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중주의 논쟁(Ⅰ):
마르크스주의 핵심 원칙, 꿰어 맞추기와 절충으로 누더기가 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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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호에서 나는 ‘민중주의란 무엇인가?’라는 제목의 글에서 이렇게 썼다:
“자민통계뿐 아니라 국민파, 중앙파 간부들도 이제 ‘사회적 고립 자초할 총파업 얘기 그만하고 국민적 지지를 받을’ 싸움을 하자며 민중총궐기를 강력히 제안했다. 이들의 생각을 잘 대변한 한 민중주의적 논평은 이렇게 주장한다:
“‘공무원연금 개악 등을 거치면서 민주노총의 줄어든 동력, 사회적 고립, 정파적 사분오열, 산업과 기업에 따른 부문주의는 거듭 드러났다. ‘노조 지도부가 국회 일정에 매달리며 계속 파업을 미루면서 동력이 사라졌다’는 좌파의 전통적 비판도 한상균 지도부의 1, 2차 선제파업을 거치면서 근거가 희미해졌다. … 파업의 동력이 충분히 존재함에도 불구하고,
[노조 지도자들이] 계속 회피하며 그것을 사그라들게 만들었다고 보기는 힘들다. … 민주노총의 부족한 동력과 사회적 고립을 볼 때 이 투쟁 [민주노총 총파업] 은 처음부터 승산이 높지 않았다.’ “오히려 민중총궐기로 ‘저들
[지배자들] 이 결코 ‘진보당’으로 상징되는 저항운동의 뿌리를 제거하지 못했고, 여전히 공포에 시달리고 있다는 것을 보여 준다’는 것이다. “2차 민중총궐기를 위한 토론에서도 민중주의자들은 ‘살인 진압 규탄과 민주주의 문제를 부각해 민주세력을 모아 내는 외연 확대를 기조로 범국민대회로 열자’고 주장했다. 그들은 특히 ‘노동개혁’ 반대를 부각시키면 시민단체와 종교계 등의 참가가 어렵다며 민주노총에 기조 변경을 강력히
(그러나 헛되이) 요구했다. “
[중략] “
〈노동자 연대〉 신문을 지지하는 사람들은 민중주의의 일정한 진보성을 인정하면서도, 위에서 인용한 논평가처럼 기회주의적으로 그에 끌리지 말고 그보다 더 급진적이고 좌파적인 전망에 헌신해야 할 것이다.”
위 인용문에서 재인용된 논평가
전지윤은 2년 전 우리 단체를 탈퇴하던 때부터 견지해 오던 정세 인식을 본질적으로 유지하고 있다. 그리고 논쟁 때 내가 그에게 제기했던 문제들도 고스란히 그대로다. 그 문제들은 전지윤이 과거와 현재의 한국 노동운동을 이렇게 대조할 때 잘 드러난다:
“이 나라 노동운동의 한 절정이었던 97년 노동법 개악 반대 파업은 사실 안기부법 개악 반대 파업이기도 했다. 당시 김영삼 정부는 노동법·안기부법 날치기를 통해서 노동계급의 눈귀를 막고 손발을 묶어서 밥그릇을 빼앗으려 했다. 당시 조직 노동운동은 전체 노동계급을 위해 이런 공격에 맞설 자신감과 투쟁력을 보여 줬다.
“하지만 지금 조직 노동운동은 노동개악 법안을 가까스로 막고 있는 처지이며, 테러방지법 통과는 막지 못한 상황이다. 굴복으로 마무리될 게 뻔한 민주당의 ‘무제한 토론’을 쳐다보는 우리의 가슴은 갑갑하기만 했다.
“조직 노동자들의 경제적 조건과 요구가 중요하고 우선이라는 협소한 관점을 넘어서야 한다. 이 체제가 만들어내는 모든 모순과 부조리, 불의에 맞서서 부문을 넘어선 전체 노동계급이 ‘무제한 투쟁’을 벌이는 미래를 향한 우리의 꿈은 꺾일 수 없을 것이다.”
위 인용문과 관련해서만도 적어도 다섯 가지 쟁점이 제기될 수 있다. 첫째, 1996~97년 민주노총 전면파업에 참가한 노조 지도자들과 평조합원들이 정말로 진지하게 안기부법 개악도 반대했다면 내가 그때나 지금이나 민중주의 문제를 갖고 고민하지 않았을 것이다. 그때나 지금이나 우리 나라 노동자들은 머리 왼쪽으로는 전투적 노동조합 운동 사상을 갖고 있고, 머리 오른쪽으로는 민중주의 사상을 갖고 있다. 나는 이게 극복 불가능한 문제가 아니라고 생각한다. 서구 노동자들도 머리 왼쪽은 먹고 사는 문제들에 관한 생각으로 차 있고, 오른쪽은 사회민주주의
둘째, 한국 노동자들의 민중주의 정치가 서구 노동자들의 사회민주주의 정치보다 좀 더 좌파적이고 투쟁적이라는 점이다. 전지윤은 이 나라의 노동계급과 그 운동의 상황에 맞지도 않는 일부 신
셋째, 나는 위 인용문의 전지윤 주장과 달리 20년 전의 한국 노동자들에 비해 지금의 한국 노동자들이 약화됐다거나 “사회적 고립”에 직면해 있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전지윤의 관찰은 단순한 인상에 불과하다. 백보 양보해 이 인상이 정확한 것이라손 쳐도, 영국 전교조
넷째, 나는 안기부법에 반대하는 것은 정치적이고 노동개혁에 반대하는 것은 “경제적 조건과 요구”를 둘러싼 투쟁
다섯째, 전지윤의 꿈인 “부문을 넘어선 전체 노동계급이 ‘무제한 투쟁’을 벌이는 미래”는 우리의 꿈이기도 하다. 하지만 그런 상황은 혁명적이거나 어느 정도 혁명적인 상황이다. 그런 상황이 시작되는 것은 노동계급의 일부분이나 다른 천대받는 사람들의 일부분에서다. 이를 건너뛰고 통속적 의미의 ‘정치적’ 요구와 ‘정치투쟁’을 물신화하는 것은 초좌파적 선전종파주의를 넘어설 수 없다.
한국 노동계급의 상태에 대한 오해와 잘못된 전망
이런 물음들을 염두에 두고 전지윤의 정세관을 살펴보자. 그에 따르면, 박근혜 정부의 ‘종북’ 마녀사냥과 진보당 탄압 때문에 노동계급은 자력으로는 전진할 수 없다. 특히 조직 노동자들은 “사회적 고립”을 면치 못하고 있다.
먼저, 한국 사회의 계급 구조와 근래 20년간의 사회운동 속에서 농민이 상당한 구실을 하는 것처럼 과장하는 것 자체가 우리로 하여금 실소를 금치 못하게 한다.
노동계급은 실은 이미 귀환했다. 도대체 박근혜 취임 이래 지난 3년간 가장 치열하게 싸운 게 민중 가운데 누군가? 농민인가, 빈민인가? 물론 2013년 중엽에는 청·장년들도 국가기관의 대선 개입에 항의하며 싸웠고, 2014년과 2015년의 중엽에는 청년·학생들도 세월호 참사에 항의했다. 하지만 박근혜의 공격이 집중됐고, 가시적 성과 면에서는 방어에 실패했지만 줄곧 치열하게 저항한 건 노동계급, 특히 민주노총으로 조직된 노동자들이었다: 전교조, 철도, 케이블통신, 삼성전자서비스, 택배, 건설, 조선, 공무원, 공공, 보건, 홈플러스 등등.
무엇보다 민중총궐기는 본질적으로는 노동자 투쟁이었다. 여기서 잠깐 내 기사를 인용하고자 한다. 전지윤이 내가 민중주의와 민중총궐기를 평가절하한 것으로 오해하는 듯해서다. 아래 인용문에서 보듯이 나는 민중총궐기를 노동자들의 자신감이 부분 회복되는 징후로 보았다.
“
[민중주의는] 노동계급 의식 발전의 초보적 국면을 나타낸다고도 할 수 있다. 이 점에서 지난 몇 달 새 벌어진 민중총궐기는 박근혜 하에서 노동계급과 민중이 자신감 수준을 회복하기 시작했다는 좋은 징조로 볼 수 있다. 아직은 그 수준이 파업 투쟁으로 자본주의 이윤 자체를 공격할 의지 수준으로는 상승하지는 못했지만 말이다. 동시에, 노동조합 지도자들의 소심함 때문에 파업 투쟁의 대용품으로 가두 항의가 활용됐다는 한계도 지닌다고 할 수 있다. 마르크스주의자는 이 모순을 봐야 한다. 전자를 보지 못하고 후자만 본다면 노동운동이 침체하고 있다는 그릇된 인상을 얻을 것이다. 후자를 보지 못하고 전자만 본다면 민중주의 (그리고 그 계급 협력주의의 논리적 귀결인 개혁주의) 에 대해 무방비 상태에 놓일 것이다.”
민중총궐기의 압도적 주력부대가 노동자였다. 사회적 구성 면에서 민중총궐기는 노동자 운동이었던 것이다. 그리고 무엇보다 민주노총이 조직했다. 매년 11월 13일 직전에 열리는 전국노동자대회를 민중총궐기 형식으로 치러 약간의 농민과 빈민이 좀 더 붙은 것이다. 청년·학생과 진보·좌파 단체 회원 등은 언제나 노동자 집회에 동참해 왔다. 2차, 3차, 4차 민중총궐기의 구성도 압도적으로 조직 노동자들이었고, 이 점에서 이 운동들도 사실상 노동조합이 동원한 것이다. 총궐기의 요구들을 보아도 대부분
민중총궐기들은 또한 노동자들의 앞선 활동과 무관하지 않았다. 산업 현장에서의 선동과 썩 흡족하지는 못했어도 크고 작은 여러 노조들의 파업들이 누적돼 온 결과가 노동자대회를 계기로 거리 항의로 나타났다고 봐야 한다. 노조 지도자들이 파업 소명에는 부담을 느꼈어도 거리 항의로 소명하는 데는 그래도 용기를 보였는데, 이에 조합원들도 파업보다는 좀 덜 부담감을 느끼며 응답한 것으로 봐야 한다.
마치 우리 단체가 이 일련의 민중총궐기들을 평가절하하기라도 한 양 오해한 채, 전지윤은 민중총궐기야말로 박근혜의 ‘노동개혁’ 공세를 막고 있는 것 아니냐고 반문한다. 당연한 말이다. 기본적으로 ‘민중’이 아니라 노동자들
한편, 전지윤이 자민통계가 다 조직한 것처럼 착각하는 총궐기 운동이 왜 테러방지법은 막지 못했을까? 특히 자민통계가 우려할 만한 쟁점인데도 말이다. 노동자들의 관심사가 노동개악에 집중됐기에 테러방지법은 안타깝게도 결국 통과됐던 것이다. 그리고 훨씬 더 폭넓고 대규모로 민중의 지지를 받았던 세월호 참사 항의가 당면 목표 성취에 미달하며 좌절을 겪어 온 이유도 비슷하다. 곧, 한국 같은 제3세계 출신 신흥국의 조직 노동자들이 노동조합 이슈가 아닌 경우에는 흔히 민중주의자들이 지도하도록 맡겨 놓는 경향이 있기 때문이다. 나는 지난호 기사에서 이 점을 지적했는데, 이것이 내가 민중주의에 관해 그 기사를 쓴 이유다.
민중총궐기 얘기가 나온 김에 집회 준비 과정에서 전지윤이 보인 실천 자체를 살펴보기로 한다. 먼저, 사회주의자인 우리는 노동자들의 가두 항의 운동인 민중총궐기를 지지하면서 그것이 자본가들의 이윤에 타격을 가하는 파업이라는 투쟁 형태와 결합돼야 한다고 주장했다. 정치투쟁과 경제투쟁의 결합에 따른 시너지 효과를 노렸던 것이다. 우리는 노동자들의 거리 항의를 당연히 지지하는 한편, 그것이 대중 파업과 결합되기를 염원했다. 이게 애써 반대 받을 일인가? 역사적으로 혁명적 사회주의자들은 ‘Street’
‘변혁’주의자를 자처함에도 어처구니없게 전지윤은 노조 지도자들에게 파업 촉구하는 것을 아예 반대했다. 조직 노동운동이 “사회적 고립”을 겪고 있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소위 “
반면 전지윤은 시민들이 폭넓게 참가할 수 있도록 집회의 명칭을 변경하고 노동 문제보다는 민주주의 문제를 부각시켜 집회 기조를 톤다운 시키자는 일부 자민통계의 주장에 동의했다. 노동자 요구와 투쟁을 앞세우는 것이 별 도움이 안 되고 어차피 민주노총 총파업은 가능하지도 않다고도 덧붙였다. 민주노총의 총파업이 계획돼 있고 노동개악이 본궤도에 오를 수도 있는 상황에서 내놓은 이런 제안이 민중주의적이 아니면 무엇인가?
민주노총 측은 노동개악 문제를 부차화하자는 일부 자민통계의 주장을 선뜻 지지하지는 않았다. 그러나 그렇다고 논쟁에 끼어들지도 않았다. 결국 논쟁이 이어지면서 결론이 나지 않자 추후 공동집행위원장 회의에서 다시 논의하자고 했다. 이후 열린 공동집행위원장 회의에서 자민통계는 대다수 참석자들에게 용인될 만한 타협안을 내놓았다. ‘1부 집회 총궐기대회, 2부 집회 범국민대회’라는 안이었다.
1차 민중총궐기 후인 2015년 11월 27일 전지윤은 그의 블로그에서 이렇게 논평했다:
“1차 총궐기는 오랜 분열과 갈등을 넘어서 노동·농민·빈민 대중조직과 주요 사회운동단체들의 결집을 성공시켰고, 이를 바탕으로 외연 확장의 가능성까지 보여 줬다. 이것이 계속 확대·발전한다면 박근혜 정부에게 위협이 될 가능성은 분명하다. … 그래서 집요하게 ‘불법·폭력·종북’을 부각하며 시민사회 진영과 중간층이 민중진영과 거리를 두게 하려고 안간힘을 쓰는 것이다. … 그러므로 중요한 것은 먼저 노동·농민·빈민 대중조직과 사회운동단체들의 결집이 단단히 유지되고 기층과 지역으로 더 깊숙이 뻗어나가는 것이다. … 민중운동 진영을 시민사회 진영, 중간층과 분리·고립시키려는 노림수를 잊지 말아야 한다. … 이런 방향
[민중의 단결] 을 가장 효과적으로 실현한다는 틀 속에서 ‘2차 총궐기의 기조로 평화집회를 내세울 것이냐 말 것이냐, 민중총궐기인가 시민대행진인가’가 고민돼야 한다.”
사회주의자들의 노동자 파업 촉구를 지지하기를 냉담하게 거절할 만큼 노동계급의 잠재력을 불신하는 전지윤의 정세 인식에서는 자연히 계급이 해체되고 계급 동맹인 ‘민중’이 매우 중요해진다. 특히, 민중총궐기 전후로 보여 준 그의 실천이 민중주의가 아니면 뭔가.
‘무슨 무슨 주의’라는 말을 남발하지 말라고 그가 내게 또 쏘아붙이겠지만 그에게 반문하고 싶다. 전지윤은 사람들이 그를 아무리 자주 ‘마르크스주의자’, ‘
진보정당들에 대한 차별화된 편견
전지윤은 우리가 정의당에는 우호적인 데 반해 민중연합당에는 별로 우호적이지 않다고 비판한다. 또한 내가 노동자 운동이 우리의 기대를 충족시키는 투쟁 수위를 보여 주지 못하는 원인을 자민통계의 민중주의 탓으로 돌린다고 오해한다. 그러나 나는 자민통계만이 민중주의적이라고 하지 않았고, 자민통계만이 민주노총에 파업 촉구하기를 거절했다고 하지 않았다:
“한국 민중주의의 대표적 사례는 ‘자민통’ 계열
(이하 자민통계) , 참여연대 등 진보적 NGO들 그리고 정의당 등이다. … 민주노총 내 국민파·전국회의·중앙파 등도 민중주의적 경향이다. 하지만 이보다 훨씬 더 많은 노동운동가들이 민중주의적 경향을 띤다. … 자민통계뿐 아니라 국민파, 중앙파 간부들도 이제 ‘사회적 고립 자초할 총파업 얘기 그만하고 국민적 지지를 받을’ 싸움을 하자며 민중총궐기를 강력히 제안했다.”
그러나 기본적으로 우리는 정의당과 민중연합당 모두에 대해
한편 민중연합당은 장차 중소 자본가 계급 소수의 지지와 북한 관료의
전지윤은 자민통계가 혹심한 탄압을 받고 있는데 무슨 계급 연합이냐고 반문한다. 하지만 인민전선
트로츠키는 또한 러시아 혁명을 돌아보는 자리에서 설사 러시아에 부르주아지가 존재하지 않았었다 해도 멘셰비키는 부르주아지를 “창조해 냈을 것”이라고 재치 있게 멘셰비키의 계급 협력주의를 비꼰 적이 있다.
우리가 정의당과 민중연합당 또는 더 일반으로 자민통계를 차별한다는 전지윤의 비판은 근거 없는 주장이다. 우리 신문 기사 가운데는 정의당의 핵심 리더들인 노회찬·심상정과 그 당의 주요 정치인들인 김종대 씨와 조성주 씨에게 매우 비판적인 글들이 포함돼 있다. 물론 정의당에 입당한 양경규 전 공공연맹 위원장 등 노동정치연대 소속 친노동운동가들에게는 우리가 더 우호적인 경향이 있는 게 사실이다. 좌파 노동단체가 정의당의 상이한 계파에 대해 이런 상대적 친화성
물론 전지윤의 불만처럼, 우리가 민중연합당에 특별히 우호적이지는 않다. 자민통계가 민중연합당의 창건 문제를 놓고 의견이 첨예하게 대립했고, 따라서 민중연합당이 진보당의 후신이라고 할 수 없으므로 괜시리 나머지 자민통계 계파들에 오해나 반감을 주지 않겠다는 배려도 있다. 물론 전지윤의 관측대로 우리는 2012년 진보당 내 경선에서 당권파의 부정이 있었다고 생각한다. 전지윤은 여전히 당권파의 경선 부정은 없었다는 확증 편향을 갖고 있지만 이 문제로 그와 다시 논쟁하는 건 아무 독자에게도 도움이 될 성싶지 않다. 혹시 궁금한 사람이 있다면, 2013년 1월 초 노동변호사인 노동자연대 회원이 패널 자격으로 연단에 선 전
어쨌든 우리가 정의당보다 자민통계를 경원시한다는 전지윤의 주장은 참말이 아니다. 자민통계의 리더급 인사 J모 동지와 H모 원로는 우리가 소위 NL-PD 갈등과 정파간 갈등에 최대한 공정하려 애쓴다고 인정한 바 있다. 우리는 지난해 9월 이 신문을 통해 자민통계도 포함되는 일종의 선거용 진보·좌파 빅텐트를 공개 제안했고, 그 뒤 자민통계 리더급 인사들이 우리와의 면담을 요청해 우리측 담당자가 그들과 우호적인 만남을 가졌고, 그 직후 민주노총도 이와 비슷한 선거연합정당 안
오히려 우리가 보기에 전지윤이야말로 편견
이와 달리, 기본적으로 진보·좌파 성향 단체나 운동, 개인에 대한 우리의 판단은 다음과 같다. 첫째, 말보다는 실천이 우선 고려돼야 한다. 둘째, 사안에 따라 다르다
공무원연금 투쟁에 대한 추상적 선전종파주의
전지윤은 공무원연금도 지켜야 했고 공적연금 강화도 지지했어야 한다고 절충적으로 주장한다. 그러나 이 문제를 이해하기 위해서는 구체적 맥락 속에서 문제를 볼 줄 알아야 한다. 레닌이 좋아한 헤겔 말대로 “진리는 구체적이다.” 공적연금 강화가 집회 슬로건으로서 강요됐을 때 그에 불가피하게 타협해야 했지만, 전술은 슬로건과 다르다. 공적연금 강화로 나아가기 전에 먼저 박근혜 정부의 공무원연금 공격부터 좌절시켜야 했다. 당장에 공격이 들어오고 있는 판에 그것을 반대하고 막을 생각은 중요하지 않은 양 일축하고 둘 다 필요하고 중요하다는 식은 개혁주의 노조 지도자들로 하여금 곤경을 면하게 해 줄 뿐이다. 공무원연금 방어 문제가 이슈인 지난해 봄 상황에서 공적연금 운운한 것은 개혁주의 지도자들의 연막이었을 뿐이다. 어떻게 좌파적 공무원 조합원들이 이충재의 책략과 이충재 등 개혁주의 관료의 영향력에 도전할 수 있도록 돕느냐가 중요했다.
공무원노조원인 전지윤 그룹 회원은 공무원연금 개악 저지 투쟁 초기인 2014년에 쓴 두 기사에서 공무원연금 문제를 놓고 제대로 싸우기 위해서는 국민연금, 기초연금 문제와 결합시켜야 한다고 주장했다. 추상적으로는 옳은 주장이었을지 몰라도, 정부가 공무원연금 개악을 통해 공적연금과 공공부문에 대한 전반적 공격으로 나아가려 하고 있으므로 당면 전술은 공무원연금 개악 저지여야 했다. 글의 논조는 국민연금, 기초연금 문제를 결합시키지 않으면 공무원연금 투쟁을 제대로 할 수 없다는 식이었다. 당면한 공무원연금 삭감 공격을 막아야 국민연금 등 공적연금 전반에 대한 개선 논의도 훨씬 쉬워질 수 있었을 텐데도 말이다. 그는 노동자연대가 발의했던 ‘대타협기구 탈퇴와 민주노총 총파업 일정에 동참하기’ 연서명, ‘이충재 사퇴’ 연서명 등 여러 연서명에 참가하지도, 호응해 주지도 않았다. 공무원노조 좌파에 속한 활동가들은 대체로 이 연서명에 호응했던 것에 비춰 보면, 공무원노조원으로서 그 회원이 진지하게 연금 방어와 이충재 반대를 했다고 하기는 힘들 것 같다.
전지윤도 2014년 12월부터 2015년 5월까지, 특히 지난해 4월 24일 민주노총 파업부터 5월까지 투쟁이 한창이던 때 공무원연금 투쟁에 큰 관심을 보이지 않았다. 이 시기는 전교조 연가 투쟁과 이충재 공무원노조 집행부의 배신이 교차한 결정적 시기였는데도 말이다. 겨우 하나 발견할 수 있는 글로 전지윤 자신이 쓴 짧은 기사가 있다. 거기서 그는 대타협기구 탈퇴 촉구가 부질없는 짓인 것처럼 묘사하고 있다. “노동운동 내 좌파들도 주로 ‘지도부는 협상테이블에서 나오라’는 비판에 주력했지, 다른 방향과 대안을 제시하지는 못했다.” 6월 8일에 쓴 글은 투쟁을 돌아보는 논평 글인데, 거기서 전지윤은 “현장에서 잘 싸우기 위해서도 대안과 방향이 분명해야 하고 우호적 여론과 연대가 필요하다”면서, “한국의 공적연금 지출과 사회임금 비중을 대폭 늘리기 위한 투쟁이 건설되면서 공무원연금 개악 저지가 그 투쟁의 일부가 됐다면.” 하고 아쉬워한다.
바로 이 대목에서 전지윤의 추상적 선전을 앞세운 종파주의가 잘 드러난다. 그가 다루는 상황은 진보·좌파 정당이나 급진좌파 연합이 각각 당 강령이나 행동강령 작성을 놓고 토론하는 것과 같은 상황이 아니다. 업종별이나 산업별로 조직되는 노동조합과 정치적 견해를 기초로 하는 정당은 질적으로 다르다. 노동조합, 그것도 그 한 부분이 자기에게 고유한 쟁점
전지윤이 다양한 반
지난해 4월 말과 5월, 전지윤측 블로그의 글들은 공무원연금 방어 투쟁 대신에 세월호 참사 문제에 집중됐다. 물론 세월호 참사 항의는 매우 중요한 문제다. 우리 단체 자체뿐 아니라 대다수 학생 회원들도 학업 등 만사를 제쳐 두고 그 운동에 뛰어들었다. 하지만 전지윤이 이 문제에 견줘 공무원 투쟁의 비중을 낮춰 잡은 건 그가 전술 문제에서 약점을 보이는 것뿐 아니라 조직 노동자 투쟁에는 큰 의욕을 보이지 않는 것의 반영인 듯하다. 심지어 패배가 뻔할 것 같은 투쟁이라고 해도 거기에 뛰어들어 동료들과 전투를 함께 하는 것이 노동운동의 전략에 도움이 되는 경우가 꽤 있다.
전지윤은 나 또는 우리 단체가 최저임금 문제를 무시한 것처럼 오해하고 있는데, 김하영 동지가 그의 글에서 분명히 밝힌 바대로 우리는 그 요구를 분명히 지지했
전지윤이 잘못된 양자택일을 피하려 하는 점은 이해할 수 있다. 하지만 그 노력이 변증법에 못 미치면 중도
관조적·추수적 ‘분석과 예측’
전지윤은 지도부든 현장조합원이든, 어느 연맹 위원장이든 아무도 투쟁성을 발휘하지 않았는데, 왜 특히 자주파와 한상균 지도부 탓을 하냐고 우리에게 반문한다. 그러나 이는 오해다. 우리는 온건한 지도자들을 더 비판했고, 한상균 지도부에 대해 종종 다룬 것은 전지윤과 달리 우리가 한상균 지도부를 함께 배출한 다른 민주노총 좌파들과 토론했기 때문이다. 그들과 나눈 대화들이 신문 지면의 주요 소재였다. 왜 좌파들의 정치가 쟁점이었나? 대체로 민주노총 좌파들은 민중주의자들이 개혁주의적 노조 지도자들의 파업 회피를 비호하는 문제를 회피했다. 좀 더 급진적인 좌파들도 노조 지도자들을 압박하는 문제를 회피한 채
마치 트로츠키가 1930년대 초 히틀러의 집권 위험이 넘실거리던 독일에서 사회민주당과 공산당 가운데 공산당에 호소해야 했던 것처럼 말이다. 그는 나치의 등장을 막으려면 공산당이 초좌파적 종파주의 노선을 버리고 공동전선 정책으로 전환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그럴 가망성은 크지 않았다. 하지만 그는 좌절하지 않았다. 그의 당시 글을 읽다 보면 그의 탄식 소리가 생생하게 들린다. 그럼에도 그는 설득을 포기하지 않았다. 그 당시 트로츠키가 독일 공산당에 개입하면서 했던 것처럼 정세 인식은 관조적인 자세로 해서는 안 된다. “이론은 회색이지만, 생명나무는 늘 푸른색”인 것이다.
혁명가들에게 낙관이란 난관을 무시하는 것이 아니라 난관을 직시하면서도, 그 모든 난관에도 불구하고 한 가닥 가능성과 기회를 볼 줄 아는 것을 뜻한다. 아예 가능성과 기회가 없다면, 그람시가 무솔리니의 감옥에서 곱씹은 로맹 롤랑의 말, “지성의 비관론과 의지의 낙관론”이 우리에게도 좌우명이 돼야 할 것이다. 하지만 지금은 그런 비관적 정세가 아닌 것이다. 그렇다면, 왜 특별히 노동계급만 싸울 자신이 없어야 하는지 설명이 안 된다. 특히, 노동조합 지도자들은 파업을 소명할 자신은 없어도 거리 항의를 소명할 자신은 있다.
그리고 자발성은 “기계적 자발성”이 아니다. 이 말을 한 그람시는 인간 행위주체가 작용
이렇게 보면, 존 몰리뉴가 ‘마르크스주의는 결정론적인가?’라는 훌륭한 논문
전지윤의 분석에는 이 실험이 빠져 있다. 물론 아예 가능성이 없는 일에 매달리려 한다면 그저 의지만 앞세운다는 비판을 받아도 쌀 것이다. 그러나 1차 민중총궐기 10개월 남짓 전 민주노총 조합원들이 직선으로 한상균을 뽑은 것은 조합원 다수가 싸울 의지를 보여 준 것으로 두루 풀이되는 일이었다. 4월 말 파업이 예정대로 벌어진 직후 민주노총 좌파 활동가들은 그럭저럭 만족을 나타냈다. 첫술에 배부르랴 하는 현실감각을 모두 공유했던 평가였다. 7월 파업은 그 전에 공무원연금 방어에 실패하면서 동력이 없어 흐지부지됐다. 하지만 총궐기 두 달 전쯤 열린 민주노총 단위노조 대표자회의에서는 그 직전 이뤄진 노사정 합의에 반발한 대표자 다수가 즉각적인 파업안에 찬동할 태세였다. 결국 회의 끝 무렵 대표자들은 파업 일정을 확정했다. 그래서 실제로 9월 23일 파업이 벌어졌다. 이런 정서들이 투쟁 의지가 아니라면, 도대체 어떤 고차원의 기준에 비춰 우리의 ‘분석과 예측’이 너무 낙관적이었다는 것인가?
지난해 여름 우리는, 1996년 연말 파업을 상기시키며 노조 지도자들의 소명 없이도 극소수인 자기들만의 노력으로 현장에서 파업을 일으킬 수 있다고 주장하던 일부 좌파들의 계획이야말로 지나치게 낙관적이라고 보았다. 하지만 우리는 관조적이지 않았다. 지나친 낙관론의 문제를 부각시키기보다는 지도자들에게 아래로부터 압박을 가할 필요성을 강조하며 그들과 토론했던 것이다.
레닌이 좋아한 나폴레옹 말처럼 “길고 짧은 건 대어 보아야 안다.” 분석과 예측 문제로 환원될 일이 아니라 가능성이라는 틈새를 보고 몸을 던져야 하는 문제였다. 미디어 논평가·평론가·분석가 등처럼 파업의 확률이나 따지면서 회색빛 ‘분석’과 ‘예측’이나 내놓고 있을 때가 아니다. 도박을 걸어야 한다. 때로는 확률론적 기대값이 낮은 일에도 기꺼이 뛰어들 수 있어야 한다. 실로 변혁적 따라서 능동적 세계관을 가진 사회주의 신문 편집자라면 작더라도 없지는 않은 파업 가능성을 앞두고 1면 헤드라인을 달 때, 관조적으로 ‘민주노총, 과연 파업할까?’ 하는 식으로 달지 않을 것이다. ‘민주노총은 파업에 돌입하라!’ 하고 달 것이다.
전지윤은 우리가 ‘다른 많은 노조 좌파들처럼 좌파적 노조 지도자들에게 기대를 걸었다가 좌절되자 한상균을 포함한 그들
맺으며
전지윤은 “
먼저, 나는 박학다식하지 않다. 따라서 내가 박학다식을 과시했다면 그것은 젠체하기에 불과한 것일 게다. 이 점에 유의하겠다. 충고 고맙다.
역사적 사례들 얘기는 조금 다른 얘기다. 전지윤이나 나나 마르크스주의에 찬동한다고 하는데, 그렇다면 마르크스주의의 주요 방법인 역사유물론을 받아들인다는 뜻일 게다. 그렇다면 역사적 사례는 많이 알고 많이 들수록 좋다. 오히려 역사에 대해서도 나는 박학다식하지 못해 아쉽다. 트로츠키가 혁명적 당을 “노동계급의 기억”이라고 했거늘 거의 2백 년에 가까운 그 역사
‘…주의’ 문제는 위에서 언급했지만, 여기서도 매우 간단히 언급할 게 있다. 아마 내가 전지윤의 분파 투쟁 때 진보당 당권파의 경선부정 사실을 부정한 그를 ‘확증편향’, ‘음모론’, ‘실증주의’ 등으로 비판한 게 마음에 많이 남은 것 같다. 이번에 그가 근래 쓴 글들을 보니 변한 게 없다는 결론을 내릴 수밖에 없다.
전지윤은 왜 탈퇴했나? 그가 집단 탈퇴를 정당화할 때마다 그에게 반문하고 싶은 게 있다. 도대체 40여 명의 중앙 상근·시간제 활동가, 특히 그 가운데 전지윤 자신이 몇 년간 이끈 18명의 신문사 기자·사진기자·편집디자이너·프로그래머 가운데 왜 단 한 명도 전지윤을 지지하지 않았는가? 게다가 그를 따라 탈퇴한 사람들 대부분은 몇 개월 뒤 그와 또 결별했다. 아마도 그의 분파는 세계 최단명 조직이었을 것이다.
이에 전지윤은 맨날 하는 상투적인 변명밖에 늘어놓을 게 없다. “2014년에 내가 노동자연대에서 이탈하기 직전에 있었던 것은 토론으로 보기 힘들었다. 일방적으로 징계를 당한 상황에서, 예컨대 한 토론회에서 나를 비판하는 29명의 발언 속에 지지 발언 1명이 허용되는 식이었
이런 식의 주장이 그의 특기다. 반쯤의 진실 말하기. 두 달 동안 그가 패널로 연단에서 발제를 할 수 있었던 전
그가 중앙 간부들과 활동가들 가운데 단 한 명도 포섭하지 못한 건 분파 논쟁 때 충격적으로 드러난 그의 부정직과 기회주의 때문이었다. 바로 이 때문에, 그를 체험한 회원들은 전지윤이 다음과 같이 말해도 단순한 위선으로 치부하는 것이다: “내가 노동자연대 동지들의 주장에서 여전히 많은 부분을 공감·지지하며, 언제든 협력할 생각이 있으며, 무엇보다 그 동지들의 투쟁과 연대에 대한 헌신을 높이 평가하고 있다는 것이다.” “모쪼록 내실있고 동지적인 토론을 통해서 이 나라 노동운동이 나아가야 할 방향에 대한 고민에 보탬이 되기를 바라는 마음이 크다.”
‘기회주의’로 말하자면, 특히 탈퇴 후 그가 전통이 다른 개인이나 그룹을 포섭하려 할 때 국가자본주의론도 재고할 태세인 것을 보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