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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근혜식 대학 구조조정이 곳곳에서 저항에 부딪히다

이화여대 학생들의 점거 투쟁으로 박근혜 정부의 대학 구조조정 정책이 도전받고 있다. 점거 7일 만에 이화여대 당국은 평생교육 단과대학 사업(이하 평단 사업)인 ‘미래라이프 대학 설립’을 철회했고 교육부가 이를 공식 확인했다. 이후 학생들은 비민주적으로 학사 행정을 밀어붙여 온 최경희 총장 사퇴를 요구하며 점거를 이어가고 있다. 8월 3일과 10일에는 재학생과 졸업생 수천 명이 시위를 벌이기도 했다.

총장 퇴진을 요구하며 투쟁을 이어가고 있는 이화여대 학생들 ⓒ조승진

이화여대에서 박근혜 정부의 핵심 교육 정책 중 하나가 도전받으면서 대학 구조조정 정책에 불만이 누적돼 온 다른 대학에서도 저항이 표출되고 있다. 대체로 이런 사업들은 학생들을 비롯한 학내 구성원들에게 일방 통보식으로 추진됐다. 그러자 뒤늦게 사업 신청 혹은 선정을 알게 된 학생·교수들의 반발이 일고 있다. 이화여대 투쟁은 정부의 정책도 싸우면 철회시킬 수 있다는 자신감을 불어넣고 있다.

이화여대와 함께 평단 사업에 선정된 동국대에서도 학생들이 사업 철회를 요구하며 본관 앞 농성에 나섰다. 학생들은 1차 기한으로 13일까지 농성을 벌였는데 학교 당국은 17일 사업 수정 계획안을 학생 요구를 반영해 제출하겠다는 수준의 답변만 내놓았다고 한다. 동국대 안드레 총학생회장은 완전 철회를 요구하며 투쟁을 이어가겠다는 입장을 밝혔다.

동국대 당국이 평단 사업으로 신설할 단과대에 포함시키겠다고 밝힌 글로벌무역학과는 현재 재직자전형(특성화고졸업 후 재직 중인 성인 대상 전형)으로 선발하는 학과로서, 신설된 지 3년이 지나도록 전임교수가 한 명도 없는 실정이다. 학생들은 지금도 제대로 된 지원이 안 되고 있는데 졸속적으로 이뤄진 이번 사업에서도 비슷한 일이 반복될 것이라고 우려하고 있다. 동국대는 이번 사업으로 교육부로부터 30억 원을 지원받을 예정인데 이 돈이 어디에 쓰일지 제대로 된 계획도 내놓지 않고 있다고 학생들은 지적하고 있다. 학생들이 항의를 시작하자 동국대 교수협의회도 지난 12일 “사업을 즉각 중단하라”는 성명을 발표했다.

동국대에서도 불통 재단에 대한 불만이 누적돼 왔다. 동국대 학생들은 총장 선출에 종단이 개입한 것에 항의해 이사장과 총장 사퇴를 요구하며 15년 만에 총회를 열었다. 그런데 최근 동국대 당국은 학생총회를 위해 제공받은 재학생 명단을 제대로 반납하지 않았다는 황당한 이유로 전 부총학생회장에게 무기정학 징계를 내려 학생들의 분노를 사고 있다.

국립대인 창원대에서는 교수들이 나서서 평단 사업 반대 입장을 공식적으로 표명했다. 창원대 교수회는 8월 12일에 교수회를 대상으로 한 투표에서 투표자의 66퍼센트가 사업 추진에 반대했다고 발표했다. 또한 평단 사업을 고수하면 총장 불신임 투표 등에 돌입하겠다고 밝혔다.

졸속 추진, 교육의 질 하락 우려

이화여대 학생들이 물꼬를 튼 뒤, 2차 평단 사업 선정 대학 네 곳 중 세 곳에서 반발이 벌어지고 있는 것이다.

최근에는 평단 사업 2차 모집에 서울 주요 대학들을 포함시키려고 교육부가 압력을 행사했다는 정황이 폭로되기도 했다. 교육부가 일일이 이화여대와 동국대 등에 연락을 취했다는 것이다. 정원 감축 요건을 완화하면서까지 주요 대학들을 사업에 끌어들여 모양새를 갖추려 한 것이다. 실제로 이화여대와 동국대는 1차 모집 시기에는 신청을 검토하고 있지 않다가 5월에서야 사업 신청을 검토했고 7월에 선정된 것으로 알려졌다. 박근혜 정부는 평단 사업으로 ‘선취업 후진학’ 모델을 확대하려 하는데 이 때 주요 대학들의 참여가 유인 동기가 될 것이라 판단했을 것이다.

그런데 평단 사업은 2017학년도 신입생을 모집하려면 오는 9월부터 수시 모집을 해야 한다. 사업에 선정된 지 불과 두 달 만에 신입생을 모집하는 것이다. 졸속 추진, 교육의 질 하락에 대한 강력한 비판이 제기되는 것이 당연하다.

물론 더 많은 노동자들이 양질의 대학 교육의 기회를 제공받을 수 있어야 한다. 그러려면 졸속적이고 부실한 학위장사가 아니라 현재 학생들이 받고 있는 교육과 동일한 내용과 기준으로 교육받을 수 있어야 한다. 제대로 된 시설과 교원의 확충 등이 없는 상황에서 이런 교육이 이뤄진다면 기존 학생들의 교육의 질도 위협받을 수 있다. 따라서 대학 당국은 교육 환경 전반을 대폭 개선해야 한다. 학점별 등록금으로 등록금 부담을 완화해야 한다. 이런 일들이 제대로 이뤄지려면 현재 기형적으로 높은 사립대 비율과 등록금에 대한 의존도를 낮추는 대안도 함께 마련될 필요가 있다.

비민주적 강행

박근혜 정부는 재정지원을 미끼로 대학 구조조정을 밀어붙이고 대학 당국들은 비민주적으로 이런 사업을 밀어붙이면서 학생들의 저항을 불러 일으켰다. 박근혜 정부의 대학 지원 사업들은 취업률 등을 내세워 학생들 사이에서의 경쟁을 강화하는 한편 정원 감축, 학과 개편 등 구조조정 요소를 가산점 항목으로 지정해 사실상 대학 구조조정을 확대하는 수단으로 사용되고 있다. 대학특성화 사업(CK사업)과 프라임코어 사업에는 총장 간선제 등도 가산점 항목으로 포함돼 있다. 직선제나 유사한 효과를 내는 방식으로 전환하면 사업 지정을 취소할 수도 있다. 구조조정을 밀어붙이며 동시에 대학 내 민주적 요소를 더욱 축소시키고 있는 것이다.

이화여대 점거 투쟁에 대해 전국의 여러 대학 총학생회들이 지지를 표명한 데에는 이런 대학 구조조정에 대한 불만이 자리하고 있다.

경희대는 부총장이 국문학과와 전자전파공학과를 ‘융합’해 웹툰학과를 만들 수도 있다고 발언한 것이 알려지면서 학생들의 반발을 샀고 학교 당국은 결국 프라임 사업 신청을 전면 재검토하겠다고 발표해야 했다.

인하대는 문과대학 폐지를 골자로 한 구조조정 계획을 내놨다가 학생들과 교수들의 저항에 부딪혀 계획을 폐기했다. 교수회와 학생회는 프라임 사업에도 강력히 반대하고 나섰다. 그럼에도 인하대 당국은 프라임 사업을 위해 준비한 구조조정안을 프라임 사업 탈락 이후에도 밀어붙이고 있다. 현재 총학생회를 비롯한 단과대 학생회장들은 총장실 앞 1인 시위를 몇 달 째 이어가며 학교 당국의 비민주적 운영에 항의하고 있다.

프라임 사업을 앞세워 학과 통폐합 등을 추진했던 국민대에서도 학생들이 총장실 점거를 벌이며 항의했다. 국민대는 사업 탈락 후에도 정원 감축 등 구조조정은 포기하지 않고 있다.

최근 한국외국어대 학생들은 박철 전 총장에 대한 명예교수 임명 철회를 요구하며 총장실 점거 농성을 시작하기도 했다. 경쟁 강화와 친기업화 정책을 추진하고 노조 파괴를 일삼은 박철 전 총장에 반대하는 이 투쟁도 대학 구조조정에 대한 반감을 반영하고 있다.

박근혜 정부는 대학을 기업의 이윤을 위해 재편하고 있다. 이 과정에서 학내 민주적 권리가 축소되고 학생들과 교수, 노동자들은 경쟁을 강요받고 있다. 따라서 대학 구조조정에 맞서 함께 힘을 모아 싸워야 한다. 이화여대 투쟁은 외부세력 배제라는 아쉬운 태도에도 불구하고 점거라는 단호한 전술이 여전히 유효함을 보여 줬다. 사드 배치 반대 운동과 갑을오토텍 공장 사수 투쟁으로 정부의 위기가 심화되고 있다는 점도 승리의 배경이 됐다. 이처럼 대학 구조조정에 맞선 투쟁은 박근혜 정부의 위기를 이용해 단호히 싸우면 승리할 수 있다. 서로의 투쟁을 고무하고 연대하며 투쟁을 확대해야 한다.