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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라크 전쟁에 관한 영국 칠콧 보고서:
신노동당 정부의 전쟁 거짓말이 드러나다

2003년 3월 20일, 미국과 영국은 이라크를 침공했다. 당시 미국 대통령 조지 부시와 영국 총리 토니 블레어는 이라크의 대량살상무기가 세계 평화를 위협한다고 주장하며 침공을 정당화했다.

그러나 침공 이후 미국과 영국은 이라크를 샅샅이 뒤졌지만 대량살상무기는 없었다. 이것은 단순한 착오가 아니었다. 전쟁 전부터 반전 운동은 대량살상무기는 침공의 거짓 구실일 뿐 진정한 이유는 석유와 패권을 위한 것이라고 주장했다.

7월 초에 발간된 영국 정부의 이라크 침공 진상 보고서(칠콧 보고서)는 정부 최고위층의 자료를 근거로 반전 운동의 주장이 옳았음을 인정했다.

침공 8개월 전인 2002년 8월에 이미 블레어는 부시에게 영국은 “무슨 일이 있어도” 함께 행동하겠다는 편지를 썼다고 보고서는 폭로했다. 결론은 이미 내려져 있었고, 당시 노동당 정부가 진행 중이던 각종 ‘전문가 의견 청취’, ‘대량살상무기에 관한 조사’는 그저 요식행위였던 것이다.

"거짓말쟁이 살인마 블레어" 영국 반전 운동은 이라크를 침공한 블레어를 처벌하라고 요구하고 있다. 〈소셜리스트 워커〉

침공 명분을 만들어 내려고 블레어 정부가 얼마나 허둥지둥했는지도 볼 수 있다. 원래 정부는 이란, 리비아, 북한, 이라크의 위협을 나란히 비교하며 그중 이라크가 가장 심각하다는 내용의 백서를 발간할 요량이었다. 그러나 정작 백서 초안이 나오자 “외무장관은 어째서 이라크가 네 나라들 중 가장 위협적인지 이번 초안이 제대로 드러내지 못한다고 느꼈다”. 결국 나머지 세 나라는 빼고 이라크만 다루되, ‘이라크의 대량살상무기로 45분 안에 공격할 수 있는 거리에 영국군이 있다’는 내용을 넣었다. 언론은 이를 대서특필했다.

칠콧 경은 이번 보고서를 발표하는 자리에서 다음과 같이 말했다. “이라크에 관한 정책은 부실한 정보와 평가에 바탕을 두고 있었다는 것이 이제 명확해졌다. 그런 부실함은 [내부적으로] 도전 받아야 했지만 그러지 못했다.”

노동당 대표 제러미 코빈(그 자신은 당시 전쟁에 반대했다)은 이번 보고서의 정치적 의미를 더 분명하게 표현했다. “이라크 전쟁은 거짓 구실을 앞세워 자행된 공격적 전쟁 행위였다.

“당시 많은 국민들이 외친 지혜의 목소리를 이 의회가 귀담아 듣기만 했더라면 상황은 달라졌을 텐데 그러지 못했다.”

코빈은 “2003년 3월 우리 당이 이라크와 전쟁을 벌인 것은 재앙적 선택이었음을 당을 대표해서 사과한다”는 기자회견을 했다.

칠콧 보고서의 발간 배경과 한계

이번 보고서는 이처럼 많은 폭로를 담고 있지만 정작 정부가 거짓말을 했다는 표현은 한사코 피한다. 본문과 결론이 일관되지 않은 것이다. 우연히 이렇게 된 게 아니다.

애당초 2007년 노동당 정부가 이번 보고서를 작성하기로 결정한 것은 대중의 신뢰를 회복하고 정부가 “과거의 오류로부터 배울 수 있음”을 과시하기 위함이었다. 그래서 영국 국내정보국(MI5)과 해외정보국(MI6)을 위해 일했던 칠콧 경에게 지휘를 맡기고 나머지 집필진도 하나같이 기사나 남작 작위를 받은 최고위층 인물들로 뽑았다. ‘믿고 맡긴’ 것이다.

이후에도 영국 정치권은 ‘영미 간 비밀외교 내용이 공개되면 국익이 침해될 것’이라며 블레어-부시 대화 발췌록, 주요 시기의 각료회의 기록 등 핵심 정보를 삭제하도록 관철시키며 손바닥으로 하늘을 가리려 했다. 그럼에도 증거가 워낙 많아 모두 가릴 수 없었다. 그래서 모호하게 회피하는 표현 형식을 취한 것이다.

제국주의 문제에 대한 사회민주주의의 취약성

사회민주주의는 비록 노동계급에 기반을 둔 정치 운동이지만, 자본주의 국가를 인수·활용하려 하는 만큼 “국익” 확보에 골몰한다. 그런데 오늘날 자본주의는 제국주의를 그 특징으로 하고 그 서열에 따라 각국이 차지하는 이익이 영향을 받는다. 따라서 다른 나라 노동계급에 대한 연대보다 국익을 우선시하게 되면 더 강한 제국주의 국가의 손을 잡는 것이 합리적 선택으로 보인다.

실제로, 이번 보고서에 “블레어는 영국이 미국과 ‘어깨를 나란히’ 함으로써 미국에게 자신이 핵심 우방임을 확실히 각인시킬 수 있다고 봤고, 또 그렇게 하는 것이 영국의 장기적 국익에 부합한다고 봤다”고 쓰여 있다.

또한 이미 2001년 11월부터 MI6와 블레어 측근은 “단기간에 이라크 폭격이 진행될 경우 그로 인해 위험해질 우리의 국익과 이라크 정권 교체라는 목적을 어떻게 결합시킬지에 대해 논의”했고, “사담 후세인을 제거하면 원유 공급을 더 안정적으로 할 수 있기에 우리에게 포상이 될 것”이라고 봤다.

이라크 전쟁은 ‘이라크·시리아 이슬람 국가’(ISIS)의 등장과 같은 끔찍한 결과를 낳았다. 동시에 13년이 지난 지금까지도 미국은 그 수렁에서 빠져 나오지 못하고 있다. 노동계급의 진정한 이익은 국익을 지키겠다며 군사적 행동을 벌이는 것이 아니라 다른 나라 노동계급과 연대해서 제국주의 질서를 무너뜨리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