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의 독자들에게는 《민중의 세계사》, 《좀비 자본주의》, 《21세기 대공황과 마르크스주의》(공저) 또는 《크리스 하먼의 마르크스 경제학 가이드》 등의 저자로 잘 알려진 크리스 하먼의 주요 저작들을 모은 《크리스 하먼의 선집》(이하 《선집》)이 출간됐다.

하먼은 영국의 사회주의노동자당 SWP 중앙위원이자 〈소셜리스트 워커〉와 《인터내셔널 소셜리즘》의 편집자로 활동하다 2009년 11월 7일 이집트 카이로에서 갑작스럽게 때이른 죽음을 맞이했다.(향년 66세) 당시 하먼은 이집트 사회주의자, 반전운동가, 반신자유주의자 등이 연 포럼에 연사로 참가하던 중이었다. 다행히 《선집》이 출간돼 그의 채취를 다시 한번 느낄 수 있게 됐다.

이 책의 머리말을 쓴 콜린 바커는 이렇게 말했다. “그가 일찍이 미들섹스대학교의 전임 교수직에서 해고된 것이 우리에게는 큰 행운이었다. 학계의 손실이 사회주의의 이득이 된 것이다. 하먼은 상근 활동가가 돼 국제사회주의자들 IS와 그 후신인 사회주의노동자당에서 평생 지도적 구실을 했다. 동지들에게 말할 기회가 주어질 때마다 영국 곳곳과 전 세계 각지를 돌며 연설을 했고, 경이로울 정도로 많은 글을 썼다.”

하먼은 토니 클리프와 마이클 키드런의 제자로서 그들의 국가자본주의론과 빗나간 연속혁명 이론 같은 독창적 주장을 받아들였고 더 발전시켰다. 이 책에 실린 글 중 가장 오래된 것은 1966년에 쓴 헝가리 혁명 10주년 기념사인데, 이 글에서 하먼은 헝가리 체제의 착취적이고 반노동계급적 성격을 밝힐 뿐 아니라, 반란의 내적 동학을 기록하고 노동자 평의회의 중대한 구실을 지적했다.

《크리스 하먼의 선집》, 최일붕 엮음, 책갈피, 440쪽, 18,000원

또한 그는 1917년 러시아 혁명 50주년을 기념해 쓴 “러시아 혁명은 어떻게 패배했나”에서 러시아 노동자와 농민이 이끈 혁명이 국제적으로 고립되고 “퇴보”한 뒤, 결국에는 스탈린의 반혁명으로 완전히 패배하는 과정을 명료하게 설명했다. 더 나아가 그는 스탈린주의 국가들을 무너뜨릴 개혁의 모순을 규명하면서 세계 체제의 본성을 이해해야 한다는 점과 진정한 저항 세력을 조직해야 한다는 점을 강조했다. 이런 그의 분석과 과제는 1989년과 1991년 동유럽과 옛 소련의 붕괴로 올바름이 입증됐다.

옛 소련과 동유럽에 대한 하먼의 분석이 발전함에 따라 정치경제학에 대한 이해도 함께 발전하고 깊어졌으며 서로 결합됐다. 국가자본주의의 위기는 세계 자본주의의 더 크고 깊은 위기의 일부였기 때문이다. 하먼은 세계 자본주의 체제의 깊어가는 경제 위기, 국가와 자본 간의 관계, 제국주의 등에 관해 뛰어난 저작들을 남겼다. 하먼이 1980년대 초에 쓴 《위기를 설명하다》(1984)은 그 당시 상당한 반향을 얻었고, 특히 국가와 자본 간의 관계에 대한 분석의 일부로 영구군비경제를 탐구한 점이 주목을 받았다.

그 뒤로 하먼은 ‘세계화’, 현대 노동계급의 규모와 특성, 자본주의의 호황과 불황에 대한 추적, 현대 제국주의에 대한 분석 등을 다룬 글을 계속 썼고, 그의 마지막 저서인 《좀비 자본주의》는 그 백미라고 말할 수 있다. 하먼이 그저 옛날 이론을 반복하지 않고 새로운 상황에 맞게 적용하고 발전시킨 것에 놀랄 수밖에 없는데, 《21세기 대공황과 마르크스주의》에서 이런 점을 발견할 수 있다.

혁명가

하먼은 시류와 세태에 영향 받지 않고 혁명적 원칙을 고수했는데, 대표적인 것이 호찌민 추도식에서의 연설이었다. 그는 런던 콘웨이홀에서 열린 호찌민 추도식에서 격렬한 비난이 쏟아졌지만 이에 아랑곳하지 않고 “호찌민이 스탈린주의자였고, 수많은 트로츠키주의자를 살해한 데 책임이 있다”고 거리낌 없이 얘기했다.

하먼의 모든 글에는 깊은 역사적 통찰이 담겨 있고, 저술가로서 성장하면서 그 자신이 뛰어난 역사가가 되기도 했다. 동유럽의 계급투쟁을 다룬 글들뿐 아니라 독일 공산당의 비극적인 역사를 다룬 역작인 《패배한 혁명: 1918~1923년 독일》(1982)을 썼고, 《세계를 뒤흔든 1968》(1988)은 1968년 운동을 다룬 책 중 가장 뛰어나다. 다양한 주제를 다루는 하먼의 글은 모두 사료들로 가득하지만, 그중 최고는 《민중의 세계사》(1999)다.

정말이지 하먼은 혁명적 사회주의자였고, 세계의 온갖 병폐의 해결책은 오로지 하나, 노동계급의 국제 혁명이라고 봤다. 그러면서 하먼은 항상 이 문구에 중요한 말을 덧붙였다. 바로 노동계급 혁명은 혁명적 사회주의자들이 적절한 형태의 정당을 조직하지 못하면 성공할 수 없다는 것이다.

콜린 바커는 이렇게 설명하고 있다. “이것은 정당이 혁명을 만들어 내기 때문이 아니다. 세계를 변화시킬, 특히 사회주의 혁명을 이룰 잠재력이 있는 운동의 내부가 분열돼 있기 때문이다. 모든 운동은 온갖 모순된 경향을 품고 있고 세상의 본질은 어떤지, 무엇이 가능하고 바람직한지에 대한 끊임없는 논쟁으로 가득하다. 그러므로 정당이 아니라 운동이 혁명을 만들어 내지만, 운동 에서 조직된 사회주의자들이 어떻게 싸워야 이길 수 있는지 주장하고 논쟁하지 않고서는 가능성에 그칠 뿐이다.”

하먼이 자신의 중요한 글 “당과 계급”(1968)에서 썼듯이, 여기서 쟁점은 노동계급 운동의 창조성·자발성과, 민주적 중앙집중주의 원리를 적용해 활동하는 사회주의 정당의 의식적인 개입 가운데 하나를 택하는 문제가 아니라 이 둘을 어떻게 결합할 것인가 하는 것이다. 하먼은 어떤 주장을 하든 거듭 이 주장을 반복했다. 그의 글이 학자나 평론가들의 글과는 다르게 느껴지는 것은 바로 이런 이유 때문일 것이다.

마지막으로 이 책의 엮은이가 한 말을 인용하겠다.

“거인이 사라진 숲 속 오솔길을 나란히 손 붙잡고 올라가는 어린이들처럼 오늘날의 마르크스주의자들은 거인의 발자국을 따라 계속 전진해야 한다. 《크리스 하먼의 선집》은 바로 이런 목적을 위한 것이다. 이 선집에 실린 글들은 각 국면이나 논쟁에서 중요한 구실들을 한 것들이기 때문에, 글 하나하나마다 그의 역사적 통찰과 명확한 사상 그리고 혁명적 사회주의자로서의 그의 정신과 의지를 엿볼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