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 민주당 대선 후보 경선이 절반쯤 치러진 지금도 ‘민주적 사회주의자’ 버니 샌더스 지지 바람은 멈추지 않고 있다. 3월 1일 ‘수퍼 화요일’ 패배 이후 샌더스는 여섯 주(州) 중 네 곳에서 승리를 거뒀다. 특히 3월 8일 미시건 주에서 예상을 뒤엎고 승리를 거둬 많은 사람들을 놀라게 했다.

2월 9일 샌더스가 뉴햄프셔 주에서 대승을 거두자 우파들은 샌더스 열풍을 잠재우려 사정 없이 공격을 퍼부었다. 주로 (북유럽 복지국가식 경제 정책을 뜻했던) 샌더스의 ‘민주적 사회주의’가 미국 자본주의의 기조를 거스른다는 공격이었다. 또 샌더스가 유색인종의 지지를 얻지 못하고 있다는 주장도 있었다.

그러나 이런 비판은 대학생 시절부터 시민 평등권 운동 활동가로 활동했고, 시장 재임 시절 인종차별에 맞서 도심 시위를 벌이기도 했던 인물에 대한 비난으로는 터무니없어 보인다.

물론 일부 남부 주 경선에서 힐러리 클린턴이 흑인의 지지를 꽤 받은 것은 사실이다. 이 지지는 클린턴이 승기를 잡는 데 한몫하기도 했다. 그러나 이 주들은 주법으로 가난한 흑인들의 투표권이 심각하게 제약돼 있고, 민주당 기득권층은 이런 주들에 강력한 조직망을 갖고 있다.

그럼에도 계급을 불문하고 유색인종 대부분이 클린턴을 지지한다는 것은 사실이 아니다. 이미 2월 초부터 에리카 가너 등 ‘흑인들의 목숨도 소중하다’ 운동의 주요 활동가들이 샌더스를 지지했고, 3월 5일 치러진 4개 주 경선에서도 주로 저소득층인 45세 이하 흑인의 절반 이상이 샌더스를 지지했다. 라틴아메리카계 청년 다수가 2월 20일 네바다 주 경선에서 샌더스를 지지했으며, 가장 천대받는 집단 중 하나인 아랍계 미국인 다수가 샌더스를 적극 지지한 것은 3월 8일 미시건 주 경선에서 샌더스가 승리하는 데 큰 힘이 됐다.

뿐만 아니라, 샌더스는 승리한 주와 패배한 주 모두에서 인종을 불문하고 청년층의 확고한 지지를 받았다. 샌더스가 ‘수퍼 화요일’에 텍사스, 조지아 등 보수 성향이 강한 남부 대형 주들에서 클린턴에 크게 패했지만, 청년층에서는 각기 30퍼센트포인트(텍사스), 13퍼센트포인트(조지아) 차로 샌더스가 크게 우세했다.

왼쪽으로 이끄는

이 같은 바람의 근저에 (인종보다는) 경제적 동기가 핵심으로 작용한다는 것은 명백하다. 미국의 가계 실질소득 중간값은 20년 전 수준으로 떨어졌다. 수십 년간의 불황으로 노동계급의 생활 수준 전반이 심각하게 하락했다.

그래서 (지난 기사에서도 소개했듯) 수십 년 동안 제도 정치에서 소외돼 있었으나 최근 몇 년 간 떠오른 여러 운동에 자극받은 노동자와 청년들이 샌더스의 ‘민주적 사회주의’ 기치 주변으로 계속 몰려들고 있는 것이다. 샌더스가 미시건 주에서 승리를 거둔 것도, 정부 예산 삭감으로 인한 플린트 시 상수도 오염과 대규모 아동 납 중독 사태, 디트로이트 시 파산 등으로 삶을 위협 받은 노동계급이 대거 샌더스를 지지했기 때문이었다.

경제 위기와 오바마 정부에 대한 실망에서 오는 반사이익을 도널드 트럼프 같은 우익들이 독차지할 수도 있는 미국 제도 정치 지형에서, 샌더스의 도전은 사람들을 왼쪽으로 이끄는 구실을 하고 있다. 샌더스의 ‘사회주의’, ‘정치 혁명’ 주장 덕분에 미국에서 좌파적 대안에 관심을 기울이는 사람이 늘고 있고, 고무적이게도 이런 사람들과 노동운동 현장 활동가들과 일부 급진 좌파들 사이에 연계가 형성되고 있기도 하다.

물론 샌더스의 정치에도 약점이 없지는 않다. 샌더스가 미국의 제국주의적 대외 정책을 일관되게 비판하지 못한다든가, 자본가들의 이윤 몰이 전반을 비판하기보다는 미국 기업들이 임금이 낮은 국가들로 공장을 이전해 “미국인들의 일자리를 빼앗는” 것에 비판을 집중하는 것을 보면 말이다.

샌더스 지지자 중 33퍼센트가 여론조사에서 “[우파적인] 클린턴을 대선에서 절대 지지하지 않겠다”고 밝혔는데도, 샌더스가 “트럼프에 맞서 단결해야” 한다고 연거푸 강조하는 것도 우려스럽다. 공화당에 맞서 ‘차악’인 민주당을 지지해야 한다는 생각에 사로잡히면, 이때껏 친기업적 후보라고 클린턴을 강력 비판해 왔으면서 친기업 후보 트럼프에 맞서려면 클린턴을 지지해야 한다고 좌파적 지지자들을 설득해야 하는 자가당착에 빠질 위험이 있다.

3월 초에 선전한 것을 보면, 남은 경선에서도 샌더스가 기대 이상의 성적을 거둘 가능성이 커졌다. 그럼에도 자본가 정당인 민주당에서 당 주류의 전폭적 지지를 얻고 있는 클린턴에 맞서 샌더스가 역전승을 거두기는 어려워 보인다.

선거 결과에만 일희일비하거나 정반대로 샌더스의 이런저런 단점만 지나치게 부각하기보다는, 광범한 정치적 각성 흐름과 긴밀하게 관계 맺으며 대중 운동을 적극 건설하는 것이 좌파적 전망을 성장시키는 데 더 필요한 태도일 것이다.

 

우파들의 트럼프 비판 뒤에 놓인 동기

 

지독한 인종차별주의자이자 극우 정치인인 도널드 트럼프가 우익 포퓰리즘적 선동에 힘입어 공화당 경선을 싹쓸이하자, 미국 사회가 동요하고 있다.

주류 우파들 사이에서 트럼프 반대 목소리가 높아지는 것이 눈에 띈다. ‘네오콘’ 인사들마저 성명을 발표해 트럼프 후보 지명에 반대했다.

당연히 이들이 트럼프를 반대하는 이유는 진보적인 것이 아니다. 미국 지배자들의 주된 우려는 경선 과정에서 트럼프가 내놓은 주장들이 미국 제국주의의 전통적 전략과 충돌한다는 것이다.

미국 제국주의는 군사력에 기반해 동맹국들을 하위 파트너로 삼고 세계적 자유시장 경제 체제를 확립하는 것을 기본 전략으로 삼아 왔다. 그 때문에 뼛속까지 제국주의자들인 미국 지배계급은, 미국·멕시코 국경 사이에 장벽을 쌓겠다든가, 애플 같은 기업들의 생산 시설을 중국에서 다시 미국으로 들여와야 한다든가, 미일 동맹의 가치를 의문시하는 트럼프의 주장을 문제 삼고 있다.

이 같은 공격에 대응해 트럼프는 지배자들의 반감을 샀던 과거 언사들을 일부 주워 담으려 하고 있다. 일례로 트럼프는 3월 초 성명을 발표해 자신이 대통령이 되면 국제법을 준수할 것이라고 밝혔는데, 이는 주류 우익들을 거스르지는 않겠다는 제스처를 취한 것이다.

트럼프를 두고 벌어지는 우파들 사이의 갈등은 그들 입장에서는 아슬아슬한 도박이다. 만약 네오콘과 공화당 주류 우파들이 승리해 실제로 트럼프를 저지하면, 경제 위기의 책임을 이주민과 유색인종에 돌리는 트럼프의 선동에 이끌린 백인 하층민들의 표가 이탈할 수 있다. 반대로 트럼프가 대선 후보로 지명되더라도, 그는 주류 우파들의 협조를 얻으려면 자본 이동 규제 등을 골자로 하는 트럼프 판 ‘쇄국 정책’을 거둬들여야 한다. 이럴 경우에도 그를 후보 자리에 올린 지지자들이 이탈할 수 있는 것이다.

한편, 이와 별개로 트럼프에 맞선 좌파적 운동 역시 부상하고 있다는 점은 주목할 만하다. 3월 11일 시카고 일리노이주립대학에서 열릴 예정이었던 트럼프 지지 유세가, 좌파들과 노동운동가들, 라틴아메리카계 사회 단체와 청년들이 힘을 합친 수천 명 규모의 ‘맞불’ 시위에 가로막혀 취소됐다. 통쾌하게 차별과 억압에 맞서는 이런 운동이 더 확대되길 기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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