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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극평 - 나의 푸른 일기장

“나의 푸른 일기장”은 수능 시험 10주년을 맞은 청소년들의 아픔을 매우 잘 표현하고 있는 연극이다.
주인공 나영재는 서울 봉천동에 사는 평범한 고등학생이다. 주인공의 집안은 아버지가 실직한 가난한 집안이다. 주인공은 어머니의 유일한 희망이다. ‘나영재’라는 이름은 그런 어머니의 꿈을 담고 있다.
비극은 주인공이 어머니의 기대만큼 공부를 잘 못한다는 것이다.
수능 시험 며칠 전 영재는 결국 시험 스트레스를 이기지 못해 자살을 택한다. 그리고 예전에 자살한 학생 두 명이 요정이 되어 죽은 영재를 저승으로 데려가려고 오면서 이야기는 시작된다.
연극에서는 웃음 짓게 하는 장면이 많다. 그러나 그 웃음 속에는 우리 과거와 현재의 아픔을 관통하는 슬픔이 있다.
천식에 걸린 늙은 선생님이 수업하는 장면은 마치 김용옥 강의를 흉내낸 코미디 코너를 연상시킨다. 그러나 마지막 대사는 쓰라린 여운을 남긴다. “미안하다.” 선생님이 자신의 죽은 옛 제자인 요정을 순간적으로 보고 하는 말이다.
아이들이 교육방송을 듣는 장면은 삶을 종교에 의탁한 사람들의 기도회 같다. 이 장면에서도 웃음이 나오지만, 교육방송에 자기 희망을 걸어야 하는 청소년들의 절박한 처지를 보여준다.
어머니가 하루는 아들의 일기장을 본다. 아들을 때리는 자신을 악마로 묘사한 주인공의 일기장을 보고 어머니는 아들을 혼내면서 이렇게 말한다. “내가 널 악마로 만들어야 해. 그래야 이 세상을 살아갈 수 있어.”
수능이 끝나고 잔인한 ‘시즌’이 돌아왔다. 지금도 어느 건물옥상이나 어두운 골방에서 누군가 생애 마지막 눈물을 흘리고 있을지 모른다. ‘나의 푸른 일기장’은 이런 현실을 매우 잘 표현한 연극이다.
배우들의 열연이 돋보인다. 무대장치도 인상적이다. 칠판으로 둘러쌓인 배경은 숨막힐 듯한 교실의 이미지를 생생하게 느끼게 한다. 무대 뒤편에 옷걸이를 한 교복이 벽에 늘어져 있는 장치는 목을 맨 아이들이 펼쳐진 듯 섬뜩하다.
이 연극은 반어가 돋보이는 비극이다. 제목, 주인공의 이름, 특히 재미있는 상황 연출은 극의 주제를 더욱 절실하게 표현한다. 이 비극이 아름다운 이유는 냉혹한 경쟁사회를 살아가는 우리네 슬픈 이야기를 애정 어린 시선으로 공감하고 있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