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런던 유럽사회포럼의 성과

[편집자 주] 일부 단체(가령 사회진보연대나 노동자의힘) 웹사이트 자료실이나 정간물에는 지난해 10월에 열렸던 런던 유럽사회포럼을 부정적이거나 부정확하게 평가하는 글들이 실려 있다. 그러나 알렉스 캘리니코스는 런던 유럽사회포럼이 성공적이었다고 말한다. 그와 동시에, 정치적 이견들을 반영하는 논쟁들이 있었다고 주장한다. 원문은 ‘저항의 세계화’ 웹사이트(http://www.resist.org.uk/reports/archive/esf2004/esf04_07.php)에 있다. 그리고 런던 유럽사회포럼에 직접 참가했던 강철구 동지의 리포트도 함께 싣는다.

런던에서 열린 제3차 유럽사회포럼(2004년 10월 14∼17일)은 대안세계화 운동의 중요성을 다시 한 번 증명했다. 또, 포르투알레그레·파리·뭄바이·피렌체에 이어 사회포럼이 여전히 대단히 역동적이고 성공적인 정치 형태임을 확인했다. 런던 유럽사회포럼은 여러 측면에서 성공이었다.

● 무엇보다도 숫자의 측면에서 성공이었다. 2천5백 명 이상의 연사가 강연한 5백여 개의 전체 토론회·세미나·워크숍·문화행사 등에 2만 5천여 명이 참가했다. 사전 등록자 명단을 보면 유럽 대륙 각지와 심지어 확대된 유럽연합 밖에서도 참가단이 왔음을 알 수 있다. 벨기에 5백93명, 프랑스 1천3명, 독일 8백34명, 그리스 3백63명, 이탈리아 1천3백62명, 폴란드 4백99명, 러시아 1백90명, 스페인 1천2백71명, 스웨덴 1백70명.
● 많은 유럽사회포럼 행사가 주로 알렉산드라궁으로 집중되면서 피렌체의 포르테차에서 느낄 수 있었던 분위기가 다시 한 번 재현되는 듯했고, 이틀 반나절 동안 한 공간에서 다양한 활동과 논쟁들이 진행되면서 강렬한 열기를 뿜어 냈다.
● 토론과 동원의 상호작용은 모든 성공적인 사회포럼의 원동력이었고 런던 유럽사회포럼도 마찬가지였다. 런던 유럽사회포럼은 10만 명이 참가한 시위에서 절정에 달했고, 그 전에 열렸던 사회운동총회는 2005년 3월 19∼20일 주말에 신자유주의와 전쟁에 항의하는 국제 시위를 조직할 것을 호소했다.

이것은 런던 유럽사회포럼뿐 아니라 이전 사회포럼의 공통된 특징이었다. 하지만 어떤 점에서 런던 유럽사회포럼은 더 나갔다.

● 영국의 주류 노동조합 운동이 사전 준비 과정과 포럼 자체에 능동적으로 개입했다. 다양한 노조들의 상호작용은 중요한 활동가 네트워크가 참가한 아주 성공적인 세미나들을 포함해 매우 긍정적이었다.
● 또, 흑인·아시아인·무슬림·난민 네트워크의 참가가 눈에 띄게 증가했다. 전 유럽적으로 시민적 자유, 이주 권리, 난민신청자에 대한 공격이 자행되고 있는 시점에서 이것은 중요한 성과였다.
● 대단히 다양하고 의욕적인 문화 프로그램들이 있었다.
● 전체 토론회의 수를 크게 줄여 자체 조직한 행사들이 늘어날 수 있었다. 또, 전체 토론회 연사의 성별(性別) 균형을 고려했을 뿐 아니라, 연사 수를 줄이기 위해 노력한 덕분에 플로어 토론에 더 많은 시간을 할애하는 데 성공했다.
● 나와 내가 얘기했던 사람들이 받은 인상에 따르면, 토론의 지적 수준이 상당히 높아졌다. 내가 참가했던 회의에서 상당수의 연사와 발언자들은 신자유주의와 제국주의에 대한 상투적인 비판을 피하고 진지한 분석과 논의를 제기하려고 노력했다.

이러한 진보는 우연이 아니었다. 이것은 런던 유럽사회포럼 조직 과정에 참가했던 주요 활동가들의 목표이기도 했다. 따라서 우리는 그런 점에서 성공했다고 공정하게 평가할 수 있다.
런던 유럽사회포럼은 각각 5만여 명을 동원했던 피렌체와 파리 유럽사회포럼보다는 규모가 작았다. 이것은 당연하다. 유럽에서 대안세계화 운동은 1998년 프랑스에서 아딱이 결성되면서 모양을 갖추기 시작했다. 이 운동은 제노바 이후 이탈리아에서 가장 강력했다. 영국에서는 대단히 강력한 반전운동이 존재한다. 하지만 반세계화 의식은 광범하지만 초점이 결여돼 있다.
많은 젊은이들이 참가하고 각종 전체토론회와 회의에서 운동의 여러 쟁점이 다루어진 이번 런던 유럽사회포럼과 2005년 7월 글렌이글스에서 열리는 G8 정상회담은 영국에서 이러한 의식이 더 탄탄하고 조직된 네트워크로 바뀌는 과정에 일조할 것이다. 영국의 기업주 언론은 대안세계화 운동을 무시하는 것으로 악명높지만, 〈가디언〉 2004년 10월 18일치는 런던 유럽사회포럼의 중요성을 인정하면서 이렇게 경고했다.
“주류 정치인들은 유럽사회포럼이라는 우산 아래 등장하고 있는 포괄적인 비(非)정당 정치의 정신·내용·스타일로부터 유리돼 있다. 1천 명 이상의 청중들이 세계화, 기업 권력, 인종차별, 식량, 환경에 대한 논쟁에 귀를 기울이는 모습을 본 직업정치인이라면 누구나 자신의 정치 의제가 얼마나 협소하고, 지금 유럽 젊은이들을 사로잡고 있는 진정한 민족초월주의가 무엇인지 느낄 수 있을 것이다. … 앞으로 완전히 다른 집단이 서로 연결되면서 진정으로 새로운 유럽좌파 정치의 등장을 목격할 수 있을지 모른다.”
물론 약점도 있다. 식사 때문에 런던에 온 사람은 없겠지만 알렉산드라궁의 식사는 정말 최악이었고, 끔찍하게 비쌌다. 프로그램 준비 작업을 직접 경험해 보니, 엄청난 시간과 에너지가 전체토론회 주제와 연사를 정하는 데 낭비되고 있다는 1차·2차 유럽사회포럼에 대한 베르나르 까쌍의 비판이 적절함을 알 수 있었다. 전체토론회를 없애고 자체 조직한 행사들만 허용하는 5차 포르투알레그레 세계사회포럼의 실험을 지켜보는 것은 흥미로울 것이다.
다른 문제들은 다소 주관적이었다. 어떤 사람들은 옆 회의나 전체토론회의 소리가 들린다면서 공간 배치에 불만을 표시했다. 개인적으로 나는 그렇게 소음이 심하지 않았고, 우리 운동의 특징인 의견의 다양성을 경험할 수 있는 기회가 될 수 있었다고 생각한다.

정치적 이견

런던 유럽사회포럼에는 많은 정치적 잡음이 뒤따랐다. 여기에는 정치적 이견을 낳을 수밖에 없는 정치적 다양성이 한몫 하고 있다. 예를 들어, 특히 프랑스에서 온 많은 동지들은 피렌체처럼 런던 유럽사회포럼에서도 이라크 전쟁이 중요시되는 것을 반기지 않았다.
물론 이러한 이견은 부분적으로 각국 상황의 차이를 반영한 것이기도 하다. 영국에서는 이라크 전쟁이 정치를 지배하고 있고, 가장 중요한 동원 쟁점이다. 이라크 전쟁이 부각되지 않고 영국 평화운동이 주도적으로 런던 유럽사회포럼에 참가하지 않았다면, 런던 유럽사회포럼은 훨씬 덜 역동적이고 폐막 행진도 포럼 참가 인원보다 많지 않았을 것이다.
하지만 여기에는 다른 문제도 연관돼 있다. 이라크 전쟁은 세계 정치를 주도하는 쟁점이기도 하다. 이것은 단지 열강의 분열이 불거졌기 때문만이 아니다. 부시 정부가 일방주의적으로 군사력을 사용하고, 점령의 참혹함이 드러나고, 이와 함께 이라크에 신자유주의 경제정책이 노골적으로 적용되는 모습을 보면서 많은 활동가들은 기업 세계화가 왜 잘못됐는지 총체적으로 보여 주는 예가 이라크라고 생각하고 있다.
(특히 프랑스에서 영향력이 있는) 다른 이들은 이 점에 동의하지 않는다. 그들은 부시의 전쟁 몰이와 신자유주의 세계화 사이에 필연적 연관이 있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나는 그들이 틀렸고, 시간이 지날수록 현대 제국주의의 핵심인 경제와 군사력의 결합을 이해하는 것이 더 중요해지고 있다고 생각한다. 여기에는 상당한 정치적 차이가 있고, 우리는 운동 속에서 협력하면서 이러한 차이점을 다룰 수 있는 방법을 배워야 한다.
많은 경우 이러한 차이점이 절차 문제로 제기되기 때문에 그 중요성을 포착하기 힘들 때도 있다. 많은 프랑스 네트워크들은 한 세미나에서 젊은 무슬림 여성들의 히잡 착용 권리를 옹호하는 사람들로 연사가 채워져 있다고 불만을 제기했다. 하지만 그 세미나가 청중석에서 매우 치열한 토론이 벌어지는 것을 막지는 않았다. 절차 문제 제기는 진정한 쟁점을 회피하는 수단인 듯하다.
나머지 많은 유럽 활동가들은 프랑스 좌파와 노동조합 운동이 왜 프랑스 공립학교에서의 히잡 착용 금지법을 지지했는지 납득할 수 없었다. 프랑스 아딱은 최근 런던 유럽사회포럼을 평가하면서 “신앙고백 조직들”의 구실에 불만을 표시했다. 하지만 프랑스 사회에서 가장 억압받는 부문을 배제하는 세속주의는 자신이 비난하는 이슬람주의 조직만큼이나 종단주의적이다.
히잡 논쟁은 우리 운동이 어떻게 유럽 사회의 가장 밑바닥에서 경제적 착취와 인종차별적 억압에 고통받고 있고, 바로 그 때문에 무슬림 신앙에 강하게 밀착해 있는 사람들을 끌어안으면서 확대될 수 있을까 하는 진정한 문제의 징후이다. 물론 우리는 이 문제에서 손쉽게 합의점에 도달할 수 없을 것이다. 그러나 적어도 우리는 세미나 조직 방식의 문제로 도피하기보다 논쟁의 중요성을 인정할 수 있어야 한다.

회피

이러한 이견들은 몇 차례 행사 중단 시도로 이어졌다. 이러한 사건들은 런던 유럽사회포럼 전체에는 매우 미미한 영향을 끼쳤고, 포럼과 폐막 시위에 참가한 대다수 사람들은 이것을 알지 못했다. 그러나 이러한 사건들이 대중매체와 인터넷에서 얼마간 관심을 끌었고, 처음으로 유럽사회포럼 행사가 실제로 중단됐기 때문에 논의할 필요가 있다.(파리 유럽사회포럼에서 사회당 대표를 공격하려는 시도가 있었지만 경비원의 제지를 받았다.)
일부는 이러저러한 구실을 들어 이것을 옹호했다. 첫째, 영국에서 유럽사회포럼 조직 과정이 비민주적이었다는 주장이다. 조직 과정에서 한 가지 어려움은 참가자들이 매우 다른 민주주의 개념을 갖고 있고 흔히 자신들과 다른 개념 정의에 전혀 관대하지 않았다는 것이다. 그러나 런던 유럽사회포럼 조직 과정에서 진정한 문제는 다른 데 있었다.
영국노동조합회의(TUC)와 주류 NGO에서부터 간헐적으로 폭력을 행사한 전력이 있는 웜블스(WOMBLES) 자율주의 단체에 이르기까지 조직 과정에는 단계별로 다양한 단체가 참가했다. 어떤 상황에서든 이러한 연합을 유지하는 것은 어려운 일이다. 물론 이탈리아와 프랑스 동지들도 대단히 광범한 연합을 꾸렸지만, 그들의 경우에는 유럽사회포럼을 조직하기 전에 이미 이러한 연합이 조직돼 있었고, 따라서 서로 협력한 경험이 있었다.
반면에, 영국에서는 이전의 유럽사회포럼에 참가했던 대안세계화 네트워크가 상대적으로 취약했다. 따라서 런던 유럽사회포럼을 조직하기 위해서는 그러한 연합이 새로 만들어져야 했다. 여기에는 전에 함께 협력해 본 경험이 없을 뿐 아니라 정치문화도 매우 다른 단체들이 참가했다. 이런 경우 협력 과정에는 어려움이 있을 수밖에 없다.
그럼에도 어려움에 대한 가장 커다란 책임은 자율주의 서클들에 있었다. 그들은 런던 유럽사회포럼에 대한 전면적인 반대(사회포럼은 태생적으로 개량주의적이라는 웜블리의 비판)에서부터, 조금씩 차이가 있지만 (여러 동조자를 내세워) 대체적으로 건설적이지 않은 방식으로 조직 과정에 참가하는 것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입장을 가지고 있었다.
그들을 포함시키기 위한 많은 노력이 있었다. 예를 들어, 런던 유럽사회포럼은 피렌체나 파리에서처럼 ‘자율주의 공간’을 제공했다. 유럽준비회의에서 합의된 것처럼 영국조직·조정위윈회(the UK Organizing and Coordinating Committees)의 모든 회의를 개방했다. 그러나 자율주의와 관련이 있는 많은 사람들은 대중 행사로서의 사회포럼 경험과 노동조합과 NGO 들의 참가에 적대감을 나타냈다. 여기에 굴복했다면 런던 유럽사회포럼 참가자는 이전 유럽사회포럼에 비해 대단히 적었을 것이고 미리 결정된 자족적 모임에 한정됐을 것이다.
이라크 관련 전체 토론회는 그러한 문제점을 보여 주는 경우였다. 나는 미국과 영국의 점령을 지지하는 이라크노총(IFTU)을 유럽사회포럼의 연사로 초청한 것은 잘못이었다고 생각한다. 이것은 많은 영국 노조들이 IFTU를 지지한 결과였다.(지금 IFTU는 영국에서 가장 커다란 노조인 UNISON[공공부문 일반노조] 본부에 사무실을 두고 있다.)
IFTU의 환영받지 못한 참석은 영국 노동운동의 주류까지 포괄하는 사회포럼을 건설한 결과였다. 따라서 주로 전쟁저지연합 소집자와 점령 반대 이라크인들로 구성된 연단을 공격한 소수 시위대(주로 영국과 중동 극좌파 종파들)의 어리석은 결정은 이런 주류와 관계 맺는 것을 거부하겠다는 것이었다. 이것은 우리가 피하려고 하는 종파주의 정치를 보여 주는 사건이었다.

이중잣대

반파시스트 총회와 트라팔가 광장에 설치된 무대를 공격한 것은 대부분 원칙적으로 사회포럼에 반대하는 자율주의자들이었다. 그들은 이러한 행동을 민주주의의 결여말고도 두 가지 근거로 옹호했다. 첫째, 그들은 ‘상업적인 유럽사회포럼’과 런던시장인 켄 리빙스턴의 지원을 비난했다.
이러한 주장은 진지하게 받아들이기 어렵다. 포르투알레그레 세계사회포럼에 참가했던 사람들은 가톨릭대학교(PUC)에 있는 참가자를 환영하는 기업 광고와 VIP실을 기억할 것이다. 지난 [2004년] 11월 브라질노동자당(PT)이 포르투알레그레 선거에서 낙선한 이후 세계사회포럼을 다른 곳에서 개최하자는 제안이 제출된 것을 보면 지방정부의 지원(사실, 정당의 지원)이 중요함을 알 수 있다.
이것은 유럽사회포럼에서도 마찬가지였다. 피렌체는 지방정부의 지원을 받았다. 파리 유럽사회포럼 때는 파리, 생드니, 보비니와 이브리 지방자치단체의 도움뿐 아니라, 우파 수상인 장 피에르 라파랭 총리실로부터 1백만 유로[약 15억 원]를 받았다. 우리 모두 대규모 사회포럼은 돈이 필요하고 돈은 타협을 수반한다는 것을 이해했기 때문에 아무도 이것을 가지고 프랑스 동지들을 비난하지 않았다. 런던 유럽사회포럼의 경우 런던시장이 돈을 제공했다. 그는 노동당에 재입당하는 잘못된 결정을 내렸지만 반전 운동을 꾸준히 지지해 왔다. 왜 런던 유럽사회포럼에만 다른 사회포럼들과 다른 기준이 적용돼야 하는가?
또 다른 핑계거리는 경찰의 구실이었다. 그들은 유럽사회포럼 조직자들이 시위와 트라팔가 광장에서 사람들이 체포된 것에 책임이 있다고 주장했다. 이러한 주장은 순전한 거짓말일 뿐 아니라 사실 인신공격이며 말도 안 된다. 어떻게 나 같은 나이 든 혁명적 사회주의자가 런던 경시청에 영향력을 행사할 수 있겠는가? 그러한 주장을 한 동지들은 자기 주장을 즉각 철회해야 한다.
더구나 이상하게도, 연행자들 전부가 아니라 일부만이 주목을 받았다. 예를 들어, 10월 14일 콘웨이홀에서 신청자 등록을 받는 동안 경찰이 레드라이온 광장에 줄을 서 있던 사람들을 해산시키고 사회주의노동자당 조직자 한 명을 체포했다. 두 명의 ‘저항의 세계화’ 활동가들이 테러리즘2000법 때문에 폐막 행진에 참가하지 못했다. 그 중 한 명이 연행됐고 80파운드의 벌금을 선고받았다. 트라팔가 광장에서 무대를 습격하려 했던 무리에 속했던 한 사람도 체포돼 동일한 벌금을 선고받았다. 그러나 지도적인 프랑스 활동가들은 오직 그에게만 동정과 관심을 보냈다. 다시금 이중잣대가 적용되고 있다.
심지어 영국 조직자들에 대한 비판이 대체로 옳다고 가정하더라도, 이것이 포럼에서의 폭력 사용을 정당화하지는 않는다. 폭력과 논쟁은 서로 반대된다. 다양성과 토론이 우리 운동이 가진 최대의 힘이라고 생각한다면 완력으로 주장을 펴려는 시도를 용납해서는 안 된다. 더구나, 운동에 폭력을 끌어들이려는 사람들은 그와 함께 국가도 끌어들인다. 트라팔가 광장 공격은 경찰이 개입해 사람들을 연행할 빌미를 제공했다. 런던 유럽사회포럼에서 일어난 혼란을 비판하지 않거나, 심지어 묵인하거나 동조한 일부 유럽 동지들은 자신들이 매우 위험한 선례를 만들었음을 깨달아야 한다.

급진성과 다양성

우리는 이제 미래를 생각해야 한다. 다음 유럽사회포럼은 2006년 봄에 아테네에서 열릴 것이다. 런던의 경험은 어떠한 정치적 교훈을 제공하는가? 가장 중요한 교훈은 피렌체 이후 이탈리아 동지들이 지적했듯이 우리 운동의 최대 강점이 급진성과 다양성이라는 것이다. 우리는 놀랍도록 광범한 사회적·정치적 집단들을 포괄하면서도 하나의 체제로서 자본주의적 제국주의에 도전을 제기하는 기적에 가깝게 성장한 운동을 다뤘다. 이것은 런던에서 두드러졌다. 피렌체에서처럼 가장 크고 역동적인 토론을 주도한 것은 급진 좌파의 정치였다.
그러나, 그와 동시에, 런던은 시간이 지날수록 급진성과 다양성을 결합하기가 쉬워지는 것이 아니라 어려워지고 있음을 보여 주었다. 이라크 전쟁, 유럽헌장, 히잡, 급진 좌파의 구실 등 여러 쟁점을 둘러싸고 이견이 구체화됐다. 또, 어떻게 운동을 건설할 것인지에 대해서도 차이점이 존재한다. 일부 네트워크는 주류 노동조합의 참가에 대해 훨씬 애매한 태도를 취하고 있다. 이 마지막 차이점은 다른 차이점에 영향을 미친다. 예를 들어, 나는 노동조합을 끌어들이는 데서 이탈리아 동지들보다 프랑스 동지들의 입장에 더 가까울 수 있지만, 막상 전쟁 쟁점에서는 이탈리아 동지들의 의견에 더 많이 동의할 수 있다. 우리가 연합을 결성하고 확대하는 과정은 이 때문에 더 복잡해진다.
또, 우리는 유럽사회포럼 조직 과정 자체가 점점 제대로 작동하지 못하고 있음을 직시해야 한다. 프랑스 아딱은 유럽준비회의 참여율이 피렌체 이후 정체하고 있다고 올바르게 지적한 후 “유럽준비회의의 운영이 민주화·대표성·확대의 논리 측면에서 개선돼야 한다”고 주장했다. 이것은 말처럼 쉽지 않을 것이다. 현재 강조점이 모두에게 개방되고 합의에 의해 결정되는 모임의 절차에 놓여 있고, 이것은 대표성은 없지만 요란한 소수에게 커다란 힘을 줄 것이다.
런던 유럽사회포럼에서 이러한 긴장이 가시화됐다. 아테네 유럽사회포럼을 준비할 때 이 점을 고려해야 한다. 영국의 런던 유럽사회포럼 조직 과정에서 분열은 중요한 사회운동과 요란하지만 사회적으로 취약한 소수 자율주의 사이에 나타나곤 했다. 하지만 아테네 유럽사회포럼에는 중요한 네 세력(그리스사회포럼, 제노바2001캠페인, 그리스 공산당, 그 지도부가 주로 PASOK[범그리스사회주의운동]과 관련돼 있는 노동조합들)이 참가할 필요가 있다. 이 중 ‘그리스사회포럼’과 ‘제노바2001캠페인’만이 유럽사회포럼 과정에 참가해 왔고, 넷은 상호 투쟁의 역사가 있다. 이들을 모으는 것은 우리 모두에게 커다란 도전이 될 것이다.
따라서 앞으로 일이 더 쉬워지지 않을 것이고, 이것은 단지 우리가 겪었던 작은 소동 때문만은 아니다. 조지 W 부시가 재선했고, 그는 세계를 상대로 전쟁을 벌이고 환경을 오염시킬 위임을 받았다고 생각한다. 이것은 회의와 총회에서 채택했던 구체적 목표를 달성하기까지 우리가 얼마나 더 멀리 가야 하는지를 상기시켜 준다. 그러나 우리가 거둔 성공 ― 가장 최근에 런던 유럽사회포럼에서 ― 은 진정한 승리를 거두기 시작할 수 있는 운동을 건설할 능력에 대한 자신감을 내게 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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