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해 말부터 끔찍한 아동학대 사건이 잇달아 언론에 보도되면서 사람들의 마음을 어둡게 만들고 있다. 올해 초 한 부모가 초등학생 아들을 폭행해 죽게 만들고 아들의 시신을 훼손해 보관해 온 사건이 드러났다.

친어머니가 다른 사람들과 함께 자기 딸을 의자에 묶어 놓고 마구잡이로 장시간 폭행해 사망케 한 뒤 암매장한 사건도 드러나 우리를 충격에 빠뜨렸다.

2월에는 경북 칠곡에서 22살 동갑내기 부부가 자녀 4명을 상습 학대한 혐의로 구속됐다. 이 부부는 지난해 7월부터 올해 1월까지 아이들을 수시로 때리고 하루 한 끼만 준 혐의를 받고 있다.

그리고 S신학대학교의 이아무 교수 부부가 중학생 딸이 말을 안 듣는다고 구타해 사망케 한 후, 여러 달 동안 방치한 채 주변에 거짓말로 숨긴 사실이 드러나 또 한 번 우리를 충격에 빠뜨렸다.

심각한 아동학대 사건이 계속 드러나자 박근혜 정부는 아동학대 강력 대처를 말하며 각종 대책을 내놓고 있다. 피해 아동 실태를 파악하는 대책(초·중학교 장기결석 아동 실태조사, 미취학 아동 및 병원 이용·예방접종 정보가 없는 아동 방문조사 등)이 여럿 발표됐다. 전담 경찰·검찰 인력 배정, 정보 공유 시스템 마련 등이 제시됐다.

그동안 박근혜 정부는 아동학대 근절을 거듭 외쳤지만 최근까지도 아동학대 관련 예산 문제는 한사코 언급하지 않았다. 2013년 경북 칠곡·울주에서 일어난 아동학대 사건을 계기로 ‘아동학대 범죄의 처벌 등에 관한 특례법’ 등이 시행됐지만, 2014년 아동학대특례법 시행 예산은 한 푼도 배정되지 않았다. 심지어 2016년 아동학대 예방사업 예산은 2015년 2백52억 원에서 무려 67억 원이 삭감됐다.

그러다 더불어민주당이 총선 공약을 발표하면서 아동학대 예방 예산 삭감 문제를 부각하자, 며칠 뒤 새누리당은 아동학대 예방 관련 예산을 현재 1백85억 원 수준에서 내년 1천억 원 수준으로 대폭 늘리겠다고 발표했다.

피해아동 보호 예산은 마땅히 늘어나야 한다. 쉼터와 아동보호전문기관 확충, 피해아동 치료와 지속적 지원 등 학대 피해 아동 지원을 시급히 늘려야 한다.

그러나 현재 아동학대 예방 예산이 워낙 낮아 1천억 원 수준으로 늘린다 해도 피해자 보호에 충분할지는 의문이다. 2014년 보건복지부 통계상 학대피해아동 보호 건수는 1만 27건으로, 2013년 6천7백96건보다 대폭 늘어났다. 아동학대 신고는 갈수록 늘어나는 추세다.

사후약방문

더 중요한 것은 피해아동 보호는 최소한의 조처일 뿐 결코 아동학대 ‘예방’책은 아니라는 점이다. 아동학대 조기 발견을 위한 신고와 실태 조사 계획도 사후약방문이지, 예방책이 될 수는 없다.

박근혜 정부는 턱없이 낮은 아동복지 예산을 늘릴 계획은 전혀 내놓지 않고 있다. 2009년 기준 경제협력개발기구(선진국 클럽으로, 이하 OECD) 평균 아동가족복지지출 수준은 국내총생산(GDP) 대비 2.3퍼센트로, 한국은 OECD 평균의 3분의 1수준에 그쳐 34개국 중 32위를 차지했다.

아동학대가 빈곤과 관련 있다는 연구가 많다. 그러나 정부는 이를 깡그리 무시하고 있다. 최근 자녀 4명을 상습 학대한 혐의로 구속된 22살 부부는 직업 없이 군청에서 주는 수당 등으로 생활하며 생계비 부족 등에 따른 스트레스를 자녀들에게 푼 것으로 조사됐다.

더불어민주당은 정부에 사후약방문격으로 호들갑을 떨지 말고 “관련 예산을 포함해 아동학대를 근원적으로 예방할 정책 대안을 내놓”으라고 정부에 촉구했다. 그러나 더민주당이 내놓은 대책도 박근혜 정부 대책과 크게 다르지 않다. 피해아동 지원 예산만 강조했을 뿐 아동복지 전반의 예산 증액 요구는 없었다. 새누리당과 더민주당 모두 아동학대 사후대응에 주력하는 것이다.

박근혜 정부는 아동학대 사건을 가족 이데올로기를 강화하면서(아래에서 설명됨) 경찰력 증원의 명분으로 삼으려고도 한다. 새누리당이 최근 낸 총선 공약을 보면, 아동학대 전담경찰관 신설 계획을 제시하면서 아동학대의 “근본원인이 ‘가정’에 있[다]”고 강조한다. 정부는 2019년까지 경찰 인력을 2만 명 더 늘릴 계획인데, 이 중 일부를 아동학대 전담경찰로 배정하려 한다.

아동학대의 근원

새누리당의 설명은 아동학대의 근원을 완전히 호도하는 것이다. 아동학대 가해자의 대부분이 부모라는 사실이 곧 아동학대의 본질적 원인이 가족 내부에 있음을 뜻하지는 않는다. 아동학대가 주로 가족관계에서 일어나는 이유는 자본주의가 심각한 경제적 불평등에 바탕을 둔 착취 체제라서 소외가 만연하고, 양육이 개별 가정의 사적인 일로 내맡겨져 있어서 부모들이 엄청난 압박을 받기 때문이다. 이런 사회 구조 속에서 좌절한 일부 부모가 자녀들에게 분풀이를 하는 것이다.

많은 연구들이 경제적 불평등과 아동학대가 밀접한 관련이 있다고 지적한다. OECD 나라들을 비교 조사한 결과를 보면, 사회 총소득에서 하위 50퍼센트가 차지하는 비율이 낮은 나라일수록 ‘고의적 아동사망률’(학대나 살해로 인한 아동사망률)이 높다. 1인당 국민총생산이 일정 수준을 넘어서는 경우, 불평등한 사회일수록 영아사망률이 높은 것으로 나타났다.1

만연한 빈곤과 사회적 불평등, 사적인 양육제도 등과 같은 핵심적 문제를 도외시한 채, 감시체계를 강화하는 것은 결코 아동학대 예방책이 될 수 없다. 사람들이 아동학대 문제를 가볍게 여겨 방관하기 때문에 아동학대가 빈번하게 일어난다는 주류 언론들의 얘기는 전혀 진실이 아니다. 아동학대가 의심되는 사례는 모두 철저히 조사돼야 하지만, 신고를 독려하고 감시망을 강화한다고 해서 아동학대 발생이 줄어들지는 않는다.

미국은 아동학대 감시망이 발달해 한국보다 신고가 훨씬 많이 이뤄지고 아동학대 판정 건수도 높지만, 그 때문에 심각한 아동학대가 줄어들지는 않았다. 0~14세 아동 10만 명당 사망 원인을 국제 비교한 연구를 보면, 아동학대와 관련 깊은 ‘고의적 아동사망률’은 미국이 조사대상 30개 OECD 국가들 중 단연 1위다(OECD, 2011). 미국에서는 아동 10만 명당 2명 이상이 학대나 살해로 인해 사망한다.

미국의 고의적 아동사망률이 OECD 30개국 중 1위인 것은 우연이 아니다. 미국은 2009년 GDP 대비 아동가족 복지지출 수준이 OECD 소속 34개국 중 꼴찌에서 2위였다(꼴찌는 아동가족 복지지출이 전무한 터키). 미국의 지출 수준은 평균 2.3퍼센트에 한참 못 미치는 0.7퍼센트였다. 한국은 꼴찌에서 3위로 0.8퍼센트였는데, 한국이 ‘고의적 아동사망률’ 상위 5개국에 속하는 것 역시 우연이 아니다!

한편, 박근혜 정부와 언론, 사용자들은 아동학대 사건을 가족 이데올로기를 강화하는 계기로도 이용하고 있다. 부모 교육 강화, 대국민 홍보활동 강화가 아동학대 대책으로 제시됐다. 경제 위기로 해고, 임금 삭감, 복지 축소 등 노동계급과 서민 가정에 더 많은 부담을 떠넘겨야 하기 때문에 가족의 양육 책임을 강조하는 것이다.

가족 이데올로기를 강화하는 아동학대 대책은 가난한 부모를 속죄양 삼는 것이 되기 쉽다. 이미 서구에서는 아동학대 사건을 이용해 가난한 부모들이 사회 불안의 원천인 양 몰아가며 빈민에 대한 사회적 낙인을 강화해 왔다.

소외와 불평등을 낳는 자본주의 체제를 지탱하며 거기서 혜택을 보는 지배자들이 아동학대를 해결하리라 기대할 수 없다. 그들은 기껏해야 임기응변식 대책을 내놓으며 온갖 궤변으로 아동학대의 근원을 가리고, 사람들의 분노를 경찰력 강화나 사회 통제에 이용하려 들 뿐이다.

우리는 아동학대 사건을 가족 이데올로기를 강화하고 경찰력 증원의 명분으로 삼으려는 데 반대해야 한다. 노동계급의 삶을 공격하는 모든 정책에 반대하고 복지 확대를 위해 투쟁하는 것이야말로 아동학대를 줄이는 가장 효과적인 방법이다.

그리고 노동자 투쟁이 마침내 이윤 체제를 폐지해 인간의 필요에 따라 생산과 분배가 이뤄지는 사회를 건설할 때 아동학대도 끝장낼 수 있다.


1 김선숙·유민상(2012), “OECD 국가의 사회경제적 특성과 아동학대 발생과의 관계에 관한 연구”, 《아동과 권리》 제16권 제4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