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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성애 처벌하는 군형법 제92조의6 합헌 결정 규탄한다

헌법재판소가 오늘(28일) 재판관 5대 4로 군형법 제92조의6 합헌 판결을 내렸다.

군형법 제92조의6의 내용은 항문성교나 그 밖의 추행을 한 군인을 2년 이하의 징역에 처하는 것이다. ‘추행’이라는 단어 때문에 이 법이 군대 내 강간이나 강제추행을 처벌하는 법으로 오해되지만, 사실 군대 내 강간이나 강제추행 처벌에는 별도의 조항이 존재한다. 따라서 이 법은 합의한 성관계를 문제 삼아 동성애자 병사를 처벌할 수 있는 법이다.

가령, 대법원은 제92조의6으로 중대장이 중대원들의 양 젖꼭지를 비틀고 손등으로 성기를 때린 사건을 처벌할 수 없다고 했지만(2008년 판례), 휴가 중 자신의 집에서 합의 하에 성관계를 한 동성 군인 커플은 처벌했다.(1999년)

합의한 동성간 성관계 처벌은 명백한 동성애자 차별이다. 군형법은 합의한 이성간 성관계를 형사 처벌하지 않는다. 동성애도 이성애처럼 자연스러운 성애지만, 군형법 제92조의6은 동성애만을 차별함으로써 동성애자들을 처벌과 감시·통제의 대상으로 만들어 고통스럽게 하고 있다.

이 때문에 성소수자 인권 운동 단체들은 2008년 ‘군 관련 성소수자 인권 침해·차별 신고 및 지원을 위한 네트워크’(이하 군네트워크)를 꾸려 군형법 제92조의6 폐지를 요구해 왔다. 2013년 군형법 제92조의6 폐기를 위해 5천6백90명의 입법청원서를 제출했고, 이런 노력의 결과로 19대 국회에서 폐지안이 발의되기도 했다.

그러나 이번 판결은 8년 가까이 폐지를 외쳐 온 성소수자들의 요구를 저버렸다. 2002년, 2011년에 이어 세 번째 합헌 판결이다. 헌법재판소는 2012년부터 시작된 군형법 제92조의6 위헌법률심판 판결을 미루다가 4년 만에 보수적 판결을 다시 반복한 것이다.

옳게도 위헌 의견을 낸 헌재 재판관들(4인)은 군형법 제92조의6가 이성간 항문성교도 처벌하는 것인지, ‘그 밖의 추행’이 무엇인지 불명확하다는 의견을 냈다.

그러나 재판관 다수(5인)는 판결문에서 군형법 제92조의6이 군대 내 성폭력이 아니라 합의한 동성간 성행위를 처벌하는 법이라는 점을 분명히 했다. ‘그 밖의 추행’은 강제추행이 아닌 “객관적으로 일반인에게 혐오감을 일으키게 하고 선량한 성적 도덕관념에 반하며 계간에 이르지 아니한 동성 군인 사이의 성적 만족행위”라고 적시했다.

이 법이 이성애자와 동성애자 사이의 평등 원칙을 위반한다는 문제제기에 대해, 헌법재판소는 판결문에서 “동성 군인이 이성 군인에 비하여 차별취급을 받게 된다 하여도 이는 … 군의 특수성과 전투력 보전을 위한 제한”이라며 차별이 정당하다고 밝혔다.

그러나 이미 미국, 캐나다 등 동성애자 군복무를 금지한 나라에서도 유사 법률을 폐지했다. 또한 “전투력 보전을 위[해]” 처벌법이 유지돼야 한다는 주장은 오히려 군대가 인간의 가장 기본적인 욕구조차 억누르고 처벌하는 본질적으로 억압적인 기구임을 보여 줄 뿐이다.

판결 직후 규탄 기자회견에서 한가람 변호사(위헌소송 대리인, 희망을만드는법)는 “이 조항은 동성애 범죄화 조항”이라며 징병제 국가에서 상당수 남성을 억압하는 법이라고 지적했다. 또한 “유엔 인권이사회 의장국의 현실이 어떠합니까. 우리는 헌법재판을 다시 제기할 것입니다. 우리는 계속해서 싸우고 요구할 것입니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인권운동사랑방, 지구지역행동네트워크, 전쟁없는세상, 한국성폭력상담소, 대학성소수자모임연대 등에서도 참가했다.

반대편에서 소수의 기독교 우익 단체들이 합헌 판결에 기뻐했지만, 기자회견 참가자들은 투쟁을 멈추지 않을 것이라고 밝히며 힘차게 구호를 외쳤다.

이번 판결은 수년간 군 인권과 군형법 제92조의6 폐지를 위해 싸워 온 많은 성소수자들을 분노하고 맥 빠지게 했지만, 합헌과 위헌이 5대 4로 팽팽한 상황까지 간 것은 가능성 또한 보여 준다. 헌재도 동성애에 대한 대중의 인식이 달라지고 있음을 의식하는 것이다.(이번 판결에선 첫 번째와 두 번 째 판결보다 위헌을 지지한 재판관 수가 늘어났다. 2002년엔 위헌의견 2명, 2011년에는 위헌의견 3명과 한정위헌 1명이었다)

군대 내 동성애자를 위축시키고 범죄자 취급하는 군형법 제92조의6를 폐지하려는 투쟁은 계속돼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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