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초, 〈노동자 연대〉 신문 독자인 권호창 씨가 〈노동자 연대〉에 실린 진화심리학 비판 기사에 비판적 견해를 밝히는 독자편지를 보내 왔다. 〈노동자 연대〉는 이 편지를 해당 기사의 필자에게 전달했는데, 최근 필자인 최규진 씨가 한선희 씨와 공동으로 독자의 견해에 답하는 글을 〈노동자 연대〉에 보내 왔다. 이에 권호창 씨의 글과 한선희·최규진 씨가 보내 온 글을 모두 게재한다. 권호창 씨가 또 의견을 보내 온다면 그 글도 실을 것이다. 아래는 권호창 씨의 글이다. 한선희·최규진 씨의 글은 여기에서 볼 수 있다.


〈노동자 연대〉는 진화론을 기반으로 인간 본성(특히 심리적·행동적 측면)을 연구하는 학문들(구체적으로 행동유전학, 인간행동생태학, 사회생물학, 진화심리학 등)에 대해서 지나치게 적대적인 것 같다. 이런 연구의 결과를 받아들일 경우 ‘남성 중심적 혹은 체제 옹호적 사고’를 지지하거나 용인할 수 있음을 우려하는 것 같은데, 이런 우려 때문에 연구 자체를 적대시하는 것은 우파들의 자연주의적 오류(사실에서 당위를 이끌어냄)에 대한 효과적인 대응이 아니다.

진화심리학에 대한 오해

많은 오해와 비판들이 있는데, 이 글에서는 〈노동자 연대〉 신문 기사 중 진화심리학을 이론적으로 비판한 글(https://wspaper.org/article/16357) 하나만을 살펴본다.(이 글을 선택한 이유는 이론적 논박이 가능한 다른 적합한 글을 찾기가 어려웠기 때문이다.)

  • 진화심리학의 창시자는 데이비드 버스가 아니다. 굳이 ‘창시자’라는 부정확한 말을 붙이자면 레다 코스미디스와 존 투비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 글쓴이가 애써 성 문제와 관련된 조야한(논란의 여지가 많은) 사례를 찾으려고 노력하는 것이 아니라면, 예로 든 것보다 훨씬 흥미롭고 정교한, 그리고 여러 차례 검증까지 된 사례(가설)들도 많다. 이것들은 당연히 여러 인지심리학 개론서들에서 쉽게 찾아볼 수 있다. 예를 들면, 시지각 체계의 수직면 민감도 편향, 남녀 배우자 선택 기준의 선호 차이, 사기꾼 탐지 적응, 부성 불확실성에 따른 친족 이타성의 변화, 근친상간 회피 적응, 인간이 혐오감을 느끼는 이유 등이다.
  • 진화심리학자들은 뇌에 구조화된 모듈이라는 장치가 있다고 설명하지 않는다. 진화심리학자들은 인간의 보편적인 정신적·행동적 특징을 뒷받침하는 ‘진화된 심리적 메커니즘’(EPM)을 규명하고자 한다. 모듈은 물리적(생물학적) 장치(기관)를 말하는 것이 아니라 기능적 구조를 지칭하는 것이다. 뇌신경학적으로 말하자면 많은 유전자들의 관여로 형성되는 뇌 속의 수많은 뉴런들의 총체적 네트워크(커넥톰)의 특정 활동 패턴이라고 할 수 있다.
  • 인간의 마음이 형성되었던 시기(아마도 플라이스토세 환경, 진화심리학자 용어로는 ‘진화적 적응 환경’(EEA)을 말하는 것 같다)에 대한 정보가 거의 없다는 비판이다. 이런 비판은 다른 많은 진화심리학 비판자들도 지적하고 있는 것이고, 진화심리학 내에서도 의견이 분분하다. 진화심리학 쪽에서의 대답 중 하나는 ‘고인류학, 고고학, 민족지학자들의 연구결과가 수렵·채 집인에 대한 생활사적 특징들을 파악하는 데 크게 기여했고’, 이를 통해 일종의 ‘범용 환경 모델’을 세울 수 있다는 것이다. EEA에 대한 이 정도의 지식 수준으로도 EPM에 대한 가설을 수립할 수 있으며, 불가지론으로 진화심리학 방법론 자체를 부정하는 것은 옳지 못하다는 것이다.
  • 현재 존재하는 다양한 수렵·채취 집단 (혹은 훨씬 더 다양한 문화권들) 사이에 공통적 특성 은 아주 많다. 대단히 많은 특성들이 거의 모든 문화들에서 보편적으로 나타나고 이는 많은 학자(신화학, 인류학, 고고학, 민족지학자 등)들이 지적하는 바이기도 하다. 인류학자 도널드 브라운(1991)은 수많은 문화들을 일일이 조사하여 2백 가지 이상의 문화적 보편들을 보고하기도 하였다. 많은 오해와 달리 진화심리학자들은 문화에 많은 관심을 갖고 있으며, 유발된 문화와 전달된 문화를 구분하여 EPM과의 관계를 정교하게 분석한다.
  • 진화심리학을 지지할 만한 유전적인 실증적 증거(근거)가 없다는 비판이다. 이것은 어느 정도는 사실이지만 조야한 비판이다. 먼저 복잡한 EPM이 존재하려면 게놈 수가 더 많아야 한다는 전제는 틀렸다. 최근의 연구 성과에 따르면 붉은 털 원숭이와 인간은 93퍼센트의 유전자를 공유하고 있다. 7퍼센트의 차이가 원숭이와 인간의 차이를 만드는 것이다. (글쓴이는 인간과 생쥐의 복잡 성의 차이는 게놈 수에서 기인하지 않는다는 자기모순적인 예를 들고 있다.) DNA 중심의 유전자 연구는 진화를 설명하는 데 아직 한계가 많다. 때문에 인간의 생득적으로 갖고 있는 수많은 인지 기능들(감각 정보의 해석, 조건 반사, 주의 집중, 범주 인식, 인과 관계 추론 등 인지과학이 밝혀낸 광범위한 특성들의 목록)에 대한 ‘유전적 증거’ 역시도 없다. 또한 이런 비판은 더 큰 문제를 내포하고 있는데 환원주의적으로 인간을 연구하고자 하는 것이다. 우리가 유전자에 대해서 아주 세밀한 수준으로 파악하게 된다고 하더라도 인간의 심리와 행동에 대해서 ‘증명’되는 것은 극히 일부일 것이다.
  • 위의 비판은 진화심리학이 검증이나 반증이 불가능한 ‘그렇고 그런 이야기’(just-so story)에 불과하다는 비판과 맞닿아 있다. 하지만 진화심리학은 다른 정상 과학(normal science)과 마찬가지로 ‘대상을 설명하기 위해 가설을 설정하고, 이 가설로부터 도출된 예측을 데이터를 수집해 검증’한다. 이 검증에는 심리학의 모든 표준적인 연구방법론(실내 실험, 관찰 기법, 설문 조사, 생리적 기법, 뇌 영상 기법, 문헌 연구 등)이 사용된다. 예측과 결과가 일치하지 않으면 당연히 이 가설은 기각된다.

인간 본성 문제에서 재고해 봐야 할 점들

앞서 살펴본 글을 포함하여 인간 본성을 다루는 〈노동자 연대〉의 여러 글들(〈노동자 연대〉와 《마르크스21》 웹사이트에서 ‘인간 본성’이라는 키워드로 검색)은 정치적 접근으로서 올바르지만 몇몇 관점과 표현에서 우려되는 지점이 있다. 〈노동자 연대〉의 독자는 ‘인간은 탐욕스럽고 이기적이어서 사회주의는 불가능하다’는 통속적이고 우파적인 생각을 가진 사람만이 아니다. 인간 본성이라는 중요한 주제에 대한 논쟁에서 〈노동자 연대〉가 더 큰 정치적 영향력을 발휘하기 위해서는 다음 사항들에 대해서 재고가 필요하다고 생각한다.

첫째, 여러 글들에서 인간 본성이라는 용어(개념)는 일관되게 사용되지 않는다.

학문 분야마다 차이는 있지만, 인간 본성은 자연 상태의 대부분의 인간이 내재적(본유적)으로 타고나는 어떤 특성(혹은 형질)으로 폭넓게 정의할 수 있을 것이다. 이러한 특성이 다른 존재들(생물학적 혹은 인공적)에게도 나타나는가는 다른 차원의 논의이다. 당연히 인간은 생명 진화의 한 결과로서의 동물이기 때문에 다른 동물들과 차이점과 공통점을 동시에 지니고 있다. 〈노동자 연대〉의 논의들은 다른 동물과 구분되는, 인간 고유의 특성을 인간 본성으로 전제하고 있는 듯하다. 이런 접근은 두 가지 문제가 있다.

먼저, 인간을 정점으로 한 진화의 위계적 구조를 설정할 위험이 있다는 것이다. 이런 시각은, 〈노동자 연대〉 신문도 추천한 《다윈 이후》라는 책에서 스티븐 굴드가 신랄하게 비판하고 있다. 그 다음으로 다른 동물(특히 인간과 진화적으로 가까운 유인원)의 행태를 통해 인간 본성을 연구하는 학문에 대한 폄훼로 연결될 수 있다는 것이다. 인간은 동물이기 때문에 다른 동물과의 비교 연구는 매우 당연한 과학적 방법이다.

또한 〈노동자 연대〉의 여러 글들에서는 ‘고정된’ 인간 본성은 없다고 주장하며, 다른 많은 논의들은 ‘영원불변’하는 인간 본성을 가정한 것처럼 비판한다. 이는 전형적인 허수아비 공격인데, 누구도 (최소한 진화론을 지지하는 사람이라면) 인간 본성을 ‘영원불변’하는 것으로 가정하지 않는다. 다만 인간이 ‘상당 기간’ 동안 유지해 왔던, 그래서 현재 인간들이 공유하고 있는, 그리고 앞으로도 ‘상당 기간’ 동안 유지될 것으로 예상되는 어떤 안정적이고 보편적인 특성(형질)을 가정하는 것이다. (여기서 ‘상당 기간’은 전문적인 학술적 논쟁이 필요한 부분이기 때문에 이 글에서는 생략한다.)

당연히 〈노동자 연대〉가 진화론을 부정하는 것은 아닐 것이다. 하지만 인간의 신체(뇌를 포함한)에 대한 진화적 접근은 지지하면서 정신(혹은 마음)에 대한 진화적 접근을 거부하는 것은 올바른 태도가 아니다. 이런 태도는 데카르트식의 기계적 이원론에 가깝다. 몸과 마음은 분리되지 않으며 복잡한 상호작용으로 서로를 규정하고 구성한다. ‘인간의 몸이 진화의 산물이라면 마음도 역시 그러할 것이다’라는 진술은 합리적인 과학적 가설이다.

둘째, 여러 글들에서 인간 본성을 ‘노동’이라고 규정한다.

일단 ‘노동’이라는 말의 일상적 용법을 생각해 봤을 때, 그리고 인간 본성 논의에서 통용되는 용어들을 생각해 봤을 때, ‘인간의 본성은 노동이다’라는 진술은 토론에 별로 효과적이지 않을 것 같다. 마르크스주의의 노동 개념으로 부연해 보아도 상황은 크게 호전되지 않는다. 마르크스주의에서 노동 개념은 자연(환경)에 의식적으로 작용을 가함으로써 이를 변화시키고 그 과정과 결과에서 자신도 변화되는 활동(혹은 사회적 실천)을 말한다. 우파적 개인주의와 기계론적 유물론이 횡행하고, 인간에 대한 과학적 연구가 거의 이루어지지 않았던 당시 마르크스의 이런 선구적 통찰은 놀랍다. 하지만 여기서 주의할 것은 이런 마르크스의 이론은 규범적 개념으로서 인간 본성 논의(연구)에 대한 방법론을 제시하는 것으로 보아야 한다는 것이다. 이를 방법론이 아니라 인간 본성 자체에 대한 사실(내용)적 서술로 받아들이면 여러 문제에 빠질 수 있다.

일단 논리적 허점이 생긴다. 마르크스의 주장을 그대로 받아들이더라도 사회를 이루려 하고, 계획을 세우고, 상황(환경)을 개선하려 하고, 상호 영향을 평가하고 반영하는 것은 ‘고정된’ 인간 본성이다. 여기에는 훨씬 더 많은 사항들을 추가할 수 있다. 이중 분절 언어를 사용하는 것도, 종교를 가진 것도, 경제활동을 하는 것도, 이야기를 만드는 것도 ‘고정된’ 인간 본성이다. ‘호모 xxx’라는 수많은 용어들(많은 경우 엄밀한 연구의 결과가 아니라 유행처럼 만들어졌 다가 사라지는 것이기는 하지만)은 이런 ‘고정된’ 인간 본성을 지칭하는 것이다. 이 모든 것들을 포괄하는 개념으로 ‘노동’이 적합할지는 의문이다.

또 다른 문제는 생물학 결정론의 거울상이라고 할 수 있는 환경(문화) 결정론과 그 논리적 전제라고 할 수 있는 빈 서판론(tabula rasa)의 함정이다. 빈 서판론은, 여러 버전이 있기는 하지만, 학습능력·식욕·성욕·두려움·유전적 질환 등 ‘최소 요소’를 제외하고는 인간의 타고난 본성은 없고 인간의 정신·문화·행동은 환경 또는 문화에 의해서 결정된다는 주장이다. 이런 주장은 그 정치적 위험성(행동주의적 인간개조론)은 둘째 치고, 과학적으로 터무니없는 주장임이 강력한 증거들을 통해 밝혀지고 있다. 또한 이런 주장의 사회 운동에서의 해악은, 마르크스주의자이자 생물학자인 스티븐 로즈가 지적하듯이, 실제 사람들의 경험과 너무나 다르기 때문에 우파적인 생물학 결정론의 ‘상식적 호소’에 이데올로기적으로 훨씬 취약하게 만든다는 것이다.

맺으며

진화론을 기반으로 한 인간 본성(심리적, 행동적 특성에 초점을 맞춘) 연구들에는 많은 한계가 있다. 또한 우파적 정치 이데올로기로도 사용될 수 있으며 이는 단지 기우가 아니라 실제 나타나는 현상이기도 하다. 과학은 객관적·중립적인 진실의 담지자도 아니고, 현실 사회와 동떨어진 추상도 아니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를 이유로 〈노동자 연대〉가 이런 연구들을 면밀히 살펴보지도 않고, 유사 과학이라는 식으로 무시하거나, 생물학 결정론으로 허수아비 공격을 하거나, 우파 혹은 나쁜 과학으로 낙인을 찍어 매도하는 것은 과학을 대하는 사회주의자의 태도가 아니고, 사회 변혁 운동에도 전혀 도움이 되지 않는다. 인간 본성이라는 주제의 중요성과 앞서 언급한 연구들의 성과와 위상을 생각한다면 더욱 그렇다.

〈노동자 연대〉의 여러 글들에서 반복적으로 언급된 것처럼 인간 본성은 사회 변혁의 걸림돌이 아니다. 때문에 우리는 인간 본성을 과학적으로 연구하는 것에 대해서 두려움이나 적대감을 가질 필요가 없다. 그리고 사회주의에 걸림돌이 되지 않을 것 같은 인간 본성만을 ‘취사선택’하는 것도 어리석은 태도이다. 우리는 유연하고 개방적인 태도로 이들 연구들을 살펴보면서 사회주의자의 입장에서 합리적으로 비판(비난이 아니라)해야 한다. 인간 본성에 대한 연구는 사회 변혁 운동에 그리고 새로운 사회를 설계하는 데 중요한 도구가 될 수 있다. 우리는 새롭게 밝혀지는 과학 지식들을 토대로, 유전자·유기체·사회·환경의 역동적인 복잡성에 대해 시스템적 (변증법) 방법으로 인간 본성을 연구해야 한다. 나는 이것이 마르크스의 이론과 부합하는 것이라고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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