러시아와 미국의 민중주의는 제1차세계대전을 앞뒤로 해서 일어난 거대한 노동계급 투쟁, 특히 러시아 혁명과 서구 혁명에 밀려 완전히 주변화됐다.

1930년대 대불황기와 제2차세계대전 종전 직후 시기

민중주의의 두 번째 물결은 유럽과 라틴아메리카에서 일었다. 유럽의 프랑스와 스페인에서 민중주의는 민중전선(인민전선)이라는 가장 완성된 형태로 등장했다.

민중전선은 스탈린주의자들의 전략이다. 이 전략은 드러내놓고 친자본주의적인 정당과 선거로 연립정부 세우는 것을 목표로 하는 정책이다.

민중전선은 선거라는 면에서 보면 흔히 성공적인 방침일 수 있다. 그리고 부르주아 정당과의 협력을 위협하는 수준에 도달하지 않는 한은 노동자 운동을 고무하는 효과도 낸다.

하지만 노동자 투쟁의 수위가 자본가들의 우려를 자아낼 수준으로 상승할 것 같으면 민중전선은 노동자 운동을 억압하는 효과를 낸다. 2000년 6·15 남북공동선언 국면에서 일어난 사회보험노조와 롯데호텔 노조 파업이 NL계열의 싸늘한 냉대를 받은 것이라든지, 이듬해 단병호 위원장이 7월로 예정된 민주노총 파업을 취소한 것, 그리고 최근에 다수 민주노총 지도자들이 총선을 의식해 새정치연합-더민주당 (일부) 의원들과 공조하는 것을 우선시하는 바람에 현장조합원들은 동원 해제 상태에 있는 것 등을 들 수 있다.

라틴아메리카 민중주의는 제2차세계대전 종전 직후 아르헨티나 후안 페론의 집권 초기처럼 꽤 성공을 거둔 경우도 있다. 페론은 주요 기업을 국유화하고, 노동자에게 복지 혜택을 제공했다. 그러나 그는 강압적으로 노동조합을 국가에 통합시켰고, 히틀러와 무솔리니를 찬양하면서, 파시스트 전범들의 아르헨티나 이주를 환영하는 등 모순투성이 정책들을 펼쳤다.

한편, 멕시코의 라사로 카르데나스는 집권 중이던 1938년 멕시코혁명당을 설립해, 멕시코 혁명(1910~1920)의 유산을 이어받는 정당임을 표방했고, 집권당으로서 트로츠키의 망명을 허용하는 등 매우 좌파적인 자세를 취했다. 트로츠키의 망명은 스웨덴이나 노르웨이 같은 국가들도 거부하고 있었다.

라사로 카르데나스의 아들 콰우테목 카르데나스는 1988년 당(멕시코혁명당의 후신인 제도혁명당)을 탈당해 야당인 새로운 민중주의 정당 민주혁명당 PRD를 설립했는데, 이 당은 이후 멕시코판 사회민주주의 정당이 됐다.

1949년부터 1979년까지

민중주의가 가장 성공적이던 시기는 민족 해방 혁명이 성공을 거두던 시기였다. 중국 혁명부터 쿠바 혁명과 베트남 혁명을 거쳐 니카라과 혁명과 이란 혁명에 이르는 1949년부터 1979년까지가 그랬다. (중국 혁명에 대해서는 이번 호에 실린 이정구의 ‘1949년 중국혁명은 사회주의 혁명이었나?’를 보라.)

이 혁명들에서 노동계급이 어느 정도의 역할을 했던 건 이란 혁명밖에 없었다. 이란 혁명에서도 민중주의는 초기에 노동자 운동을 자극했지만, 노동자 운동이 ‘쇼라’라는 민주적 노동자 권력 기관을 창출하며 이슬람 성직자(물라)들의 주도권을 침해하는 듯하자, 물라들은 노동운동을 억제하기 시작했고, 마침내는 아예 분쇄하는 지경으로까지 나아갔다.

1994년부터 지금까지

1994년 치아파스 주에서 봉기한 사파티스타는 최근의 민중주의 물결의 효시를 나타낸다. 사파티스타는 혁명적인 민중주의 세력이었다. 같은 해 남아공에서 아프리카민족회의(이하 ANC)가 선거로 집권한 것도 민중주의의 쇄도를 알리는 사건이었다. 동시에, 지난 20여 년간의 ANC 집권은 혁명적인 종류의 민중주의조차 그 계급 협력주의로 인해 결국에는 개혁주의의 성격을 띠게 됨을 잘 보여 준다.

3년 전 작고한 베네수엘라 전 대통령 우고 차베스와 현 볼리비아 대통령 에보 모랄레스도 최근 민중주의 물결의 일부라 할 수 있고, 스페인 포데모스도 그렇다고 할 수 있다. 좌파적 개혁주의 정당 포데모스의 주요 간부들은 에르네스토 라클라우 등의 포스트마르크스주의 이론에 근거한 민중주의를 지지한다.

오큐파이(점거하라) 운동도 민중주의의 최근 사례다. 오클랜드의 오큐파이는 달랐지만 말이다. 거기서는 부두 노동자 등 조직 노동자들이 주도하는 오큐파이 운동이 벌어졌다.


노동자 운동 안의 민중주의

한국 민중주의의 대표적 사례는 ‘자민통’ 계열(이하 자민통계), 참여연대 등 진보적 NGO들 그리고 정의당 등이다. 물론 정의당은 사회민주주의 정당이기도 하다. 스탈린주의 운동인 자민통계는 좌파적 민족주의 경향의 일부 ― 핵심적 일부 ― 이지만, 좌파적 민족주의자가 모두 자민통계인 것은 아니다.(자민통계의 민중주의적 성격은 김인식의 글 ‘민중연합당 창당에 부쳐’를, 정의당의 민중주의적 성격은 장호종의 글 ‘정의당 총선 공약 분석: 노동자와 중소기업, 두 마리 토끼 좇기’를 보라.)

민주노총 내 국민파·전국회의·중앙파 등도 민중주의적 경향이다. 하지만 이보다 훨씬 더 많은 노동운동가들이 민중주의적 경향을 띤다.

노동운동 내의 민중주의는 남아공이나 브라질, 멕시코 등의 다른 신흥공업국에서처럼 중간계급과 ― 때로는 지배계급 일부와도 ― 계급 연합을 추구하는 경향을 말한다. 물론 노동계급은 중간계급의 일부를 자기 편으로 만들어야 한다. 중간계급 가운데 특히 영세 소농이나 영세 노점상, 철거민, 빈민 등은 노동계급의 적이 아니다. 그들은 흔히 노동자의 가족일 뿐 아니라, 그들의 일부는 얼마 전까지 노동자였다가 실직한 사람이거나 경기가 좋아지면 다시 일자리를 얻을 수 있는 사람들이다. 그들은 가족들의 노동력을 이용해 작은 사업을 운영하는 처지이기가 쉽다.

그러나 중간계급은 노동계급이 아니다. 전통적 중간계급의 전형은 소자영업자인데, 이들은 한편으로는 자기 자신을 착취하는 자본가 구실을 하고, 다른 한편으로는 자기 자신에게서 임금을 받는 노동자 구실을 하는 이중적 처지에 있다. 스스로 자산을 소유하므로 자본가들에게 동질성을 느낄 수도 있지만 스스로 일하므로 노동계급에게 동질성을 느낄 수도 있다. 이런 모순 때문에 구 중간계급은 양대 계급 사이에서 오락가락하며 유동적이다. 오락가락과 유동성이 중간계급의 핵심 특징이다.

중간계급에는 이른바 ‘신중간계급’이 포함된다. 이 집단은 자본주의가 발전하면서 등장했다. 자본주의 초기에는 자본가가 직접 사업장을 운영하고 노동자들을 통제할 수 있었다. 그러나 자본주의 기업의 규모가 점점 커지면서, 자본가는 자기 대신 사업장을 운영할 특별한 임금노동자들을 고용하기 시작했다. 이 때문에 사업장 내에 경영직·관리직 등 관료층이 형성됐다.

이 관료층의 최상층은 자본가 계급과 뒤섞이게 된다. 반면 관료층의 최하층은 겉보기로는 노동계급과 거의 구분되지 않는다. 이 계층에는 매우 모순된 처지에 있는 각양각색의 인자들이 있다. 그들은 자본주의 사회에서 부를 창출하고 체제를 운영하는 데 도움이 되는 생산적 구실을 하기도 하고, 노동자들을 더 심하게 쥐어짜고 단속하는 구실을 하기도 한다.

계급투쟁이 일어나면 이 집단도 양대 계급 중 어느 한쪽으로 이끌린다. 노동자 투쟁이 강력할수록이 계층 하층의 일부 사람들은 노동자 편으로 이끌릴 가능성이 커진다. 엥겔스는 1848년 혁명 중에 프랑스 “중간계급이 견해가 엄청나게 자주 바뀐다”면서 이렇게 썼다:

“프티부르주아지는 중재자 구실을 하며 비참한 역할을 했다. … 그들과 임시정부는 몹시 갈팡질팡했다. 만사가 조용하면 할수록 정부와 프티부르주아지는 대 부르주아지 쪽으로 더욱 기울었다. 반면 상황이 격동하면 격동할수록 그들은 노동자 편을 들었다.”

노동계급과 중간계급의 관계 문제가 진정한 쟁점이다

지배계급이 자본주의 경제 위기의 대가를 노동계급에 떠넘기는 과정에서 중간계급의 일자리도 불안정해지고 복지 혜택도 감축된다. 게다가 노동자의 이웃 주민으로서 그들의 환경도 파괴를 당한다. 그래서 중간계급의 일부도 자본주의의 일부 효과들에 적개심을 품게 될 수 있다.

그러나 중간계급 사람들은 개인주의적 해결책을 찾는 경향이 강하다: 승진, 창업, 귀농, 생존을 위한 무한 경쟁에서 그냥 뿔뿔이 낙오하기 등.

그리고 무엇보다도, 중간계급은 반자본주의적 운동이 미칠 일부 영향에 대해서는 두려워하거나 우려한다. 왜냐하면 경제 위기 상황 속에서는 노동계급의 이익과 중간계급의 이익이 일부 상충할 수 있기 때문이다. 가령 임금이 상승한다거나, 노동조건 악화 없는 노동시간 단축이 이뤄진다거나 하는 개혁이 자영업 계층에는 불리한 조건이 된다. 그래서 중간계급은 보수적이기가 쉽다.

그러므로 노동계급이 중간계급의 더 많은 부분을 끌어당길 방안은 계급투쟁 역량과 능력을 십분 발휘하는 것밖에 없다. 그러려면 노동계급의 이해관계를 포기할 것이 아니라 오히려 계급 이해관계를 확고하게 추구해야 한다.

바로 이 지점에서 민중주의자와 사회주의자의 태도가 확연하게 준별되며 심지어 충돌한다. 민중주의자는 노동계급의 고유한 이해관계를 고집하지 말고 중간계급의 이해관계와 조율하라고 주장한다. 그래서 노동운동 안팎의 민중주의자들은 지난해 봄 전면에 불거진 공무원연금 방어 문제를 회피하고 대신에 그 문제를 공적연금 강화 문제로 치환하려 했다.

결국 민중주의자는 계급투쟁과 노동계급 투쟁의 결정적 중요성을 받아들이지 않는다. 민중주의자는 계급투쟁과 노동계급 투쟁이 부각되고 노동계급이 운동을 주도하면 민중이 내적으로 분열될 것이고, 운동 쪽으로 포섭될 잠재력이 있는 다른 사회세력을 내치는 효과를 낼 것이라고 우려한다.

그러나 이런 우려는 기우일 뿐이다. 오히려 노동계급이 민중 운동에서 주도권을 발휘할수록 민중도 더 강력해질 수 있다. 중간계급으로서는 사회적 권력과 집단적 힘과 규율을 갖춘 동맹을 갖게 된 셈이니까 말이다.

오히려 민중주의적 방식이야말로 민중을 이루는 계급들의 상이한 이해관계 때문에 결국엔 민중을 단결시키지 못할 것이다. 민중주의자가 그리는 단결한 민중이라는 이미지는 이상화된 것일 뿐이다.

10면에 실린 김하영의 글 ‘2015년 노동자 투쟁에서 민중주의 vs 계급정치’는 노조운동가들 민중주의의 이러한 약점을 잘 보여 준다.

민중주의냐, 노동자주의냐?

민중주의는 경제 위기에 직면해서도 민중 운동이 계급투쟁으로 분화되지 못한 낮은 단계를 나타낸다고 할 수 있다. 노동계급 측에서 말한다면, 노동계급 의식 발전의 초보적 국면을 나타낸다고도 할 수 있다.

이 점에서 지난 몇 달 새 벌어진 민중총궐기는 박근혜 하에서 노동계급과 민중이 자신감 수준을 회복하기 시작했다는 좋은 징조로 볼 수 있다. 아직은 그 수준이 파업 투쟁으로 자본주의 이윤 자체를 공격할 의지 수준으로는 상승하지는 못했지만 말이다.

동시에, 노동조합 지도자들의 소심함 때문에 파업 투쟁의 대용품으로 가두 항의가 활용됐다는 한계도 지닌다고 할 수 있다.

마르크스주의자는 이 모순을 봐야 한다. 전자를 보지 못하고 후자만 본다면 노동운동이 침체하고 있다는 그릇된 인상을 얻을 것이다. 후자를 보지 못하고 전자만 본다면 민중주의(그리고 그 계급 협력주의의 논리적 귀결인 개혁주의)에 대해 무방비 상태에 놓일 것이다.

사실, 한국의 노동운동가들은 노동조합 쟁점들을 다룰 땐 흔히 ‘노동자주의적으로’(즉, 전투적 노동조합주의의 전통에 따라) 사고하고, 사회적·국가적 쟁점들을 다룰 땐 민중주의적으로 사고하는 경향이 있다. 이는 민중을 이루는 다른 사회계급들과 최소공배수적으로 계급 이해관계를 융합한다는 발상에 해당한다. 가령 공무원연금과 직접적 이해관계가 없는 듯한 부문에서 활동하는 노동운동가들 가운데는 공적연금 강화라는 민중주의자들의 대안에 매력을 느낀 사람들이 많았다.

민중주의적 노동운동가들은 또한 지난해 11월 민중총궐기에 민주노총 총파업을 직결시키는 방안을 원천적으로 배제했다. 총파업은 노동자들에 의한 계급 고유의 투쟁 방법이다.

사실, 자민통계는 지난해 초부터 민중총궐기를 추진했지만, 상반기 내내 큰 반향을 일으키지 못했다. 민주노총 지도부가 4월 말 선제 파업과 이후의 공무원연금 투쟁 때문에 그 안(案)에 전혀 관심을 기울이지 않았기 때문이다.

하지만 공무원연금 투쟁이 패배하고 7월 15일 민주노총 2차 파업이 존재감 없이 끝나자 민중총궐기안은 탄력을 받기 시작했다. 자민통계뿐 아니라 국민파, 중앙파 간부들도 이제 “사회적 고립 자초할 총파업 얘기 그만하고 국민적 지지를 받을” 싸움을 하자며 민중총궐기를 강력히 제안했다. 이들의 생각을 잘 대변한 한 민중주의적 논평은 이렇게 주장한다:

“공무원연금 개악 등을 거치면서 민주노총의 줄어든 동력, 사회적 고립, 정파적 사분오열, 산업과 기업에 따른 부문주의는 거듭 드러났다. ‘노조 지도부가 국회 일정에 매달리며 계속 파업을 미루면서 동력이 사라졌다’는 좌파의 전통적 비판도 한상균 지도부의 1, 2차 선제파업을 거치면서 근거가 희미해졌다. … 파업의 동력이 충분히 존재함에도 불구하고, [노조 지도자들이] 계속 회피하며 그것을 사그라들게 만들었다고 보기는 힘들다. … 민주노총의 부족한 동력과 사회적 고립을 볼 때 이 투쟁[민주노총 총파업]은 처음부터 승산이 높지 않았다.”

오히려 민중총궐기로 “저들[지배자들]이 결코 ‘진보당’으로 상징되는 저항운동의 뿌리를 제거하지 못했고, 여전히 공포에 시달리고 있다는 것을 보여 준다”는 것이다.

2차 민중총궐기를 위한 토론에서도 민중주의자들은 ‘살인 진압 규탄과 민주주의 문제를 부각해 민주세력을 모아 내는 외연 확대를 기조로 범국민대회로 열자’고 주장했다. 그들은 특히 ‘노동개혁’ 반대를 부각시키면 시민단체와 종교계 등의 참가가 어렵다며 민주노총에 기조 변경을 강력히(그러나 헛되이) 요구했다.

혁명적 오솔길

그런데 대다수 노동운동가들이 노조 쟁점들은 노동조합주의적으로 사고하고(때로 전투적일지라도), 더 폭넓은 정치 문제는 민중주의적으로 사고하는 식의 의식을 갖는 경향은 정치 투쟁과 경제투쟁의 역할 분담과 비슷하다.

그래서 이 과정에서 개혁주의 정당이 성장하기 쉽다. 개혁주의 정당은 자본주의적 민주주의의 형식적 원리에 순응해, 노조 지도자들은 노동자들의 노동조건과 직접적 생활조건의 문제들을 다루고 개혁주의 정치인들은 개혁 입법 활동을 하는 식의 분업을 당연시한다.

이는 극히 이례적인 경우가 아니라면 정치 운동에 노동자들의 경제적 힘(특히 파업 투쟁으로부터 나오는)을 사용하는 것을 선택 사항에서 배제하는 것을 뜻한다. 이는 세월호 참사 항의 운동에 민주노총 파업이 동원되는 게 어불성설로 취급되는 분위기를 설명해 준다.

이런 정서가 보편화되면 범좌파 개혁정당이 대세가 된다. 그러나 경제 위기와 지정학적 위기라는 이중의 위기로 가느다랗게나마 급진적 조류가 노동계급과 청년·학생 속에 형성될 수 있다.

특히, 노동자들이 민중주의를 학습한 효과로서 계급 의식이 향상될 수 있음도 알아야 한다. 이 점은 엥겔스가 미국 인민당의 일부 투사들이 철도 파업 투사들과 만나며 사회주의 운동을 구축하기 시작하는 것을 흐뭇하게 보며 지적한 점이기도 하다.

민중주의의 진화 속에서 노동계급의 자력해방을 추구하는 사회주의적 조류에게도 기회가 있는 것이다. 〈노동자 연대〉 신문을 지지하는 사람들은 민중주의의 일정한 진보성을 인정하면서도, 위에서 인용한 논평가처럼 기회주의적으로 그에 끌리지 말고 그보다 더 급진적이고 좌파적인 전망에 헌신해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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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하영, 최일붕 지음 | 노동자연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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