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원순 서울시장은 5월 10일 기자 설명회를 열고, 오는 10월부터 노동자 30명 이상의 서울시 산하 기관 15곳에 근로자이사제를 도입하겠다고 발표했다.

서울시가 발표한 주요 내용은 다음과 같다. 비상임이사인 근로자이사는 노동자 3백 명 미만 기관에는 1명, 그 이상 기관에는 2명을 둔다. 이사회에 참석해 공기업 운영의 주요 사항인 사업 계획, 예산, 정관 개정, 재산 처분 등에 대해 의결권을 갖는다. 공개 모집을 통한 경쟁 방식으로 임명되고, 사용자나 그의 이해를 대표해 행동하는 자는 노조에 가입할 수 없다는 노조법에 따라 노조원이 근로자이사가 됐을 경우에는 노조를 탈퇴해야 한다.

대중투쟁 노동운동은 대표자를 경영에 참가시키기보다 대중투쟁으로 아래로부터의 압박을 형성하는 것이 불황기 노동조건 방어에도 더 유리할 것이다. ⓒ사진 출처 서울시

서울시의 근로자이사제 도입 발표에 박근혜 정부와 기업주들은 즉각 반대하고 나섰다. 경총은 성명에서 “근로자이사와 경영진의 의견 대립으로 이사회는 신속한 의사결정을 할 수 없게” 되고, “경영 효율성을 저하”시킬 것이라며 반발했다. 고용노동부 장관 이기권은 “체제의 근본을 이해하고 접근하라” 하고 일갈했다.

기업주와 정부의 일방적 결정을 군소리 없이 따르는 것이 노동자의 도리라는 것이다. 최근 조선·해운업 위기와 구조조정에서 보듯, 지배자들은 자기들의 탐욕과 체제가 낳은 위기의 대가를 노동자들에게 전가하고 있다. 또, 정부가 공공기관장들의 불법을 조장해 가면서까지 성과연봉제 강행을 추진하는 상황에서 대화와 타협을 추구하는 박원순 시장의 정책이 눈엣가시일 것이다.

그러나 공공기관이든 민간 기업이든 상당수 경영상 결정들은 고용, 임금과 노동조건에 커다란 영향을 미친다. 그래서 노조들은 단체협약을 통해 부분적이나마 경영권을 제약해 온 것이다.

특히, 정부 지침과 낙하산 사장에 좌지우지되는 공공기관에 노동자의 감시와 견제를 강화하고 공공성을 확충하기 위해서도 ‘경영권’은 제약돼야 한다.

근로자이사제 도입에서 보듯 박원순 시장이 박근혜 정부와는 달리 노조와 타협을 끌어내려는 태도에 적잖은 노동자들이 기대를 품을 수 있다.

그러나 서울시가 도입하려는 근로자이사제는 노동자들의 기대에 부응하기는 어려울 것 같다.

먼저, 서울시가 모델로 삼는 독일의 공동결정제도에도 한참 못 미치는 수준이다. 서울시 산하 기관에 참여할 수 있는 근로자이사는 최대 2명으로 비상임이사의 3분의 1을 넘을 수 없다. 서울시 산하 대표 기관인 서울메트로의 상임, 비상임을 합친 전체 이사 수는 13명이라고 한다. 그러나 노사 동수로 기업의 (감독)이사회를 구성하는 독일에서조차 노동자들은 기업 경영에 실질적인 결정권을 전혀 갖지 못하는 실정이다. 왜냐하면 (감독)이사회 의장은 사측 인물이 맡는데 노사가 동수로 맞설 때 의장이 2표를 갖기 때문이다.

들러리

그래서 민주노총은 서울시 근로자이사제가 “이사회의 의사 결정에 영향력을 미칠 수 없고, 실질적 책임성을 담보할 수도 없다”고 비판했다. 박원순 시장도 기자 설명회에서 이 점을 인정했다. “[근로자이사가] 1~2명밖에 안 돼 의사결정을 좌지우지할 수 없”고, “사실 의사 개진만 할 수 있다.” 또, 노조가 추천한 인물이 비상임이사가 되면 노조원 신분을 잃게 돼 노동조합의 통제를 따를 의무가 없다. 그래서 박태주 노사정서울모델위원장은 “[근로자이사는] 노조와 공식적인 관계는 없고 독립적이라고 봐야 할 것 같다. 그래서 근로자이사의 의견과 노조의 의견이 충돌된다 하더라도 근로자이사는 사용자의 이해를 대표하는 의무를 갖고 있다”고 말했다.

따라서 “서울시가 추진하는 근로자이사제도가 이사회의 일방적 의사결정의 들러리, 노동자 경영참여의 형식적 명분만 줄 수 있다는 우려가 나올 수밖에 없”다는 민주노총의 지적은 타당하다.

이처럼 서울시의 근로자이사제는 실속은 없으면서 경영에 대한 책임은 노동자도 함께 져야 한다는 논리를 강화할 우려가 있다.

박원순 시장은 근로자이사제로 “산업 평화와 경쟁력에 도움이 될 것”이라고 주장한다. 그는 “근로자와 경영자가 공동운명체가 돼야 기업이 지속 가능하고, 성장하고, 번영한다”면서, “[근로자이사제는] 노사가 경영의 성과와 책임을 공유하고 소통하는 경영구조”라는 점을 강조했다.

중도 성향의 프랑스 경제지 〈알테르나티브 에코노미크〉(‘대안 경제’라는 뜻)의 기욤 뒤발 기자는 독일의 공동결정제도의 효과를 이렇게 평가했다. “종업원의 처지에서는 의사결정 과정에 긴밀히 참여하다 보니 기업을 위해 더욱 헌신적으로 일할 수밖에 없었다. 다른 요인도 작용했지만, 이는 독일의 산업 경쟁력 강화에 상당 부분 기여했다.” 그 기자는 독일 공동결정제도를 프랑스에 적극 도입해야 한다는 취지에서 이같이 말했던 것이다.

이 점은 많은 독일 기업주들이 아직까지 공동결정제도가 필요하다고 보는 이유이기도 하다. 그들은 과거 경제 위기 시기에 공동결정제도를 통해 노조의 발목을 잡아 효과적으로 고통 전가 정책을 시행할 수 있었다고 본다.

NGO 리더 출신 정치인 박원순 시장도 계급 협력으로 노동자 투쟁을 자제시키고, 그것을 바탕으로 경제성장을 추동하고 싶어 한다. 그가 독일 폭스바겐 사례를 주목한 것에서도 알 수 있다. 박원순 시장은 2004년에 폭스바겐 임원과 인터뷰한 경험을 설명하며 이렇게 말했다. “노사 대타협을 통해 노동자들의 임금을 삭감하고, [대신 공장은] 독일에 그대로 남게 되었고 일자리는 그대로 유지하게 되었다는 이야기를 들은 적이 있다. 노사의 평화 정착으로 회사도 엄청난 이익을 받는다.”

그러나 폭스바겐 모델은 경제 위기 시기에 임금과 노동조건이 악화한 대표적인 사례다. 폭스바겐 노조는 1993년 고용을 지키는 대신 임금을 삭감하기로 합의한 이래 거듭 임금·노동조건 개악에 합의했다. 게다가 이런 합의는 고용도 제대로 보장하지 못했다. 2006년에는 본사 직원 1만 3천 명을 조기 퇴직시켰고, 2008년에는 비정규직 1만 6천여 명이 해고됐다. 멕시코 공장 등 해외 공장에서도 대량 해고가 이어졌다.

폭스바겐

노동자들과 노조의 바람과는 달리, 근로자이사제가 “갈등과 대립을 넘어” 노동자들의 양보를 끌어내기 위한 수단으로 이용될 수 있다는 점을 경계해야 한다.

이런 위험은 최근 서울지하철 통합 합의안 부결에 책임을 지고 중도 사퇴한 서울지하철노조 김현상 집행부가 잘 보여 준다. 이 집행부는 당시 합의안에 포함된 근로자이사제를 통해 “향후 성과연봉제나 저성과자 퇴출제 도입을 겨냥한 일방 취업규칙 개정 등을 제어, 저지할 수 있는 수단”으로 활용할 수 있다고 주장하며 가결을 호소했다. 그러나 당시 합의안은 1천29명 인력 감축을 통한 비용 절감이 핵심이었다.

흔히 현장 노동자들의 투쟁 건설보다 정부나 사용자와의 협상을 통해 문제를 해결하는 것을 더 중시하는 대다수 노조 지도자들과 개혁주의 정치인들은 근로자이사제가 공기업의 공공성 확대와 민주적 운영을 해 나가는 발판이 되길 기대한다. 이 모델이 성공을 거두면 근로자이사 확대와 경영에 참여하는 여러 제도를 발전시키고 이를 공공부문 전체로 확대할 가능성을 기대하는 것이다.

그러나 지금처럼 경제 위기가 지속되고, 지배자들이 공공부문을 집요하게 공격하는 시기에 협상과 타협을 중시해서는 노동자들의 노동조건조차 지키기 어렵다. 2013년 12월 퇴직금 누진제 폐지, 2015년 임금피크제 도입 등에서 보듯, 그간 서울시와 그 산하기관 노조들 간의 협상만으로는 박근혜 정부의 공공부문 공격을 온전히 막아 내지 못한다는 점이 거듭 드러났다.

그런데 공공서비스의 질과 직결되는 공기업의 노동조건도 지키지 못한다면, 진정한 공공성 확대를 기대하기는 어려워진다.

노동조합이 투쟁력을 키우기보다 협상, 경영 참여와 책임 공유 등에 무게를 싣게 되면 노동조합 자체가 약화될 수 있다는 점을 명심해야 한다. 이는 또한 노동자들의 의식 발전을 더디게 만들거나 심지어 저하시키기도 한다.

독일 사회민주당의 씽크탱크인 프리드리히에버트재단의 전 한국사무소장이었던 크리스토퍼 폴만이 한 다음 말은 노동운동 활동가들이 곱씹어 볼 지점이다. “노사공동결정권 도입으로 독일이 얻은 가장 중요한 변화는 ‘평화’예요. … 오히려 사회주의적 발상과는 반대로 볼 수 있죠. 강성노조가 연성화되는 효과도 있으니까요.”

따라서 계급 협력과 평화를 강화하는 근로자이사제에 기대를 품기보다는, 현장의 투쟁력을 끌어올리며 계급의식을 발전시켜 나가는 것에 무게중심을 둬야 한다. 그럴 때 경제 위기 상황 속에서도 고용과 임금, 노동조건을 지켜 낼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