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해 12월 치러진 총선 결과, 그 어느 정당도 정부를 구성할 만큼의 의석을 차지하지 못했다. 이는 스페인이 민주화된 1977년 이래 처음 있는 일이었다. 지난 34년 동안 스페인 정치를 지배해 온 [중도좌파] 사회당(PSOE)과 보수정당인 국민당(PP)의 득표율 합계는 2008년 84퍼센트에서 2011년 73퍼센트로, 2015년에는 51퍼센트로 떨어졌다. 두 신생 정당, 좌파 정당 포데모스[‘우리는 할 수 있다’는 뜻]와 ‘중도’ [우파] 정당 시민당(시우다다노스)의 득표율 합계는 35퍼센트에 이르렀다.

그래서 [정부 구성을 위해서는] 선택지가 두 가지밖에 없었다. 첫째, 국민당과 사회당의 연립정부 구성이었다. 둘째, 사회당, 포데모스, 좌파연합(IU, 공산당이 주도한다) 등이 모여 좌파 정부를 구성하는 것이었다. 그러나 사회당은 두 선택지를 모두 선택하지 않았고, 시민당과 함께 ‘변화의 정부’를 구성하려 했다.

하지만 포데모스는 이런 연정 구성을 지지하지 않았고 이 연정에 참가하지도 않았다. 포데모스가 이 연정에 참가했더라면 의석을 절반 이상 보유한 정부가 구성됐겠지만, 포데모스의 거부로 정부가 구성되지 못했다. 그래서 6월 26일에 총선이 다시 치러지게 됐다.

지난해 12월 총선 때와 달리 이번에는 포데모스와 좌파연합이 ‘우니도스 포데모스’라는 선거연합을 구성했다.(‘우니도스 포데모스’는 ‘단결한 우리는 할 수 있다’는 뜻이다.)

득표율 분포가 12월 선거와 비슷하다면, 우니도스 포데모스는 역사적 돌파구를 이루며 의회 내 좌파 중에서 우세한 세력이 될 것이다. 여론 조사 결과를 보면, 우니도스 포데모스는 최소 25퍼센트를 득표할 것인데, 이는 포데모스와 좌파연합의 득표율을 합친 것과 비슷한 수준이다.

프랑코 독재 이후 스페인 정치

프랑코의 38년 독재는 1977년에 종식됐다. 정권 내 반대 분파와 민주화를 지지하는 야당 사이의 협약이 이뤄진 결과였다. 그 뒤 [정치적] 전환이 시작됐고, 이는 1982년 총선에서 사회당이 48퍼센트 득표라는 압승을 거두며 일단락됐다.

그 뒤 14년 동안 사회당은 스페인 자본주의의 ‘현대화’를 감독했다. 사회당 정부는 중공업을 대부분 해체하고, 임금 인상을 억제하고, 노동법의 규제를 완화해 노동시장을 엄청나게 ‘유연화’했다. 더 나아가 사회당 정부는 스페인의 나토·유럽연합 가입을 주선했다.(그 전까지 사회당은 스페인의 나토 가입을 반대했었다.)

동시에 사회당 정부는 공공서비스, 특히 보건과 교육을 강화했다. 그 수준이 흔히들 말하는 ‘스웨덴 모델’에 근접한 것은 결코 아니었지만, 프랑코 집권기에 견주면 사회당 정부의 공공서비스 강화 조처는 누구나 현격한 진보라고 볼만했다.

스페인 유권자들이 프랑코 정권 때의 경험을 여전히 생생히 기억하고 있었던 데다, 사회당 정부가 개혁을 이루면서 우파는 의회 내 소수파가 될 수밖에 없었다. 하지만 사회당 정부 하에서도 부패가 발생하고 노동계급의 생활조건을 악화시키는 공격이 계속 벌어지며, 결국 사회당에 대한 지지가 약해졌다. 그 결과, 1996년 국민당 정부가 들어서게 됐다.

2004년 사회당이 다시 집권했다. 이는 국민당 정부의 실책 덕분이었다. 특히 2004년 3월 11일 마드리드에서 일어난 테러 사건에 어리석게 대처한 것이 컸다. 국민당 정부는 바스크 분리주의 조직인 ‘바스크 조국과 자유’(ETA)가 테러를 저질렀다고 지목했다. 이라크 전쟁 지지로 말미암은 대중의 불만을 돌려 보려는 심산이었던 것이다. [그러나 이 테러는 ‘바스크 조국과 자유’와는 관계가 없고 오히려 이라크 전쟁에 대한 반감 때문에 생긴 일이었음이 곧 밝혀졌다. 스페인 대중은 이미 정부의 전쟁 지지 정책에 불만이 있었는데, 평범한 사람들이 희생당한 것에 분노가 증폭했다. 이 사건에 대한 정부의 거짓말은 이 분노에 기름을 붓는 격이었다. 마드리드에서만 수천 명이 밤샘 시위를 벌이는 등 큰 투쟁이 벌어졌다.]

[이런 국민당 정부의 실책으로] 사회당은 총선에서 깜짝 승리를 선물 받았지만, 나락으로 떨어지고 있던 스페인 경제를 관리해야 하는 처지에 놓였다.

실업률이 27퍼센트(25세 미만 청년 실업률은 50퍼센트 이상)까지 치솟고, 공공지출이 대거 삭감되고, 연금 지급 개시 연령이 늦춰지고, 노동법 개악으로 안 그래도 불안정한 노동조건이 더 열악해졌다. 사회당은 또 지지를 잃었고, 그 결과 2011년 국민당이 집권에 성공했다.

하지만 누구라도 예상할 수 있었다시피, 마리아노 라호이가 이끄는 국민당 정부는 전임 사회당 정부보다 훨씬 더 악독했다. 국민당 정부는 유럽연합한테 은행 구제금융을 받은 대가를 대중에게 전가하고, 공공서비스를 혹독하게 삭감하고, 노동자들의 실질임금을 떨어뜨렸다.(당시 스페인 노동자들의 임금은 이미 서유럽 최하위 수준이었다.)

게다가 국민당 내에 만연한 부패가 폭로됐다.(국민당이 건설업체들한테서 10년 넘게 뇌물을 받아 온 사실이 밝혀졌다.) 그 결과, 지난해 총선에서 국민당과 사회당의 양당 구도가 붕괴했다.

포데모스의 정치와 궤적

포데모스의 정계 진입 과정은 매우 극적이었다. 이를 잘 이해하려면, 2011년 벌어진 M15운동(또는 ‘인디그나도스’(분노한 사람들) 운동)이라는 맥락 속에서 봐야 한다. M15운동은 긴축에 반대하는 정서와 부패하고 비민주적인 정치권을 철저히 개혁하기 바라는 염원을 대변했다.

스페인 인구의 대략 25퍼센트가 이러저러한 방식으로 광장 점거 운동에 참가했다. 이 운동에 대한 지지는 매우 컸다. 한때 이 운동에 공감한다는 여론이 80퍼센트까지 올라가기도 했다.

M15운동은 긴축에 맞선 여러 저항을 고무하며 함께 일어났다. 반긴축 저항 운동의 대표 사례로는, 공공서비스를 지키기 위한 여러 ‘물결 운동’, 2012년 두 차례 일어난 총파업, 퇴거 명령에 맞서는 ‘주택담보대출 피해자 운동’(PAH)이 있다.

무엇보다 M15운동은 청년층 다수와 정치권(청년들의 기대를 완전히 저버린) 사이의 심각한 괴리를 상징했다.

‘주택담보대출 피해자 운동’을 제외하면, 이런 대중운동들이 성과를 거뒀다고 여기는 사람은 많지 않았다. 2013년이 되면 운동의 수위가 현저히 낮아졌다.

많은 활동가들은 정치적 대응이 필요했었다고 여겼다. [그러나] 내분으로 애를 먹고 있고 ‘구닥다리’ 인상도 강한 좌파연합은 그런 활동가들의 마음에 드는 세력은 아니었다.

2014년 [5월] 유럽의회 선거에서 포데모스는 [창당 넉 달 만에] 거의 8퍼센트를 득표했다. 이는 그 누구도 예상치 못한 성공이었다. 이 성공은 급진적 정치 대안을 찾던 사람들에게는 전환점 같은 일이었다. 이 신생 정당은 2015년 지방선거에서는 더 큰 성공을 거뒀다.

포데모스 자신의 후보와 포데모스가 지지한 후보들은 마드리드나 바르셀로나 같은 몇몇 지방정부에서 집권했고, 집권은 못했더라도 만만찮은 세력을 이뤘다.

포데모스 지도부는 유능하면서 언론을 많이 의식하는 젊은 대학강사들이 중심이다. 포데모스 지도부는 처음부터 새 정당은 정부 구성을 목표로 해야지, ‘구좌파’처럼 저항 운동만 해서는 안 된다고 주장했다.

에르네스토 라클라우와 샹탈 무페의 네오그람시주의적 민중주의 이론에 기대는 포데모스 지도부는 좌/우라는 이분법을 극복하길 바라고, 정치 위기와 경제 위기의 중첩으로 생긴 ‘기회의 창’이 열려 있을 때 수권하기를 바란다.

대중운동은 더는 포데모스 지도부의 전략의 일부가 아니다. 포데모스 지도부의 전략은, 새 세대 의원들을 배출해 그들이 민주주의 제도 내에서 그 제도들을 전환시킨다는 것이다.

포데모스의 선거적 성공은 처음의 강령에 있던 급진적 요소들이 점점 폐기되는 과정을 수반했다. 이처럼 급진적 요소를 점차 폐기하면서, 포데모스 지도부는 당의 지지 기반을 확장하고 공약을 이행하기 위해서는 이런 온건화 조처가 필수적이라고 포장했다.

그런 이유로 우니도스 포데모스의 15개조 강령에는 스페인 좌파가 꾸준히 요구해 온 것들이 빠져 있다. 나토 탈퇴, 공화국 수립[스페인은 여전히 국왕이 있는 입헌군주제이다], 전략 산업 국유화, 부채 탕감 등이 그것이다.

우니도스 포데모스는 2010년과 2012년에 추진된 노동개악을 철회시키겠다고 약속한다.(그 전에 추진된 것을 철회시킨다는 것은 아니다.) 사회당 정부 때 추진된 연금개악을 철회시키겠다고 약속한다.(그러나 이런 조처들로는 공공지출이 몇 년 전 수준으로 회복될 뿐이다.) 세금 포탈을 근절하고 세율을 유럽연합 평균 수준인 9퍼센트로 올려 공공지출 확대를 위한 재원을 마련하겠다고 약속한다.

우니도스 포데모스는 이런 조처를 추진하는 것과 더불어 부채 상환 문제를 놓고 유럽연합과 재협상하겠다고 약속한다. 마지막으로 우니도스 포데모스는 부패, 그중에서도 ‘회전문 현상’을 근절하겠다고 약속한다. 회전문 현상은 정부 각료 출신자가 기업 이사진으로 갔다가 다시 정부 각료로 돌아오는 현상을 말한다.

하지만 우니도스 포데모스의 진정한 변별점은 카탈루냐에서 분리 독립 주민투표를 시행할 권리를 인정한다는 점이다. 그리고 집권 뒤 공약을 이행하지 않으면 소환을 받겠다고 약속한다는 점이다.

총선 결과 전망

이번 6월 총선 결과, 국민당을 중심으로 시민당과 사회당이 참여하는 연정이 구성될 가능성이 가장 높다. 물론 사회당 대표 페드로 산체스는 국민당과 연정을 하지 않겠다고 주장한다.

하지만 지난해 12월 총선 뒤 페드로 산체스는 포데모스와의 연정 구성에 반대했다. 당시는 사회당이 2위를 하고 포데모스가 3위를 했던 상황이었다. 이를 보건대, 이제 포데모스의 득표가 더 클 것 같은 상황에서 사회당이 포데모스와 함께 연정을 구성할 가능성은 없는 듯하다.

사회당은 대기업과 이른바 ‘국익’을 강하게 지지하므로 어떤 대가를 치르더라도 포데모스와 함께 연정을 구성하지는 않으려 할 듯하다. 우니도스 포데모스는 카탈루냐 분리 독립 주민투표를 지지하지만, 사회당은 이것이 ‘스페인의 단결’을 해칠 것이라고 보므로, 이 쟁점도 사회당과 포데모스의 연정을 어렵게 하는 요인이다.

사회당은 국민당과 연정을 꾸리면서 당리당략보다는 국익을 우선해야 한다는 변명을 할 수 있다. 사회당은 스페인이 겪고 있는 여러 문제의 주범으로 국민당 대표 라호이를 지목하고 있는데, 연정 구성을 위해 라호이가 물러날 가능성도 있다.

[사회당보다는 우니도스 포데모스의 득표가 더 많을 것으로 예상되니,] 좌파에게 패배한 책임을 진다며 페드로 산체스가 사회당 대표 자리에서 물러날 가능성이 있다. 그러면 안달루시아 주지사인 수잔나 디아즈가 당대표가 될 텐데, 그는 우파 정당과 대연정을 구성하는 것에 더 호의적이다.

어떤 세력이 정부를 구성하더라도 유럽연합은 부채 수준을 낮춰야 한다며 스페인에 긴축 정책을 또다시 시행하라고 강요할 것이다.

포데모스는 연정에 참여하지 않고 야당으로 머무름으로써, 그리고 집권당이라면 지게 될 현실의 무게를 지지 않음으로써 단기적으로 득을 볼 것이다.(그리스의 시리자는 이 현실의 압력 앞에서 자신의 한계를 빠르게 드러냈다.)

포데모스는 창당 뒤 1년 동안은 시리자를 자신들의 본보기로 내세웠다. 그러나 지금은 더는 그러지 않는다.

사실 포데모스 대표 파블로 이글레시아스는 시리자의 알렉시스 치프라스가 트로이카에 투항한 것은 합당하지 않은 일이었다고 비판했다. 그런데 이글레시아스는 스페인에서는 그리스에서와 같은 일이 일어나지 않을 것이라고 주장했다. 스페인 경제(유론존에서 네 번째로 크다)가 그리스 경제보다 더 중요하고, 스페인의 민주주의 제도들이 더 견고해 외압으로부터 더 잘 저항할 수 있다는 것이 그 이유였다.

하지만 이런 질문을 던지지 않을 수 없다. 스페인의 민주주의 제도가 이미 그렇게 견고하다면, (포데모스 정치의 핵심 요소인) 스페인 민주주의의 급진적 개혁은 도대체 왜 필요한 것인가?

왼쪽을 향하기

포데모스가 계속해서 정책을 온건화시키고, ‘스웨덴 모델’을 미화하며 그것을 따르자고 공공연히 주장하는 것을 보며, 많은 극좌파들이 포데모스는 회복하기 힘들 정도로 체제에 타협해 버렸다고 일축한다. 심지어는 포데모스가, 스스로 맞서 싸우겠다고 했던 ‘카스트’의 일부가 된 것 아니냐는 비난도 있다.

특히 이글레시아스가 SNS에서 격렬한 비판을 받고 있다. 하지만 이런 일차원적 관점은 포데모스가 스페인 정치에서 갖는 의미를 제대로 이해할 수 없다.

지난해 치러진 선거들의 결과를 보면, ‘혁신된’ 좌파(비록 그 ‘혁신된’ 좌파의 정치가 개혁주의이지만)의 대중적 기반이 크다는 것을 알 수 있다. 갈리시아와 발렌시아에서는 좌파 민족주의자와 좌파연합의 선거연합이 중요한 승리를 거뒀다. 카탈루냐에서는 ‘카탈루냐 적록 이니셔티브’, 좌파연합, 엔 코무(‘함께’라는 뜻) 등이 함께한 광범한 선거연합이 좋은 성과를 거두었다.

또, 지난해 5월 마드리드 지방선거 때 포데모스는 단독으로 출마한 선거구에서보다 광범한 선거연합에 참가한 선거구에서 더 좋은 성과를 거뒀다. 이 사실은 이글레시아스 등이 주창하는 좌파적 포퓰리즘보다 더 왼쪽 세력의 흡인력도 만만치 않다는 것을 보여 줬다.

지난해 12월 총선에서 이글레시아스는 이 점을 잘 알고 있었다. 그래서 포데모스의 선거 강령은 꽤나 온건한 버전의 사회민주주의적 강령이었지만, 이글레시아스의 연설은 스페인 좌파들이 공유하는 전통과 이상을 많이 차용했다. 예컨대 반파시즘에 대한 헌신, 프랑코 정권을 끌어내리는 데서 노동계급이 한 구실을 인정하기, 부자들과 권력자들의 부패에 대한 반대를 강조했다.

이보다 더 중요한 사건은 그가 국회에서 연설하며 사회당을 공격해 모두를 놀라게 한 것이었다. 그는 사회당 지도자 일부가 1980년대에 ‘바스크 조국과 자유’를 탄압하기 위해 조직된 암살조직 ‘반테러리스트 해방단’(GAL)의 일원이었다는 것을 비판했다. 이 연설을 통해 이글레시아스는 포데모스와, 그 전까지는 동맹으로 여겨지던 사회당 사이의 단절을 확실히 그었다.

이런 지향 변화는 이글레시아스와 ‘2인자’ 이니고 에레혼(포데모스 대변인)이 불화를 겪는 것에서도 나타난다. 에레혼은 포데모스가 본연의 횡단적[계급 협력적] 성격을 유지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예를 들어 에레혼은 포데모스가 다른 세력과 동맹을 맺어야 한다는 점에는 동의한다. 그러나 “새 나라를 세우기 위해서”는 “이미 좌파를 자처하는 사람들” 말고도 더 많은 사람들을 동맹으로 끌어들여야 한다고 주장한다.

에레혼에 따르면, 그 동맹은 “스페인 국가의 이데올로기적·사회적 다양성”을 반영해야 하고, 국민당·사회당 지지자와 투표 기권자들도 “우리 국민”이라는 점을 잊어서는 안 된다.

많은 급진좌파가 에레혼의 정치에 불편함을 느끼는 것은 이해할 수 있는 일이다.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변화와 사회정의를 바라는 광범한 대중과 관계 맺을 필요가 사라지는 것은 아니다.

의회 민주주주의 틀 안의 정부라면, 심지어 자본의 우선순위를 반대하는 정부조차 큰 문제에 봉착할 것임을 분명히 지적할 필요가 있다.

역사에는 자본가들의 견고한 이해관계를 넘어서지 못한 실패 사례들이 많다. 이런 문제들을 쉬쉬하거나(포데모스의 지도적 인사들이 하고 있는 것처럼), 이번에는 ‘다를 거야’ 하고 여기는 것은 그런 실패를 극복하는 데 도움이 안 된다.

포데모스와 그 동맹 세력이 사회당보다 더 많이 득표하면, 그 파장은 스페인 정치 전반에 영향을 끼칠 것이다. 십중팔구 이글레시아스와 포데모스는 국민당 주도 정부에 맞서는 원내 야당의 수장 구실을 할 것이다.

하지만 포데모스는 여전히 대중운동을 조직하는 데 계속 애써야 한다. 그러지 않는다면 다음 번 긴축 공격 때 잘 저항할 가능성이 낮아질 것이고, 포데모스가 진정한 대안으로서 내세워질 가능성은 더 낮아질 것이다.

출처: 미국 좌파 사이트 <자코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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