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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쟁의 안개〉
문명의 가면

에릴 모리스는 로버트 맥나마라와 한 인터뷰를 사용해서 정말로 훌륭한 다큐멘터리를 만들었다. 〈전쟁의 안개〉는 지배계급 중 한 명의 사고 방식에 대한 통찰과 20세기 후반기의 역사적 교훈을 전달하고 있다.
오늘날 도널드 럼스펠드가 이라크에서 하는 구실을 맥나마라는 베트남 전쟁에서 했고, 럼스펠드처럼 증오의 대상이었다.
철학적인 테크노크라트인 맥나마라는 자본주의 이윤 체제가 신뢰하는 최고의 심부름꾼이었다. 그는 자동차를 생산하든 아니면 수백만 명을 학살하든 상관없이 모든 행동의 모든 요소를 분석하고 그것을 가장 효율적으로 만들기 위해 노력했다.
맥나마라는 제2차세계대전 당시 처음으로 두각을 나타냈다. 그는 일본 도시 전략 폭격을 기획한 당사자 중 한 명이었다. 단 한 차례 폭격으로만 10만 명의 도쿄 시민들이 불타 죽었다.
제2차세계대전 뒤 그는 포드 자동차에 스카우트됐고, 1959년에는 회장으로 승진했다. 그리고 몇 년 뒤 그는 새로이 당선한 존 F 케네디 정부의 국방장관으로 임명됐다.
〈전쟁의 안개〉에서 맥나마라가 논의를 주도하는데, 대화 사이에 삽입된 자료 화면들은 그의 ‘효율적 프로그램’이 가져온 실제 결과를 보여 준다. 반전 활동가였던 에릴 모리스는 대단히 적절한 삽입 장면을 선택했다.
비록 맥나마라가 때때로 자신이 내린 명령이 낳은 결과에 회의적일 때도 있지만 그는 한 번도 자기가 성취하려 한 의도 자체를 회의하지 않는다.
맥나마라는 10만 명의 도쿄 시민을 죽인 것이 필요했냐는 질문을 받자 즉시 직접 일본 본토 상륙 작전을 펼쳤을 경우 예상되는 미군 사상자 숫자와 이 숫자를 비교한다. 모든 것은 철저하게 계산된 것이었다. 그는 만약 미국이 전쟁에서 졌다면 자신이 전범이 됐을 거라고 솔직하게 인정한다.
맥나마라는 쿠바 미사일 위기 당시 핵전쟁이 너무나 위험하다는 사실을 깨닫고 재래식 전투를 조직하는 데 더 힘을 쏟았다. 물론 이것은 기업식으로 조직됐고, 동남아시아에서 수백만 명을 죽게 한 야만적 정책이 탄생했다.
한때 인간 IBM으로 불린 사람이 참회할 때도 있을까? 맥나마라는 베트남에서 자신이 저지른 일을 후회할까?
그는 이러한 질문에 명확하게 답하기를 거부한다. 그는 미국이 이 전쟁에서 오류를 저질렀다고 인정한다. 하지만 그는 베트남에서 싸운 것 자체가 잘못됐다고 인정하지는 않는다.
맥나마라는 모두가 인정하는 사업의 천재였고, 그는 문명의 가면을 쓴 채 대량 학살을 조직한 학살자였다.

나이젤 데이비


말론브란도의 〈번〉
식민지의 불타는 분노

이탈리아 좌파 감독 폰테코르보의 〈번!〉(1969)은 같은 감독이 3년 전에 만든 작품 〈알제리 전투〉와 함께 가장 탁월한 반제국주의 영화로 손꼽힌다.
평소 반제국주의 영화에 출연하고 싶어한 말론 브란도의 소름끼치는 연기, 그리고 좌파 감독들과 작업하던 젊은 시절 엔리오 모리꼬네의 음악만으로도 이 영화는 볼 만한 값어치가 있다.
〈번!〉의 배경인 퀘이마다 섬은 포르투갈어로 ‘불타다’라는 뜻이다. 포르투갈은 이 섬을 정복하면서 원주민의 반란을 잠재우기 위해 섬을 불태웠고, 원주민들을 모두 죽였다.
〈번!〉은 영국인 윌리엄 워커(말론 브란도)를 중심으로 전개된다. 그는 퀘이마다에서 노예들에게 포르투갈을 상대로 반란을 일으키라고 부추긴다. 그러나 사실 그는 영국 스파이고 포르투갈로부터 섬을 빼앗는 것이 목적이다.
워커는 현지 사탕수수 농장주들에게 노예보다 ‘자유로운’ 임금 노동자가 왜 더 경제적인지 설명한다. “생각해 보십시오. 평생 동안 돌봐줘야 하는 부인과 필요할 때만 돈 주고 살 수 있는 매춘부 중 어느 쪽이 더 경제적입니까?”
그는 영국 제국이 노예 반란으로 탄생한 ‘독립국가’를 어떻게 통제할 수 있을까 하는 질문에 간단히 대답한다. “자유무역이죠.”
워커의 계획은 완벽하게 성공하고 ‘자유’ 노동자가 된 노예들은 “사탕수수를 베서 세계 시장에 팔지 않으면 어떻게 먹고 살거냐”는 협박 앞에 농장으로 돌아간다.
하지만 워커가 포르투갈을 내쫓기 위해 만들어 낸 ‘투사’인 호세 들로레스는 고통받는 사탕수수 노동자들을 보면서 새로운 봉기를 주도한다. 그는 “영국은 자유를 위해 포르투갈과 싸우라고 호소했지만 막상 영국에게 자유를 요구하자 우리를 억압한다” 하고 분노한다.
워커는 이전의 포르투갈 지배자들과 마찬가지로 섬을 통째로 불태우면서 반란군을 소탕한다. 자기 재산을 불태운다고 불평하는 한 영국인 농장주에게 워커는 이렇게 소리지른다.
“당신은 남태평양에 얼마나 많은 사탕수수 농장이 있는지 아시오? 이 반란의 소식이 선원을 통해 다른 섬으로 퍼져 나갔을 때 어떤 일이 일어날지 상상해 보았소? 포르투갈인들은 이 섬을 불태우고 3백년 동안 평화롭게 돈을 벌 수 있었소! 더 큰 이윤을 위해서는 희생이 필요하단 말이오!”
아쉽게도 국내에 출시된 〈번!〉은 완전판이 아니다. 이 영화의 미국 측 배급사는 20분을 잘라냈고, 국내에는 미국판이 출시됐다. 하지만 이거라도 꼭 한 번 보기를 권한다.
“자유”의 이름으로 이라크를 침공한 제국주의 군대가 끔찍한 학살을 저지르고 있는 지금 이 영화의 정치적 메시지는 여전히 커다란 감동을 안겨 준다.

김용욱