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중앙일보〉와 〈닛케이〉 신문이 20~40대 남녀 1천여 명을 상대로 한 설문조사에서 ‘결혼을 반드시 해야 하는가’ 하는 질문에 응답자의 절반 이상이 ‘아니’라고 답했다.

통계청에서 시행하는 〈사회조사〉에서도 결혼에 대한 태도 변화를 뚜렷이 볼 수 있다. 1998년에 ‘결혼을 반드시 해야 한다’고 답한 사람은 33.6퍼센트인 반면, 2014년에는 14.9퍼센트로 낮아졌다. 반면 ‘해도 좋고 하지 않아도 좋다’고 답한 사람은 1998년 23.8퍼센트에서 2014년 38.9퍼센트로 늘었다. 특히, 남성에 비해 여성이 결혼을 의무라기보다 선택으로 생각하는 경향이 뚜렷하다.

그 배경에는 여성들의 지위 변화가 있다. 여성의 교육 수준이 꾸준히 높아져 2009년부터는 여성의 대학진학률이 남성을 앞질렀다. 대학을 졸업하고 일자리를 얻는 것도 당연하게 여긴다. 여성의 경제활동 참가율은 2000년 이후 50퍼센트가량을 꾸준히 유지하고 있다. 30~50대 여성 고용률이 아직 다른 주요 산업국보다 떨어지긴 하지만, 그럼에도 한국에서 여성의 노동시장 참여는 보편적 현상이 됐다. 여성 노동자들이 한국 자본주의에 없어서는 안 될 필수적 노동력이라는 점은 부인할 수 없는 현실이다.

물론 이런 변화는 부분적이고 모순적이다. 노동시장과 가족 등 사회 곳곳에서 여성에 대한 체계적 차별은 유지되고 있다. 오늘날 여성의 몸을 비하하는 성 상품화가 만연해 있다.

그럼에도 수십 년간의 이런 변화가 여성들의 결혼(가족)과 성 규범에 대한 태도를 변화시켰다. 많은 젊은 여성들이 ‘나는 엄마처럼 살지 않겠다’ 하고 말한다. 이제 여성들은 자신의 구실을 가정의 영역으로 제한하거나 가족을 위한 희생과 헌신을 당연하게 여기지 않는다. 성에 대해서도 훨씬 개방적으로 변했다. 동거, 이혼, 비(미)혼모 등에 대한 태도가 우호적으로 바뀌었고, 실제로 1인가구나 동거가족의 비율도 늘어나고 있다. 동성 결혼에 대한 태도도 빠르게 수용적으로 바뀌고 있다.

이처럼 여성의 경제적·정서적 자립성이 높아진 건 좋은 일이다. 여성들이 가정 안에서 가사와 양육에만 얽매여 사는 것은 개인적 성취와 정신건강을 위해서도, 여성들이 더 많이 사회운동에 참가하고 나아가 여성 해방을 위해 싸우는 데서도 좋지 않다.

〈슈퍼맨이 돌아 왔다〉

그러나 국가와 보수주의자들은 여전히 가족에 대한 환상을 부추기고 전통적 가족 가치를 강조한다. 특히 가족의 ‘위기’가 심화될수록 더욱 보수적 가족 가치를 강화하려고 애쓴다.

조혼인율(인구 1천 명당 혼인건수)이 1970년 통계 작성 이후 역대 최저였던 지난해에 보건복지부는 결혼정보회사와 함께 결혼 장려 공익캠페인을 벌였다. ‘2030세대’들에게 “결혼=행복”이라는 인식을 부여하겠다면서 말이다. 복지부 고위 관계자가 “싱글세” 운운해서 빈축을 산 일도 있었다.

전 교육부총리 황우여는 집무실에 직원들의 ‘처녀 총각 현황판’을 붙여 놓기까지 했다. ‘좋은 가정을 꾸려야 일도 잘할 수 있다’느니, ‘미혼자가 많은 과장은 국장이 되지 못하게 하겠다’느니 하면서 말이다.

대중매체도 온갖 짝짓기 프로그램, 가상 결혼, 육아 리얼리티 등을 통해 행복한 결혼과 출산을 부추긴다. 〈슈퍼맨이 돌아왔다〉에서는 아이들의 천진함과 사랑스러움이 한껏 강조된다. 아버지는 아이들을 위해 연월차를 팍팍 내고 아이들과 캠핑여행, 놀이시설 체험, 먹거리 나들이에 나선다. 부부는 화목하다. 그러나 이것이 장시간 노동에 시달리고 돈에 쪼들리는 평범한 노동계급 가정에서 가능할까?

위에서 언급한 〈중앙일보〉와 〈닛케이〉 신문의 설문조사에서 또 하나 눈여겨볼 만한 것이 있다. 결혼의 장애물이 무엇이냐는 질문에 한국의 응답자 75퍼센트가 ‘경제적 어려움’을 꼽았다.(일본의 응답자는 ‘행동의 자유 제약’을 가장 많이 꼽았다.)

즉, 청년들의 경제적 어려움이 결혼 감소의 주요한 요인으로 작용하고 있는 것이다. 오늘날 청년들은 높은 청년 실업, 불안정한 일자리, 불투명한 미래 속에 내몰려 있다. 연애, 결혼, 출산 등을 포기한 ‘N포세대’라고도 불린다.

웨딩컨설팅 업체 듀오웨드가 발표한 ‘2016 결혼 비용 실태 보고서’를 보면, 서울·수도권의 신혼부부가 결혼할 때 쓰는 돈이 평균 2억 7천만 원이다. 주택에 드는 비용이 그중 70퍼센트가량을 차지하고, 예식장, 예물, 예단, 혼수용품에도 1천만~2천만 원이 예사로 들어간다. 여유 있는 부모의 지원 없이 청년들이 스스로 너무 ‘후지지’ 않은 예식장에서 아름답게 결혼하고 서울에 전셋집을 마련해 ‘정상적’으로 신혼을 시작하는 건 불가능하다.

지난해 말 박근혜 정부는 ‘3차 저출산 고령사회 기본계획(2016~2020)’을 세우며 저출산의 주된 원인으로 “만혼”과 “비혼”을 지목했다. 그리고 신혼 부부에게 전세자금 지원, 임신출산 비용 면제 등 몇 가지 지원책을 내놨다. 그러나 이런 알량한 지원으로 결혼에 대한 사람들의 부담을 덜기 만무하다. 게다가 정부는 ‘3차 기본계획’에서도 청년 일자리를 만든다며 ‘노동개혁’을 빼놓지 않았다. 기승전’노동개혁’이라 할 만하다.

안식처

저들이 이처럼 결혼과 가족에 대한 실질적 지원은 충분히 하지 않으면서도 (정상)가족의 소중함을 찬양하고 결혼·출산을 부추기는 이유는 자본주의에서 가족제도가 하는 구실 때문이다. 자본주의에서 가족은 자녀 양육, 음식 준비 등 현재와 미래의 노동력을 재생산하고 늙거나 병들어서 더는 노동을 판매할 수 없는 가족 구성원을 부양하는 유일한 기관이다. 체제 유지를 위해 꼭 필요한 재생산과 개인에 대한 복지를 개별 가정(특히 여성)이 떠안는 것은 지배자들에게 상당한 이득이 된다. 가족이 ‘위기’에 처할수록 저들이 더 가족 가치를 강조하는 이유다.

물론 노동자들도 가족을 필요로 한다. 가족은 냉혹한 세상의 안식처처럼 여겨진다. 세상이 냉혹해질수록 가족이 구성원들의 정서적·물질적 필요를 효과적으로 보호할 수 없게 되지만, 기댈 곳 없는 사람들에게 가족에 대한 욕구와 기대는 더 커진다. 〈사회조사〉에서 2백만 원 미만의 가구소득자들이 그 이상의 소득을 얻는 사람들보다 ‘결혼의 필요성’에 더 강하게 동의하는 것도 이런 이유 때문일 것이다.

그럼에도 결혼을 할 것인지 말 것인지, 언제 누구와 결혼을 할 것인지, 어떻게 가족을 구성할 것인지는 온전하게 개인의 선택이 돼야 한다. 그러기 위해서는 무엇보다 사람들이 경제적인 이유로 결혼에 얽매일 수밖에 없거나 반대로 결혼을 하지 못하는 현실이 사라져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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