총선 직전 박근혜 정부는 중국의 북한식당 직원 13명이 “집단 탈북”한 사건을 급작스레 발표했다. 정부는 총선 전, ‘북한 해외 식당 이용을 막은 대북 제재가 효과가 있었다’고 선전하려고 이번 집단 탈북을 이용하려 했다. 그러나 총선 결과를 보면, 상황이 정부의 의도대로 풀리지는 않았다.

탈북자들 대다수는 북한에서 노동계급과 천대받는 집단에 속해 있었다.

그런데 일각에서는 이번 일이 처음부터 정부가 개입한 ‘기획 탈북’이라는 의혹을 제기하고 있다. 물론 정부가 이번 일을 총선에 이용한 것은 비난받아 마땅하다. 더 일반적으로 말해, 체제 우위를 선전하거나 우파들을 결집할 목적으로 한국 정부가 탈북자들을 이용하는 것은 비난받을 짓이다.

게다가 이번에 정부가 집단 탈북 사실을 공표해 13명의 인적사항이 노출되면서 북한에 있는 그 가족들이 탄압받을 위험에 처한 것도 문제다.

그러나 남한으로 오고자 하는 탈북자들이 그들이 원하는 곳에 이주하고 정착할 권리는 옹호돼야 한다. 탈북자들은 자유롭고 더 나은 삶을 살 수 있어야 한다.

지금껏 한국 정부는 겉으로는 탈북자들에게 온정적 태도를 보였지만, 정작 실질적으로 그들을 도울 수 있는 일에는 무관심하거나 매우 냉혹했다.

이번에 운좋게 한국에 바로 들어온 북한식당 직원들과 달리, 한국행을 원하는 수많은 탈북자들은 한국 정부의 외면 속에 제3국을 떠돌고 있다. 중국과 북한의 단속 때문에 탈북자들이 온갖 위험에 노출돼 있어도 한국 정부는 탈북자들이 목숨을 걸고 중국을 탈출하기 전까지는 팔짱만 끼고 있기 일쑤다.

현재 중국 내 한국 외교공관을 통한 한국행과 몽골을 통한 탈북 경로는 막혀 있는데, 정부가 이 경로들을 다시 열어 탈북자들이 한국으로 올 수 있는 길을 넓히는 데는 미온적이라는 지적이 있다.

그래서 정부가 “탈북자의 한국행을 명시적으로 거부하지 않으면서도 그들의 규모에 대해서는 상당 수준 조절”한다고 지적하는 전문가도 있다.

탈북자 “양산”?

그런데 일부 진보·좌파들은 탈북자들의 한국행을 사실상 ‘환영’하지 않는다. 이번 ‘집단 탈북’ 사건처럼 미국·한국 정부가 개입하거나, 탈북자들의 정착지원금을 노린 브로커들이 북한 사람들을 유인해 탈북자들을 “양산”한다는 이유로 말이다.

그러나 탈북자들한테 이주의 자유가 있었다면 애당초 한국 정부 등이 ‘공작’을 벌일 여지도 없었을 것이다. 탈북 과정을 중개하는 브로커들이 많은 문제를 일으키는 건 사실이지만, 북한 인접국 정부들이 탈북자들을 단속하고 그들의 자유로운 이주를 가로막기 때문에 브로커들이 활개칠 수 있는 것이다. 게다가 현재로선 탈북자들이 한국으로 오려면 거의 전적으로 브로커와 탈북 지원 단체들에 의존해야 하는데, 이를 막으라고 하는 건 사실상 탈북자들의 국내 입국을 막으라고 하는 주장과 다르지 않다.

정부와 우파들은 탈북자가 경제적·사회적으로 부담이 된다는 여론을 은근히 조성해 왔다. 탈북자 범죄가 늘어나고 있고, 재정 부담이 늘어난다는 식으로 말이다. 따라서 정착지원금이 탈북을 ‘유혹’한다는 진보·좌파 일각의 주장은 정부가 탈북자 지원 정책을 계속 후퇴시키는 데 의도치 않게 동조하는 셈이 될 뿐이다.

2008년 탈북자에 대한 통제 강화를 목적으로 경찰대 부설 치안정책연구소가 보고서를 작성했다. 얼마 전 이를 한 친북 좌익 논평가가 인용하며 탈북자들을 ‘범죄집단’인 것처럼 다뤘다. 이런 주장은 이주자를 잠재적 범죄자로 취급해 국경 통제를 정당화해 온 서구 지배자들과 우익 포퓰리스트들의 주장과 다르지 않다. 한국에 들어온 이주 노동자들을 범죄집단 취급하는 정부와 우파들의 주장이 거짓 선동이듯, 탈북자들을 그렇게 매도하는 것도 심각한 문제다.

고달픈 처지

탈북자들이 천신만고 끝에 한국에 들어와도 그들의 삶에 서광이 비치는 건 아니다. 고달픈 처지에서 벗어나기 힘들다.

한국 정부는 탈북자들이 점차 늘어나자 이미 보잘것없던 지원금을 더 줄여 왔다. 정부는 “자립”을 위한다는 명목으로, 정착에 필요한 도움을 무상으로 제공하기보다 (대부분 저질 일자리에서) 일하게 해서 그만큼 인센티브를 주겠다는 정책을 시행하고 있다. 그 결과, 정착기본금은 2004년 이전 3천5백90만 원에서 2014년 현재 2천만 원으로 거의 반토막이 났다.

한국 정부가 조장한 차별과 형편없는 지원책 때문에 국내에 정착한 탈북자들은 경제적으로 곤란한 처지에 놓이는 경우가 많다. 탈북자들의 실업률은 평균 실업률의 3배에 이르며, 탈북자 가족 중 월 생활비가 1백만 원 이하인 경우도 65퍼센트가량일 정도다.

경제적 어려움과 차별 때문에 느끼는 절망이 하도 커서, 탈북자들의 자살률은 일반 국민의 3배나 된다. 그래서 다시 ‘탈남’을 해 다른 나라로 가 난민 신청을 하는 탈북자도 많아졌다.(‘탈남’한 탈북자들의 사연을 소개한 책으로 《탈북 그 후, 어떤 코리안》(류종훈, 성안북스)이 있다.)

국제주의

국제주의자들인 마르크스주의자들은 국제주의의 관점에서 탈북자들의 난민 권리 인정, 자유 왕래, 정부 지원 확대를 지지해야 한다. 국가 간 외교관계가 아니라 노동계급의 국제적 단결이라는 원칙을 중시해야 하는 것이다.

우선, 탈북자들이 위험에 처하지 않게, 중국 등지에 거주하는 탈북자들을 난민으로 인정하라고 주장해야 한다. 서방 국가들의 전례를 따라 북한 인접국 정부들은 난민 자격을 매우 협소하게 규정하고 있는데, 이를 광범하게 인정하고 탈북자들의 안전을 보장하라고 주장해야 한다. 그리고 궁극적으로 자유 왕래가 필요하다.

국내 거주 탈북자에 대한 정부의 지원을 강화하라고 주장하면서, 탈북자 차별을 조장하는 정책들도 폐지하라고 주장해야 한다. 제3국 수용소-합동심문-하나원에 이르는 장기간 구금도 사라져야 한다. 북한 주민에 대한 조건 없는 인도적 지원에 한국 정부가 나서라고 주장해야 한다.

진보·좌파 일각에서는 탈북자들을 우익으로 여기지만, 이는 사실이 아니다. 실제로 박근혜 정부의 대북 적대 정책을 지지하지 않는 탈북자들이 있고, 영국에서는 탈북자들이 좌파적 단체를 만들어 활동하기도 한다. 따라서 진보·좌파가 탈북자들의 권리를 옹호하고 차별에 반대하고 나선다면, 비록 소수일지라도 좌파적 주장에 귀 기울이는 젊은 탈북자 청중을 만날 수 있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