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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중국해 ─ 미국과 중국 제국주의 갈등이 낳은 지정학적 화약고

2013년 중국 선박들이 황옌다오(스카보러 섬)은 중국의 배타적경제수역에 포함된다고 주장하며 철수를 거부하자, 필리핀은 남중국해 영유권 분쟁을 국제중재재판소(PCA)에 제소했다. 필리핀은 중국이 영해를 주장하려고 임의로 설정한 ‘남중국해 9단선’(1947년 장제스가 처음 발표한 이후 1949년 공산당 정권도 수용했다)이 남중국해의 80퍼센트 이상을 포함한다며 유엔해양법협약(UNCLOS) 위반이라고 주장한다. 국제중재재판소의 남중국해 분쟁 중재 재판에서 중국이 패소할 것으로 예상되는 가운데 최근 남중국해에서 제국주의 열강 사이의 갈등이 고조되고 있다

해마다 세계 해상 운송의 3분의 1 이상이 남중국해를 거쳐 간다. 남중국해 주요 군도 중 난샤(스프래틀리, 베트남명 쯔엉사)와 시샤(패러셀, 베트남명 호엉사)는 중국 정부가 호시탐탐 노리는 곳으로, 가장 첨예한 분쟁지역이다. 이 지역에는 석유와 천연가스 같은 천연자원이 어마어마하게 매장돼 있고, 세계 어류 자원의 10분의 1이 몰려 있어 그 가치가 매우 크다.

첨예해지는 군사적 갈등

요즘 들어 남중국해에서 군사적 충돌이 격화하고 있다. 2012년 4월 초 황옌다오에서 중국과 필리핀 함정이 두 달 동안 대치했고, 미국과 필리핀은 인근에서 연합 군사훈련을 벌였다. 중국은 영토 분쟁에서 우위를 차지하려고 남중국해 곳곳에 인공섬을 건설해 왔고 미국은 이에 예민하게 반응했다. 미국과 필리핀은 주기적으로 대규모 연합 훈련을 벌이고 있다.

올해 6월 23일 인도네시아 대통령 조코 위도도가 남중국해의 나투나 제도를 전격 방문했는데, 그동안 영유권 분쟁에서 한발 비켜서 있던 동남아시아의 강국 인도네시아가 가세하면서 긴장이 고조되고 있다. 인도네시아는 이미 6월 9일부터 역대 최대 규모의 해상 훈련을 나투나 제도 부근에서 진행한 바 있다.

인도도 이 경쟁에 뛰어들었다. 인도 동부함대 사령관은 인도 해군이 남중국해에서 자유롭게 항해할 수 있어야 한다고 주장했다. 인도 국방 장관도 이달 초 열린 지역 안보 회의에서 “역내 한 국가의 공격적 행동이 이 지역 공동 번영의 길을 위협할 수 있다는 점을 깨달을 필요가 있다”며 중국에 직격탄을 날렸다. 미국과 일본 그리고 인도는 군사 협력의 수준을 차츰 높이고 있고, 6월 15일 남중국해에서 대규모 합동 군사훈련을 실시했다.

올해 5월 미국 대통령 오바마는 베트남을 방문해, 1984년부터 지속해 온 무기 금수 조처를 해제하고 경비정, 잠수함, 폭격기, 미사일, 레이더 등을 베트남에 수출할 길을 텄다. 《타임》은 이 행보가 “모두 중국을 겨냥한 것”이라 꼬집었다. 겉으로는 “과거와의 화해”를 부르짖었지만, 대중국 포위망을 넓혀 가려는 의도가 다분하기 때문이었다. 이에 따라 미국 군함이 남중국해 서쪽의 군사 거점인 캄란 만(베트남 전쟁 당시 미 해군 기지)을 이용할 수 있을 것이란 전망이 나왔으며, 베트남 정부의 환태평양경제동반자협정(TPP) 비준 처리도 속도를 낼 것으로 보인다.

오바마의 베트남 방문 이전인 올해 1월 12일 필리핀에서는 미국과 맺은 방위협력확대협정(EDCA)이 합헌으로 결정 났고, 그 결과 1990년대 초에 쫓겨난 미군이 다시금 필리핀에 병력을 배치할 수 있게 됐다. 남중국해에서 미국이 중국을 더욱 압박할 태세를 갖추는 것이다.

미국과 필리핀의 군사 협력은 중국이 특별히 우려하는 일이다. 남중국해에서 분쟁이 가장 치열한 곳인 필리핀 주변을 미군이 훤히 들여다볼 수 있게 되기 때문이다. 난샤 군도를 둘러싼 갈등이 심각해지자, 필리핀 정부는 2012년 남중국해 일부 해역의 명칭을 ‘서필리핀해’로 공식 변경했다. 일본도 올해 협정을 맺어 필리핀에 무기와 기술을 수출하기 시작했다.

국제중재재판소의 판결을 앞두고, 중국은 남중국해가 중국 영해라는 주장을 펴려고 제3국의 문헌을 발굴하는 데 열을 올리고 있다. 이른바 ‘역사 공정’ 작업에 나서서 남중국해가 자국 영해임을 뒷받침하겠다는 것이다. 그러나 지금껏 중국이 ‘역사상의 권리’라고 주장하며 근거로 댄 옛 문서들에서는 난샤와 시샤 관련 내용을 단 한 줄도 찾아볼 수가 없다. 사실 남중국해의 섬들은 사람이 살지 않은 곳으로, 역사적 증거를 대는 것이 거의 불가능하다. 예부터 여러 나라가 남중국해를 함께 이용했다는 것만이 유일한 진실이다.

참고로 미국 공화당 대선 후보인 도널드 트럼프의 행보도 꽤 의미심장하다. 트럼프는 중국의 엄청난 대미 무역 흑자를 비판하며 “더는 중국이 미국을 겁탈하도록 놔둘 수 없다”라고 주장했다. 트럼프가 집권하면 동아시아의 패권 다툼도 더 거세질 수 있다. 물론 오바마의 정책들을 이어받을 민주당의 힐러리 클린턴도 갈등 유발자라는 비판에서 전혀 자유롭지 못하다.

미국의 중심축 이동

과거에도 남중국해에서는 갈등과 소규모 군사 대결이 있었지만, 최근에는 두 제국주의 강대국(미국, 중국)의 힘겨루기 양상을 띠는 것이 특징이다. 그리고 세계경제가 위기를 거듭하면서, 무역과 경제 문제를 놓고 서로 험악해진 미국과 중국 사이의 갈등도 남중국해 충돌의 배경에 있다.

2011년 오바마 정부는 아시아·태평양 지역으로 ‘중심축’을 이동시켜 군사 자원을 재배치하겠다고 밝혔다. 지난해 미국은 중국을 뺀 11개국과 환태평양경제동반자협정(TPP)을 타결해 아시아에서 영향력을 확대하는 데 힘을 싣기도 했다. 오바마는 5월 2일 〈워싱턴 포스트〉에 이렇게 썼다. “미국이 규칙을 만들어야 한다. 미국은 사태 변화를 앞질러 가야 한다. 다른 나라는 미국과 우리 우방이 정해 놓은 규칙을 따르면 된다. 거꾸로 우리가 규칙을 따르는 일은 없어야 한다.”

세계적 군사정보업체인 IHS제인스가 내다본 바에 따르면, 미국이 아시아·태평양 지역에서 쓰는 군사비는 해마다 23퍼센트씩 늘어 2020년에는 5천3백30억 달러에 이를 것이다. 일본의 아베 정부도 여기에 동참하며 군사대국화를 모색하고 있고, 대만 총통으로 새로 뽑힌 민진당의 차이잉원도 TPP 가입을 추진하고 있다. 박근혜 정부도 사드 배치 등에서 미국 제국주의에 협력한다.

미국의 제국주의 전략 이면에는 중국의 부상이 있다. 이제 중국은 미국의 동맹인 일본, 호주, 한국, 인도 등의 최대 무역 파트너가 됐다. 중국의 동남아국가연합(ASEAN) 소속 10개국과의 무역 규모는 2014년 4천8백억 달러를 넘어섰는데, 이는 ASEAN의 일본·미국 교역량을 더한 것보다 많다. 10개국 가운데는 남중국해를 둘러싸고 중국과 분쟁을 벌이고 있는 4개국이 있다. 최근 ASEAN이 중국을 겨냥해 작성한 남중국해 성명서가 채택됐다가 느닷없이 철회된 배경에는 중국에 대한 ASEAN 국가들의 입장 차이가 있었다.

중국의 남중국해 전략은 해군력 증강과 더불어 인공섬 매립도 포함한다. 중국은 남중국해에 항구, 활주로, 레이더 기지 등 군사 시설을 건립해 통제력을 공고화하려 한다. 이를 두고 미군 태평양함대 사령관은 중국이 바다에 “만리장성을 쌓고 있다”며 비난했다. 중국 정부는 앞으로 대만과 충돌이 벌어질 때를 대비해 미리 남중국해에서 미국의 힘을 억제하고자 한다. 중국은 남중국해에서 이른바 ‘살라미 썰기’ 전술(이탈리아식 소시지인 살라미를 통째로 훔치기보다는 얇게 썰어 조금씩 훔친다는 뜻의 전술)을 쓰고 있다.

그렇지만 중국이 해군력을 아무리 빠르게 증강한다 할지라도, 미국의 군사력을 따라가기는 멀었다는 것이 분명한 사실이다. 미국이 보유한 항공모함은 10척으로 나머지 국가들이 보유한 항공모함을 모두 합한 것보다 많다. 중국은 겨우 1척을 갖고 있다. 군사력 면에서도 중국이 세계 2위의 군사비 지출국이 됐지만, 미국은 중국 군사비의 거의 3배를 지출한다.

어느 편에 설 것인가

동아시아 불안정이 격화되는 것을 막으려면 미국과 중국의 어느 편도 들어선 안 된다. 이 지역의 노동계급과 좌파는 자국 정부와는 독립적인 위치에 서서, 서로 으르렁대는 정부들의 정책에 일체 반대해야 한다. 사회주의자들은 노동계급과 보통사람들의 이익이라는 관점에서 국적이 아닌 국제주의를 지향해야 한다.

사회주의자들은 무기 경쟁과 군사화를 반대한다. 군사비 증대는 보통사람들에게 하등 도움이 안 된다. 그런데 지난해 미국과 중국은 말할 것도 없고 인도네시아(16퍼센트), 필리핀(25퍼센트), 베트남(7.6퍼센트)도 모두 군사비 지출을 대폭 늘렸다. 굶주리는 자국민이 여전히 많은데도 말이다.

남중국해 분쟁의 본질은 미국과 중국이 군사적·경제적 경쟁을 통해 아시아 패권을 추구하는 것이다. 사회주의자들은 미국의 중심축 이동 같은 군사 정책과 TPP 같은 신자유주의 경제 블록을 반대하고, 아시아에서 미군의 철수를 요구해야 한다. 이와 더불어 군사·경제 정책으로 노동자와 서민을 더욱 피폐하게 만드는 중국 지배자들도 반대해야 한다.

이렇듯, 사회주의자들은 아래로부터의 반제국주의 운동에 기대야 한다. 지금 당장 남중국해 분쟁이 미국과 중국의 전면전으로 번지지는 않을지라도, 자본주의 동역학에 기초한 제국주의에 일관되게 반대하며 미래 운동을 위한 토대를 쌓아 나아가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