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점거파업 역사와 교훈》은 올해 2월에 나온 신간이다. 이 책은 세계 각국에서 벌어졌던 역사적인 점거파업의 경험을 생생하게 보여 주며 그 효과와 여러 교훈을 제시한다. 무엇보다 불황기에도 노동자들이 단호하게 싸운다면 양보를 얻어 낼 수 있다는 것을 보여 준다. 지금 파업과 공장 사수 투쟁을 벌이는 갑을오토텍 노동자들과 연대하는 많은 활동가들이 이 책을 읽는다면 많은 영감을 얻을 수 있을 것이다. 이런 취지에서 이 책의 번역자인 이재권이 이 책을 추천하는 서평을 새로 썼다.


《점거파업 역사와 교훈》, 데이브 셰리 지음, 이재권 옮김, 책갈피, 240쪽, 10,000원

올해 2월 《점거파업 역사와 교훈》 한국어판이 출간됐을 때는 이 책을 반기며 구입한 독자들도 상당수는 ‘일단 사 놓고 나중에 읽어야지’ 하고 생각했을 것 같다. 일부는 이 책의 소재를 낯설어 하거나 심지어 비관적으로 평가했을 수도 있다. 당장 현실에서 그런 가능성이 눈에 잘 띄지 않았던 까닭이다.

그러나 불과 반년 만에 상황이 달라졌다. 같지는 않아도 점거파업의 정치학이 필요한 상황이 됐다. 노조 파괴와 직장폐쇄에 맞서서 갑을오토텍 노동자들이 공장 사수 투쟁을 이어 가고 있고, 이화여대 학생들도 본관 점거 농성으로 대학의 친기업화(상업화)에 성공적으로 맞서고 있다.

이 책의 아쉬움을 하나 꼽으라면, 아무래도 번역서다 보니 한국의 점거파업 경험을 구체적으로 다루지 못한 점을 들 수 있겠다. 이 여백을 채우는 건 한국의 활동가들 몫일 텐데, 이번 갑을오토텍 공장 사수 투쟁에서 배운 경험과 국제적인 점거파업의 교훈을 연결시키는 것도 그에 대한 기여일 것이다.

지은이 데이브 셰리는 한국어판 머리말에 이렇게 밝혔다.

나는 노동조합 활동가와 사회주의자가 알아야 할 직장점거의 역사와 오늘날 의의를 살펴봄으로써 사람들의 자신감을 북돋우려고 이 책을 썼다. 점거파업은 해고와 폐업이 만연한 시대에 더없이 적합한 전술이다. 그런 이유로 공장점거는 오늘날에도 유의미하며 유효하다.

 또, 2009년 베스타스(영국의 풍력 터빈 업체) 점거에 참가한 노동자의 다음 얘기도 실려 있다.

예전에는 변화의 원천이 노동자들이라고 생각하지 않았습니다. 그러나 이번 투쟁을 겪으면서 우리 노동자들이 집단적으로 행동한다면 다른 사람들한테도 똑같이 행동할 용기를 줄 수 있다는 것을 배웠습니다. ··· 점거 투쟁은 자주 일어나지 않지만, 때때로 이와 같은 투쟁이 벌어질 때면 그것을 재빨리 확산시켜야 합니다.

묘한 기시감과 현실감이 드는 건 나뿐일까? 이런 역사의 경험이 우리한테 시사하는 바는 과연 무엇일까?

흔들림없이 단결해 공장 사수 투쟁을 벌이고 있는 갑을오토텍 노동자들. ⓒ이미진

점거파업의 본질과 효과

지금 갑을오토텍 노동자들은 민주노조를 파괴하려고 직장폐쇄까지 강행한 사측에 맞서 공장을 지키고 있다. 공장은 나날이 연대의 초점이 돼 악덕 기업주를 거세게 압박하고 있다. 데이브 셰리가 “지금도 이런 전술은 사측을 물러서게 하고 상당한 양보를 따내는 데에 매우 효과적인 수단”이라고 말한 바를 보여 주는 듯하다. 경찰과 용역 투입을 기업주들이 절실히 바라는 것도 바로 이 때문일 것이다.

이 책의 지은이는 작업장에 집결해 싸우는 투쟁이 작업장 이탈 파업보다 유용한 점이 많다며 여러 장점을 지적하기도 한다. 여덟 가지로 정리한 장점을 보면, 갑을오토텍 노동자들의 지금 모습과 기가 막히게 들어맞는 것처럼 보인다. 요약하자면 이렇다.

‘점거 투쟁은 대체 인력 투입을 차단한다. 노동자들이 기계와 자산, 제품을 통제하므로 사측은 파업 파괴 술책을 쓰는 데 더 주저하게 된다. 사측은 수세적 처지로 내몰리며 노동자들의 사기는 올라간다. 농성장은 24시간 투쟁 거점으로 활용되고 또한 바깥보다 쾌적한 공간을 제공한다. 점거 투쟁을 계기로 다른 노동자와 단체의 연대와 지지를 끌어낼 수도 있다. 노동자들의 연대 의식과 전투성이 고양되고 소통과 협력, 동지애, 자주성이 강화된다.’

갑을오토텍에 연대하러 공장 사수 투쟁에 다녀 온 독자들은 금세 이해할 것이다. 이런 장점들이 많이 발휘되고 있다는 것을. 갑을오토텍 노동자들은 공장 정문에 진을 쳐 용역깡패 투입을 저지하고 있고, 불볕더위 속에서도 공장 건물을 이용해 (거리 농성 등 그렇지 않았을 경우와 비교하면) 상대적으로 안정적으로 투쟁을 이어가고 연대를 조직하고 있다. 오랜 투쟁 경험을 바탕으로 조를 나눠 협력적이고 규율 있게 움직이고 있다. 사측의 이간질에 개인들이 노출되지 않고 집단으로 모여서 토론하고 저항하는 것은 단결된 대오를 유지하기 위해 정말 필요한 일이다. 정문 집회에서 두 시간마다 교대하는 노동자 소대들을 보고 있으면 정말이지 철의 규율과 드높은 자신감을 엿보게 된다.

1930년대 미국 노동자 투쟁

책에 실린 여러 나라의 점거 경험을 들여다보면 훨씬 세세한 공통점을 발견할 수 있는데, 특히 1930년대 미국 노동자들의 점거파업을 다룬 6장이 압권이다. 대불황기에 미국의 노동자들은 역사상 가장 큰 파업 운동을 일으키고, 점거파업을 무기 삼아 노조를 만들고 확대했다.

현재 갑을오토텍 노동자들이 맞닥뜨린 공격의 맥락은 당시 미국 노동자들의 상황보다는 덜 하지만, 심각한 세계경제 위기를 배경으로 기간의 성과를 후퇴시키려 한다는 점에서 공통점이 크다. 1920년대 미국의 지배자들은 이른바 ‘조직 노동자 섬멸전’을 준비해 노조를 완전히 깨부수려고 들었다. 노조원 고용을 배제하고 심지어 노조 조직자들을 살해했다. 엄격한 노무관리 방식을 도입해 노동강도를 높였던 건 영화 〈모던 타임스〉에 그대로 묘사돼 있다. 대량 실업과 임금 삭감이 들불 번지듯 퍼졌다. 이런 경제 위기와 탄압에 맞선 대응책으로 미국 노동자들은 점거파업이란 칼을 빼냈다. 책에 나온 서술 일부를 인용하면 다음과 같다.

점거파업은 기업주와 용역깡패가 자행한 잔인한 탄압에 대응해 출현했다. 자동차 제조사들과 부품 업체들은 파업과 피켓라인*을 분쇄하려고 무자비한 폭력과 최루탄, 총기 등을 아무 거리낌 없이 사용해 왔다. 이윽고 점거파업이야말로 기업주와 국가의 폭력에 대항하고 그것을 무력화하는 가장 유용한 산업 투쟁 방식이라는 점이 드러났다.

그중 가장 크고 중요한 파업은 1936년 12월 미시간 주 플린트의 지엠 자동차 공장에서 벌어졌다. 지엠 사측은 노동자들의 노조 가입을 결코 허용하지 않을 태세였다. 핑커턴 탐정 사무소*의 첩자 수백 명이 공장에서 암약하며 노조 가입을 고려하는 노동자들을 감시했다. 심지어는 독화술사를 고용해 노동자들의 입놀림까지 염탐했다.

이에 맞서 지엠 노동자 14만 명이 44일 동안 점거파업을 벌였다. 물론 과정이 순탄치만은 않았다. 하지만 노동자들은 현장조합원 민주주의를 구현하며 투쟁을 지속했고, “여성 지원단”으로 불린 가족대책위는 파업을 지원하고 엄호하는 데 핵심 구실을 했다. 여성들이 따로 부대를 조직해 싸울 정도였다. 결국 지엠 노동자들은 물심양면 지원 속에서 무소불위이던 지엠 회사를 굴복시키고 노조를 사수했다.

공장 밖에서 갑을오토텍 투쟁을 지원·엄호하고 연대를 호소하는 중요한 역할을 하는 가족대책위는 미국 지엠 파업 때처럼 이미 투쟁의 한 주체다. ⓒ조승진

이처럼 간추린 내용만 봐도 갑을오토텍 상황과 꽤 비슷함을 알 수 있다. 그렇다고 과거의 모든 점거파업이 승리로 끝난 것은 아니다. 승리와 패배의 경험 모두로부터 우리는 어떤 교훈을 얻어야 할까?

연대의 중요성

지은이는 점거파업이 성공하려면 현장에서 조합원 집회 등을 자주 열어 투쟁을 노동자들 자신의 것으로 만들어야 한다고 강조한다. 또, 작업장 바깥으로 눈을 돌리는 것도 매우 중요하다고 힘주어 말하는데, 다시 말해 점거’만’ 해선 안 된다는 것이다. 점거는 강력한 무기지만 연대를 획득하고 투쟁을 확산시키는 것도 못지 않게 중요하다.

갑을오토텍 노동자들도 다른 노동조합과 여러 정치단체에 연대를 적극 호소하고 있다. 농성장이 초점을 형성하는 만큼 언론과 SNS에서도 관심과 지지가 늘고 있다. 지역의 노조 활동가들이 함께 공장 사수에 동참하고 있고 노조 활동가들과 여러 단체들의 투쟁 기금 전달과 지지 방문, 식량 지원도 늘고 있다. 학생들의 연대도 마찬가지다. 노동자들은 공장을 방문한 연대 단체들을 환영하며 매우 고마워하고 있다. 이들은 서로 경험을 나누며 조금씩 일체감을 높이고 있다. 특히 8월 5일 민주노총 결의대회에 휴가철에도 수백 명이 달려와 응원해 준 것에 갑을오토텍 노동자들은 크게 고무됐다.

제조업 부문 휴가가 아직 안 끝난 상황에서 긴급하게 열린 8월 5일 민주노총 결의대회의 성공적 개최는 갑을오토텍 노동자들에게 큰 힘이 됐다. ⓒ이미진

이제는 금속노조와 민주노총이 더 과감하게 나설 차례다. 경총이 나서 신속한 경찰력 투입을 요청한 상황에서 연대 건설은 더 화급해졌다. 2009년 쌍용차 점거파업 때도 그랬듯이, 세계 노동운동의 산 경험이 보여 주는 바는 점거파업에서도 연대와 파업의 확산이 매우 중요하다는 것이다. 점거가 불법 딱지를 감수한 전투적 행동인 만큼 고립을 막는 것에 사활이 걸려 있다.

이 책은 단지 사례만 나열하지 않는다. 불황과 저항의 관계를 설명하며 불황기에도 노동자들이 단호하게 싸운다면 양보를 얻어 낼 수 있다는 것을 강조한다. 동시에 투쟁 과정에서 사회주의자와 정치의 구실도 빼놓지 않는다. 갑을오토텍 싸움의 당사자인 노동자들, 지지와 연대를 늘리려는 활동가들에게 다시 한번 일독을 권한다. 부디 이 투쟁이 반격의 신호탄이 돼 박근혜 정권의 경제 위기 책임전가에 브레이크를 걸기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