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의료법인 인수·합병을 막아야 하는 이유

19대 마지막 임시국회에서 의료법인 인수합병을 허용하는 의료법 개정안(새누리당 이명수 의원 발의)이 통과를 앞두고 있다. 의료법인의 해산 사유에 ‘다른 의료법인과 합병한 때’를 추가한 것에 불과하지만 이것이 서민과 노동자들에게 가져올 효과는 재앙적일 것이다.

먼저 의료법인병원이 뭔지 짚고 넘어가자

한국에는 여러 종류의 병원이 있다. 흔히 병상규모를 가지고 의원, 병원(30병상 이상), 종합병원, 상급종합병원 등으로 나누지만, 병원의 성격에 따라 크게 개인병원과 의료법인병원으로 나눌 수 있다.(그밖에 학교법인, 사회복지법인 등 다른 법인도 있으나 의료법인이 절대적으로 많다.) 개인병원과 의료법인병원의 가장 큰 차이는 두 가지다. 우선 개인병원은 번 수익으로 무슨 짓을 해도 상관이 없으나, 의료법인은 비영리법인이기 때문에 병원에서 번 수익은 의료목적사업과 일부 허용된 부대사업에 재투자해야만 한다. 그리고 개인병원의 경우 원장이 병원을 자기 마음대로 사고팔고 할 수 있지만, 의료법인병원의 경우 인수·합병·매각이 불가능하며 해산할 경우 병원 재산을 국가나 지자체에 귀속시켜야 한다.

그럼 ‘다 개인병원을 하지 누가 의료법인병원을 하겠냐’ 싶겠지만 다 그만한 이유가 있다. 의료법인은 각종 세금 면제와 경감 혜택을 받는다. 사실 의료법인이란 제도 자체가 1970년대 박정희 정권시절 공공의료가 턱없이 부족한 한국의 현실에서 민간의료기관에게 각종 세제 혜택과 지원을 제공함으로써 “의료의 공공성 제고 및 의료기관의 지역적 편중 해소”를 꾀하고자 도입된 것이다. 간단히 말해, 공공병원을 짓는 대신 민간의료기관에 혜택을 주고 공익성을 유도한 것이다.

5월 16일 오후 서울 여의도 더불어민주당사 앞에서 열린 ‘병원 인수합병 추진 새누리당, 더불어민주당 규탄 및 의료민영화저지 결의대회’에서 참가자들이 여야 야합으로 국회 보건복지위를 통과한 의료법 개정안 처리 중단을 요구하고 있다. ⓒ조승진

공적 세제 혜택 다 누리고 이제와 장사 안되니까 맘대로 팔겠다?

해방 이후 보건의료분야에 있어 가장 큰 전환점은 전국민 건강보험 제도의 시행일 것이다. 1987년 6월 민주항쟁과 7월부터의 노동자 대투쟁 이후 바로 이 전국민 건강보험이 도입된다. 병원 문턱이 낮아짐에 따라 국민들의 병원 이용률은 매년 크게 올랐다. 그러나 한국 의료의 전환은 거기까지였다. 역대 정권은 공공병원을 늘리는 데 관심이 없었다. 공적 수혜를 받는 의료법인에 대한 이렇다 할 공적 통제도 없었다. 결국 전국민 건강보험 도입 이후 급증한 의료 수요로 의료법인 병원을 포함한 민간의료기관들은 상당한 이익을 누렸다.

그런데 90년대 현대아산병원과 삼성서울병원을 필두로 수도권에 세계적인 규모의 민간병원들이 세워지기 시작했다. 국공립 대학병원까지 가담해 ‘의료군비경쟁’이 진행됐고, 그 결과 연 매출 1조 원이 넘는 소위 ‘빅 5’라 불리는 병원들이 세워졌다. 이렇게 의료가 시장에 내맡겨지면서 지방을 중심으로 설립된 중소 의료법인병원은 점차 경쟁력을 잃고 뒤쳐지기 시작했다. 급기야 경제상황이 악화되며 건강보험재정이 17조 가까이 남을 정도로 서민들의 병원 이용이 줄어들었고, 의료법인병원을 포함해 일부 중소 병원들이 수익이 줄어든 게 현 상황이다. 지금 정부·여당은 바로 이러한 경영난에 처한 의료법인병원을 위해 인수합병을 허용해주자고 하는 것이다.

5월 16일 오후 의료민영화저지범국본과 무상의료운동본부가 서울 여의도 더불어민주당사 앞에서 ‘병원 인수합병 추진 새누리당, 더불어민주당 규탄 및 의료민영화저지 결의대회’를 열고 있다. ⓒ조승진
‘병원 인수합병 추진 새누리당, 더불어민주당 규탄 및 의료민영화저지 결의대회’에 참가한 노동자와 시민단체 활동가들이 병원 인수합병 의료법 개정안을 보건복지위에서 통과시키는 것을 야합한 더불어민주당을 규탄하고 있다. ⓒ조승진

자본의 목표, 영리형 네트워크 병원

그러나 경영난에 빠진 일부 중소병원의 시름을 덜어주는 것이 핑계라는 것은 자본이 더 잘 알고 있다. “이미 지방의 중소 의료병원과 수도권 대형 병원 사이에서는 의료법 개정 통과를 염두에 두고 물밑 교섭 작업이 여럿 진행 중”이라고 하며, 서울의 모 병원은 “이 법이 통과되면 지역의 몇몇 중소병원을 합병해 지방 진출을 시도할 계획”이라고 포부를 밝히고 있다.(〈매일경제〉 2016년 5월 2일치) 실상 이를 강력히 원하는 쪽은 경영난에 허덕이는 의료법인병원이 아니라 이를 인수해 더 큰 이윤을 노리는 자본이다.

의료법인 인수합병의 가장 큰 문제는 미래에셋 증권보고서가 ‘기대’했듯이 “병원 간 M&A를 허용함으로써 영리형 네트워크 병원을 가능하게 만”든다는 점이다. 이미 박근혜 정부는 의료법인의 영리자회사를 허용해주었다. 다시 말해, 의료법인 자체는 비영리여도 영리자회사가 얼마든지 투자자를 모으고 수익을 배분할 수 있다. 하지만 그간 영리자회사가 활성화되지 못한 건 한 의료법인을 통해 뽑아낼 수 있는 수익이 많지 않기 때문이다(〈한국경제〉 2015년 11월 8일치). 그러나 의료법인간 인수합병이 허용되면 얘기는 달라진다. 영리자회사를 지주회사처럼 세우고 그 아래 인수합병을 통해 여러 병원을 두면 그 자체로 영리병원 체인화가 완성된다.

의료법인 인수합병이 가져올 파장은 여기에서 그치지 않는다. 개인병원의 경우 같은 ‘OO병원’을 공유하는 체인병원이라 해도 1인 1개소 법에 의해 각 병원의 원장은 다르다. 바지원장을 세우는 등 편법을 쓸 수 있겠지만, 법적으로는 분명 한 명의 원장이 두 개의 병원을 가질 수 없다. 그런데 인수합병이 허용되면 이런 개인병원이 의료법인으로 전환할 것이다. 세제 혜택이 부러워도 지금까지 의료법인으로 전환하지 않은 이유는 해산시 맘대로 팔지 못하고 국가에 귀속시켜야 된다는 조항 때문이었다. 허나 이제 의료법인으로 들어와 세제 혜택도 받고 합법적으로 병원을 여러 개 거느릴 수 있다. 개인병원 원장과 달리 의료법인 이사장은 의사가 아니어도 될 수 있으니 ‘진정한’ 자본가들도 달려들 것이다.

의료민영화저지범국본과 무상의료운동본부는 더민주당 지도부가 자신들의 잘못을 인정하고 법사위와 본회의를 통과시키지 않겠다는 약속을 해 줄 것을 요구하며 지난 12일부터 더민주당 당사에서 농성을 하고 있다. ⓒ조승진

서민과 노동자들에게 닥칠 문제들

무엇보다 의료법인 인수·합병 허용으로 가장 우려되는 문제는 서민들의 의료비가 상승할 수 있다는 점이다. 미국 NIHCM(National Institute for Health Care Management)재단에서 2009년 발표한 자료에 따르면 병원 간 인수합병이 병원비를 최소 5%에서 최대 50% 이상 상승시킨 반면 의료 질은 비슷하거나 오히려 떨어뜨리는 것으로 분석됐다. 상식적으로 목 좋고 장사 잘되는 가게가 권리금 많이 받고 팔아넘기듯이, 환자 많고 수익 좋은 병원이 높은 가격에 팔릴 것이다. 시장 논리상 수익을 많이 남기는 병원이 살아남을 수밖에 없는 구조다. 이는 당연히 의료비 상승으로 이어질 수밖에 없다. 한국보다 10년 앞서 의료법인 인수합병의 홍역을 치렀던 일본의 경우 인수합병 시 “병원의 브랜드와 수익력” 그리고 “입지”가 큰 영향을 미쳤다.(‘???化で?病院M&A時代」が到?’, 月刊 《集中》 2009년 9월 1일치)

그리고 또 하나의 중요한 문제는 기업의 인수합병과 마찬가지로 병원의 인수합병 역시 대규모 구조조정을 동반한다는 점이다. 어떤 업종보다 노동집약적이며 운영비의 절반 가까이가 인건비인 병원의 특성상 심각한 구조조정 문제가 대두될 수밖에 없다. 일본의 간호사 구직 광고 사이트에 올라온 “나쁜 병원 간파하는 법”을 보면 가장 조심해야 할 사례로 간판은 새 건데 건물은 허름한 병원이다. 바로 갓 인수합병된 병원을 말한다. 그 이유도 친절히 설명해 준다. 갓 인수합병된 병원은 1~2년 동안 엄청난 구조조정을 강행한다는 것이다. 실례로 가나가와(神奈川?) 현에 있는 3백 병상 규모의 병원이 인수합병되면서 90퍼센트에 가까운 인력이 구조조정 됐다고 한다.(https://www.otanko-nurse.jp/black/rank_12)

인수합병으로 병원 66곳을 거느린 일본 최대의 의료법인 도쿠슈카이(德洲會)그룹의 성공 노하우를 보면 기가 막힌다. 같은 병원 내에서 진료과끼리 경쟁시키는 행태는 양반이다. 이런 거대 체인병원은 그룹 산하의 병원끼리 경쟁을 붙인다. 두 달에 한 번씩 경영세미나를 개최해 모든 병원의 원장과 부원장, 간호부장, 사무국장이 한자리에 모여 전체 그룹의 경영 상황을 보고받고 수익을 비교한다. 특히 병상 수와 진료과목이 거의 비슷한 병원끼리 면밀히 비교하여 치열하게 경쟁시킨다.(〈JMP뉴스〉 2013년 4월 29일치) 병원에서 이러한 수익 경쟁은 노동자들을 쥐어짜고 영리적 의료행위를 부추기는 것과 직결된다.

야당, 의료민영화 반대한다면서 ‘프로불참러’?

살펴본 바와 같이 의료법인 인수합병을 허용하는 의료법 개정안은 핵심 의료민영화 법안이다. 영리자회사 허용과 달리 시행령이나 가이드라인으로 추진할 수 없다. 의료법을 개정해야만 한다. 국회에서 야당의 합의가 없으면 진행될 수가 없단 얘기다. 그래서 이 개정안이 국회 보건복지위를 통과하리라고는 누구도 생각 못했다. 더욱이 4.13 총선 후 열린 19대 마지막 국회에서 말이다. 의료민영화 반대 기치를 내건 야당이 아니었던가. 특히 20대 국회에서 제1당이 될 더불어민주당은 이 법안의 처리 과정에서 아무런 대응도 하지 않았다. 복지위 소속 더불어민주당 의원들은 이 법안의 내용을 잘 몰랐다거나, 일이 있어 참여하지 못했다는 변명을 늘어놓았다.(‘프로불참러’가 유행이긴 한 모양이다)

이제 서민과 노동자들이 직접 나서는 수밖에 없다. 박정희 정권은 공공병원을 짓는 대신 민간의료기관을 확대하는 정책으로 의료법인을 만들고 공공병원은 방치했다. 역대 다른 정권도 크게 다르지 않았다. 한국이 OECD 국가 중 공공병원 비율이 가장 낮아진 근원적 이유다. 이제 박근혜 정권은 시장 논리로 생긴 위기를 막기 위해 더 ‘장사판’으로 만들어주려는 것이다. 이제라도 잘못 끼운 단추들을 풀어야 한다. 의료법인 인수합병을 막는데 그쳐선 안된다. 메르스 사태를 통해 뼈저리게 느꼈듯이 국가가 감염병으로부터 국민을 지키기 위해선 훨씬 많은 공공병원이 필요하다. 진정 경영난에 처한 의료법인들의 출구를 만들어주고 싶다면 국가가 인수해 공공병원으로 만들면 된다. 아니, 건보재정 17조 흑자가 있고, 중소의료법인들이 경영난을 겪고 있는 지금이 그렇게 할 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