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이들 지켜주지 못한 것도 한이 되는데, 우리 아이들이 이제 교실에서도 쫓겨나야해. 이제 우리 아이들을 어디에서 만나야 하는가.”

“아무것도 달라진 게 없는데, 기억에서조차 잊혀지면 어떡해.”

“이전을 한다는데 우리 아이들 꿈과 손길, 웃음 소리까지 다 담아갈 수 있는가. 살려달라고 할 때는 아무것도 안하고 수장시키더니, 지금은 뭐가 그리 급해서…”

여기저기 울분으로 가득 찬 통곡의 소리가 교실에 울려퍼졌다. 세월호 유가족들은 자식들이 사용하던 방석을 껴안고, 사진을 가슴에 품고 하나 둘 책상에 쓰러졌다. 한참 동안 눈물을 쏟아내고, 가까스로 마음을 추스린 유가족들은 아이들의 유품 정리를 시작했다. 이내 “이건 너무 잔인하다”며 통곡 소리가 이어졌다. 유가족들은 아이들의 사진 액자를 정성스레 닦고 입맞춤을 한 뒤 상자에 넣었다. “자리하나 지켜주지 못해 미안하다”며 아이에게 편지를 남겼다. 아이들의 손길이 묻은 유품을 하나하나 정성스레 정리하며 마지막 인사를 건넸다. 겨우겨우 정리를 끝내고도 상자를 껴안은 채 손을 떼지 못했다. 그렇게 2년이 넘도록 “2014년 4월 15일”에 머물러 있던 아이들의 흔적이 상자에 담겼다.  

단원고 ‘기억교실’은 세월호 유가족들이 희생된 아이들과 만나는 공간이었다. 기억과 추모의 공간이자 약속과 다짐의 공간이었다. ‘진실을 감추려는 자’에 맞서 ‘기억하려는 자’들의 약속의 공간이었다. 다시는 이런 참사가 일어나지 않도록 해야 한다는 교육과 다짐의 공간이었다. 그래서 세월호 유가족들은 단원고 기억교실을 온전하게 보존할 것을 요구해 왔다. 단원고 재학생들의 학업을 보장할 수 있는 방안까지 제시했었다.

그러나 교실 존치 문제를 교육청은 ‘당사자 간 합의하라’며 방관했다. 언론들은 세월호 유가족과 단원고 재학생 학부모의 갈등으로 여론 몰이했다. 결국 세월호 유가족들은 피눈물을 머금고 교실 이전이라는 고통스러운 결정을 해야했다.

교실 이전 첫날, 유경근 4·16연대 집행위원장은 "(미수습된) 네 명의 학생들과 두 분의 선생님들이 돌아올 때까지만 교실을 지키고 싶다는 유가족들의 소망이 재학생들에 대한 해코지였고, 그저 욕심으로만 비쳤다는 것이 원망스럽다"며 "기억교실을 지키기 위해 2년 동안 교육청에 호소하고 무릎 꿇고 부탁을 해 봤지만 결국 쫓겨나게 됐다"고 울분을 토했다.

단원고 기억교실은 비록 이전하지만, 세월호 참사 진실 찾기를 위한 싸움은 계속된다.

유품 정리 마지막 날 단원고 2학년 7반 세월호 유가족들은 “지금 비록 우리는 쫒겨가지만, 교실을 이전한 후에도 다시 싸울 것”이라며, 수학여행을 떠나기 전 아이들이 단체사진을 찍은 벚꽃나무 아래에서 단체사진을 찍기도 했다.

오는 20일 단원고 기억교실은 경기도 안산교육지원청으로 임시 이전된다. 이후 2018년 9월 ‘4.16안전교육시설(가칭)’ 영구 추모관이 준공되면 다시 옮겨져 복구될 예정이다. 이전에 앞서 세월호 유가족들은 19일 단원고에서 ‘기억과 약속의 밤’ 임시이전 전야제, 20일 기억교실 임시이전 이송식을 진행할 예정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