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엔난민기구 통계를 보면, 2014년부터 올해 7월 초까지 지중해에서 익사한 난민은 1만 1백69명이다. 지중해에서는 2주에 한 번 세월호 참사가 일어나는 셈이다. 이제 절반 지났을 뿐인데 올해 난민 사망자가 2015년 전체 사망자에 육박한다. 올해 지중해 익사 난민은 지난해보다 훨씬 더 많을 것으로 예상된다.

유럽연합이 정말로 인권 보장을 원칙으로 삼는 기구라면 난민들이 안전하게 이동할 수 있는 방안을 마련해야 한다. 그러나 이 비극에 대처한다며 유럽연합이 내놓은 처방은 난민을 더 위험에 빠뜨리고 있다.

유럽연합이 이주의 자유를 보장한다고? 난민에게 안전한 이동 수단만 제공해도 이런 비극은 사라질 것이다.

예를 들어 유럽연합은 지난해 터키와 난민 송환 협정을 맺어 유럽에 들어온 난민을 대거 터키로 되돌려 보낸 데 이어, 이제는 리비아 등 북아프리카 국가들과도 비슷한 협정을 맺으려 한다. 그러나 터키와 리비아 등은 난민들이 인간답게 살 수 있는 곳이 아니다. 터키 내 시리아 난민 3백50만 명 중 1백만 명만이 난민 캠프에 수용돼 있고, 나머지 2백50만 명은 집도 일자리도 없이 궁핍하게 산다.(정선영 등, ‘시리아인 압둘 와합 인터뷰: “모든 국가들이 시리아에서 손을 떼야 한다”’, 〈노동자 연대〉 165호) 리비아 상황은 더 끔찍하다. 2015년 국제앰네스티는 이탈리아로 가기 위해 리비아에 머물고 있는 아프리카 난민들이 고문·강간·유괴·살해에 직면해 있다고 보고했다. 여성들의 처지는 특히 더 비참하다.

또, 유럽연합은 군함, 헬리콥터, 무인 정찰기를 투입하는 해상 순찰을 강화해 난민의 유입을 사전에 차단하려 한다. 이 때문에 난민들은 전보다 더 위험한 경로를 선택한다. 국경 통제 강화는 난민 사망을 줄이기는커녕 늘리는 조처인 것이다.

유럽연합은 밀입국 알선업자 소탕 운운하며 국경 통제 강화를 정당화한다. 영국 신임 총리 테러사 메이의 말이 그 논리를 잘 보여 준다. “범죄집단을 색출해서, 보트에 몸을 싣고 유럽으로 향하는 사람들과 그 범죄집단의 연계를 끊어야 한다. … 북아프리카든 어디든 고향으로 돌려 보내면, 그들이 이런 항해를 감행할 유인이 사라질 것이다.”

유럽으로의 밀입국 수단을 제공하는 알선업자들이 난민의 절박한 처지를 이용해 돈을 버는 것은 사실이다. 그러나 난민들이 누구든 자유롭게 유럽으로 갈 수 있다면 알선업자들이 설 자리는 사라질 것이다. 유엔인권최고대표 자이드 라드 알 후세인조차 이렇게 지적했다. “억압, 폭력, 경제적 곤궁을 피할 통상적 경로가 막히면, 사람들은 필사적이 돼서 불법 경로라도 이용할 것이다. … 국경 봉쇄 시스템에 헛되이 들이는 자원을 합법적 이민 경로를 극대화하는 데로 돌릴 수 있다.”

‘경제’ 난민과 ‘진정한’ 난민을 가려야 한다는 논리도 있다. 이는 유럽에서뿐 아니라, 전 세계적으로 사용되는 논리다. 그러나 세계 난민의 다수는 중동과 아프리카 출신자들이다.(1위 시리아, 2위 아프가니스탄, 3위 소말리아. 이 세 나라 출신 난민이 전 세계 난민의 54퍼센트를 차지한다.)

이 지역들은 지난 수십 년 동안 미국 등 서방이 앞장서 퍼뜨린 신자유주의 정책과 외채라는 굴레, 그리고 미국 등 서방이 벌인 제국주의적 전쟁 탓에 황폐해진 곳들이다. 즉, 유럽연합은 난민 위기 발생의 주된 책임자 중 하나인 것이다.

주된 책임자

난민들은 이런 극단적 처지에서 탈출해 나온 것이므로, 모든 난민은 인정 받아야 한다. 현실에서는 ‘순수한’ 정치 난민과 경제 난민을 구분하기도 힘들다. 게다가 몇 년이 걸릴지도 모르고 중간에 죽을 확률도 높은 피난길에 오르는 것은 그리 가볍게 내린 결정이 아니다. 이처럼 난민을 가르는 것은 그 일부를 파렴치한으로 모는 것으로 이어진다.

난민을 가려 받아야 한다는 논리의 바탕에는 수용 능력이 부족하다는 주장이 있다. 그러나 국내총생산GDP이 세계 88위에 불과한 레바논에서는 전체 인구의 26퍼센트가 난민인 반면, 독일과 프랑스 등 선진국이 즐비한 유럽연합에서 난민은 전체 인구의 0.2퍼센트밖에 안 된다. 유엔인권최고대표 자이드 라드 알 후세인조차 유럽연합이 난민 1백만 명을 너끈히 수용할 수 있다고 말하는데 말이다.(물론 유럽연합은 후세인이 말한 것보다 난민을 훨씬 더 많이 받을 능력이 있다.) 이런 알량한 태도가 유럽연합식 ‘인도주의’의 실체이다.

유럽연합의 국경 통제 강화와 난민 비난은 흔히 무슬림에 대한 인종차별을 수반한다. 난민 중에 무슬림이 많기 때문이다. 그래서 2000년대 초 ‘테러와의 전쟁’으로 심해진 유럽 내 무슬림혐오는 난민 위기를 배경으로 더 극심해지고 있다. 유럽 각국 주류 정치인들이 무슬림혐오를 부추기는 것은 경제 위기의 책임을 이민자와 난민들에게 돌리고 노동자들을 분열시키려는 수작이기도 하다.

이렇게 지배자들이 부추기는 무슬림혐오적 인종차별은 긴축을 밀어붙이는 주류 정치권에 대한 불만과 함께 유럽 곳곳에서 파시즘과 우익 포퓰리즘이 성장하는 토양이 되고 있다.

그러므로 파시즘과 우익 포퓰리즘에 맞서는 것이 급선무라며 유럽연합을 애써 미화하고 지키려 하는 것은 효과적인 방법이 아니다. 유럽연합 같은 자본주의 기구를 비판하며 위기에 대한 좌파적 해법을 제시하고 아래로부터의 투쟁을 고무하는 것이야말로 유럽 좌파들의 과제일 것이다. 지난 몇 년 동안 유럽에서 긴축에 맞선 투쟁이 성장하고, 이것을 배경으로 그리스 스페인·영국 등지에서 좌파 개혁주의가 성장하고, 유럽 곳곳에서 난민에 연대를 보내는 시위가 수만 명 규모로 일어난 것을 볼 때 이런 전망은 근거 없는 게 아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