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원웅 씨(이하 존칭 생략)는 2010년 한진중공업 ‘4차 희망버스’ 집회에 참가했다. 2010년 한진중공업 ‘희망버스’ 운동은 한진중공업이 불황을 핑계로 노동자들을 대규모 해고한 데 대해 항의하는 운동이었다.

이후 그는 일반도로교통방해죄로 기소돼 재판을 받았고, 1심 재판부는 그에게 무죄를 선고했다.(▶관련 기사: “해고에 맞선 노동자들의 투쟁과 희망버스 운동은 정당했다”)

그러나 검찰은 곧 항소했다. 항소심 첫 공판에서 검찰 측은 추가로 “증거”를 신청하겠다며 시간을 끌었다.

지난 2월 23일, 이원웅의 항소심 2차 공판이 열렸다. 2차 공판에서 검찰 측은 이원웅이 교통을 방해했다는 “증거”를 추가로 제시하지 못했고, 다른 재판의 판결문을 제출했다.

이에 재판부조차 검찰 측이 제출한 자료를 “증거”가 아니라 “참고자료”로 하겠다며 검사에게 ‘달리 신청할 증거는 없느냐’고 재차 물었을 정도로 검찰 측의 대응은 군색했다. 그러고도 검찰은 벌금 30만 원을 구형했다.

이원웅의 담당 변호사는 검찰 측의 군색함을 조목조목 비판했다. “설령 집회 금지 통고가 적법했다 하더라도 일반교통방해가 성립하지 않는다”는 판례가 이미 있다는 점, 1심 때 검찰이 증거로 제출한 동영상에는 이원웅이 등장하지 않는다는 점, 또한 검찰이 증거로 제출한 사진은 이원웅이 교통을 방해하기는커녕 팻말을 들고 평화롭게 행진하고 있다는 점을 보여 줄 뿐이라는 점 등을 들어 검찰 측 주장이 설득력 없음을 강조했다.

또한, 이원웅은 최후진술을 통해 ‘집회와 시위의 자유를 제한하는 것은, 다수의 삶을 희생시키는 데 저항하지 못하게 하려는 핑계에 불과하다’며, ‘정리해고라는 사회적 살인을 막기 위해 목소리를 낼 권리와 큰 불편 없이 통행할 권리가 충돌하는 구체적 상황에서는, 당연히 전자가 우선해야 한다’고 당당하게 주장했다.

이원웅의 주장처럼, 경제 위기를 빌미로 노동자들에게 고통을 전가하는 데 맞선 투쟁과 사회적 연대는 정당하다. 

정부·검찰·경찰이 ‘불법 시위’, ‘엄정 대처’ 운운하며 집회와 시위의 자유를 가로막는 것은 이러한 운동에 대한 명백한 탄압이다.

한진중공업 정리해고에 맞선 운동의 대의를 옹호하고 집회와 시위의 자유를 보장하라고 당당하게 주장한 이원웅에게 많은 관심과 지지를 바란다.

항소심 선고는 3월 11일(금) 오전 10시에 있을 예정이다.

이원웅 최후 진술문

“다수의 삶 희생시키는 데 저항한 일은 정당하다”

 

희망버스 집회는 2010년 12월 한진중공업의 정리해고 사태에서 시작됐습니다. 당시 회사는 경영상의 어려움을 이유로 노동자들을 대량 해고했는데 정리해고 바로 다음 날 대주주와 경영진은 170억 원이라는 거액의 주식 배당을 실시했습니다. 한쪽에서는 노동자들 삶의 기반이 송두리째 무너지고 있는데, 다른 한쪽에서는 조남호 회장 일가가 매년 막대한 돈을 챙겼고, 정리해고를 하는 그 순간까지도 막대한 부를 챙겼던 것이죠.

회사가 말한 경영상 어려움, 이것은 실제로 있었던 것이지만 스스로 자초한 것이었습니다. 무리한 인수 합병과 해외 투자로 차입금이 3조 원에 이르렀고, 2년 동안 이자 비용으로만 3천7백억 원을 쓰니 적자가 나지 않는 것이 이상한 상황이었다고 합니다. 따라서 한진중공업 정리해고는 이런 경영 실패의 책임을 노동자들에게 뒤집어씌우는 것이었습니다.

그렇다면 그 고통과 책임을 뒤집어 쓴 노동자들은 어떠했을까요? 정리해고는 당사자에게 매우 끔찍한 일입니다. 2009년 쌍용차 파업으로, 정리해고 문제는 이미 중요한 사회적 이슈가 된 바 있습니다. 2011년에 평택시가 실시한 설문을 보면, 쌍용차 해고·휴직자 중 절반이 넘는 사람들이 “자살과 같은 극단적 선택에 대한 충동을 느꼈다”고 답했습니다. 4분의 1은 월수입이 1백만 원 미만이었다고 합니다. 이런 상황에선 기존의 삶이 뿌리째 흔들리고 기존의 인간관계가 파탄 나고, 그러니 극단적 선택에 대한 충동을 느끼는 것이 이상한 일이 아닙니다.

저에게도 한진중공업 노동자들과 마찬가지로 중공업에 종사하시다 ‘희망 퇴직’을 강요 받아 직장을 그만두신 아버지가 있습니다. 그때 가족들이 느낀 공포를 저도 목격한 바 있습니다.

한진중공업 해고 사태는 경제 위기가 심각해지는 가운데 그 고통과 책임을 누가 오롯이 짊어지게 될지를 상징적으로 보여 주는 사건이었습니다. 저를 비롯한 많은 사람들이 해고의 당사자가 아님에도 시위에 나선 것은 교통을 방해하기 위해서가 아니라 이런 상황을 지켜보기만 할 수 없기 때문이었습니다.

검찰은 항소 이유서에서 저의 무죄 판결에 대해 세 가지 항소 이유를 듭니다. 첫째, 집회의 제한 통고는 적법했다. 둘째, 적법하게 통고된 제한 범위를 벗어나 집회가 교통 방해를 초래했다. 마지막으로 이 집회가 불법이 됐고 교통 방해를 초래했다는 것을 알면서도 제가 이 집회에 참가했다는 것입니다.

집회에 참가했다면서 교통이 방해될 줄은 몰랐다고 하면 말이 안 되겠죠. 집회와 시위를 하면 당연히 교통은 방해되는 것입니다. 그런데 집회와 시위는 민주 사회에서 당연히 보장해야 하는 권리입니다. 교통의 원활한 소통, 이것은 추상적으로는 필요한 일이라고 말할 수도 있겠습니다. 그러나 엉뚱한 사람들에게 책임과 고통을 뒤집어씌우는 것, 정리해고라는 사회적 살인을 막기 위해 목소리를 낼 권리가 큰 불편 없이 통행할 권리와 충돌하는 구체적 상황에서는, 당연히 전자가 우선해야 합니다. 적어도 그 구체적 맥락은 고려해야 할 것입니다.

그런데 검찰과 경찰은 ‘그냥 너는 집회에 참가해서 교통을 방해해 공공의 질서와 안녕을 해쳤으니 죄인이다’라는 것과 다름없습니다. 이는 소수의 배를 불리려고 다수의 삶을 희생시키는 것에 항의하지 못하게 하려는 핑계에 불과합니다.

사실 검찰은 제가 어떻게 교통을 방해했는지에 대해서도 그다지 관심이 없는 것 같습니다. 검찰이 제출한 동영상에는 제가 나오지도 않습니다. 그리고 교통량이 제일 적은 주말 야밤에 집회를 해서 교통을 방해했다면 얼마나 방해가 됐겠습니까.

그리고 이 집회 제한 통고의 적법성에 관한 설왕설래는 사실, 저도 이번 재판을 하면서 알게 된 것입니다. 심지어 집회 제한 통고의 적법성 여부가 대법원에서까지 공방이 벌어지고 있는 마당에, 집회에 참가하고 있는 저의 입장에서는 집회 현장에 찾아온 경찰의 방송을 듣고(들었는지, 들었다면 몇 번이나 들었는지도 기억이 잘 나지 않거니와) 바로 집회를 해산해야 한다는 것은 납득할 수 없습니다. 집회 참가자들이 집회의 불법성 여부를 그렇게까지 꼼꼼히 따져가면서 집회를 참가해야 한다는 것은, 집회·시위의 자유는 기본적으로 보장한다는 헌법의 정신과도 맞지 않습니다. 이런 정신을 따르더라도 집회·시위는 기본적으로는 보장되는 것이고 거기에 예외 사항이 붙는 것이지, 기본적으로 경찰의 허락을 받아야 하는 것이 아닙니다.

그러나 실제 현실에서는 예외가 기본이고 기본이 예외입니다. 검찰이 항소 이유서에서 인용한 집시법 시행령을 보아도 이를 잘 알 수 있습니다. 검찰은 교통 소통 때문에 집회를 제한하는 경우 서면으로 조건을 밝혀 주최자에게 알리면 된다고 시행령에 나온다고 합니다. 그런데 시행령에는 ‘알려야 한다’라고 적혀 있지, ‘알리면 된다’고 나와 있지는 않습니다. 이 조항은 집회를 제한하기 위해 반드시 갖춰야 할 한 가지 필요조건을 서술한 것이지, ‘이것만 하면 된다’라는 식으로 충분조건을 서술한 것이 아닙니다. 항소 이유서에 나오는 이런 말장난은 검찰과 경찰이 기본적으로 집회·시위의 자유를 어떻게 보고 있는지 잘 보여 줍니다. 사실 검찰, 경찰을 떠나 이 모든 것을 총괄하고 있는 정부도 노동개악이나 세월호, 메르스 사태처럼 사람들의 삶을 망가뜨리고, 앗아가고, 파괴하는 나쁜 정책이나 악법들을 밀어붙일 때마다, 이에 사람들이 항의하는 목소리를 내려 하면, ‘엄정 대응, 사법 처리’ 운운하며 사람들에게 겁을 주는 데에 여념이 없습니다.

그러나 자신의 삶을 지키는 것에 맞서 목소리를 내고 저항하는 것은 지극히 정당한 것이고, 민주주의를 표방하는 사회라면 이것을 보장해야 합니다. 정부, 경찰, 검찰은 이런 민주주의 사회의 가치를 전도하고 있습니다. 재판부는 이런 상황에 다시 한번 더 경종을 울려야 한다고 생각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