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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습기 살균제 참사:
돈이 우선한 체제가 만든 또 하나의 비극

끔찍한 화학 참사인 가습기 살균제 참사는 밝혀진 사망자만 2백여 명이 넘는다. 정부가 공식 인정한 피해자는 2백21명(사망 85명)이지만 이 문제를 꾸준히 추적해 온 시민단체들에게 지난해 말까지 접수된 피해 사례는 1천2백여 건이 넘고 사망자는 2백25명에 이른다. 검찰 기소 결과가 알려진 후 올해 4월25일부터 5월31일까지 한 달여간 접수된 제4차 피해접수만도 1천57명(사망 2백38명)이다. 2011년 질병관리본부 조사에서 국민의 18.1퍼센트(8백94만여 명)가 가습기 살균제를 사용했다고 하니 지금까지 알려진 피해는 빙산의 일각에 지나지 않을 것이다. 아직까지 온전한 실체와 피해 규모조차 제대로 밝혀지지 않은 이번 사건을 두고 검찰은 꼬리 자르기 식 수사로 진정한 책임자들에게 면죄부를 주려 한다.

뱃속에서 가습기 살균제에 노출돼 태어난지 4개월만에 사망한 아기 ⓒ출처 환경보건시민센터

독성 물질 넣고는 “인체에 무해”

가습기 살균제는 1994년 당시 유공(현 SK)이 ‘가습기 메이트’란 제품을 출시한 이래 2011년 질병관리본부가 가습기 살균제가 원인을 알 수 없는 폐질환의 위험 요인으로 추정된다고 공식 발표하며 판매 중지를 하기까지 무려 17년 동안 판매됐다.

1994년 가습기 살균제가 처음 제조되자 기업과 언론은 가습기 살균제 개발이 “세계 최초”라고 떠들었다. 그럴 수밖에 없었다. 흡입독성 때문에 해외에서는 사용할 수 없는 성분이었기 때문이다. 그런데도 기업들은 “인체에 무해하다”는 광고까지 버젓이 내놓고 판매했다.

유공은 1996년 12월 환경부에 PHMG 제조 신고를 하며 ‘항균 카펫 등의 첨가제’로 유해성 심사를 신청했다. 다음해 환경부는 “유독물 해당 안 됨”으로 이를 통과시켰다. 이때부터 흡입 독극물 PHMG가 일반 공산품에까지 널리 쓰일 수 있는 길이 열렸다. 2003년에도 환경부는 가습기 살균제 원료 중 하나인 PGH 수입업체가 낸 유해성 심사를 통과시켰다. 2001년 옥시는 원래 카페트나 플라스틱 세정제, 방부제 등으로 허가를 받은 PHMG를 호흡기로 흡입되는 가습기 살균제로 용도를 변경했다. 그러나 정부의 어떤 감시나 제재도 받지 않았다. 기존의 국내 유해화학물질관리법에 용도변경시 위해성 재평가 조항이 없다는 느슨한 규제를 이용한 것이다.

심지어 가습기 살균제는 안전관리대상공산품에 지정되지도 않았다. 일부 제품은 KC마크까지 받았다. SK케미칼이 2003년 PHMG를 수출할 때 오스트레일리아 정부 당국에 제출한 보고서에는 “PHMG를 흡입하면 위험할 수 있다”고 했는데 한국에서는 흡입용으로 버젓이 제작되고 있었던 것이다.

많은 가정에서 아이들과 산모의 건강을 위해 가습기 살균제를 사용했고 연간 60만 개씩 판매될 만큼 날개 돋친 듯이 팔려나갔다. 옥시 제품은 전체 시장의 80퍼센트를 차지했다. 이렇게 가습기 살균제에 대한 인기가 높아지자 홈플러스와 롯데마트도 주성분을 그대로 베껴 각각 2004년, 2006년에 가습기 살균제를 자체 제작해 출시했다.

질병관리본부가 원인 미상 폐질환의 원인이 가습기 살균제라는 역학조사 결과를 발표하자 2011년 옥시는 부랴부랴 산업통상자원부 국가기술표준원의 유관기관인 한국건설생활환경시험연구원(KCL)에 자신들의 가습기 살균제를 이용한 동물흡입실험을 의뢰했다. 2012년에 제품의 유독성을 입증할 만한 보고서가 나왔지만 옥시는 분석방법에 문제가 있다며 수령을 거부했다. 정부 유관기관이 한 실험인데도 정부는 깜깜이였다.

꼬리 자르기

정부는 2006년부터 어린이 호흡 관련 사망자가 늘어나는데도 제대로 된 역학조사를 하지 않았다. 이미 영유아와 산모들이 죽음을 맞고 난 후 질병관리본부가 뒤늦게 위험성을 인정한 것도 기가 막일 노릇인데, 검찰은 무려 4년이나 지나고 2015년 10월에야 수사에 착수했다, 2012년 피해자들이 옥시 등 업체 측을 고소했을 때 검찰은 업체 측의 반론권을 보장하고 역학조사 결과를 기다리겠다며 기소중지를 결정했다. 그러는 사이 피해자들의 고통은 커져 갔다.

검찰이 팔짱 끼고 있던 이 시간은 해당 업체들이 증거를 인멸하고, 법적 책임을 피해갈 꼼수를 마련하기에 충분한 시간이었다. 질병관리본부의 발표 이후 정부가 기업들을 대상으로 한 일이라곤 고작해야 과장광고의 책임을 물어 수천만 원을 과징금으로 물렸을 뿐이다. 게다가 검찰이 적용하는 업무상 과실치사상은 공소시효가 7년이라 검찰이 수사를 미루는 사이 많은 피해자들은 공소시효가 지나 피해를 호소하기 어려운 상황에 처해 있다.

검찰은 요란하게 옥시를 두들겼지만 비슷한 제품을 판매한 애경그룹에 대한 수사는 착수조차 하지 않았다. 검찰이 PHMG와 PGH 성분을 사용한 제품들에 대해서만 수사하고 있기 때문이다. 애경은 유공에서 판매하던 가습기 메이트를 인수해 판매했는데 이 제품은 옥시 제품에 이어 둘째로 많이 판매됐다. 애경이 사용한 CMIT·MIT 성분 가습기 살균제로도 이미 피해가 접수되고 있지만 검찰은 조사 대상에서 제외했고, 애경에 원료를 공급해 온 SK케미칼에 대해서도 무혐의 처분을 했다. 뿐만 아니라 폐 질환 이외의 유해성에 대한 검토도 제대로 되지 않고 있다.

검찰은 롯데마트 등에 대해서도 제대로 수사하지 않다가 피해자 가족들이 항의를 지속하자 압력에 떠밀린 듯 기소를 시작했다. 그러나 이 제품을 판매해 막대한 이익을 챙긴 옥시와 롯데, 홈플러스, 이마트 등 기업주들에게 진정한 책임을 묻지 않고 있다. 또한 유해성 물질 사용을 승인하고 느슨한 규제로 기업주들의 돈벌이를 도운 정부 당국은 어떤 책임도 지지 않고 있다. 정의당 심상정 의원 등의 노력으로 ‘가습기 살균제 피해자 구제 결의안’이 통과됐지만 기획재정부의 반대로 국회 예결산위에서 예산 50억 원이 전액 삭감됐다.

기업 이윤 위해 안전핀 뽑은 정부

그뿐 아니다. 2011년 질병관리본부의 발표 이후 도입이 논의된 '화학물질의 등록 및 평가 등에 관한 법률(이하 화평법)'은 기업들의 반발과 정부가 기업주들의 요구를 적극 수용하는 바람에 누더기가 된 채 2015년부터 시행됐다.

2011년 법안이 논의되자마자 대한상공회의소와 중소기업중앙회, 한국석유화학공업협회 등 단체 16곳은 '화평법 관련 산업계 건의서'를 규제개혁위원회, 환경부, 지식경제부, 국회 환경노동위원회 등에 제출했다. 이들은 화평법이 "국내 업계의 현실을 제대로 반영하지 못한 채 유럽연합(EU) 등 선진국의 규제를 좇아 급속히 추진되고 있다"면서 기업의 부담을 줄이기 위해 기준을 완화해야 한다고 요구했다. 기업주들은 화학물질 등록 최저 기준을 EU, 일본 등의 수준인 1톤으로 높이고 보고 주기도 늘리라고 했다. 정부는 이 요구를 수용했다. 그러나 유럽의 화학 산업 규모가 한국의 20배 수준임을 고려하면 이런 기준은 지나치게 느슨한 것이다. 실제로 가습기 살균제의 핵심 독성물질인 PHMG는 연간 약 2백80킬로그램만 사용됐다.

박근혜 정부에게 화평법은 “손톱 밑 가시”로 치부됐다. 2013년 당시 경기지사 김문수는 “화평법은 새로운 규제”라며 기업 잡는 화평법 개정 운동을 하겠다”고 발벗고 나섰다. 2014년 3월 제1차 민관합동규제개혁 점검회의에서 화평법은 규제개혁대상으로 지목됐다. 박근혜가 “악마는 디테일에 있다”며 규제 완화를 주문한 사실은 널리 알려졌다. 기업주들의 이익을 대변하는 경제지들도 앞다투어 화평법을 비난하고 나섰다.

결국 화학물질의 정보 공개 의무가 원안에서 축소됐고, 불성실 보고 업체 등에 대한 과징금 조항도 사라졌다. 환경부는 시행령을 통해 연구목적의 화학물질에 대한 등록 의무를 면제시켜 줬다.

그 결과 한국에서 유통되는 화학물질은 4만 3천여 종인데 85퍼센트(3만 7천 종)가 인체 등에 미치는 유해성 정보도 확인되지 않은 채 사용되고 있다. 환경부에 따르면 지난해 7월 1일 화평법 상 등록 대상 기존 물질 5백10종을 고시한 이후 11개월이 흘렀지만 등록한 물질은 단 하나도 없다. 기업주들의 이해 관계를 고려해 3년간 등록 유예 기간을 둔 탓이다. 가습기살균제 원료 물질로 쓰인 PHMG나 PGH를 포함해 기존 화학물질은 앞으로 2년 뒤인 2018년 6월까지만 등록하면 된다. 따라서 가습기 살균제 참사 이후에도 유해 물질이 어떤 용도로, 어디로, 어떻게 유통되는지는 여전히 파악하기 어려운 실정이다.

가습기 살균제 참사의 경과를 보노라면 19대 국회 환경노동위원회 새누리당 간사였던 권성동이 정부에는 법적 책임이 없다고 발뺌한 것이 얼마나 뻔뻔한 짓인지 알 수 있다.

우선순위에 도전해야

이윤을 중심으로 돌아가는 정신 나간 체제의 우선 순위 때문에 참사는 곳곳에서 반복되고 있다. 금산에서는 뼈까지 녹이는 유독 물질인 불산 누출 사고가 올해에 또 벌어졌다. 벌써 네 번째다. 주민들은 이 위험물질이 자신의 집 주변에서 사용되는지도 모르고 있다가 피해를 입었다. 사고가 반복되는 동안 제대로 된 안전 조처도 없었고, 공장에서 사용되는 물질을 공개하라는 주민들과 시민단체들의 요구에는 ‘영업 비밀’이라 어쩔 수 없다는 답변만 돌아왔다. 2013년에는 화성에 있는 삼성반도체 공장에서 불산이 누출돼 노동자가 사망했고 2014년 여수 해양조선소에서는 암모니아 가스 누출 사고가 벌어졌다.

이 사고들은 대체로 노후한 설비 탓에 벌어졌는데 이후에도 제대로 된 안전 대응책도 없이 노동자들과 인근 주민들만 속수무책으로 피해를 입어야 했다. 기업들이 책임을 피하려고 사고 소식도 즉각 알리지 않으려 하다 피해를 키웠다.

일상적으로 화학 물질을 다루는 노동자들의 안전 문제도 심각하다. 삼성 반도체 공장에서 일하던 노동자들은 난치병 등을 얻어 목숨을 잃었지만 삼성 측의 책임 회피로 더 큰 고통을 겪어야 했다. 반올림 등의 끈질한 노력과 싸움 끝에 사회적 압력에 밀린 삼성이 사과를 했지만 여전히 보상 문제에서 책임을 다하지 않고 있는 실정이다.

원진레이온에서 일하던 노동자들도 유사한 비극을 겪었다. 이 죽음의 공장에서 일하던 수많은 노동자들은 수은 중독으로 고통 받았는데 이 업체는 2만5천 시간 무재해 공장으로 표창까지 받았다. 1988년 한 청년 노동자의 죽음과 이후 결성된 피해자 가족 대책위 등의 활동 덕분에 이 사건이 세상에 널리 알려졌고 그 때까지도 산업재해 인정도 하지 않으려 하던 정부는 노동자들의 투쟁과 사회적 압력에 밀려 보상 대책에 나서게 됐다.

산업 재해와 안전 장비 마련을 위해 쓰여야 할 돈들이 기업들에게는 낭비였을 것이고 “암 덩어리”였을 것이다. 철저하게 기업의 이해 관계를 대변하는 정부는 규제 완화 등으로 “살인”적 돈벌이의 길을 닦아 줬다. 이렇게 안전을 볼모로 이뤄진 이윤 몰이로 기업들의 곳간이 쌓여가는 동안 노동자들과 무고한 사람들이 목숨을 잃고 고통을 겪어야 했다.

가습기 살균제 참사를 통해 우리는 자본주의 체제의 끔찍한 민낯을 또 한번 마주하고 있다. 가습기 참사가 “안방의 세월호”라고 불리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이런 비극이 반복되지 않으려면 이윤 몰이를 지상 과제로 삼는 체제의 우선순위에 근본적으로 도전해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