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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저임금이 임금 격차 해소에 도움이 되지 않는다고? 정부의 뻔뻔한 거짓말

최근 고용노동부가 “최저임금이 임금 격차 완화에 크게 기여하지 못했”다고 주장해 논란이다. 지난 13년간 우리 나라의 최저임금 인상률은 OECD 국가 중 가장 높았지만 임금 격차는 계속 확대됐다는 것이다.

그러나 노동부는 최저임금 인상률이 높다는 것만 이야기할 뿐 최저임금의 절대적 수준이 형편없다는 것은 말하지 않는다. 한국의 최저임금은 OECD 34개국 중 27위다.

최저임금이 워낙 낮아서 인상률은 높아도 인상액은 형편없다. 지난해 최저임금 인상률은 8.1퍼센트였지만 금액으로는 시급 4백50원 인상에 불과하다. 평균임금의 35퍼센트에 불과한 최저임금으로는 의미 있는 임금 격차 해소를 기대하기가 어렵다.

사회보장 지출도 마찬가지다. 노동부는 사회보장 지출도 세계 최고 수준으로 올랐다고 강조하지만 한국의 사회보장 지출은 세계 꼴찌로 2위인 스페인의 절반에도 못 미친다.

양식 있는 학자들은 최저임금이 임금 격차 해소에 도움이 된다는 사실을 인정한다. 이것은 국제적으로도 마찬가지다. 한국노동연구원도 “통계청의 지역별 고용조사를 이용해 최저임금의 임금불평등에 대한 영향을 분석해 보면 … (임금 수준) 중하위에서는 (최저임금이 올라갈수록 불평등이 줄어드는) 뚜렷한 양(+)으로 나타난다”고 보고한 바 있다.

정부의 주장은 왜곡이고 거짓말일 뿐 아니라 매우 역겹다. 정부는 알량한 최저임금조차 기업주들이 이행하도록 강제하지 않는다. 그래서 한국의 최저임금 미준수율은 선진국 중 최고 수준이다. 2000년대 이후 미준수율은 해마다 올라가 지난해 12퍼센트대까지 올라갔다. 2백32만 명이 최저임금보다 낮은 임금을 받는다. 그래서 최저임금을 올려도 가장 낮은 임금을 받는 노동자들은 혜택을 받지 못한다. 노동부가 들이댄 임금수준 하위 10분위 노동자들의 상대적 임금이 올라갈 기미가 없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이것은 정부가 최저임금 위반 사업주들을 제대로 처벌하지 않은 탓이다. 민주노총에 따르면 지난해 최저임금 위반 적발 건수는 1천6백45건인데, 이 중 사법처리 건수는 고작 14건이었다! 2006년부터 2010년까지 최저임금 위반으로 기업주들이 받은 벌금액 평균은 89만 원이다(국가인권위). 정부가 최저임금을 제대로 단속하지도 않고, 걸려도 솜방망이 처벌만 하니 최저임금을 지키지 않는 작업장이 만연하다.

4월 6일 오전 서울 광화문 정부청사 앞에서 열린 '최저임금 1만원 쟁취! 2016 민주노총 투쟁선포식'에서 참가자들이 '최저임금 1만 원이 된다면 하고 싶은 일'을 적어 대형 종이판에 붙이고 있다. ⓒ이미진

게다가 여전히 최저임금의 사각지대가 많다. 수습사원, 장애인, 가사노동자는 최저임금을 적용 받지 못한다. 형편없는 임금으로 고통 받는 이 노동자들의 처우를 개선하려면 최저임금 적용 예외를 없애야 한다.

또한, 최저임금 인상 효과를 차단하는 일도 비일비재하다. 최저임금이 오른 만큼 상여금, 수당을 기본급으로 전환하거나 노동시간을 강제로 줄여 시간당 임금을 올리는 것이다. 기업주들은 이런 꼼수를 부려 최저임금이 올라도 실질임금이 인상되지 못하게 한다. 지금처럼 최저임금을 찔끔찔끔 올리는 것으로는 기업주들이 이러저러한 꼼수로 최저임금 인상 효과를 차단하는 것을 막기 힘들다.

정부는 최저임금 위반이나 기업주들의 꼼수를 규제하기는커녕 아예 숙박비를 최저임금에 산입시키자고 주장한다. 이것은 주로 이주노동자들을 겨냥한 것이다. 정부는 ‘이주노동자들은 한국 노동자들이 받지 않는 숙박비까지 더 받는다’며 커다란 혜택이라도 누리는 양 말한다. 그러나 이주노동자들 대부분은 광범한 저임금 노동자들에 속한다. 숙박비가 최저임금에 포함되면 그동안 기업주들이 요구해 온 상여금이나 각종 수당도 최저임금에 산입시키자는 주장이 더 강화될 것이 뻔하다. 따라서 이주노동자들의 임금을 공격하는 것에도 단호히 반대해야 한다.

노동부가 최저임금의 의의를 깎아내리는 것은 총선에서 최저임금 쟁점이 부상하자 이 같은 분위기가 최저임금 심의에 영향을 미치지 않도록 차단하고, 임금 격차를 대기업·정규직 탓으로 돌려 총선 이후 노동개악을 밀어붙이기 위해서다.

노동부는 대기업·정규직 노동자들에게 “임금 인상 자제와 임금체계 개편 노동개혁을 실천”하라고 결론짓는다. 대기업 정규직 노동자들의 임금이 너무 많이 올라서 최저임금이 올라가도 격차가 줄지 않는다는 것이다. 이쯤 되면 기-승-전-노동개악이라고 부를 법하다.

그러나 5인 이상 사업체 상용직의 실질임금 인상률을 살펴보면, 지난 15년간 비정규직뿐 아니라 정규직도 성장에 못 미치는 임금 인상이 이뤄졌다. 반면, 10대 재벌과 상위 1퍼센트의 소득집중도는 세계 최고 수준이다. 단적으로 현대차 정규직의 임금은 최저임금의 6배지만, 10대 그룹 경영자들의 보수는 최저임금보다 1백80배 많다. 누가 양보해야 하겠는가?

최근 미국, 독일, 영국 등 주요 선진국에서도 최저임금 인상이 추진되고 있다. 지배계급 일부는 최저임금 인상을 통해 노동자들의 불만을 달래고, 저임금층 증가로 늘어나는 국가 복지 지출을 줄이거나 생산성이 낮은 산업을 규제함으로써 산업 구조조정을 촉진시키려고 한다.

그러나 무엇보다도 세계적인 경제 침체 속에서 저임금 노동자들이 증가하자 최저임금 인상을 요구하는 노동자들의 목소리가 커졌기 때문이다.

미국에서 패스트푸드 노동자들이 최저임금 15달러를 요구하며 파업을 벌여 1천만 명의 임금을 인상시켰다. 미국 지방정부들도 연이어 최저임금을 단계적으로 15달러로 인상하는 데 나서고 있다. 이런 압력 속에서 오마바도 최저임금 인상을 지지할 수밖에 없었고, 최저임금 문제가 대선의 중요 쟁점이 됐다.

이런 사례는 최저임금 1만 원을 현실로 만들기 위해서 무엇보다 계급투쟁이 중요하다는 것을 다시금 보여 준다. ‘임금 없는 성장’이 지속되는 상황에서 정규직 양보가 아니라 임금체계 개악 저지, 최저임금 1만 원 요구를 내걸고 단결·투쟁해 빼앗긴 노동자들의 몫을 되찾아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