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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외대 박철 전 총장 명예교수 임용에 대한 학생들의 반대는 왜 정당한가:
법원 판결: 성희롱 교수 보호와 노조 불법 탄압을 위한 “횡령”

한국외대 당국의 박철 전 총장의 명예교수 임용 시도에 반대해 학생들이 총장실을 점거하고 농성을 벌이고 있다. 이에 박 전 총장이 왜 명예교수 임용은커녕 사회적으로 지탄받아야 할 대상인지 다루고자 한다. 먼저, 박 전 총장의 횡령죄 1심 판결에서 드러난 반노동, 반인권적 행태를 살펴본다.

한국외국어대학교 학생들이 8월 9일부터 총장실을 점거해 농성을 하고 있다. 박철 전 총장의 명예교수 임명에 반대해서다.

박 전 총장은 현 김인철 총장의 전임 총장으로 2006년부터 2013년까지 재임했는데, 임기 첫해부터 11.4퍼센트나 되는 등록금 인상과 선제적인 단체협약 해지를 시발로 한 불법적 노조 탄압으로 유명했다. 또 임기 8년 내내 학생 간 경쟁 격화와 대학(교육 환경, 커리큘럼 등)의 (친)기업화를 추진해 학생과 직원들에게 원성이 자자했던 인물이다.

2011년에는 총장 판공비를 개인 용도로 썼다는 혐의도 받아 학내의 퇴진 요구에 직면했지만, 검찰이 신속히 내사 종결(불기소)을 해 정권과의 유착 의혹이 제기된 바도 있다.

결국 두 달 전인 올 6월에 법원에서 횡령죄로 유죄 판결을 받았다. 임기 중, (주로 등록금으로 조성돼) 교육 목적에만 쓰게 돼 있는 교비회계에서 노조 파괴용 불법 탄압에 따른 소송과 패소 비용 등을 지급한 사실이 유죄로 판결난 것이다.

그런데도 올해 정년퇴직을 하는 그를 외대 당국은 명예교수로 임용하겠다고 한 것이다.

대강의 사정이 이러하므로, 외대 학생들이 그 조처에 반대하며 총장실을 점거하고 농성까지 시작한 것은 당연하고 정당한 일이다. 대학노조 외대지부도 이미 6월의 유죄 판결을 환영하며, 명예교수 임명에 반대한다는 뜻을 밝힌 바 있다.

총장실에서 점거농성을 시작한 외대 학생들. ⓒ이지원

김인철 총장 등 외대 당국은 최근 점거를 시작한 학생대표자들과 만나 박철 전 총장의 유죄 판결이 1심 결과이고 항소를 했으므로, 무죄 추정에 따라 명예교수를 임명하는 것에 아무 문제가 없다고 답했다고 한다. 그러나 무죄 추정 원칙은 형사소송법상 형사절차에서 (검사의 유죄입증 책임, 진술거부권, 불구속 재판을 받을 권리 등) 피고인의 시민적 권리에 관한 것이지, 교육자로서의 자격과 책임을 묻는 것과는 관계 없는 것이다.

게다가 재판 과정을 봐도 실질적으로 유무죄와 관련한 사실관계를 다투는 재판이 아니었다고 볼 수 있다. 박철 전 총장 측은 여러 횡령 건의 공소시효가 만료됐고, 사립학교들의 관행이었다는 요지로 변론했다.(물론 파업 파괴가 학교 교육 정상화를 위한 일이었다는 뻔뻔한 궤변도 빠뜨리지는 않았다. 뒤에 살펴 보겠지만, 이조차도 사실관계에서 맞지 않다.)

재판부는 이런 변론을 하나도 수용하지 않았을 뿐 아니라, 오히려 “죄질이 상당히 좋지 않[다]”고 판결했다. 노조와의 소송 비용은 고용주체인 학교법인의 법인회계에서 지출돼야지 교육 목적에만 쓰여야 할 교비회계에서 지출돼서는 안 된다고 못 박았다.

무엇보다 그 지출의 내용이 과연 한국외대에서 교육에 직접 필요한 것이 맞는가 하는 점은 법적 판단만이 아니라, 교육적·도덕적 견지에서도 살펴볼 수 있다.

1. 성희롱 교수 보호를 위한 지출

횡령죄 판결을 받은 지출에는 4천3백만여 원이 국가인권위원회의 성희롱 결정 취소소송에 쓰였다.(성희롱 피해자에게 지급한 패소 비용 포함)

2006년 6월 26일 당시 외대 용인캠퍼스 학생처장이던 이 모 교수는 파업 기간 중 부당노동행위에 대해 항의하러 온 노조 간부와 조합원들에게 성희롱 발언을 했다. 학교 측은 이후 사실 무근이라며, 이 사실을 유인물로 배포한 학생을 무기정학시키는 등 온갖 무리수를 뒀다.

그러나 해당 학생은 법원 판결로 복학했다. 국가인권위는 2007년 3월 말에 해당 발언이 실재했고, 국가인권위원회법이 규정한 성희롱에 해당한다고 판단했다. 국가인권위는 해당 교수에게 “국가인권위원회가 주최하는 특별 인권교육을 받을 것”과 박철 당시 총장에게 “[해당 교수에게] 경고 조치를 취할 것과 성희롱 재발장치 대책을 수립하여 국가인권위원회에 보고할 것을 권고”했다.

박철 전 총장이 지출한 비용은 이 결정을 취소하려고 국가인권위원회와 피해 직원을 상대로 행정소송을 제기하면서 쓴 것이다. 이 소송은 행정법원, 고등법원, 대법원 모두에서 기각됐다. 당연한 결과였다. 박 전 총장은 이 소송을 위해 국내 4대 로펌 중 하나라는 태평양까지 끌어들였고, 결국 무리한 항소로 인한 패소비용까지 교비회계에서 전부 지급한 것이다.

그럼에도 성희롱 가해자인 이 모 교수는 국가인권위의 권고를 이행하지도 않았고, 사과나 반성도 하지 않았으며 지금껏 대학에서 어떤 징계도 받지 않았다.

정말로 백번 양보해도 이런 소송은 성희롱 가해자 본인이 자비를 들여 해야 할 일이었다. 이런 소송을 버젓이 학생들 등록금으로 진행한 비양심적 행태는 이들이 얼마나 성차별적인지 뿐만 아니라, 얼마나 학생들을 우습게 여기며 교육자로서의 책임에는 무감각한지, 또한 노조 파괴 공작의 정당성에 흠집이 날까 봐 노심초사했는지를 모두 보여 준다.

바로 이런 이유들 때문에 박 전 총장은 불법 횡령을 저지른 것이다. 노조 탄압의 앞잡이로 나선 성희롱 가해 교수를 보호하려고 학생들 등록금을 사용하는 것이 교육과 무슨 관계가 있는가? 이야말로 파렴치한 반교육적 행위이며, 교육자의 책임과 양심을 저버린 불명예 행위 아닌가?

2. 불법적인 탄압 때문에 늘어난 소송비용

유죄 판결을 받은 박철 전 총장의 횡령 지출 대부분(8억여 원)이 노조와의 소송비용에 쓴 것이다. 그것도 파면, 해고 등 부당징계에 관한 소송들이 대부분이고, 이를 위해 태평양, 세종 같은 대형 로펌과 노조 파괴 공작의 상징처럼 된 창조컨설팅 등을 고용했다.

문제는 이 소송들이 거의 다 패소했다는 것이다.( 《노동을 변호하다: 변호사 김선수의 노동변론기》, 김선수, 오월의 봄, 2014) 그래서 박 전 총장의 횡령 지출 내역에는 ‘불법’ 해고, ‘불법’ 파면에 대한 1억 원이 넘는 패소비용도 포함돼 있다.

이런 결과는 단지 횡령만이 문제가 아니라, 횡령의 내용도 문제라는 뜻이다. 즉, 2006년부터 시작해 여러 해 동안 지속한 대량 징계 해고 등 노조 파괴·탄압 행태는 애초 불법이었다. 박 전 총장은 불법적인 노조 탄압을 지속하려고 교비회계 횡령이라는 또다른 불법을 저지른 것이다.

뒤늦게 법에 호소해야 했던 노동자들이 소송에서 이긴 것은 그만큼 박 전 총장의 反노조 행태가 막무가내였다는 뜻이다. 일반적으로 노동자와 천대받는 사람들에게 그다지 우호적이지 않은 법원이나 수억 원을 받고 사건을 수임한 대형 로펌들조차 이 불법·불의한 노조 탄압을 합법으로 바꿔 주지 못할 정도로 말이다.

결국 ‘지성의 전당’이라는 대학에서, ‘지성의 대표’를 자처하는 대학총장에 의해서, 법으로 보장된 최소한의 노동권조차 힘으로 짓밟히고, 불법을 감추려고 불법을 감행하는 일들이 버젓이 벌어진 것이다.

박 전 총장의 극악한 反노조 행태의 후폭풍은 결국 2012년 말 당시 대학노조 외대지부 위원장의 자살과 그의 빈소를 지키던 수석부위원장의 갑작스런 심근경색 사망으로 이어졌다. 당시 소송의 상당수를 담당했던 김선수 변호사는 다음과 같이 회고한다.

“대학 측이 노조간부들을 막무가내로 해고하고, 대형로펌을 선임해서 재판절차를 끝까지 끌고 간 것이 원인으로 작용하지 않았을까? 노조간부들이 승소하여 정의를 확인한 것은 의미 있겠지만, 해고자들과 노동조합이 겪은 고생은 어디서, 어떻게 보상받을 것인가? 노조간부 두 사람의 죽음은 어디에 하소연할 것인가?” ( 《노동을 변호하다: 변호사 김선수의 노동변론기》)

그래서 우리는 외대 당국에 묻는다. 박 전 총장을 주인공으로 하는 이 막장 비극의 어느 구석에 교육이 있고 명예가 있는가? 불법을 마다않는 박 전 총장의 ‘전투적’인 反노조주의는 교육도 아니고, 지성도 아니다. 오히려 이런 반교육적, 반지성적, 반인권적 행태들을 감싸고 명예교수라는 명예까지 선사하려는 한국외대 당국이야말로 공범임을 자임하는 것인지, 도대체 고등교육기관으로서의 책임을 제대로 수행할 의지가 있는지 묻지 않을 수 없다.

3. 노조 파괴공작으로 악명 높은 창조컨설팅과의 유착

박 전 총장은 2006년 지방노동위원회에 제기된 부당노동행위 문제에 대한 대응부터 창조컨설팅을 끌어들인다. 횡령액의 3분의 1가량 되는 4억 원 가까운 돈이 바로 이 창조컨설팅으로 들어갔다.

창조컨설팅은 노조 파괴 공작 컨설팅으로 악명 높다. 미리 파업 손실 등에 대비책을 세워 두고 일방적으로 단체협약을 해지하고, 노조가 투쟁에 나서면 무차별 노조 탄압과 손해배상 가압류 등으로 사기를 떨어뜨려서 노조를 와해·약화시키는 방식으로 유명하다.(그렇다고 모든 노조가 당하기만 하는 것은 아니다.) 해당 기업 노조의 ‘민주노총 탈퇴시 얼마 지급’ 하는 식으로 기업주와 계약을 맺은 일이 폭로되기도 했다. 외대 개입 이후에는 용역경비(깡패) 회사들과도 유착해 실질적 하청으로 두고. 공격적 직장폐쇄와 개악된 노동법의 복수노조 조항을 악용하는 등 폭력과 징계, 회유와 압박을 두루 이용하는, 한층 더 교활해진 기법들을 써먹었다.

창조컨설팅의 악행 문제는, 용역경비회사인 컨택터스와 합작해 폭력까지 써 가며 노조를 와해시키려 한 에스제이엠노조 사건으로 정치 쟁점화됐다. 결국 여론의 지탄 때문에 새누리당 정권 하의 친사측 노동부조차 이들을 징계해 자격 박탈을 해야 했을 정도로 악질인 자들이다.

박 전 총장과 창조컨설팅의 유착 의혹은 2006년 노조 탄압 비용 4억 원가량만이 아니다. 이후 노조 탄압 결과에 만족했는지, 박 전 총장은 2009년에 창조컨설팅의 대표인 심종두를 외대 법대 겸임교수로 임명한다.

과정은 이렇다. 그해 이명박 정부는 국비 지원 사업으로 ‘선진노사관계전문가’ 과정을 대학에 설치해 운영하도록 하고 모집을 했다. 여기에 고려대, 한국외대 등이 선정됐는데, 바로 이 과정의 교육 책임자로 심종두를 영입해 법대 겸임교수로 임명까지 한 것이다. 최근 〈한겨레〉의 보도를 보면, 이때 심종두는 고위 공무원, 용역경비 회사 사용자 등과 인연을 맺는 계기로 활용했다고 한다.

존재만으로도 노동자들의 치를 떨게 만드는 노조 파괴 집단들을 대학에 끌어들여 불법적인 노조 탄압을 자행하고, 그런 불의한 폭력의 연장선에서 벌어진 한 보직 교수의 명백한 성희롱을 덮으려고 학생들 등록금을 불법으로 가져다 쓴 것만으로도 박철 전 총장은 교육자로서 최소한의 자격도 없다.

총장실에서 농성중인 외대 학생들이 만든 팻말들. ⓒ사진 제공 노동자연대 외대모임

오늘날 대학은, 여전히 일부 학생들에게 계급/계층 상승의 사다리 구실을 하지만, 다수의 학생들에게는 졸업 후 취업 시장에 나가 노동계급의 일부로 편입되는 과정이다. 박철 전 총장과 외대 당국의 反노동자적 행태는 신자유주의적(친기업적) 학내 정책들과도 연관이 깊고 간접적으로는 자기 제자들의 미래 권리를 짓밟는 행위라고도 할 수 있다.

이러고도 이들에게 교육자 자격이 있는가? 이런 일들을 저지르고도 정년을 채우게 된 것이 오히려 황당할 뿐인데, 거기에 명예교수 임용이라니. 한국외대 당국은 스무살 학생들에게 가진 자의 불의를 명예라고, 가진 자의 불법을 잘 배워 익히라고 가르칠 셈인가?

박철 전 총장은 명예교수는커녕 규탄의 대상이 되는 것이 마땅하다. 한국외대는 반교육적인 박철 전 총장 명예교수 임용 방침을 철회해야 한다. 이를 요구하는 외대 학생들의 점거농성은 정당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