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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 난민의 날 맞이 기자회견:
"정부는 난민들에게 문을 열어라!"

오늘 6월 20일은 유엔이 정한 세계 난민의 날이다. 난민의 날을 맞아 인천국제공항에서 ‘경계에 갇힌 난민들에게 문을 열어라!’ 기자회견이 난민지원네트워크, 이주공동행동, 인천이주운동연대, 헬프시리아 주최로 열렸다.

아직도 시리아 난민신청자 28명이 입국이 거부돼 인천공항 송환대기실에 반 년 넘게 구금돼 있다.(본지에 실린 시리아 난민 28명 즉각 난민으로 인정하라 를 보시오.) 이 문제는 이번 기자회견이 열리는 계기가 됐다.

"시리아 난민 28명 즉각 난민으로 인정하라" 인천국제공항에서 열린 세계 난민의 날 맞이 기자회견 ⓒ임준형

구금된 시리아 난민들은 변호사와 지원 단체들의 도움을 받아 난민 심사 기회를 부여하라고 집단 소송을 진행했고, 지난 6월 17일에 28명 중 19명에 대한 선고가 진행됐다. 인천지방법원은 이들에게 난민 인정 심사를 받을 기회를 주라고 판결했다. 매우 당연한 결과이다.

그러나 이 난민들도 이제 겨우 난민 인정 심사를 받을 수 있게 된 것이지 난민으로 인정된 것이 아니다. 정부가 이번 판결에 항소를 하면 이 난민들은 또다시 기약 없이 송환대기실에 갇혀 있어야 한다. 앞으로도 이들은 난민 인정 심사는 얼마나 걸릴지, 난민 인정을 받을 수 있을지 알 수 없는 힘든 시기를 버텨야 한다.

소송 진행 과정은 한국 정부가 얼마나 난민을 받지 않으려고 하는지 보여 줬다. 정부는 당사자들에게 난민 인정 심사 기회를 주지 않은 이유가 무엇인지조차 알려 주지 않았고, 소송 과정에서야 확인할 수 있었다.

정부가 밝힌 이유 중 하나는 시리아 난민들이 경유해 온 터키 등이 ‘안전한 나라’라는 것이었다. 그러나 난민의 날을 하루 앞둔 바로 어제, 터키 국경을 넘던 시리아 난민들이 터키 군의 총에 맞아 목숨을 잃었다. 그 중 4명은 어린이들이었다.

또한 정부는 파리 참사를 난민들이 저질렀다는 이유도 들었는데 이는 근거도 없이 난민을 잠재적 테러리스트 취급하는 것인 데다가 아예 거짓말이다. 파리 참사를 일으킨 자들은 모두 유럽에서 나고 자란 사람들이었다.

정부의 이런 억지 때문에 시리아 난민들이 송환대기실에 구금돼 있는 동안 겪어야 했던 고통은 이루 다 말할 수 없다. 공익법센터 어필의 이일 변호사는 시리아 난민신청자들이 “제 때 신경치료를 받지 못해 심각한 통증을 호소하는 등 다양한 질환들을 겪고 있다. 한 명은 지난 주에 동생이 시리아에서 폭격으로 죽었다는 소식을 들었는데 아무것도 할 수 없어서 송환대기실에서 울부짖었다”며 정부의 난민 정책을 비판했다.

우리는 난민을 환영한다 ⓒ임준형

시리아 난민 지원 단체 ‘헬프 시리아’ 기획국장이고 시리아인인 압둘 와합 씨는 시리아인들이 난민이 될 수밖에 없는 상황을 생생하게 전달했다.

“폭격, 정부군·반군·아이시스의 싸움과 납치가 끊이지 않는다. 물가는 너무 비싸고 의료와 교육 시스템은 아예 없어졌다. 집에 가만히 있으면 죽어야 한다는 결론 밖에 안 나온다. 여기서 삶을 멈추고 싶지 않아서 어쩔 수 없이 다른 나라로 탈출한다. 안타깝게도 여러 나라들이 국경을 닫았는데, 난민들은 계속 탈출하고 있다. 어렵다는 단어로는 탈출이 얼마나 위험한지를 다 표현할 수 없다.

“일반인들은 열심히 관심을 갖고 도와 주고 있는데 거의 모든 정부들은 관심을 보여 주지 않는다. [시리아인들이 있는 해외의] 난민 캠프에 갔을 때 왜 한국 정부는 몇 명 되지 않는 시리아 난민들을 입국시키지 않느냐는 질문을 많이 받았다. 어떻게 대답해야 할지 곤란하고 부끄러웠다.”

또한 참가자들은 한국에서 열악한 난민들의 상황을 알리며 난민 인정을 확대하고 처우를 보장하라고 요구했다.

지난해 난민 신청자는 5천7백 명을 넘었지만 가족 결합과 재정착, 행정 소송에서 이겨 인정받는 숫자를 제외하고 온전히 법무부 단계에서의 난민 인정을 받은 사람은 단 40명뿐이었다. 심사 인력이 매우 부족해 난민 인정 심사 과정에서도 졸속으로 이뤄지고 있다. 면접 시 영상 녹화나 통역 제공도 제대로 이루어지지 않고 있다. 난민 신청자나 인도적 체류자에게 사회보장, 교육, 의료, 가족 결합 등은 보장되지 않는다.

난민인권센터 고은지 활동가는 난민 인정자에 대한 지원도 제대로 이뤄지지 않고 있다고 말했다.

“난민 지위를 인정받더라도 초기 정착 과정에서 난민법에 나와 있는 처우 규정조차 이행되지 않아 한국을 떠나는 경우도 많다. 인생의 중요한 시기에 본국의 박해를 피해서 온 사람들이 왜 한국에서 2, 3차로 고통을 받아야 하는가? 그 분들을 위해서 한국 정부는 환대의 문을 열어 줘야 한다.”

이주노조 우다야 라이 위원장도 “난민법에 따르면 이후 난민 신청을 하고 6개월이 지나면 일할 수 있다. 그러나 실제로 난민들은 일을 구하기 어렵다. 또 정부는 6개월 동안 난민들이 생계를 이어가는 것에 대해 아무 대책이 없다. 한국 정부는 난민 인정을 대폭 늘리고 이주민으로 당당하게 한국 사회에서 살 수 있는 권리를 보장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인권공간 활의 랑 활동가는 “인권의 가장 기본조차 지키지 못하는 나라가 유엔인권이사회 의장국이고 유엔 사무총장을 맡고 있다. 인권은 장식품이 아니다”며 정부의 위선에 일침을 가했다.

법원은 6월 23일로 예정돼 있는 재판에서 나머지 시리아 난민 9명에 대해서도 난민 인정 심사 기회를 주는 판결을 내려야 하고, 이들을 즉각 난민으로 인정해야 한다. 난민 인정을 대폭 늘리고 지원을 강화하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