검찰이 ‘강남역 살인 사건’ 피의자를 살인 혐의로 구속 기소했다. 검찰은 이 범죄를 조현병에 의한 범행으로 결론내렸다.

이 사건이 ‘여성혐오 범죄’인지를 두고 논란이 많았다. ‘여성혐오 범죄’라고 규정해야 한다고 주장하는 사람들은 여성이 차별받는 현실을 알리고자 하는 마음이 컸을 것이다. 여성이 무고하게 희생돼서는 안 된다는 마음도 정당하다.

살인 피의자가 범행 당시 여성에 대한 큰 반감이나 적대감을 가지고 있었던 것은 사실인 듯하다. 그러나 이런 반감은 피해망상의 영향을 크게 받아 형성된 것으로 보인다.

반대로, 이 사건을 ‘여성혐오 범죄’라고 보는 주장은 ‘사회에 만연한 여성혐오’가 피의자의 행동에 핵심적 영향을 끼쳤다고 본다. 그러나 이렇게 보면, ‘무시당해서, 담배꽁초가 신발에 맞아서 기분 나쁘다고 일면식도 없는 여성을 죽인 일’이 일반적으로 일어날 수 있다는 의미가 된다. 그러나 여성을 멸시하는 남자들이 많아도, 무차별적으로 사람을 죽이는 일은 누구나 저지를 수 있는 일이 아니다.

이런 주장이 경찰·검찰의 범죄 분석·진단에 동조하는 것은 결코 아니다. 경찰·검찰은 무차별 살인 범죄를 순전히 가해자 개인의 문제로만 본다. 그러나 마르크스주의자들은 이런 무차별 범죄에는 개인의 책임이 분명히 있지만 그 근저에는 자본주의 하의 소외가 있다고 본다.

피의자가 처했던 조건과 상태를 살펴보면, 가난한 배경에 변변한 직업도 가진 적이 없고 가족·친구 관계도 단절돼 있었으므로, 깊은 패배감과 두려움에 차 있었으리라는 점을 짐작할 수 있다. 이는 무차별 범죄를 저지른 자들한테서 공통적으로 보이는 특성이다. 이런 두려움은 피해망상과 같은 심리적 불안정으로 발전할 수 있고, 특정한 계기나 요인이 결합되면 통제할 수 없는 분노로 폭발할 수 있다.(소외와 관련해서는 본지 177호 김승주, ‘마르크스주의와 소외’를 보시오.)

즉, 피의자는 자본주의 소외의 영향으로 느낀 무력감을 자신보다 만만해 보이는 이에게 분노를 폭발시킴으로써 만회하려는 흔한 유형이었을 것이다.

이런 분석은 이 사건을 ‘여성혐오’ 심리로 분석하는 것보다 더 근본적인 점을 건드린다. 자본주의가 낳는 빈곤과 소외가 인간성을 파괴하고 이따금 끔찍한 살인으로도 이어질 수 있다는 점 말이다. 따라서 빈곤과 소외를 낳는 체제에 반대해야 한다는 것이다.

혐오 범죄는 더 심각하게 다뤄져야

혐오 범죄는 특정 집단에 대한 편견이나 적대감이 주된 동기로 작용한다는 점이 특징이다. 범행 당시 여성에 대한 증오심을 가지고 있었다 해서 곧 ‘여성혐오’ 범죄인 것은 아니다. 그래서 오랫동안 증오 범죄를 연구해 온 연구자들도 ‘여성혐오’에 대한 심각성을 공감한다면서도 “범죄학적, 형사법적으로 봤을 때 강남역 사건이 증오범죄가 아닐 수도 있다”고 지적한다(숙명여대 법학과 홍성수 교수).

강남역 살인 사건을 ‘여성혐오 범죄’라고 주장하는 이들은 이번 사건이 이런 혐오범죄 규정을 충족시킨다고 주장하기보다는 ‘여성혐오’를 매우 느슨하게 규정하고서 ‘여성혐오’ 범죄라고 주장한다.

이렇게 ‘혐오’를 느슨하게 규정하면 혐오 범죄의 뚜렷한 특성은 사라진다. 여성 차별 의식에 근거한 잘못된 행위는 무엇이든 혐오 범죄가 될 수 있다. 혐오 개념을 느슨하게 사용하면서 혐오 범죄에 대한 가중처벌을 주장하면, 국가가 형벌권을 강화하는 데 악용될 수도 있다는 점을 고려해야 한다.

진정한 혐오 범죄는 훨씬 심각하게 다뤄져야 한다. 성소수자들이나 무슬림들에 대한 공격에 비춰 보면, 혐오 범죄는 특정 집단을 사회악이라고 보며 공동체에서 추방하고자 하는 매우 목적의식적인 공격 행위다.

범죄를 집단의 속성으로 돌리는 접근법의 위험성

여성 차별에 맞서기 위해 반드시 이번 사건을 ‘여성혐오’ 범죄라고 규정해야만 하는 것은 아니다. 이번 사건을 ‘여성혐오’ 범죄로 보는 견해는 자본주의 체제라는 물질적 구조가 아니라 ‘여성을 혐오·억압하는 남성 집단’의 문제가 드러난 것으로 본다.

그런데 개인이 저지른 범죄를 집단의 속성에서 비롯한 것으로 치환하는 것은 위험하다. 자본주의 지배자들의 거짓 선동에 효과적으로 맞서기 어렵기 때문이다. 미국 올랜도 대학살 직후 오바마는 무슬림이 모두 동성애 혐오 집단인 양 편견을 부추겼다. 올해 초 독일 쾰른에서 끔찍한 성범죄 사건이 벌어졌을 때 독일 우익들은 이주민들을 싸잡아 비난했다. 범죄자가 정신질환을 앓고 있었다 해서 정신질환자 전체가 범죄자로 취급받아선 안 된다는 논리는 남성 집단에 대해서도 일관되게 적용돼야 한다.

선정주의적 언론들이 주목하지 않는 사회의 다른 측면도 봐야 한다. 남성의 다수는 흉악 범죄를 저지르지 않을 뿐 아니라, 어느 정도의 성차별 관념을 가지고 있을지언정 살인과 폭력으로 희생된 여성들에게 연민을 보낸다는 것이다.

여성의 죽음을 조롱하는 ‘일베’ 따위가 다수 남성의 의식을 대변하는 것은 아니다. 만약 그랬다면 강남역 살인은 너무 당연한 일이어서 뉴스거리도 되지 못했을 것이다.

분노의 배경: 모순된 현실

최근 몇 년간 차별에 대한 여성들의 분노가 커진 것은 여성에 대한 전에 없는 차별과 혐오가 생겨났기 때문이 아니다. 오히려 그 반대다. 오늘날 여성들은 전의 어느 때보다 많이 대학에 진학하고 노동자가 된다. 오늘날 젊은 여성들은 남자 형제를 위해 대학 진학을 포기해야 한다는 말을 들으며 자라지 않는다.

바로 이를 배경으로 전의 어느 때보다 젊은 여성들의 자의식과 기대감이 커졌다. 결혼 연령이 갈수록 상승하고 있는 점은 이를 보여 주는 한 지표다. 여성들이 아이를 적게 낳는 것은 경제적 요인이 크지만 자의식의 성장과도 관련 있다. 여성도 성적 주체(대상이 아니라)라는 인식도 갈수록 커져 왔다.

그러나 사회에 나온 여성들은 대부분 이내 큰 벽에 부딪힌다. 대부분의 여성들은 자본주의 노동인구의 일부가 됐음에도 여전히 차별받는다. 아이를 낳고 기르는 주된 책임은 여전히 여성의 몫이라고 여겨진다. 지속되는 경제 위기 때문에 자본주의는 더욱 여성들의 부담을 덜려 하지 않고, 오히려 더한층의 희생을 강요하려 한다.

즉, 사회 진출로 여성의 상대적 지위가 상승하고 자의식이 전의 어느 때보다 높아졌지만, 차별 구조와 이데올로기가 여전히 존재하는 모순된 현실이 젊은 여성들의 분노를 키운 배경이다. 기존에 없던 차별과 혐오가 생겼기 때문이 아니다. 여성 차별은 여전히 뿌리깊지만, 여성의 사회적 지위가 심각하게 후퇴한 것은 아니다. 오늘날 여성 노동자들의 힘은 전에 없이 커졌다.

해방의 전략: 남성이 아니라 자본주의를 겨냥해야 한다

차별받는 현실에 대한 여성들의 분노는 매우 커졌지만, 노동계급의 투쟁 수준은 충분히 높지 않다. 이로 말미암아, 노동계급의 단결을 통한 체제 변혁 사상보다는 피착취자의 일부도 문제의 원인으로 보는 단편적 관점이 더 쉽게 호응을 얻는 듯하다. 남성을 여성의 적으로 간주하고, 여성차별을 경험하지 않은 이들(즉 남성들)에게 도덕주의적 잣대를 들이대는 정서가 적지 않다.

이는 차별에 대한 분노와 억울함의 한 표현이겠지만, 잘못된 표현이고, 여성 차별에 맞선 투쟁의 동맹을 설득할 가능성을 기각해 버리는 결과를 낳는다.

그러나 남성들은 여성 차별에 맞선 투쟁의 중요한 일부였다. 가령 2000년대 이후 벌어진 대단했던 여성 노동자 투쟁들 ─ 이랜드 노동자, 대학 청소노동자, 학교비정규직 노동자 등 ─ 은 다수 남성 노동자들의 지지를 얻었다. 여성이 다수인 전교조나 보건·의료 관련 노조 소속 노동자들의 투쟁도 여성과 남성 모두의 지지를 얻었다. 노동운동 속에서 남성 노동자와 여성 노동자들은 계급적 정체성을 키워 왔다.

노동운동 속에서 남성 노동자와 여성 노동자들은 계급적 정체성을 키워 왔다. 5월 28일 열린 전교조 주최 전국교사대회. ⓒ이미진

이런 투쟁들은 여성 노동자들이 자신들이 사회적 힘을 가진 존재임을 자각하게 도와 준다. 그리고 남성 노동자들이 여성들에 대한 기존의 상식을 돌아보게 하는 효과를 낸다. 이런 효과는 전반적 계급투쟁 수준이 낮을 때에도 어느 정도 존재하고, 투쟁이 승리하거나 계급투쟁 수준이 높아졌을 때는 더욱 두드러진다. 오랫동안 받아들여 온 차별 관념은 투쟁 속에서 바뀔 수 있다.

여성 차별을 없애려면 여성 차별을 유지함으로써 득을 보는 자본주의에 맞서야 한다. 여기에 가장 효과적으로 맞설 수 있는 무기는 계급투쟁이다.

계급과 계급투쟁을 무시하면 개혁을 성취하는 데서도 뚜렷한 한계가 있다. 당장 박근혜 정부가 추진하는 ‘노동개혁’이나 민영화, 시간제 일자리 확대와 같은 시장 지향 정책들을 막으려면 남녀 노동계급의 힘을 동원해야 한다. ‘노동개혁’과 민영화, 시간제 일자리 확대는 평범한 여성 다수의 삶을 더욱 악화시킬 것이다.

성 적대가 사회의 근본 분열이라고 보는 ‘양성 분리적 여성주의’는 남성과 여성의 단결이 필요하고 가능한 영역이 아니라 남성과 여성이 ‘대립’하는 영역에 주목해 왔다. 그러나 계급(투쟁)의 중요성을 무시하면, 이런 문제도 해결하기 어렵다. 여성에 대한 폭력을 낳는 여러 요인들 ─ 여성 차별, 가족제도, 성별 고정관념, 소외 ─ 도 체제의 문제와 연결돼 있기 때문이다.

여성 차별의 증상을 완화하고 나아가 완전한 해방을 이루려면 여성 차별 반대 운동은 자본주의에 맞선 남녀 노동계급의 투쟁을 중심에 둬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